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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 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 로 오라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아이빅밴드 142 개의 새로운 답변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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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빅밴드의 찬양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가난이라는 짐을 어떤 이는 질병이라는 짐을
어떤 이는 관계속에서 허덕이며 어떤 이는 죄의 문제로 힘들어 합니다.
저마다 다른 모든 짐을 그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분 예수님 안에는 그 모든 짐에 대한 쉼이 있습니다.
오늘 이 찬양을 들으며 한 영혼이라도 주께 돌아오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안에는 참 평안이 있으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가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이 찬양이 복음 전하는 곳에 쓰여지길 원합니다.
악보는 https://blog.naver.com/kyungmin0716/221361065573 블로그에 있습니다.
Producer 박성호
Lyrics \u0026 Composer 손경민
Piano 김정희
Synthesizer 이은영
Electric Guitar \u0026Nyion Guitar 인준호(JUNO JACK)
Saxophone 이기명
Trombone 권용진
Drums \u0026Percussion 박성호
Bass Guitar 성철모
Acoustic Guitar 박종덕
Vocal 지선,손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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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 설교말씀 – 양의문교회

마태복음 11 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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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sheep.org

Date Published: 8/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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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All you who are weary and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는 주님의 부드럽고 사랑에 가득찬 초청을 바로 이해하는 것도 또한 <마. 11장> 전체를 살펴볼때 가능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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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kbchurch.org

Date Published: 11/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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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비교 – 다국어 성경 Holy-Bible

개역한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공동번역,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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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8/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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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 기도 – [기획]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마태복음 11장 25~30절. Ⅰ. 본문의 상황 및 내용.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태복음 11장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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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stsi.org

Date Published: 4/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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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 24.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너무나도 유명한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후 지난 2천여 년의 세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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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3/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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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되는 성경구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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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ost.naver.com

Date Published: 11/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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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아이빅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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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수고 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 로 오라

  • Author: 손경민 (Son Kyungmin Official)
  • Views: 조회수 75,38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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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10. 2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Gi3go6uvAek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마태복음 11 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 설교요약 —-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세상에서 여러 면으로 고통들을 받고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수고와 무거운 짐에서 놓여나 쉼과 평안을 얻게 되기를 원합니다. 사람마다 평안을 구하고 자기 나름의 방법대로 다소간 평안을 얻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참된 평안이냐 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참된 평안인가, 그렇지 않는가 하는 것을 식별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수고와 무거운 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예수님 앞에 오라고 말씀합니다. 몇 사람이 오든지, 어떤 수고 어떤 짐을 인해 고통과 곤란 중에 있든지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주님이 쉬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이 평안을 얻을 수 있으려면, 주님이 내게 메어주신 멍에를 메고 주님에게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수고와 무거운 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기서 말씀하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인류 시조가 선악과를 따먹은 범죄와 타락의 결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 하나님 앞에 서서 약속과 명령을 받았습니다. 범죄하기 전 에덴동산에서도 하나님께 받은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수고로운 것이 아니고 쉼과 평안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에는 인간과 인간이 그 가운데 살면서 다스려야 하는 땅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인간과 함께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대적하고,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짐승들도 사나운 성질을 가져 약육강식을 하는 상태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죄악으로 인해 오게 된 인간의 고생과 무거운 짐들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타락의 결과로 받는 고생과 무거운 짐은 참으로 심각한 것입니다.

사람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것은 자신이 어리석어 자초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기 욕심에 이끌려 돈을 사랑하다가 많은 근심으로 자기 자신을 찌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된 이유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과실로 인해 고생하게 된 것을 자기의 십자가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흔히 듣게 되는데, 그것은 주님이 메어주신 십자가는 아닙니다.

거짓 평안과 참된 평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사람의 죄와 타락에서 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죄가 수고와 무거운 짐의 원인인 것입니다. 죄의 부패와 우리를 사로잡아 끌고 가려는 죄의 권세의 지배가 우리를 곤고하게 만듭니다. 우리 스스로는 이 수고와 무거운 짐을 피할 수 없고 벗어버릴 수 없습니다.

사람은 육신과 영혼이 합해서 하나의 사람을 이루어 이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삶에서 받는 육신의 고통도 있고 심령이 받는 괴로움들도 있습니다. 영혼이 받는 고통과 육신이 받는 고통이 전연 별개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 관계에서 오는 수고와 무거운 짐도 있고, 질병과, 경제 문제로 인한 수고와 고통도 있습니다. 이 모든 수고와 무거운 짐이 사람의 죄 때문에 오게 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죄가 개인과 사회 전반에 작용한 결과로 사람이 암매하게 되어 이런 고통을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자기의 방법대로 수고와 무거운 짐을 벗고 평안하게 지내려고 합니다.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고 하는 것도 고통을 잊어보려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다 마음과 생활의 안정을 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추구하는 그 평안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참된 평안인지, 아니면 마취제와 같은 거짓된 평안인지를 식별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정신적 안정, 육체적 생리적 안정, 경제적 안정, 사회적 안정, 가정적 안정, 교회적 안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안정을 얻지 못하면 항상 불안과 고통을 느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본적으로 필요한 안정을 가지기 위해서 늘 주의해야 하고,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쓸데없이 근심하고 염려하지 말아야 하고, 과욕을 버려야 합니다.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불신자들도 고통을 당하지 않고 평안하게 행복하게 살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평안을 얻어 누립니다.

그러나 그 평안이 주님이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평안인가, 아니면 이 세상이 주는 평안인가 하는 것을 식별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평안은 인생의 수고와 무거운 짐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평안만이 참된 평안입니다.

참된 평안의 출처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 불신자의 평안 추구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나는 어떤 평안을 추구하고 있는가’ 하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평안인지, 이 세상의 평안인지 진지하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의 구속의 은혜와 보호로 말미암은 평안을 누리고 있는지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화목이 된 것과,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영육 간에 필요를 채워주심을 믿고 바라는 가운데 세상이 줄 수도 빼앗아갈 수 도 없는 평안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속죄 공로를 믿는다고 해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는 자라고 하면서 이 세상의 평안을 세상적인 방법으로 추구하는 자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속죄와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으로 삼으신 그 큰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야 그리스도의 평안을 얻어 누릴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려고 할 때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려 해야 하나님 나라의 평안이 항상 나를 지배하게 됩니다. 내가 내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할 때, 주님께서 평안을 주십니다.

우리가 자신은 주님의 피에 팔린 주님의 것인 것을 알고, 주님의 생명을 받은 주님의 지체요, 주님의 종이요 신부인 것을 알고 주님을 위해서 살면 주님께서 나를 책임져 주십니다. 주님의 완벽한 보호 안에서만 참된 평안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나아가면 참된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9-2-18

본문말씀: 마태복음 (Matthew)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서 론>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은혜의 시간 가지길 원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데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초청의 말씀 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에 참석한 우리 각자는 처해 있는 상황은 서로 다른 삶을 산다 할찌라도, 제가 한가지 확신하는 것은 우리 각자는 모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는 것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무거운 멍에를 벗고 마음의 쉼을 얻고, 진정한 평화를 누리길 원한다는 사실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가운데 지쳐있는 우리 인생들을 향하여 사랑과 소망으로 초청하시는 우리 주님의 평화와 안식의 말씀은 더욱 귀중한 것 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은혜로운 초청을 영접하심으로 주님과 언제나 동행하시는 안식의 삶을 사시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원 합니다.

<본 론>

언제나 그러하듯 성경본문의 말씀을 옳바르게 이해하는 첫걸음은 그 본문만을 따로 떼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본문에서 그 본문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 가를 살펴보는 것 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는 주님의 부드럽고 사랑에 가득찬 초청을 바로 이해하는 것도 또한 <마. 11장> 전체를 살펴볼때 가능하게 되는 것 입니다. <마. 11장> 은 주님의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떠나는 장면 (v.1)에서 시작하여, 침례요한의 질문과 주님의 답변 그리고 침례요한에 대한 주님의 평가가 이어 집니다 (v.2~19). 그리고 나서, 주님은 회개치 않는 마을에 대한 심판의 메세지를 전합니다 (v.20~24). 주님의 많은 권능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에 대한 심판의 메세지인 것 입니다. 그리고나서, 주님은 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v.28) 는 초청을 하시는 것 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포함된 마지막 단락 (v.25~30) 에서 주님은 바로 앞 문장에서 회개치 않는 고라신과 베세다와 가버나움에 대한 무거운 심판의 메세지에서 돌연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v.25). 특별히 오늘 본문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 앞선 문장의 를 제대로 살펴보아야 하는 것 입니다. 먼저, 주님은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 하나이다” (v.25). 주님은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에게는 나타내심에 의해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메튜헨리는 <이것이란 ‘평화에 관한 일’ (눅. 19:42)> 이라고 주석 하였습니다.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평화에 관한 일’을 세상에서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와 같은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나타내신다는 것 입니다. 그러기에 감사한다는 것 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어떤 우리 인간의 행위 이전에 전적인 하나님 아버지의 뜻임을 주님은 밝히셨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게 될때, 주님의 다음의 말씀을 또한 이해하게 되는 것 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v.27) 는 말씀을. 말씀은 오늘 본문말씀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평화에 관한 일’ (the things which belong unto this peace) 을 세상의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부족하고 지혜롭지 못한자들에게는 나타내신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는 바로 오늘 본문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핵심단어가 될것 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평화를 누리지 못함으로 언제나 피곤과 무거운 짐 가운데서 자유롭지 못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를 깨닫고 누릴수 있는 자는 ‘오직 아들과 아들의 소원데로 계시를 받음으로 아버지를 아는 자’라고 주님은 그 영적 진실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구체적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의 무게 아래 고통받고 있는 자들을 향한 주님의 초청을 통하여, 왜 우리는 그리스도께 나아가야만 하는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 왜 우리는 주님의 발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일까요? ” (Why do we have to come Jesus?);

첫째, ‘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이기 때문 (Because we are weary and burdened): ‘오스왈드 챔버스’는 오늘 본문말씀 <마. 11:28> 을 묵상 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 했습니다. “모든 인생은 죄로 인하여 무겁다. 다들 힘들어 한다. 자신의 죄로 인하여 인생이 힘들고 또한 사회에 깔려 있는 죄로 인하여 무겁다. 오류와 분쟁과 미움과 거짓이 사회에 가득하다. 또한 죄로 인한 저주가 언제나 인류 역사와 인생 가운데 있으니 그 아픔과 피곤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 지친 영혼들이 교회에 나간다. 그러나 오히려 더 상처를 받고 온다. 그 심령은 위로와 쉼이 아닌 멍에를 메고 돌아온다. ~ 이 시대 가운데 복음이 없는 교회들마다 사람들에게 참된 쉼이 아닌 종교적인 멍에를 씌우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와 율법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복음을 통하여 참된 자유와 평안을 제시하신다. 평안은 십자가 안에 있다. 성령의 능력 가운데 있다. 아무리 무겁고 힘든 멍에를 지더라도 성령의 능력으로 인하여 마음이 평안하여진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자신의 몸을 바치셨다.” 라고.

그렇다면, 누가 과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 일까요? 그것은 근본적으로 죄의 힘 가운데 고통하는 자들 인것 입니다. 제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고 세상권력과 도덕적이고 철학적으로 뛰어난 삶을 살아가는 자라 하더라도 죄의 힘에서 자유할수 없다는 것 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율법을 소유했다고 하더라도 말 입니다. 이점을 우리 주님은 이렇게 잘 밝혀 주셨습니다. “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 8:34,36) 고. 누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입니까? 그들은 죄의 힘 아래 고통하는 자들 입니다. 그들은 죄의 막강한 힘에 의해 죄를 범할수 밖에 없는 자들 입니다. 이들은 아직까지 아들에 의해 죄로 부터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 입니다. 이들은 불신자들이요, 아직까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지 않음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영생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 입니다. 주님은 이렇듯 죄 아래 고통받고 심음하는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인생들을 향해 초청의 메세지를 선언 하십니다. “수고하고무서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v.28b) 라고.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은 모두 오직 아들만이 주실수 있는 ‘죄로 부터 자유’케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까? 그로말미암아, 그분이 주시는 쉼을 지금 맛보고 있습니까?

둘째, ‘ 주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 ’하기 때문 (Because Jesus is gentle and humble in heart): 만약 성도 여러분이 “누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인가?” 에 대한 오늘 저의 성경해석을 잘 귀 담아 듣으셨다면, 그는 바로 불신자 임을 이해하실 것 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중에 곧바로 생기는 한가지 질문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런 질문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 입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에게서 해방되고 자유케 되었는데, 왜 나는 여전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가?’ ‘왜 주께서 약속한 진정한 자유와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가?’ 라고 느끼지는 않습니까? 다시말해, 주님을 영접함으로 그의 제자가 되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살아가는데 ‘왜 여전히 주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가?’ 하는 것 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에서 찾을수 있을 것 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비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v.29) 라고 주님은 주께로 나아온 제자들에게 참된 스승으로서 지도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이 순서를 이해하시겠습니까? 먼저, 주께 나아와야 합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 입니다. 바로 그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그리고 영원한 구세주로 영접함을 통해서 말 입니다. 이것이 영생의 구원을 누리는 성도가 되는 조건이요,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는 조건일 것 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동안 우리 성도들에게 거듭하여 강조했드시 ‘거듭남으로 영적 출생을 했다는 것이 끝이 아니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해야 하는 것 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라나야 한다’는 것 입니다. 어린 아기가 이 땅에 태어났다고 그것이 다자란 것이 아니듯이 영적으로 태어난 경우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영적으로 태어 났다면 이제 한걸음 한걸음 자라나가야 하는 영적 성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말 입니다. 왜 수많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거듭난 성도들에게 여전히 평화와 쉼이 없는 것일까요? 왜 여전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 눌려 살아가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 주님께 배우지 않고 있기 때문’ 입니다. 주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빌. 2:5) 라고 사도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라고 도전 합니다. 그분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십자가에서 순종하신 마음을 말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주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움으로 점점 더 풍성한 쉼을 누려가고 있습니까?

셋째, ‘ 주님의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볍 ’기 때문 (Because His yoke is easy and His burden is light): 맞습니다. 내가 비록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의 제자가 되었지만, 날마다 주께서 격려하시고 명령하신 것처럼 ‘ ~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눅. 9:23) 주님을 따르지 못하면 주님의 제자로서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의 제자의 신분이 되었다는 말과 제자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산다는 말은 전혀 다른 말 입니다. 이것이 제가 앞에서 언급한 ‘영적 출생’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하나님의 자녀가 됨/ 성도의 신분) 을 했다는 사실과 ‘영적 성장’ (=영적 성숙/ 성도의 영적 상태) 을 한다는 것은 다른 말이라는 것 입니다. 이런 영적 순서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 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마치 내가 갑자기 완벽한 영적 상태가 되었다든가, 아니면 나의 인격적 (지.정.의) 결단과 순종없이 자동적으로 영적 성숙이 된다고 은연중에 착각하는 크리스챤들이 얼마나 많을찌 저는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저의 청년시절 되돌아 볼때, 제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난 이후 제가 마음속에 품었던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음을 저는 고백 입니다. 이것은 “왜 나는 예수님 믿고 거듭났는데, 내 삶은 아직도 무거운 짐 아래에서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는가?” 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솔직히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주님이 오늘 약속하신 평화와 쉼을 누리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정직히 그렇치 못하다고 인정한다면, 그 원인을 우리는 직시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 원인은 ‘주님께 배우지 못한 것’ 입니다. 이제 내가 그분께 배우고자 결심했다면, 우리가 첫번째 주님에 대해 이해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님의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볍다” 는 사실 입니다.

오늘 본문 의 ‘멍에’ (yoke) 라는 단어는 ‘두마리의 소나 가축의 머리에 함께 씌우는 농사기구’ 입니다. 주로 땅을 갈거나 뒤엎을때 가축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 두마리의 머리에 그것을 씌워서 그들이 발을 맞추어 앞으로 나아 가도록 만든 도구가 ‘멍에’ 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런 두마리 가축의 머리에 씌웠던 멍에라는 그 당시 농사도구를 사용하셔서, 우리 제자들이 어떻게 주께서 주시는 평화와 쉼을 얻을수 있는지를 영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 입니다. “ ~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v.29) 는 것 입니다. 스펄전 목사는 “나의 멍에를 메(라)” 는 의미를 “만일 너희가 나에 의해 구원 받기 원한다면, 나를 너의 주인으로 모시고 너희 자신을 나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만일 그렇치 않으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수 없을 것이다” 라고 해석 했습니다. 사실 여기에 역설이 있습니다. 멍에란 고된 어떤 일을 나타내기 때문 입니다. 사실, 우리 크리스도인들이 ‘자기 십자가’ 만큼 배우기 어려운 것이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 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 합니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v.30) 고. 물론 처음에는 그 멍에는 어려울 것 입니다. 이것은 ‘댓가지불’ (paying the cost) 의 과정이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볍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께서 직접 그 멍에를 이끄시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주의 영,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그 멍에를 이끄시기 때문 입니다. 주님께서 명절 끝날 서서 외치신 말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요. 7:37,38) 는 성령충만의 약속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넘쳐나기를 기대 합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 가운데 성령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 주님의 쉽고 가벼운 멍에를 메고 그분을 따르기를 소원 합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두번째 편지에서 이런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은 그 무엇과도 비교 될수 없는 크고 엄청난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것 입니다” (고후. 4:17) 라고. 사도바울은 자신을 포함한 초대교회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을 설명하면서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당한 핍박과 고난이 결코 별것 아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두번째 편지를 시작하면서 “ ~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 (고후. 1:8) 고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혹독한 시련이었습니다.그러나 동시에 놀랍게도 바울은 그 고난을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라고 선언하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고난이 크면 큰 만큼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그의 능력을 통하여 도리어 소망과 감사가 넘치기 때문이라고 사도바울은 고백하고 있는 것 입니다 (고후. 1:3~11). 지금 이순간 우리 주님은 우리 모두를 향하여 사랑의 초청을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v.28) 고. 이 초청은 평화에 관한 초청 입니다. 세상의 지혜롭고 똑똑한 자가 깨닫지 못하고, 어린 아이와 같은 연약하고 지혜없는 자가 도리어 깨닫는 ‘참된 평화’의 초청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평화의 초청 입니다. 바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실수 있는 평화 입니다. 그의 피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평화 입니다. 갈라진 담을 허물고,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케 하는 평화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우는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원 합니다. 그의 이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두려워 하지 말고, 그분의 멍에를 두려워 하지 않고 순종하여 메고 나아감으로서 가볍고 쉬운 그의 은혜를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원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참된 평화와 안식을 날마다 더욱 풍성히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아멘.

다국어 성경 Holy-Bible

개역개정 수고 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원문보기

개역한글 수고 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원문보기

공동번역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원문보기

새번역 ” 수고 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원문보기

현대인의성경 ‘ 수고 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아, 다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원문보기

新共同譯 疲れた 者, 重荷を 負う 者は, だれでもわたしのもとに 來なさい. 休ませてあげよう. 원문보기

NIV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원문보기

KJV Come unto me, all ye that labour and are heavy 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원문보기

NASB “Come to Me, all who are weary and heavy-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원문보기

新改譯 すべて, 疲れた 人, 重荷を 負っている 人は, わたしのところに 來なさい. 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 休ませてあげます. 원문보기

마태복음 강해 24.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마11:28-30)-201025오후

마태복음 강해 24)————–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201025오후 (마11:28-30)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아멘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후에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셨고 그리고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피조물들이 안식을 누리며 살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고난 받고 사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수고롭고 무거운 삶은 무엇 때문입니까? 왜 인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셨는데 그때 처음으로 ‘수고’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 남자에게는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탄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죄와 더러움과 질병과 가난과 죽음의 멍에’를 지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쉼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평안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짐이 넘치면 침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배입니다. 배에 적재 한계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선을 보고 짐이 한계를 넘지 않았는지 측정합니다. 만약 이 적재 한계선을 무시하고 더 많은 짐을 실으면 결국 배는 바다에 가라앉아 버리고 맙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인생의 짐이 계속 늘어나면 그 무게를 견디다 못하고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있는 이혼이나 자살도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스트레스라는 마음의 짐이 쌓이고 쌓여 한계를 넘어갈 때, 문제가 터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을 위하여 짐들을 그대로 방치해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인생들에게 주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셔서 내가 져야할 십자가를 대신 져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너무나도 유명한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후 지난 2천여 년의 세월 동안 삶에 지친 이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동아줄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1. 28절을 읽겠습니다.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호 코피온테스 카이 페포르티스메노이/ οί κοπιωντες και πεφορτισμένοι )

‘단 한 번의 낙담하고 지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계속 지치고 낙담 중에 있는 사람들아‘라는 뜻입니다. 또한 ’짐 진자들아‘는 누군가에 의해 무거운 짐이 지워진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낙담하고 지치게 만드는 무겁게 지워진 짐은 무엇일까요?

1.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무거운 율법적인 관행들(마23:4)이며,

2. ‘마귀가 우리에게 지운 죄의 짐’을 가리키며,

3. 당시에 로마의 압박 속에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치고 쇠잔해진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것들은 당시 사람들이 겪는 실존적인 짐이었습니다. 인간이 살아 가며서 겪는 실존적인 문제들은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 살아가면서 인간이 겪는 실존적인 문제들입니다. 시대마다 겪는 문제들이 다를 수 있겠지만, 인생 그자체가 수고요, 짐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범죄를 한 후 인간에게 주어진 징벌이 바로 ‘수고’였습니다. 인생자체가 수고요, 사는 것 자체가 수고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실존적인 문제 앞에서 지치고 힘든 이들을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주님께 나아간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겠습니까?

이런 실존적인 짐 진 자 뿐 아니라,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다 순교한 이들과 지금도 고난과 핍박 속에서 믿음을 지켜나가는 수많은 하나님 백성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실존적인 문제가 크고, 내가 진 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또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 해도 믿음을 끝까지 지켜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느라고 수고 많았지…내게로 오라시며 두 팔을 벌리고 맞아주시며 참 쉼을 얻게 해주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영적인 휴식을 주다’, ‘안식 하다’는 의미입니다. 쉼은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현재적인 쉼도 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쉼을 의미합니다.(히3:18-4:11, 계14:13)

2. 29절을 읽겠습니다.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은 주님의 이런 요구 앞에서 멈칫해집니다. 그렇잖아도 지금 지어져 있는 짐도 버거울 만큼 지기 힘든데….자기 짐까지 지라고 하시다니….. 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시더니 자기 짐을 메라고 말씀하시는가? 자기 멍에를 메야 쉼을 얻는다고 말씀하시니 이해가 되는가? 내짐도 무거운데…주님 짐까지 더 언져서 지면 아예 엎어져 일어나지도 못할 것인데…. 상당히 부담 가는 말씀이죠?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 당시의 멍에에 대하여 생각해봐야 합니다. 당시의 멍에는 두 마리의 소나 나귀가 일조를 이루어 메는 것입니다.

<함께 메는 멍에의 모습1>

<함께 메는 멍에의 모습2>

이것은 홀로 메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둘이 메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멍에를 메라고 요구하시는 것은 ‘너 혼자’ 멍에를 메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멍에를 메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메어야할 멍에는 우리가 혼자 힘겹게 메는 1인용 멍에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메는 2인용 멍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의 멍에를 메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자연스럽게 우리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멍에를 주님이 함께 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짐을 대신 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어주시려고, 가볍게 해주시려고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으로 인하여 멍에를 메고 계시다면 그것으로 걸려 넘어지지 마시고, 기쁨으로 그 멍에를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우리가 홀로 외로이 메는 것이 아니라 항상 예수님 자리가 옆에 마련된 2인용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일을 혼자 하는 것 같으세요… 교회 일을 나만 하는 것 같으세요…. 그렇게 생각된다면 큰 축복인줄아세요…

여러분이 누구네 밀감 따러 가는데, 내가 따고 싶다고 마음대로 땁니까? 아니죠…. 주인이 따라고 허락해야 그 집일을 하는 것이죠? 아니면 대행업자인 상인이 고용을 하고 따라고 해야 일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누가 허락해야 일할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죠? 당연한 거죠…. 내 맘대로 내가 시간 난다고, 내가 하고 싶다고, 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죠? 만약에 그렇게 생각하고 일한다면, 그것은 불법입니다. 불법에는 상이 없습니다. 책망만 있을 뿐입니다. 이미 여러분이 주의 성전에 와서 주의 일을 하고 있다면…하나님이 허락하셨고, 써주시니까 하는 겁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큰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을 억지로 할 일입니까? 기쁨과 감격 속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이 밀감을 따러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합니다. 일당을 받죠? 왜 고생하죠? 보상이 있으니까…그게 일당이죠… 하나님의 일은 누가 일당을 주실까요? 누가 보상을 해줄까요? 하나님이 하십니다. 일당 몇 푼 정도가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상급인 금 면류관! 영화로운 면류관으로 주십니다. 또한 이 땅에서도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도 주님이 그 상을 갚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복을 받고, 여러분의 자녀가 복을 받고, 여러분의 부모가 복을 받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과 이 땅의 기름진 복과 건강의 복을 주십니다.

나 혼자만 멍에를 메는 것 같으세요… 아니요 주님이 함께 메고 가는 멍에입니다. 주님으로 인해 그 멍에를 지고 갈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염려할 것도, 힘들어할 것도, 부담스러워할 것도, 불평할 것도 없어요…주님이 대신 지어주는 멍에니까요…..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3. 29-30절 읽겠습니다.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주님은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배워야할 제일의 교훈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그분의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의 능력을 배우는데 만 관심 있습니다. 목회자인 저도 그렇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나에게 임하면 좋겠다. 그래서 병든 자도 고치고, 예언도 하고, 능력도 행하고. 설교도 잘하고….. 그런데 주님은 그분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은 세상에서 행해지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온유와 겸손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토마스 아베케이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온유하고 겸손한체하며 매일 아침마다 13명의 거지들의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보다 한 명 더 발을 씻김으로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였을 뿐 진정으로 겸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만을 숨기고자 가식된 모습으로 온유와 겸손을 흉내 냅니다.

주님은 내게 배우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스승 되시고 인도자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에게서 배우세요…엉뚱한 사람에게서 엉뚱한 거 배워 못된 모습보이지 말고, 마귀에게서 마귀 짓 배우지 말고, 주님으로부터 온유와 겸손을 배우고, 진실을 배웁시다. 배워야 깨닫고, 배워야 변화되는데…. 주님이 나에게 배우라고 말씀을 해도 배우지 않으니 평생 예수 믿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벧전5:7절에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네 짐을 맡기라!” 우리 인생과 신앙의 문제는 짐이 아닙니다. 단지 그 짐을 나 혼자 지려는 것이 문제인 거죠.

찬송가 337장 1절을 함께 불러 볼까요?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이 찬송가는 엘리사 호프먼 목사가 작사했습니다. 어느 날 아주 큰 시련을 당한 성도가 호프먼 목사를 찾아와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근심에 싸인 저는 무엇을 해야죠?”라고 울부짖었습니다. 호프먼 목사는 한참 동안 그 성도의 하소연을 다 들어준 다음 간절한 마음으로 위로의 주님이 역사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 그 성도는 밝은 얼굴을 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래요. 이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질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맡겨야 하겠어요.”

성도가 나간 후 갑자기 영감이 떠오른 호프먼 목사는 펜을 들어 찬송시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337장이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가 쓰러지는 것은 짐 때문이 아니라 그 짐을 맡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똑같은 사람인데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사고가 비껴가는 것도 아니고, 병이 찾아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자녀가 잘 알아서 크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사업이 갑자기 잘되고 남편과 아내가 갑자기 천사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며 무거운 짐을 질 때 그것을 맡길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함께 읽고 마칩시다.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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