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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 유업 가계도 | 회사 팔고 사라진 재벌.. 끝나버린 분유왕의 꿈, 남양유업 / 소비더머니 18522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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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고 홍두영 명예회장이 창업한 남양유업은 국내 최초의 아기용 분유 생산으로 시작해 이른바 ‘우유 재벌’로까지 성장한 기업입니다. 한동안 가장 우량한 기업으로 꼽히며 탄탄대로를 달렸던 남양유업은 그러나, 갑질사태와 여러 논란 이후 이미지 회복을 하지 못했습니다. 쇄신을 하겠다던 창업자 일가가 지분을 팔고 끝내 회사를 떠나버린, 남양유업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남양유업 #한앤컴퍼니 #소비더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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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가계도 손녀 황하나가 또? – 인터넷 찬스

대기업 남양유업의 외손녀 황하나가 언론에 언급되면서 회사 가계도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많이 생기셨습니다. 故홍두영 회장이 떠나면서 회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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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review.tistory.com

Date Published: 5/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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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창업주 가계도 – 네이버 블로그

박유천의 예비 신부는 남양유업 창업주인 고(故) 홍두영 명예회장의 차녀 홍영혜 씨의 딸 황하나 씨로, 앞서 박유천과의 결혼 보도를 접하고 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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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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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가계도 총정리 – 주식하는 김나무

남양유업의 가계도 입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마약 혐의의 황하나씨는 남양유업 창업주이자 명예회장이셨던 홍두엽 회장님의 막내딸의 첫째 손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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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saf8442.tistory.com

Date Published: 8/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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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가계도 20탄(남양유업,삼양) – 뚱이 블로그

남양유업 가계도,삼양그룹 가계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故 홍두영(남양유업 창업주겸 명예회장)과 아내인 지송속(남양유업 전 감사)사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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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ngeleunah79.tistory.com

Date Published: 7/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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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남양유업 홍두영 명예회장家

남양유업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자사의 우유와 유제품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도 기업과 창업주에 대해 더 많이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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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eoul.co.kr

Date Published: 12/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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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두영 – 나무위키

남양유업 가계도. 홍두영 (1925 ~ 2010) 남양유업 창업자 / 지송죽 (1929 ~ ). 1남 홍원식 (1950 ~ ) 前 남양유업 회장 / 이운경 (19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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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1/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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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팔고 사라진 재벌.. 끝나버린 분유왕의 꿈, 남양유업 / 소비더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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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남양 유업 가계도

  • Author: 소비더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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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6. 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I1t9VZvVqkM

남양유업 창업주 가계도

남양유업 창업주 가계도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이며 영국 웨일스 개발청 한국 사무소장 황재필과, 남양유업의 막내 딸인 홍영혜의 장녀인 황하나가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 되어 구속되면서 남양유업 창업주 가계도 및 남양 불매 운동 이유 등에 대해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남양유업은 현재 주가 611,000 으로 시총순위 305위이며 시가총액 4,399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남양유업의 홍원식 회장은 황하나씨의 외삼촌으로, 남양유업측은 황하나씨와 그 일가족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지분도 없다며 황씨를 고인이 되신 창업주의 외손녀라는 이유로 남양유업과 연관지어 보도해 회사의 임직원, 대리점주, 낙농가 및 그 가족분들까지 많은 분들이 피해를 입고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황하나씨의 마약투약 의혹과 남양유업 오너일가 봐주기 논란이 확대되자 선긋기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러나 한 언론은 황씨가 지인에게 우리 외삼촌(홍원식 회장)과 아빠는 경찰청장이랑 개베프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현재 남양유업 지분은 홍두영 명예회장의 아들 셋이 나눠서 보유중이며 딸 둘은 지분이 없다고 합니다. 남양유업은 홍원식 회장의 장남인 홍진석 남양유업 상무와 홈범석 남양유업 차장이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씨는 몇해 전 JYJ 박유천과 결혼설이 있었으나, 이내 결별하여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남양유업 가계도 손녀 황하나가 또?

대기업 남양유업의 외손녀 황하나가 언론에 언급되면서 회사 가계도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많이 생기셨습니다.

故홍두영 회장이 떠나면서 회사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요? 그리고 황하나는 무슨행동을 했기에 매번 언급되는 것일까요?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남양유업 가계도

남양유업 가계도

우선 남양유업의 역사부터 알아보겠습니다. 1964년에 홍두영 창업주가 설립해 분유사업으로 1970년애에 ‘우량아 선발대회’로 인지도가 급상승했습니다. 영양실조가 흔했던 그당시엔 대단한것이였죠, 그 뒤로 튼튼한 육아 관련 캠페인을 펼쳐 유가공 업계에서 독보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불매운동이 시작됐죠..

가계도를 살펴보면 故홍두영(남양유업 창업주)과 아내 지송죽(전 감사)의 첫째 아들인 홍원식과 며느리인 이유경 사이에 태어난 손자 홍진석의 증손자, 증손녀 홍범석, 홍승의가 생산전략 부문장 자리에 있습니다. 남양유업은 유제품과 커피 및 음료 등의 제품을 생산,가공,판매 하는 한국의 3대 유제품 업체입니다. 현재는 혹원식 일가족이 사업을 물려받아 경영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손녀 황하나가 또?

대기업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가 또 다시 화제의 인물로 언급되었습니다. 안그래도 최근 집행유예 기간에 마약 혐의로경찰 수사를 받는 도중에 투약 사실이 확인된 음성 파일이 공개된적 있었죠. 이에 황하나는 마약 사실을 인정했으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황하나와 얽혀있던 남모씨는 지난달 17일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다 중태에 빠졌다합니다. 이번 사건으로 통해 남양유업 가계도에 많이 관심이 가셨을 것 같습니다.

남양유업 창업주 가계도

남양유업의 김웅 대표와 본부장급 이상 임원들.

남양유업이 사옥까지 건립한 이유는 유제품업계 1위로 더욱더 매진하기 위해서다.

남양유업의 대표이사 3명 가운데 한 명인 창업주 홍두영 회장은 1919년 1월7일생이다.

●영변 지주의 장남

홍두영 명예회장은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면 서부동에서 홍재영씨와 최점숙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영변에서 손꼽히던 지주여서 어린시절을 유복하게 보냈다.

홍 명예회장은 일제시대인 1944년 일본 와세다 제1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와세다대에 진학, 불어불문학과를 마쳤다.

홍 명예회장은 자신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어릴적 행적이 거의 알려진 게 없다.

일본에서 귀국한 27세의 청년 홍두영은 어수선하던 광복 정국에서 고향 영변의 숭덕여자중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교사 생활을 하던 1947년 5월 같은 영변 출신의 열살 아래인 지송죽(77)씨와 결혼,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김일성 정권이 일본에서 대학을 다닌 엘리트 가정을 내버려 둘 리 없었다.

홍 명예회장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 후퇴 때 가족과 홍선태(작고) 전 남양산업 대표 등 동생을 데리고 월남했다.

회사가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서는 듯했지만 62년에 화폐개혁이란 뜻밖의 복병을 만나 8년만에 모든 재산을 날려버렸다.

일각에서는 당시의 충격이 너무 심해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는’ 소심증과 같은 마음의 병이 생겼다는 말도 한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홍 명예회장은 신문이나 TV를 통해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꺼린다.”며 “경기단체 회장직 제의도 많았지만 다 물리쳤다.”고 말했다.

첫 사업 실패 이후 홍 명예회장의 보수적 경영이 시작됐으며, 큰 아들 홍원식(56) 회장에 대한 경영수업이 다른 기업보다 일찍 시작됐다.

●배고픈 아이들 때문에 유업에 손대

굿모닝미디어에 따르면 1954년 창업주 홍두영 명예회장은 부산에서 비료를 수입하는 남양상사를 설립해 운영했지만 경험부족 등으로 실패했다.

홍 명예회장이 사업 재기를 꾀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분유였다.

비료 수입업에 종사하던 그는 1963년 선진 외국 출장길에서 분유사업을 눈여겨 봐뒀던 것.

분유를 마음껏 먹고 있던 외국 아기의 모습을 본 그에게 한국전쟁 직후 먹을 게 없던 고국의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던 것으로 짐작된다.

고국으로 돌아온 홍 명예회장은 64년 3월 13일 남양유업을 설립했다.

홍 회장이 비료 수입을 위해 해외를 다니면서 유제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남양유업의 창업 계기였다.

남양유업이라는 이름은 홍 회장 성의 본관(남양 홍씨)에서 따온 것이다.

남양유업은 1965년 충남 천안에 공장을 완공했다.

1967년 국내 최초의 국산 조제분유인 남양분유를 출시했다.

1971년 튼튼하고 건강한 아기의 대명사인 ‘전국우량아 선발대회’를 열기 시작했다.

당시 이 대회는 자라나는 2세의 건강과 체격 향상을 일깨워주기 위해 마련된 사회 공헌 행사였으나, 전국에서 아기들이 구름떼처럼 모여 들었다.

우량아 선발대회는 1984년 제13회 대회까지 계속됐다.

회사가 커지면서 가족 모두 팔을 걷어붙였다.

장남 홍원식 회장이 회사일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중이던 73년부터 종종 회사에 나와 가업을 도왔다.

강의가 끝난 뒤에는 회사에 달려와 입출금 전표를 끊는 등 경리업무를 봤다.

74년 기획실 부장을 시작으로 경영수업에 들어갔다.

77년 이사,79년 상무,80년 전무,88년 부사장을 거쳐 지난 90년 4월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가 2003년 회장으로 물러났다.

그는 90년대에는 불가리스, 아인슈타인우유, 아기사랑秀,E-5, 위풍당당 동충하초 등을 내놓으며 남양유업이 성장가도를 달리게 했다.

회사가 성장 엔진을 필요로 하던 80년 9월 둘째 아들 홍우식(53) 서울광고기획 사장도 남양유업에 합류했다.

85년 8월까지 남양유업 과장을 지냈다. 남양유업이 성장가도를 달릴 80년대 초반 큰아들 홍원식 회장과 둘째 아들 홍우식 사장이 모두 힘을 합쳤다.

홍 명예회장의 부인 지송죽씨도 한때 남양유업의 감사로 근무했다.

남양유업이 최근 곧잘 내세우는 ‘친인척 경영 참여 금지’는 그 당시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남양유업 가계도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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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참고)

남양유업…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을까요… 갑질에서부터 마약까지… 논란에 논란이네요..다시 예전의 1위 자리를 찾을수 있을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 궁금합니다.

남양유업의 가계도 입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마약 혐의의 황하나씨는 남양유업 창업주이자 명예회장이셨던 홍두엽 회장님의 막내딸의 첫째 손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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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가계도 20탄(남양유업,삼양)

남양유업 가계도,삼양그룹 가계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故 홍두영(남양유업 창업주겸 명예회장)과 아내인 지송속(남양유업 전 감사)사이에서 첫째 홍원식(남양유업 회장)과 며느리인 이유경(이학철 고려해운창업주 장녀)사이에서 태어난 손자 홍진석(남양유업 경영기획본부 상무)의 증손녀.증손자인 홍승의, 홍범석(남양유업 생산전략 부문장)이 있읍니다

둘째인 홍우식(서울광고기획 대표)와 며느리인 최수진 사이에서는 손자.손녀 홍인석,홍서현 있읍니다. 세째 홍영성과 사위인 이교현(미국거주 개인사업)사이에서는 손자.손녀 이수경,이수영,이정호가 잇읍니다.

넷째인 홍명식(사까나야 사장)과 며느리인 김현정(블루피치 대표)사이에서는 손자.손녀 홍효정,홍희정,홍동근이 있읍니다. 다섯째인 홍영혜와 사위인 황재필(영국 웨일스 개발청 한국사무소장)사이에서는 손자.손녀인 황하나,황승현이 있읍니다.

2013년 당시에 남양유업은 악덕기업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었읍니다. 이유는 남양유업의 폭언과 밀어내기 때문이었읍니다. 자신들의 불공정한 영업행위로 인해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빚을 진채로 피해 대리점주들과 제대로 된 협상을 하지 않고서,대국민 사과를 늦게하는등의 사건.사고가 있었읍니다.

남양유업 최대주주 등 주식 소유 현황 201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홍원식 회장이 51.68%인 37만 2107주, 이운경(회장의 처)가 0.89%인 6400주, 홍우식(회장의 동생.0.77%인 5568주),홍명식(회장의 동생,0.45%인 3208주),홍승의(회장의 손자.0.06%인 431주)로 최대주주 및 친인척 지분율 총합계가 53.85%로 38만 7714주였읍니다.

그리고 국민연금이 6.03%로 4만 3381주,아카시아 파트너가 5.58%로 4만 9472주,퍼스트 이글이 5.65%로 5만 133주입니다.

삼양그룹 가계도

故김수영(삼양그룹 창업주)와 아내인 故박하진 사이에서 첫째인 故김상준(전 삼양영업사 회장)과 며느리인 구연성,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손자인 김정원과 손주며느리인 김선휘(삼양영업사 회장)이 있읍니다.

둘째아들 김병휘(한양대학교 명예교수)와 손주며느리인 전용숙이 있읍니다. 셋째손녀인 김정희와 손녀사위인 김준기(동부그룹 회장)이 있읍니다. 넷째손녀인 김정림과 손녀사위인 윤대근(동부CN 회장),그리고 다섯째인 故 김범이 있읍니다.

둘째아들인 故김상협(전 국무총리)와 며느리인 김인숙 사이에서 첫째딸인 김명신과 손녀사위인 송상현이 있읍니다. 둘째손녀인 김영신과 손녀사위인 정성진이 있읍니다. 세째손녀인 김양순과 손녀사위인 이양팔이 있읍니다. 네째아들인 김한(JB금융지주 회장)과 손녀며느리인 김영란이 있읍니다.

셋째인 故김상홍(삼양그룹 명예회장)과 며느리인 故차부영 사이에서 첫째손녀인 김유주와 손녀사위인 윤영섭(계원학원 이사장)이 있읍니다. 둘째손자인 김윤과 손녀며느리 김유희(김종규 전 서울신문 사장딸)이 있으며 거기서 태어난 증손자는 김건호,김남호가 잇읍니다.셋째인 김량(삼양홀딩스 부회장)과 손녀며느리인 장영은(장자량 전 공군 참모총장 딸)사이에서 증손자.증손녀인 김믽,김태호가 있으며, 넷째는 김영주가 있읍니다.

넷째아들인 故김상돈(전 삼양영업사 회장)과 며느리인 김용옥 사이에서 첫째손자인 김병진과 손자며느리인 한혜승이 잇읍니다. 둘째 손자인 김영로와 손자며느리인 김희진이 있읍니다.

다섯째 아들인 김상하(삼양그룹 그룹회장)과 며느리인 박상례 사이에 태어난 첫째손자인 김원(삼양홀딩스 부회장)과 며느리인 배주연(배영화 전 경의어망회장 딸)이 있으며 그 사이에 손자.손녀로 김남희,김주희,김율희가 있읍니다.

둘째손자인 김정(삼양사 사장)과 손자며느리인 최윤아 사이에서 손자,손녀 김희원,김주형, 김주성이 있읍니다. 셋째손녀인 故김영난과 손녀사위인 송하철(주식회사 항소 사장)이 있읍니다.

여섯째째딸인 故김상경의 자녀로는 조서봉과 조서만이 잇읍니다.

일곱째딸인 김상민과 며느리인 故이두종 사이에서는 첫째손자 이규정과 손자며느리 최성윤이 있읍니다. 둘째손자인 이규화와 손주며느리인 김기혜가 있읍니다. 셋째손녀인 이정현과 손녀사위 백완기가 있읍니다. ▶여섯째딸인 김정애와 사위인 故조석이 있으며 첫째 손자인 김주완과 손현숙이 있읍니다. 둘째손녀인 김원경과 손녀사위인 한정수가 있으며 셋째아들 김창완이 있읍니다.

여덟째딸인 김영숙과 사위인 스테푸친 사이에서 손자.손녀 페기,프랭크가 있읍니다.

아홉째아들인 故김상철과 며느리인 우정명 사이에서 손녀 김의선,손자 김형석이 있읍니다.

열째 딸인 김희경과 사위인 김성완(美 유타대학교 석좌교수)사이에서 손자인 김석원과 손녀인 김소연이 잇읍니다. 열번째 아들인 故 김상용과 며느리인 권명자 사이에서 손자 손녀인 김유정,김유림,김훈, 김동현,김승현이 있읍니다.

삼양그룹의 계열사로는 삼양홀딩스,삼양사,삼양바이오팜,삼남석유화학,삼양화성,삼양데이타시스템,삼양이노켐,삼양에프앤비,삼양공정소료(상해) 유한공사,삼양 EP헝가리,삼양패키징,삼양화인테크놀로지,진황도삼양사식품 유한공사가 있읍니다.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남양유업 홍두영 명예회장家

▲ 남양유업 창업주 홍두영(앞줄 오른쪽 두번째) 명예회장이 지난 1971년 자사 주최로 처음 열린 전국우량아선발대회에서 수상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남양유업의 성장과 함께 한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13년 동안 진행되다가 92년부터는 임신육아교실 사회공헌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설명회에 전혀 관심이 없는 회사, 돌다리를 몇 번씩 두들겨보고도 건너지않는 보수적 경영, 창업주 얼굴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회사….남양유업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자사의 우유와 유제품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도 기업과 창업주에 대해 더 많이 알려야 한다. 하지만 이 회사의 창업주는 ‘크렘린’처럼 베일에 가려져 있다.남양유업을 창업한 홍두영(87) 명예회장은 한국 낙농업의 대부로 통한다. 홍 명예회장은 40여년간 한국 낙농산업의 기반을 조성하고 좋은 유제품을 만들기 위한 외길을 걸어왔다.홍 명예회장은 지난달 2일 타계한 김복용 매일유업 회장과 곧잘 비교된다. 두 기업 창업주는 나이가 비슷하고 이북 출신이라는 점 등 공통점이 많다.‘짠돌이’ 경영도 닮았다. 우유·조제분유·발효유·치즈·음료 등의 제품군도 상당히 겹치면서 ‘모방과 카피’ 논란도 많다. 연 매출액도 8000억원대로 엇비슷하다. 여러면에서 두 회사는 ‘물고 물리는’ 숙명적인 관계다.남양유업의 대표이사 3명 가운데 한 명인 창업주 홍 명예회장은 국내 최고령 최고경영자(CEO)이다.1919년 1월7일생이다. 남양유업이 창립된 1964년 이후 43년째 대표이사와 사장, 회장, 명예회장 직위를 줄곧 지키고 있다.홍두영 명예회장은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면 서부동에서 홍재영씨와 최점숙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영변에서 손꼽히던 지주여서 어린시절을 유복하게 보냈다. 홍 명예회장은 일제시대인 1944년 일본 와세다 제1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와세다대에 진학, 불어불문학과를 마쳤다. 홍 명예회장은 자신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어릴적 행적이 거의 알려진 게 없다.일본에서 귀국한 27세의 청년 홍두영은 어수선하던 광복 정국에서 고향 영변의 숭덕여자중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교사 생활을 하던 1947년 5월 같은 영변 출신의 열살 아래인 지송죽(77)씨와 결혼,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김일성 정권이 일본에서 대학을 다닌 엘리트 가정을 내버려 둘 리 없었다. 홍 명예회장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 후퇴 때 가족과 홍선태(작고) 전 남양산업 대표 등 동생을 데리고 월남했다.홍 명예회장의 첫 사업은 경험 부족 등으로 실패했다. 종전 이듬해인 1954년 부산에서 비료를 수입하는 ‘남양상사’를 일으켰다. 회사가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서는 듯했지만 62년에 화폐개혁이란 뜻밖의 복병을 만나 8년만에 모든 재산을 날려버렸다.일각에서는 당시의 충격이 너무 심해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는’ 소심증과 같은 마음의 병이 생겼다는 말도 한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홍 명예회장은 신문이나 TV를 통해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꺼린다.”며 “경기단체 회장직 제의도 많았지만 다 물리쳤다.”고 말했다. 첫 사업 실패 이후 홍 명예회장의 보수적 경영이 시작됐으며, 큰 아들 홍원식(56) 회장에 대한 경영수업이 다른 기업보다 일찍 시작됐다.홍 명예회장이 사업 재기를 꾀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분유였다. 비료 수입업에 종사하던 그는 1963년 선진 외국 출장길에서 분유사업을 눈여겨 봐뒀던 것. 분유를 마음껏 먹고 있던 외국 아기의 모습을 본 그에게 한국전쟁 직후 먹을 게 없던 고국의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던 것으로 짐작된다.고국으로 돌아온 홍 명예회장은 64년 3월 13일 남양유업을 설립했다. 당시 정부는 ‘보릿고개’를 해결하고 농민들의 소득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낙농사업에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홍 명예회장은 영변의 지주 아들이어서 낙농업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뚝심으로 밀어붙였다.1965년 11월 충남 천안에 제1공장을 짓고 자가생산 체제에 들어갔다.충남 천안 공장부지가 금광터였기 때문이었을까. 지난 67년 1월10일 출시된 유아용 제조 분유인 남양분유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어 77년에는 유산균 발효유인 남양 요구르트를 개발, 히트 브랜드 대열에 합류시켰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출연료 1억원을 주고 축구선수 차범근을 광고 모델로 내세웠다.78년 유업계 최초로 기업을 공개하고 주식을 상장했다.회사가 커지면서 가족 모두 팔을 걷어붙였다. 장남 홍원식 회장이 회사일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중이던 73년부터 종종 회사에 나와 가업을 도왔다. 강의가 끝난 뒤에는 회사에 달려와 입출금 전표를 끊는 등 경리업무를 봤다.74년 기획실 부장을 시작으로 경영수업에 들어갔다.77년 이사,79년 상무,80년 전무,88년 부사장을 거쳐 지난 90년 4월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가 2003년 회장으로 물러났다. 그는 90년대에는 불가리스, 아인슈타인우유, 아기사랑秀,E-5, 위풍당당 동충하초 등을 내놓으며 남양유업이 성장가도를 달리게 했다.회사가 성장 엔진을 필요로 하던 80년 9월 둘째 아들 홍우식(53) 서울광고기획 사장도 남양유업에 합류했다.85년 8월까지 남양유업 과장을 지냈다. 남양유업이 성장가도를 달릴 80년대 초반 큰아들 홍원식 회장과 둘째 아들 홍우식 사장이 모두 힘을 합쳤다. 홍 명예회장의 부인 지송죽씨도 한때 남양유업의 감사로 근무했다. 남양유업이 최근 곧잘 내세우는 ‘친인척 경영 참여 금지’는 그 당시에는 해당되지 않았다.창업주 홍 명예회장은 당시 90년 4월 회사 최고경영자 자리를 홍원식 회장에게 물려주면서 회사 운영에 관해 두 가지 금기사항을 가르쳤다.‘기업인으로서 정치에 참여하지 말 것’과 ‘부동산 투기를 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고 전한다. 홍 회장뿐만 아니라 기업인이면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사항이다.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홍 회장은 30년 가까이 남양유업에서 근무한 덕분에 누구보다 회사 사정에 밝았다. 홍 회장은 지난 99년 10월 덴마크 왕실로부터 ‘영예로운 메달’을 받았고,2001년 7월 무차입 경영과 축산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제25회 전국경영생산성촉진대회에서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지난 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위기 당시 대기업마저 자금난에 휘청거릴 때 남양유업은 오히려 20% 이상의 성장을 이뤘다. 대표적인 소매업종으로 불황을 잘 타지 않는 데다 기업 규모보다도 ‘브랜드 파워’가 강한 까닭이다.게다가 98년 11월 그동안 상업·조흥·신한은행에 남아 있었던 180억원의 은행차입금을 모두 갚았다. 부채 비율을 167%에서 0%로 떨어뜨렸다. 회사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무차입(無借入) 경영의 원조’라고 공식 선언했다. 현재는 4700억여원을 확보,1만%의 사내유보율을 자랑한다. 이로 인해 상당한 금융소득도 올리고 있다.이같은 남양유업의 성공은 창업주 홍 명예회장의 독특한 철학인 ‘4무(無)’경영에 바탕을 두고 있다.4무는 돈을 빌려쓰지 않고(무차입), 노사분규가 없으며(무분규), 친인척이 개입하지 않으며(무파벌), 자기 사옥이 없는(무사옥) 경영을 말한다.인사에서의 투명성도 줄곧 강조된다. 오너의 친인척은 회사에 발붙이지 못하며, 파벌 형성 또한 용납되지 않는다. 홍보와 마케팅을 총괄하는 성장경 상무는 “남양유업에는 자연스럽게 인사청탁을 하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사옥도 없다.43년째 남의 건물에 세들어 살고 있다. 현재는 서울 중구 남대문 대일빌딩을 빌려쓰고 있다.1000억원이 넘는 시설투자를 하고 종업원이 3000명이 넘는 기업이지만 임원은 단 9명에 불과하다.43년간 단 한차례도 노사분규가 발생하지 않았다.남양유업은 목장주들에게는 지독할 정도로 품질검사가 깐깐한 회사다. 그러나 원유값 만큼은 현금으로 결제하고, 결제기일도 정확하게 지키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목장주들이 거래하기를 가장 선호하는 회사로 통한다.제품의 다양화는 추진하지만 사업의 다각화는 철저하게 배격하고 있다. 우유 캔을 만드는 회사나 낙농가를 위한 사료공장 등을 세우자는 내부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전공을 벗어나는 사업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는 게 지금까지의 방침이다. 식품 분야 세계 최고가 되기까지는 절대로 한 눈 팔지 않겠다는 창업주 홍 회장의 경영 철학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홍 회장은 지난 2003년 11월 대표이사 사장에서 물러나고 최대주주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홍 명예회장은 박건호 대표이사 부사장, 김승수 대표이사 전무 ‘3두마차’ 경영체제를 확립해 오고 있다.홍 회장은 그러나 경영에 무관심하지는 않다. 회사에 사무실을 두고 거의 매일 출근을 하면서 중요 사항을 직접 결정할 만큼 경영에 깊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 명예회장도 가끔씩 회사에 들르곤 한다. 남양유업과 거래하는 회사의 한 관계자는 “남양유업이 1억원 이상의 경비를 지출할 때는 오너가 반드시 결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에 따라 남양유업의 의사 결정이 경쟁 기업에 비해 많이 늦다.”고 말했다.홍 명예회장은 부인 지송죽씨와의 사이에서 3남2녀를 두고 있다. 하지만 회사 직제상 경영에 참여하는 이는 창업주 홍 명예회장 자신뿐이다. 큰아들 홍원식 회장은 최대 주주로 남아있다.자본금 44억 3300여만원인 남양유업의 지난해의 정확한 매출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2004년의 매출은 7729억 8400만원에 당기순익은 427억 9400만원에 이른다. 홍원식 회장은 19.44%(13만 9964주)의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다. 홍 명예회장은 7.63%(5만 4907주)를, 홍원식 회장의 부인 이운경(54)씨는 0.89%(6400주)를 보유하고 있다. 둘째 아들 홍우식 사장이 0.63%(4568주), 셋째 아들 홍명식(46) 사까나야 사장은 0.4%(2908주)씩 갖고 있다. 홍두영 명예회장의 처남댁 김정선씨가 이색적으로 0.16%(1168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막내딸 홍영혜(44)씨는 지난해 초 장내에서 2612주를 매도, 지분율이 0.45%(3208주)에서 0.08%(587주)로 낮아진 것이 눈에 띈다. 특히 미국 투자회사 안홀드 앤드 에스 블라이흐뢰더가 15.90%(11만 4448주)를 보유하는 등 외국인들이 눈독을 들이는 회사다.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은 23.74%에 이른다. 남양유업의 주식 거래가 극히 부진해 한때 상장폐지 위기까지 내몰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소액주주를 무시하며 경영권 방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내년도 매출 목표는 1조원으로 잡고 있다.창업주 홍 명예회장의 자녀 혼맥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큰 아들 홍원식 회장은 지난 76년 고려해운 창업주 이학철(작고) 회장의 장녀 이운경(54)씨와 화촉을 밝혔던 것이 눈에 띌 정도다. 홍 회장은 이동찬(84) 코오롱그룹 회장 가문과도 연결된다. 이동찬 회장의 셋째딸 이혜숙(54)씨가 고려해운 이 회장의 장남인 이동혁(59) 고려해운 회장과 결혼한 까닭이다.홍원식 회장은 부인 이운경씨와의 사이에서 진석(30), 범석(27)씨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이씨는 사회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통한 남양유업의 3세 승계가 어떻게 이어질지도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004년 말 홍 회장은 어머니 지송죽 전 감사로부터 주식 2만 108주(2.79%)를 모두 물려받았다. 이를 두고 형제간에 사이가 소원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았다.둘째 아들 홍우식씨는 남양유업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광고회사 서울광고기획 사장을 맡고 있다. 홍 사장은 지난 71년 서울고교와 76년 연세대를 거쳐 83년 미국 산타클라라대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해군 중위 출신인 홍 사장은 지난 79년 8월 한국IBM을 거쳐 지난 80년 9월부터 85년 8월까지 남양유업 과장을 지냈다. 남양유업내에 있던 광고 부문을 들고나와 부친의 우산에서 독립했다.홍 사장은 지난 85년 8월 서울광고기획의 상무,88년 전무,90년 부사장을 거쳐 93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지난 1980년 설립된 서울광고기획은 2004년 총 취급고가 626억원으로 업계 17위였다. 주요 광고주로는 남양유업을 비롯해 태영·보령제약·보령메디앙스·BYC, 씨엠에스 천재교육·하선정종합식품 등이 있다.2005년도의 매출 목표는 900억원이지만 정확한 매출은 알려지지 않았다.홍 사장은 지난 81년 5월 최수진(49)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연년생인 자녀 인석(24), 서현(23)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지난 72년 이름을 춘애에서 수진으로 바꾼 최씨 역시 별다른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장녀 영서(52)씨는 이교현(57)씨와 결혼, 수경·수영(25) 쌍둥이와 정호(18)군을 두고 있다. 홍 명예회장의 큰사위 이교현씨 가족은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이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셋째 아들 홍명식(46) 사까나야 사장은 연봉이 1억원을 웃도는 외환 딜러직을 떠나 음식점 8개를 운영하고 있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그는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 2층에 회전초밥 전문점 사까나야 등 6개의 지점을 두고 있으며, 한정식집 돈후이 등을 운영하는 외식업 사장이다. 홍 사장의 이력은 다채롭다. 용산고와 연세대를 거쳐 지난 87년 미시간대에서 MBA를 땄다.1987년부터 JP모건체이스 은행 등에서 12년동안 근무한 금융통.99년 인터넷서점 ‘예스24’를 공동 창업해 한세실업에 매각되기 전인 2003년 5월까지 부사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6개 사까나야와 돈후이 등의 전체 매출액이 100억원대에 이르는 등 외식재벌 반열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외식업종으로 변경한 홍 사장은 지난해 초 인터넷 의류 쇼핑몰인 블루피치를 운영하는 김현정(40)씨와 결혼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김씨는 고려대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홍 사장은 전처에게서 효정·희정(19) 등 일란성 쌍둥이 자녀를 두고 있다. 홍 사장은 쌍둥이 자녀 외에도 동근(13)군을 두고 있다. 이들은 모두 싱가포르에서 공부하고 있다.막내딸 홍영혜씨(44)는 지난 90년 영국 웨일스개발청의 황재필(44) 한국사무소장과 결혼, 하나(17)양과 승현(11)군을 두고 있다. 영혜씨는 경희대 작곡과를 졸업한 재원. 서울 양정고를 마치고 연세대를 다니다가 미국 조지아주립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황씨는 지난 86년 주한 영국대사관 부상무관을 거쳐 89년부터 영국 웨일스개발청 한국사무소장을 맡고 있다. 황씨의 부친은 헌병차감을 지냈던 황태섭(작고)씨다.황씨는 86년 연세대 어학당에서 홍씨와 얼굴을 익혔다. 이들은 홍씨의 올케 소개로 사귀다가 이듬해 결혼에 골인했다.남양의 대표적인 성장 엔진으로는 1971년 시작된 ‘전국우량아 선발대회’를 들 수 있다. 자라나는 2세의 건강과 체격 향상을 일깨워주기 위해 마련된 일종의 사회 공헌 행사였다.첫 대회에는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참가했고 아기와 엄마 등 수상자를 청와대에 초청, 오찬을 할 정도로 관심이 깊었다. 변변한 행사나 이벤트가 없던 당시로는 전 국민이 참여하는 큰 행사였으며,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당시 행사를 기억하고 있다.우량아 선발대회는 창업주 홍두영 명예회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아기 엄마라면 누구나 자기 아기를 우량아로 키우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전국에서 토실토실한 아기들이 구름떼처럼 모여 들었다.24개월 미만의 아기들이 지방 예선을 거쳐 결선을 겨뤘다. 제1회 전국 최우량아는 춘천에 사는 한영만 아기(69년 11월생)로 발육상황은 키 85㎝, 몸무게 13㎏, 머리둘레 50㎝, 생후 11개월부터 걷기 시작했으며 모유와 우유를 함께 먹였고 과일즙, 달걀 노른자 반숙 등을 간식으로 먹였다고 한다. 튼튼하고 건강한 아기의 대명사인 우량아 선발대회는 84년 제13회 대회까지 계속됐다.이후 92년부터 임신육아교실로 바꿔 진행되고 있다.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해 새내기 주부들에게 올바른 출산 정보 전달에 힘쓰고 있다. 연간 1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전국에서 250회 이상 연다. 특히 산부인과·소아과·피부과·한방 분야의 권위있는 전문의들이 나와 임산부들에게 이해하기 쉽고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숙제를 풀기 위한 남양의 또 다른 사회 공헌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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