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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4 1-6 | [유기성 목사 설교]하늘 가는 밝은 길(요한복음14장1-6절)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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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목자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유기성 목사
날 짜: 2008년 2월 24일
제 목: 하늘 가는 밝은 길
본 문: 요한복음 14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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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장 1-6절 말씀 묵상

요한복음 14:1-6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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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ogeumnews.com

Date Published: 5/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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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 장1-6절 – 성경묵상 – Daum 카페

요한복음 14 장1-6절 ·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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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11/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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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수수께끼 – 요한복음14:1-6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저와 여러분이 살 집은 다 지어놓고 오시는 것입니다. 그 집은, 이 땅에 있는 집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최소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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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lastingforever.tistory.com

Date Published: 6/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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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4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4장 1-6절)

요한복음 14장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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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pcgl.org

Date Published: 8/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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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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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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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오늘은 요한 14:1 로 6 절의 말씀을 가지고 …

요한 복음 14 장 1-6 에서 예수님은 극한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지금 읽은 본문 말씀의 1 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 : 1 너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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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tpaulbibleacademy.com

Date Published: 6/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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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장 1~6절의 실질적 의미에 대하여

요한복음 14장 1~6절의 실질적 의미에 대하여 ·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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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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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성 목사 설교]하늘 가는 밝은 길(요한복음14장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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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요한 14 1-6

  • Author: svcforh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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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7. 12. 1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UhfyQ9yWArA

요한복음 14장 1-6절 말씀 묵상

요한복음 14:1-6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베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니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셨는데. 가시는 길은 죽음을 통과하여 가는 길 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과 하지 않으셔도 되셨지만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물로 드려졌습니다. 그 죽음은 우리들이 바라는 자연사가 아닌 처형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은 정혼을 하고 나서 신랑은 거처를 만들러 갑니다

신랑이 거처를 다 만들면 신부를 데리러 와서 결혼식을 하게됩니다.

예수님도 우리들의 신랑이 되시니 거처를 만드시러 가시는 것 입니다.

하늘나라는 광활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거처할 집을 만들어야 하시기에 예수님이 가신다고 하시며 너희가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안다고 하시자 도마가 묻습니다. 예수님 어디로 가시는지 그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

죽음의 시간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시간이기에 우리들은 언제 갈지, 어디로 가는지를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에서는 자기의 생각을 반영하여 살 수 있지만, 사후의 세계는 하나님이 온전히 통치하시는 영역입니다. 우리들의 죽음의 순간에 천사가 영접하러 오거나 사탄의 부하인 마귀가 데리러 옵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그 길을 알 수가 없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길을 찿으려고 할게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께 맡기면 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길은 예수님을 통하여야만 갈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길도 잘 찿지 못하여 광야같은 인생길을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사후의 길을 알아서 찿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의 길을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사후의 길도 당연히 예수님을 통하여 예비됨을 알 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는 이미 사도로 선택이 되었고 인증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길로 당연히 갈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의 죽음의 형태는 비록 처형이라는 형태였지만 그 길은 바뀌지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길로 근심하지 말고 알려 주신 예수님의 길을 따라 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요한복음 14 장1-6절

2017년 11월 25일 토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Hallelujah!

– 오늘도 복 있는 주말 새 날 새 아침이 시작되었습니다.

– 복된 주일을 준비하기 위해 내 자신 안에 참된 평안이 있는지를 돌아보고 무거운 짐을 벗어 내는 시간을 만들어 봅시다.

–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예수님의 말씀을 겸손히 믿음으로 순종하여 주님을 섬기며 영광 돌리는 삶의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요한복음 14 장1-6절 }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 제 목 ♥♥♥

☞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위로하심

♥♥♥본문 이해와 요약 ♥♥♥

☞ 14장에서는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과 자신의 고난, 베드로의 부인에 대한 예고로 불안 해 하는 제자들에게 천국 처소와 기도 응답에 대해 약속하셨습니다.

– 구원의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시면 보혜사 성령을 성도들에게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시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강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 또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말씀하심은 제자들로 예언 성취를 체험하여 믿음을 갖게 하려 하심임을 밝히셨습니다.

– 예수의 예언은 교회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되었고,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대로 성령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 결론적으로 인간의 모든 근심의 해결 방법은 오르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 우리는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을 잊어도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사 난관을 극복하도록 도우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 예수께서는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심을 말씀하심으로써 구원의 길을 명확하게 제시하셨습니다.

– 그리고 성령을 보내시어 믿는 자들을 진리로 이끄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 성도는 진리요 생명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성령의 충만을 받아 복음을 담대히 증거 해야 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확신으로 말씀에 순종으로 따라가야 하며,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실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께 영광돌림이 되어야 합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믿음이 있으면 참 평안을 누린다.(요한14장1절)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모든 근심의 근본적 해결책은 온전한 믿음이 있어면 평안을 받아 누립니다.

-1절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것은 그들이 이제 비로소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그들 곁을 떠나가실 것임을 어렴풋이나마 알았기 때문입니다.

– 제자들은 지금까지 믿고 의지해 왔던 예수님께서 자기들 곁을 떠나시게 되리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되면서 염려와 두려움과 불안으로 근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처럼 두려움과 불안,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심으로 다시 한 번 그들에게 믿음을 촉구하셨던 것을 보면서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 우리 모든 인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한번도 경험 해 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 같이 두려움과 불안,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 그렇다면 지금 나는 솔직히 무엇을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있습니까? 근심 걱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 이를 때마다 흔히 ‘내게 좀 더 많은 돈과 재물이 있다면 이러한 걱정, 근심은 없을 텐데!’라고 말하는가 하면 ‘내 지위가 좀 더 높았다면’ 혹은 ‘좀 더 건강만 하다면 아무런 염려도 없을 거야!’라는 말들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 그래서 이처럼 모든 근심과 걱정, 염려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방패를 얻기 위해 재물과 지위 등을 얻으려 그 귀한 인생을 진리가 아닌 헛된 곳에 쏟아 붓고 있는 것입니다.

– 이러한 소원 성취만 되면 모든 근심과 걱정, 염려와 불안으로부터 해방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하지만 과연 그렇습니까? 많은 재물과 돈을 모으려는 소원이 성취되면 정말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질까요?

– 우리들이 바라던 대로 높은 지위가 올라가면 그동안 우리들을 그토록 괴롭혀 오던 모든 염려와 불안이 말끔히 사라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 않습니다.

– 오히려 그 재물을 잃을까 더욱 불안해하며 또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일수록 그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낮은 지위에 있을 때 보다 더 많은 불안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을까요?

– 그렇다면 지금 내가 이 모든 염려와 불안, 걱정과 근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인지를 올바른 해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오늘 짧은 한 절에 기록 된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예수님의 놀라운 약속을 믿으며 주님을 통해 오실 성령의 능력을 굳게 의지합시다.

– 그리할 때 내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막아주지 못하던 염려와 불안, 근심, 걱정에서 해방되어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 하나님 앞에 살려고 하는 나를 원수마귀 사단은 한 순간도 편안히 그냥두지 않고 금전문제와 어떤사건과 건강문제로 낙심과 시험에 들게 합니다.

– 이를 때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 오직 하나님 홀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며 주님을 의지하는 자를 평강과 생명의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확신 합시다.

– 그렇다면 지금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염려와 근심에서 해방되기 위해 이 땅의 그 어떤 것들만 좇는 헛된 노력을 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을 굳게 믿는 믿음의 확신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 내는 삶이 됩시다.

– 그리고 오늘도 두려움과 근심 걱정과 생활의 염려로 잠 못이루는 나의 형제와 이웃이 있으면 그에게 참 평안의 복음을 전하여 주일에 함께 예배케 하는 주말이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 그리하여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나를 이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에서 영원토록 지켜주시는 복을 누리는 저와 주님의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

요한복음14:1-6

인생의 수수께끼

요한복음14:1-6

오래 전 미국의 아주 평범한 가정에, 4살된 아주 예쁜 사내 아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그 아이의 부모가 그 아이를 데리고, 점쟁이를 찾아가 그 아이의 미래를 봐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점쟁이는 “이 아이는 마흔 세살 밖에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어요. 이 말이 그 아이의 마음속에 깊에 각인되었습니다. ‘나는 마흔 세살 밖에 살지 못하는 존재구나!’ 아이가 커 갈수록, 마흔 세살이 가까워 올수록, 초조한 마음은 더 커져갔습니다. 그리고는 마흔 세번째 생일이 지나고, 일주일 후 그 아이는 병원 영안실에 안치 되었습니다. 사인은 마약 중독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세계적인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입니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갈채를 받으며, 화려하게 살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마약으로 위로를 삼다가, 그만 비참한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부검을 해 보니까, 10가지 마약이 배속에서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약 많이 드시지 마십시요. 엇그제 신문을 보니까, 미국에서, 총으로 죽는 사람보다, 약을 잘 못 복용해서 죽는 사람이, 총에 죽는 숫자의 26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총보다, 약이 훨씬 무서운 것입니다. 마약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의사에게 진단을 받고, Prescription 받아서, 약국에서 약을 사 먹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는 다는 거예요.

그런데, 총 보다도, 약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희망이 없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마흔 세살, 이후의 소망이 없었어요. 그래서 마흔 세 살 까지만, 살다 가려고, 그렇게 마약을 먹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요. 이 세상 사람들 거의 다가, 엘비스 프레슬리 처럼 살고 있는 거 아십니까? 엘비스 프레슬리는, 마흔세살이면 그의 인생이 끝나는 것으로 믿고 살았지요.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도, 80평생, 길면, 90평생이면, 인생이 끝나는 것으로 굳게 믿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믿고 사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열한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보면, 제자들이 근심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어떤 근심이었냐면, 이 ‘영생’ 에 문제, ‘죽음’ 에 문제에 대해서 근심 걱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가룟유다가 떡 한조각을 받고, 밖으로 나가니, ‘밤’ 이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유다가 이제, 몇 시간 있으면, 군사들과 함께 예수님을 잡으러 올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14:28절에 보시면,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 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제자들의 귀에는 예수님이 죽으신다는 말로 들린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걱정 근심이 많겠습니까?

어쩌면,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불신의 싹이 트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 지금까지, 영생이니, 구원이니, 말해 놓고는, 죽는다니,…… 그럼 영생은 없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영생은 믿고, 따라온 우리는 뭐야!, 우리를 속인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제자들의 마음을 예수님은 꿰뚫어 보시고는,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말씀하시죠. 다른 말로 하면, 걱정하지 말아라, 영생은 있다, 90살까지 살고 끝이 아니라,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하시면서, ‘내말을 믿으라’ 고 말씀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말해도 제자들은 반신 반의 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2절에,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살집을 마련하러 가는 것이다. 3절에 보시면, 살집을 다 마련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데라고 갈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함께, 영원히 살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시죠.

이것이, 3절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이, 그토록 고대하는, 주님의 재림의 사건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저와 여러분이 살 집은 다 지어놓고 오시는 것입니다. 그 집은, 이 땅에 있는 집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최소한, 집 한 채는 가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난한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의심 많은 도마가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주님, 어디로 가시려고 하는 것입니까? 다시 말하면, 주님은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주님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도마의 이 질문은, 참 중요한 질문입니다. 도마의 이 질문으로 인해,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며, 또 가셔서 어떠한 사역을 하실 것이며, 그 사역을 다 마친 후에는, 다시 오실 것 까지 우리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심 많은 도마라고 부르기 보다는, 질문 잘 하는 도마라고 불러야 합니다.

아마도 예수님께 던진, 수 많은 질문들 중에, 오늘 도마의 질문은, 최고의 질문이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사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이 도마가 던진, 질문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 사람은, 엘비스 프레슬리 처럼 살다가, 인생 그냥 끝내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도대체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인생인가?’ 라는 고민 한번 해보지 않는 사람은, 영생에도 관심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영생에 대해서 너무 궁금하니까, 주님에게서 해답을 찾으려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인 것이죠.

여러분, 이 영생에 대한 해답은요.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수 많은 철학자들이, 이 답을 찾으려고 해도 찾지 못했습니다. 공자도 석가도, 마호메트도,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명확하게 길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도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 대답을 줄 분은, 오로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2절을 보십시요. 우리가 가야 할 곳에 어디라고 말씀합니다. “아버지 집” 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버지의 집이 우리가 가야 할 고향입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그곳으로 다시 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와 여러분의 살 집을 마련하신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말씀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희들도 나처럼, 영원히 살 것이다.’ 이 말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말로만 허풍 떠는 것이 아니라, 군대의 조교처럼, 먼저 시범을 보여주시고, 너희들도 그와 같이 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를 보세요. 석가가 다시 살아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79살에, ‘파와’ 라는 마을에서 대장장이 아들 ‘춘다’ 가 주는 음식을 먹고는, 심한 식중독으로 죽었습니다. 그 후에, 석가가 살아 났다거나, 하는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에는, 극락이 없습니다. 석가는 극락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부다피아’ 라는 불교 인터넷 홈페이지 가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정작 부처님 자신의 사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무기’ (기한 이 없다)고 하여 논하려 하지 않으셨다” 라고 기록했았습니다.

석가 자체는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수행의 종교지, 영생의 종교가 아닙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은, 한국불교에나 극락을 말하지, 불교의 원조라고 하는, 인도에서는 ‘극락’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불교에 극락이 있다손 치더라도, 극락은 뭐고, 환생은 무엇입니까? 극락에 가는 사람은 뭐고, 짐승이나, 곤충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불교는 앞뒤가 맞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은, 믿으면, ‘아버지 집’ 으로 간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간다고 말하죠. 인생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목적지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교는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석가가 가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석가가 죽었다가, 살아나서, 분명한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죽었으니, 그의 제자들이, 종교로 만들다 보니까, 오합지졸인 것입니다.

한번은 석가의 제자들이 석가에게 죽음에 대해서 물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사람이 살다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석가모니, 왈 : “이 사람들아 사람이 살아서 일도 모르겠거늘, 죽은 다음에 무슨 일이 있을지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라고 했다고 합니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불경에 그대로 있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곧이 많도다”

이 보다 확실한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진정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것 같아요. 배고프지만, 돌아갈 집이 있으면, 그래도 행복하지 않습니까? 하루 종일 일터에서, 일하고, 돌아가 집이 없다면, 어떠할 것 같습니까? 참 비참할 것 같지 않습니까? 반겨주는 아내가 있고, 반겨주는 남편이 있는, 그 집 때문에, 힘을 얻는 것이고, 돌아 가 안식할 수 있는 집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 것이죠.

그래서 동물들도요. ‘귀소본능’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코끼리도 태어난 곳에 가서 죽습니다. 연어도 산란기가 되면, 태평양 가로질러 자기가 태어난 곳에 가서, 알을 낳는 다고 합니다. 이처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고향을 생각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경기도 전라도 경사도가 아니라, ‘아버지 집’ 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 집에 다시 가는 방법은, 딱 한가지 입니다. 1절을 보세요.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6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어느 날, 아이들이 동네에 모여서 구슬치기도 하고 딱지치기도 하고 땅 따먹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많이 딴 아이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또 잃어버린 아이는 시큰둥해서 있고, 다 잃은 아이는 아예 울고 있었습니다. 많이 딴 아이에게 조금만 달라고 사정을 해 보지만 그 아이는 무자비하게 거절을 합니다. 이윽고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자 땅거미가 깔리면서 점점 어둠이 찾아옵니다. 길에서 놀던 아이들도 하나 둘씩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뒤에서 다정한 어머니의 아들, 딸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울던 아이들도 다정한 엄마의 소리에 ‘엄마’하며 달려가 엄마의 품에 안깁니다. 모두들 즐겁고 행복한 표정으로 집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구슬을 다 따고, 땅도 다 딴 그 아이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슬픈 기색이 연연했습니다. 손에는 구슬과 딱지가 가득했지만 조금도 그 아이를 기쁘게 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고아였기 때문입니다.

딱지를 다 따 모으고, 구슬을 다 차지했을지라도 해가 지자 갈 곳이 없는 그 아이는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땅을 많이 차지하려고, 재산을 한 푼이라도 더 모아보려고 발버둥치고 바쁘고 분주하게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인생의 밤이 찾아와서 죽음이 우리를 부르는 그 날에,

돌아갈 집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 갈 곳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인생의 황혼이 되어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행복한 표정으로 주님 품으로 갈 때, 아무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서, 갈 곳 없이 방황하다가, 지옥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 영적으로 길 잃은 사람은 내 남편이 될 수도 있고, 내 아내가 될 수도 있고, 나를 낳아주신 내 부모님이 될 수도 있고, 내 형제들, 일가친척, 사랑하는 죽마고우가 될 수도 있으니, 내가 이 길을 아는 사람으로서 어찌 그를 그냥 편안하게 바라볼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이 복음 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 문제를 답해줄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십자가 지시고,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셔서, 그 길은 분명하고,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원하옵기는,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이, 주님께서 제시하신, 그 분명한 길로 잘 달려가, ‘아버지 집’ 에 넉넉히 들어가고 남음이 있는 귀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0200424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4장 1-6절) – 코너스톤장로교회

본문 속 제자들은 근심에 빠져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직업도 내려놓고, 가정도 뒤로하고 예수님만 따라 다녔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빛이고 소망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이제 곧 제자들을 떠나시겠다고 말씀하시니 제자들의 마음에 근심과 염려가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의 짐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위해 그들을 잠시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떠나신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몇몇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떠나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해외로 가시려나’ 하고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은 다 주님을 버려도 자신만큼은 결코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 했고, 두려움에 빠진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그들 곁을 떠나시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제자들의 마음을 잘 알고 계셨던 우리 주님은 부드럽고 온유한 목소리로 제자들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자신을 믿고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별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잠시 뿐인 것이기 때문 입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려 간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처소’라는 것은 잠시 들러서 휴식을 취하는 임시 처소가 아니라, 모든 성도가 영원히 거할 거처 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거주할 하나님 나라의 처소를 준비하러 가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처소를 예비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건축가가 집을 짓는 것처럼, 나사렛 목수 출신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손에 망치와 톱을 들고 제자들과 함께 살 집을 건축하시겠다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모든 성도가 거할 처소를 손으로 지으실 필요가 있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제자들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며, 자신의 죽음이야말로 구원 받을 모든 백성을 위해 반드시 지불해야 할 대가임을 시사하고 계신 것 입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영원히 거할 처소가 주어지는 것이기에,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일은 다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 죽음을 통해 구속 사역을 감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어서 3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처소 예비’를 위하여 이 땅을 떠날 것을 말씀하시고, 또한 이 준비가 끝나면 다시 오셔서 제자들을 그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여기 3절에 예수님께서 “내가 다시 와서”라고 말씀 하셨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때는 제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주님께서 예비하신 천국 처소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 우리가 징조는 분별할 수 있을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의 정확한 재림의 때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반드시 도래할 재림의 날을 항상 깨어서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절을 다시 봅시다. 여기 예수님은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접’이란 말은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들을 데리고 가신다는 의미 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목적 중 하나가, 주님을 믿는 그의 백성들을 하나님 아버지께로 데리고 가시고자 오시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그들이 알고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하여 제자 중 도마가 질문 했습니다. 5절 입니다. “(요 14: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이 말을 풀어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 저희는 지금 예수님이 가시는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디 가시는 곳도 모르는데, 하물며 그 곳을 가는 길을 우리가 어지 알겠습니까?” 우리는 제자 도마의 대화를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무도 예수님의 고난 당하심과 십자가 죽으심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음을 다시 한 번 알게 됩니다.

본문 속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지도 상에 위치한 어떤 특정 지역으로 떠나시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까지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이르는 길, 즉 구원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전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죠. 당황해 하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6절 입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계신 곳’에 가는 길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길이 곧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가 없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에 이르는 길은 많습니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가도 되고, 기차를 타고 가도 됩니다. 또 원하면 비행기를 타고 가도 되고, 아니면 좀 돌아서 멀리 서해 바다를 통해 배를 타고 갈 수도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다양한 길이 존재하는 셈이죠. 그러나 천국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한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 되십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종교 다원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부처를 믿던지, 알라를 믿던지, 여호와를 믿던지 다 똑같다. 어느 신을 믿던지 결국에는 다 천국에 간다.”는 것이 이 세상의 가르침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친히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오늘 본문을 더 정확하게 해석하면, 오직 예수님만이 길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진리이시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종교나 철학사상, 선행, 봉사를 통해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없이는 구원도 없고, 천국도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진리가 많다고 말합니다. “너가 믿는 것도 진리고, 내가 믿는 것도 진리다. 그러니까 우리 서로 싸우지 말고, 서로의 가치와 사상을 존중하고 인정해주며 평화롭게 지내자”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와 공존을 논하는 그럴듯한 주장 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진리가 오직 하나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부처가 진리일 수 없습니다. 알라가 진리일 수 없습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이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구원에 이르는 길 되시며, 진리 되시며,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주님만이 참된 구원자 되십니다. 이 세상에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 이르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십시오.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참된 길이십니다. 다른 길은 다 가짜요 망하는 길 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만이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들을 친히 데리고 천국에 들어가실 것 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 우리 모두가 오직 예수님만이 참된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구원 받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한복음 14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1)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한복음 14장 1~6절의 실질적 의미에 대하여

저는 아직 새내기 신학대학원생입니다.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했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었을지 늘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설교 – 주석들은 그런 면이 덜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설교의 오류는 이런 주석에서 비롯됩니다 – 는 그 말씀의 진정한 의도와는 동떨어져, 감상적이고 때로는 원래의 문맥과는 상관없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나아갑니다. 듣기에는 좋지만 그 안에 진실이 없는. 오늘 제가 전하려는 구절은 특히 거의 대부분이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의도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John 14: 1 – 6)

요한복음 14장 1~6절의 통상적인 주석과 설교는 예수께서 천국에 그리스도인들의 방을 예비하신다는 것과 그러한 천국의 방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 예수님 자신이라고 밝히셨다는 것이다. 이는 이 본문에 상당한 오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애석하게도 이 본문에서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이 했던 착각과 비슷한 종류의 실수를 우리가 저지르고 있다. 이 단락은 13장 33절의 내용으로부터 이어지는데, 14장 전체는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이야기와 동일한 이야기 속에 속해있고, 17장에서 예수님의 기도로까지 이어지므로, 우리는 이 전체 내용을 염두에 두고 이 본문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제자들처럼 우리가 잘못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가시는 곳을 문자 그대로 오로지 장소 – 그게 물리적이든 다른 영적 차원의 장소이든 – 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성전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말씀하신 것인데,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건물로서의 성전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성전에 대한 그러한 개념은 쉽게 교정되어 잘 받아들여진다. 다만 특정 서신서 본문을 읽을 때에나 일반 대중들의 머릿속에서 다시 되살아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런데 이 본문에서 우리가 겪는 이해의 어려움은 상당히 커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극복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본문은 천국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가? 천국, 즉 하나님 나라라는 용어에 대한 엄격한 정의가 아닌 대부분의 신자가 받아들이고 있는 그 천국이라는 의미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이 본문은 결코 어떠한 장소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천국을 어떠한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해도 이 본문은 천국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죽어서 가는 곳을 천국이라고 이해한다 해도 이 본문을 잘 읽으면 그러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심지어 그 천국이라는 개념조차도 잘못된 개념이라면?

이 본문은 13장 33~35절로부터 이어진다.

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John 13: 33 – 35)

위 본문의 핵심이 33절에 있는가 아니라면 34~35절에 있는가. 당연 후자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현대의 우리의 관심은 전자에 쏠려있다. 후자는 이해하기 쉽지만, 전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전자의 궁금증에서 시작된 그 이야기가 사실은 후자와 관련되어 있다면? 그것이 예수님의 계명을 위한 것이라면? 그렇다. 14장의 첫 단락은 예수님의 계명과 깊은 관계가 있고, 14~15장은 정말로 성경에서 ‘사랑 장’이라고 불리어 마땅한 장이다.

13장 33절에서 예수께서 어딘가로 가신다고 할 때, 제자들은 그곳을 이 땅의 어떤 물리적인 장소로 이해했다. 현대의 우리들은 보통 이곳을 ‘천국’으로 이해한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바로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주신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과 사랑하라는 계명이 이어지는 패턴은 14장과 15장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분명 이 두 가지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반복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4장 2절에서 예수께서 ‘네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와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께서 가시는 곳을 어떠한 장소로서 이해했던 것 같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는 여기서 더 확실하게 그곳을 ‘천국’이라고 받아들인다. ‘아버지 집’은 당연히 하늘나라라고, 그곳에 우리의 거처를 준비해놓으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3절에서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재림과 휴거를 떠올린다. 예수님은 분명 다시 오실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그러한 재림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휴거라는 개념은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서 나온 것인데, 이 구절 역시 오독이다. 물론 여기에서 그 구절까지 살펴볼 수는 없지만, 휴거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도 없이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오셔서 데려가신다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도 하고 계시지 않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오셔서 영접하시고 예수께서 계신 곳에 같이 있게 하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예수께서 오셔서 데려가신다고 읽는다. 물론 그렇게 읽을 수는 있을 것이다. 단 이 구절만 읽었을 때에만 그러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14장 18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것이 재림 때 오실 것이라는 말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2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는 구절은 어떠한가.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거처로 데려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오셔서 거처를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자 그렇다면 2~3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곳이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의 방이라고 읽히는가? 3절에서 예수께서는 분명 오셔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오셔서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18절에서 이해한 것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아니다. 그것은 분명 제자들이 살아서 겪게 될 일을 말씀하신 것이고, 현대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14장 18절 말씀도 미리 한 번 보자. 예수께서는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오시겠다고 하셨다. 만약 위 단락에서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을 말씀하시는 거였다면, 그분은 우리를 단지 세상 근심 속에 허우적대도록 놔뒀다가 마지막에 오셔서 천국을 데려갈 테니 잘 참으라는 말씀을 하신 것인가? 아니다. 제자들이 그 근심 속에 매몰되지 않도록 오셔서 함께 계시겠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고아로 버려두고 아이가 다 컸을 때 와서 좋은 집 하나 주는 것이 그 고아에게 힘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아버지의 집’은 어디를 말하는가? 예수께서 ‘아버지의 집’이라고 표현하신 유일한 경우는 바로 ‘성전’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제자들에게 성전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장소였다. 하지만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성전의 개념은 물리적인 대상에서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익숙하다. 바로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바로 이런 새로워진 성전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 새로워진 성전 되심에 대해 예수께서는 이 이후 구절부터 계속 말씀하신 것이다.

2절에서 ‘거할 곳(μονή)’이라는 표현을 보자.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 ‘대저택’이라고 번역한 경우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 단어가 한글성경번역본처럼 14장에서 ‘거하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인 ‘ μένω ‘에서 파생된 단어라는 것이 중요하다. 즉 14장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거하다’라는 말씀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4절에서 예수께서는 ‘길’에 대해 말씀하신다. 1~3절까지를 우리가 죽어서 간다고 생각하는 장소 개념으로서의 천국으로 이해하면 4절의 길은 천국을 가는 길, 즉 천국 가는 방법이나 매체로 이해되어 버린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이 길도 여전히 의문 속에 있음을 5절에 도마의 질문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제자들처럼 현대의 제자들도 여전히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마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너무나 유명한 말씀을 하신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구절이 방금 말한 것처럼 예수께서 우리가 천국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이 구절이 우리가 천국 가려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물론 대부분의 주석들은 이 구절을 단순히 그런 의미로는 보지 않고 예수께서 자신이 누구신지 계시하고 계신 것으로 보고 있음에도, ‘길’이라는 표현에는 은연중 일반 대중들의 기대에 호응하고 있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자신을 계시하신 것으로 보는 주석들 또한 이 구절을 따로 떼어 보고, 이 구절의 앞뒤와의 상관관계를 보고 있지 못한 듯하다. 여기서 예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통해 스스로를 계시하고 계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7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이다. 거기에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 되심. 그 후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우리의 하나 됨까지로 확장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거할 곳의 의미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길’이라고 말씀하시고 – 이것은 실제로 그분이 진리이며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같은 의도임에 분명하다 – 그분을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 이유이시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은 바로 새로운 성전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야만 한다. 옛 성전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듯,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새로운 성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 그것이 예수께서 자신을 ‘길’이라고 말씀하신 의미이다. 7~9절이 말씀하시는 바 예수를 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바로 생명이다. 17장 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기도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길’이시면서 또한 그분이 생명이시다.

이렇듯 14장 6절의 말씀은 단순히 우리가 천국 가는 방법으로서의 예수님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졌다. 그렇다고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가 되는 방법을 제시하시기 위해 말씀하신 것도 아니다. 14장의 1절에서 예수께서 어떤 말씀으로 이 장을 시작하셨는지 잊으면 안 된다. 예수께서 지금 15장까지 길게 하시는 말씀은 바로 1절의 말씀을 염두에 둔 것이다. 예수께서 떠나신 후 크게 동요하고 흔들리게 될 제자들을 격려하시기 위한 의도로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이며, 더 나아가 그들이 무엇인가를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신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해 나가는 것, 바로 열매를 맺는 것이다. 15장 포도나무와 가지의 이야기는 바로 14장과 동일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14장의 초반부를 잘못 이해했을 경우 15장 역시 잘못 이해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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