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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륙 횡단 자동차 | 미국대륙 자동차로 한바퀴 로드트립[종합편] 16박 17일 총거리 7280마일(11716Km) 224 개의 자세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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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11일부터 8월 27일까지 테네시에서 캘리포니아 동서횡단, 샌디에고에서 시애틀까지 서부남북종단, 시애틀에서 뉴욕까지 서동횡단, 뉴욕 맨하튼에서 테네시 채터누가까지 북남종단를 종합편으로 편집한 영상입니다. 자동차로 16박 17일, 총거리 7280마일(11716km)을 여행하는 로드트립 입니다.
2021.08.12 텍사스-아칸소 11:12
2021.08.13 텍사스-애리조나 24:15
2021.08.14 애리조나-캘리포니아 36:05
2021.08.17 샌디에고 42:30
2021.08.17 로스엔젤레스 51:01
2021.08.20 솔뱅 56:51
2021.08.21 샌프란시스코 1:03:10
2021.08.22 시애틀 1:17:08
2021.08.23 옐로우스톤국립공원 1:24:48
2021.08.24 마운트러시모어 내셔널 메모리얼 1:39:12
2021.08.25 시카고 1:51:00
2021.08.26 뉴욕 2:03:36
2021.08.27 테네시 차타누가 2: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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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륙횡단 자동차여행 | 두피디아 여행기

오래 전부터 별러왔던 나의 미국대륙횡단자동차여행이 시동을 건 날이다. 연중 3백일 정도는 기상예보가 필요 없다는 로스앤젤레스(LA)의 초가을 하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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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oopedia.co.kr

Date Published: 8/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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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 대륙을 가족들과 동서로 두 차례 왕복 횡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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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you.maxfit.vn

Date Published: 6/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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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륙 자동차로 한바퀴 로드트립[종합편]  16박 17일 총거리 7280마일(11716km)
미국대륙 자동차로 한바퀴 로드트립[종합편] 16박 17일 총거리 7280마일(11716km)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미 대륙 횡단 자동차

  • Author: 로망아빠DreamPapa
  • Views: 조회수 323,088회
  • Likes: 좋아요 3,984개
  • Date Published: 2022. 4. 2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JgTKtZ50A8A

“두 번의 미국 대륙 횡단 자동차 여행기” 홍석민의 『두근두근 미대륙 횡단 따라하기』

[사진출처=pixabay] [한국강사신문 김지영 기자] ‘드넓은 대륙을 가로질러 한 번 신나게 달려봐?’ 자동차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 보았음직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눈앞에 닥쳐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금방 생각을 접는다. 가용 일정, 소요 비용, 장거리 운전, 동행자, 의사소통 등 여러 걱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 대륙을 가족들과 동서로 두 차례 왕복 횡단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대륙 횡단 자동차 여행에 도전해 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자동차 여행 천국인데다, 도로교통망, 통신망, 숙소, 식당과 식품 구입, 자동차 정비 등 세계 최상급의 인프라를 곳곳에 갖추고 있어 비교적 손쉽게 대륙 횡단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고용조건도 비교적 좋아져 장기간 휴가를 얻거나, 한 달 살기 등도 유행하고 있고 미국은 의사소통도 비교적 원활하여 한 번 도전해 봄직하다. 최근에는 유튜브나 블로그 등, 많은 동영상과 사진 등으로 미국 대륙 횡단에 대한 소개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어, 이를 통해서도 찬찬히 미국 대륙 횡단을 꿈꾸고 준비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정보들은 시간 및 공간의 제약 등으로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고 다소 조각 정보에 그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이 책은 미국 대륙 횡단에 대해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체계적으로 접근하였고, 여행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작성된 완벽에 가까운 자동차 여행 안내서로 평가된다.

저자는 두 번의 미국 대륙 횡단 자동차 여행 경험담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미국에 체류하면서 휴가를 얻어 가족들과 함께 대륙 횡단 여정을 계획하고, 호텔을 예약하고,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부터 자동차로 달리며 이곳저곳 방문하는 여행의 과정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공계 연구원 출신답게 여정 간 이동거리, 출도착 시각, 자동차의 속도, 지출 비용 등을 그때그때 기록해 두고 매일 매일의 여정을 지도에 정리하여 다음에 이를 따라하는 여행객들이 잘 참고할 수 있게 하였다.

또 마지막 부분에 국내에서 출발하는 경우를 고려하여, 여정 계획 수립부터 항공기 예약, 렌터카 대여, 호텔 숙박 및 정리와 기록까지 본인의 직접 체험을 바탕으로 각종 여행 팁들을 제공하여 저렴하면서도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하였다.

처음에는 누구나 마찬가지로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여행을 하면서 점차 모두 사라지고 기대와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졌다는 저자의 표현처럼, 대륙 횡단을 계획하고 실제 실행하는 독자들에게 하나의 좋은 지침서가 될 만하다. 이 책이 자동차 여행을 좋아하는 젊은 층의 패기 충전, 중장년층의 즐거운 가족 여행, 노년층의 행복한 부부 또는 친구 여행 등에 활용될 수 있도록 일독을 적극 권하고 싶다.

[사진출처=문화의힘]

저자 홍석민은 원숭이해에 충남 보령군 웅천면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어려서 서울로 올라가 학교를 다녔고, 대전의 이공계 연구기관에서 40여 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 근무기간 중 두 차례 각각 1년간의 연수 기회를 가져 첫 번째는 가족 모두와 함께, 두 번째는 아내와 함께 미국 동부지역에서 생활을 했다.

여행을 좋아했지만 연구기관 근무기간에는 사업/과제 수행에 쫓겨 시간을 내지 못했고, 파견 기간 중에 휴일과 휴가를 이용하여 미국의 여러 곳을 다녔다. 특히 파견된 연수기관 슈퍼바이저의 승인으로 휴가를 아껴 각각 한 차례 미국 대륙 횡단을 해 보았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자동차 이동이 필요했는데, 아내와 가족 모두 힘을 합해, 설렘 반 우려 반의 여정을 잘 소화했다. 장거리 자동차 로드 트립(ROAD TRIP)을 처음 계획하는 분들께,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미국 대륙 횡단을 해 볼 것을 권한다. 저서로는 『두근두근 미대륙 횡단 따라하기: 미대륙 횡단 자동차 여행 완벽 가이드(문화의힘, 2021.11.01.)』 가 있다.

온라인에서 미리 경험하는 미대륙 자동차 횡단여행

자동차로 미국 횡단여행을 꿈꾸는 여행자들이 많다. 하지만 대략 6,000km를 훌쩍 넘는 광활한 대륙을 자동차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꼬박 3일 교대로 운전하거나, 먹고 자는 시간을 포함하면 약 일주일 걸리는 자동차 여행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유튜브 ‘Unclecoolie Productions’ 채널에 미국 횡단여행의 전 과정을 담은 영상이 올라와 있으니 사전에 대리 체험을 해볼 수 있다. 2017년 8월 19일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에서 출발하여 9월 3일 뉴욕에 도착하는 전 과정을 배속 화면으로 6시간 50분 길이의 동영상에 담았다.

, Unclecoolie Productions

이 영상에는 여행 중간에 지나가게 되는 13개 주와 도로 번호, 그리고 시간을 상세히 표기하고 있고 주변의 환경을 미리 볼 수 있어 다른 여행자들이 사전에 참고할 수 있다. Unclecoolie의 유튜브 채널에는 그 외에도 미국의 주요 고속도로나 호주, 뉴질랜드 등의 다른 자동차 여행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9시간이 넘는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 여행 영상 또한 눈길을 끈다. 2018년 5월 17일 캘리포니아 남부 샌디에고에서 출발하여 국경을 지나 5월 20일 캐나다 영역의 밴쿠버에 도착하게 된다. 캘리포니아 남북을 연결하는 1번 주도와 태평양 연안의 101번 국도를 사전에 경험할 수 있다.

, Unclecoolie Productions

두피디아 여행기-미국대륙횡단 자동차여행

미국대륙횡단 자동차여행

서울올림픽이 있었던 이듬해인 1989년 10월 3일. 오래 전부터 별러왔던 나의 미국대륙횡단자동차여행이 시동을 건 날이다. 연중 3백일 정도는 기상예보가 필요 없다는 로스앤젤레스(LA)의 초가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투명했다. 아직 해가 뜨려면 한 시간 남짓 기다려야 하는 새벽 여섯 시. 은가루를 부려놓은 듯 유난히 높아 보이는 하늘엔 별이 가득했다. 가방과 전기밥솥 그리고 작은 쌀 한 포대와 고추장을 비롯한 몇 가지 밑반찬에 가면서 들으려고 산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트렁크에 집어넣고 엔진을 돌렸다. 사위가 조용한 시각이라 서일까 엔진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운전대를 잡은 채 잠시 눈을 감았다. 긴 여정 안전하게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평소에도 말 수가 적은 아내는 돌부처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수년 고생한 나의 디스크가 겨우 가라앉고 있는 때에 장거리자동차여행은 아무래도 무리라며 몇 번이고 생각을 바꾸라며 반대한 아내였다.

운전을 혼자 해야 하기 때문에 시차조정을 위해 사흘 동안 LA에 머물렀다. 앞으로 한 주간 워싱턴 D.C.까지 함께할 자동차는 포드 토러스. 중량감이 있는데다 시트가 몸을 편하게 감싸주어 좋았다. 목적지인 워싱턴까지는 5,000km 남짓한 거리이다. 이 거리는 고속도로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도중에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내려가 관광지를 찾을 경우 그 회수에 따라 길어질 수도 있다. 길은 미국대륙 동서를 한 가운데로 가로지르는 70번 고속도로 잡았다. 이 도로는 개척시대에 파이어니어들이 동부에서 포장마차를 끌고 서부로 몰려갔던 때의 길 보다 조금 남쪽에 있다. 당시 72일 걸렸던 길이 지금은 비행기로 5시간이고 자동차로는 1주일이면 충분하다.

이른 새벽시간인데도 넓은 프리웨이가 일찍 일터로 향하는 차량으로 꽉 차 로스앤젤레스 경계선을 벗어나는데 만도 한 시간 넘게 걸렸다. 15번 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에 올라 160여km를 달려 8시 반쯤 동쪽으로 뻗는 40번 하이웨이 시발점인 바스토우에 이르렀다. 1840년 모르몬 교도들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바스토우는 육상교통의 요충지이자 미국해병대병참기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휴게소에 들러 햄버거로 아침식사를 대신한 후 자동차에 기름을 채우고 방향을 동쪽으로 틀었다. 여기서부터 광활한 사막이 시작됐다.

바스토우를 나와 2시간 넘기까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사방이 사막 일뿐 인가는 고사하고 간이주유소 하나 없었다. 지도를 폈더니 바스토우에서 240km쯤 되는 거리에 마을 표시 점이 하나 찍혀있고 육해군과 해병대기지와 훈련장 및 무기저장고가 몇 곳 배치돼있는 게 전부였다. 바스토우에서 이웃 애리조나 주 경계선까지 40번 도로 남북으로 모하비사막이 끝도 없이 넓게 펼쳐졌다. 한반도의 반을 넘어서는 124,000제곱km에 이르는 모하비사막은 캘리포니아, 유타, 네바다, 그리고 애리조나 등 4개 주에 걸쳐있다. 도중에 점심시간이 됐으나 사막 한 가운데라 식당은커녕 두 사람을 가려 줄만한 그늘 한 곳도 없었다. 할 수 없어 길 옆에 차를 세우고 전날 밤 친구가 싸준 김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오가는 차도 뜸한 참으로 조용한 사막에서 가진 맛있는 오찬이었다.

단조로운 사막 길 운전이 처음이라 색다르기도 했지만 어쩌다 나타나는 거리표지판 외엔 눈길을 끌만한 게 아무 것도 없어 금방 지루해 졌다. LA에서 사흘 동안 시차조정을 했음에도 완전하게 적응되지 않았는지 아내가 졸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말 상대가 없어지자 나도 깜박할 때가 잦아졌다. 이러다간 큰 일 나겠다 싶어 아내를 깨워 카세트 플레이어를 틀게 했다. 흘러간 유행가, 가곡, 클래식, 찬송가 등을 연달아 바꿔가며 들었다. 광활한 사막을 달리며 흘러간 노래를 감상하는 것도 별미였다.

LA 출발 후 9시간 만에 그랜드 캐니언으로 연결되는 도로와 만나는 윌리엄스라는 작은 마을에 닿았다. 여기서 100km 정도 올라가는 거리에 그랜드 캐니언이 있다. 오후 6시 직전에 여행의 첫 기착지인 그랜드 케니언에 도착했다. 새벽6시에 LA를 나섰으니까 꼭 12시간 만이었고 800km를 조금 넘는 거리였다. 그랜드 캐니언 조금 못 미처 있는 그랜드 케니언 빌리지에서 모텔을 찾았다. 몇 군데 돌았으나 빈 방이 없었다. 어느 모텔직원은 남쪽으로 100km 되돌아가면 방이 있을 거라고 일러주었다. 해가 막 지는 시각인데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라니 기가 막혔다. 도리 없이 차를 돌려 마을을 빠져 나오다 베스트 웨스턴 모텔 간판이 보여 들어갔더니 프런트 여직원이 비싼 125달러짜리 스위트룸이 하나 있는데 괜찮겠느냐며 내 표정을 살폈다. 비싸다 싶었지만 두말 않고 수락했다. 2인용 방이 평균 50달러 남짓이었으니까 그 시간까지 남아있었던 것이다.

수속을 마치고 바로 그랜드 케니언으로 달려 해지기 10분 전에 전망대에 올라섰다. 그랜드 케니언은 일출과 일몰시각이 가장 아름답다. 마침 붉게 물들기 시작한 장대한 계곡의 경색이 환상적이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시로 색깔의 농도를 바꿔가며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그 웅대함이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 카메라 셔터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해가지자 금방 어두워졌다. 유네스코세계자연유산에 올라있는 그랜드 케니언은 규모가 약 5,000제곱km에 이르며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계곡길이 450km에 폭이 6.5-29km, 깊이가 1.6km에 이르는 거대한 협곡이다. 장작토막을 도끼로 쪼갠 듯 수직으로 갈라진 절벽 위는 마치 대패로 깎은 듯 펀펀하다. 그 아래 계곡으로 서부미국의 젖줄인 콜로라도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다음 날 아침 일출모습을 보러 일찍 나섰다. 간 밤에 내리던 비는 그쳤으나 안개가 자욱했다. 한 시간쯤 지나 안개가 걷히자 대협곡이 시네마스코프 처럼 눈앞에 전개됐다. 비가 온 뒤라 서 인지 10월초인데도 옷 속으로 스며 드는 한기가 초겨울처럼 싸늘했다. 블라우스에 얇은 스웨터 한 장만을 걸친 아내는 춥다며 얼른 차로 가자고 재촉했다. 그러나 어렵사리 만든 기회인데 언제 또 올까 싶어 전망대를 몇 곳 더 돌았다. 추위에 다 도중에 한차례 소나기까지 맞기도 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11시쯤 차 머리를 동쪽으로 돌려야 했다.

다음 행선지는 오래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던 모뉴멘트 밸리이다. 애리조나, 유타, 뉴 멕시코 등 3개 주에 걸쳐있는 모뉴멘트 밸리는 나바호 인디언자치구역 안에 있다. 현재 310개에 이르는 미국의 원주민자치구역은 연방정부로부터 일부 제한된 통제만 받을 뿐 자신들의 대통령과 의회 및 최고법원을 가진 준 독립국가이다. 규모가 가장 큰 나바호 자치구역은 면적이 한반도의 3분의 1인 71,000제곱km에 이르며 14만4천여 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다.

해발 1,500-1,800m 높이에 위치한 모뉴멘트 밸리에는 사암과 굳어진 진흙인 침니 암석으로 이루어진 뷰트(butte)라는 온 갓 모양의 바위산이 넓은 사막 사방에 흩어져있다. 중절모자에서 기 게양대와 평상이나 노적가리 등을 닮은 온갖 기암 중에는 높이가 지상에서 300m에 이르는 것도 있다. 모뉴멘트 밸리는 영화무대로 가장 많이 등장한 곳이다. 1930년 제작된 론 스타 레인저부터 역마차, 수색자, 리오 그란데 등 이름난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부터 1980년대까지 이 한 곳에서 촬영된 영화가 무려 80여 편에 이르고 있다. 갖고 간 드보르작의 교향곡 ‘신세계’의 볼륨을 최고로 높이자 평소에 들을 때와는 완전하게 다른 감흥이 느껴졌다. 무법자를 좇아 구름 같은 먼지를 일으키며 채찍을 휘두르는 서부사나이가 금방이라도 바위산 뒤에서 나타날 듯한 무대였다. 자치구역입구에 있는 흙 담 집 원주민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마치고 오후 4시 조금 넘어 191번 국도에 올라 동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랜드 서클이라고 부르는 이 일대엔 그랜드 케니언을 비롯하여 모뉴멘트 밸리와 메사 버디, 아치스, 브라이스 케니언 등 붉은 색 협곡과 사막과 기암괴석이 집중적으로 몰려있다.

가면서 시간을 재어보니 이날 유숙할 콜로라도주 그랜드 정크션까지 해 전에 닫기가 빠듯할 것 같아 서둘렀다가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모압이란 한 작은 마을 앞 내리막 길에서 감속해야 하는 것을 깜박 잊어버린 것이다. 뒤에서 뭔가 번쩍거린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돌아보니 순찰차였다. 한적한 사막마을에 어디서 나타났는가 싶었다. 일단 차를 길 옆에 세우고 기다렷다. 시속 45마일(72km) 속도제한구역을 73마일(117km)로 달린 숫자가 깜박이는 속도측정기를 보여주면서 면허증을 요구했다. 국제면허증을 건네주며 표정을 부드럽게 가다듬고 대륙횡단여행 중인데 아내와 막 지나온 모뉴멘트 밸리 얘기에 정신이 팔려 감속을 깜박 잊어버렸다며 미안하다고 동정을 구했더니 여행분위기를 깨는 게 마음에 걸렸던가 규정대로면 70달러짜리 벌금인데 반으로 줄여주겠다며 35달러짜리 딱지를 떼주고 조심운전 하라며 친절하게 가는 길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모압마을에서 그랜드 정크션까지는 국도로 50km 북쪽으로 올라가 다시 70번 고속도로로 140여km나 동쪽으로 더 가야 했다. 앞 뒤를 살피며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는데도 어두워진 7시 반 넘은 시각에야 겨우 시 입구에 들어섰다. 그랜드 정크션은 콜로라도 주를 들어서 첫 도시였다. 고속도로에서 가까운 홀리데이 인에 차를 세웠다. 그랜드 케니언에서 좀 늦게 출발한데다 모뉴멘트 밸리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 이 날은 725km밖에 달리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잠이 깼는데 도 기분이 상쾌했다. 그랜드 정크션 일대가 사막 성 지대이기 때문인지 공기가 맑았다. 잠시간이 조정되면서 점차 장거리여행에 적응이 돼갔다. 아내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호텔식당에서 가벼운 아침식사를 마치고 7시에 길을 나섰다. 오가는 차도 거의 없는 탁 트인 고속도로를 한 시간쯤 달리자 멀리 왼쪽으로 로키산맥의 장엄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국대륙은 서부 덴버시 까지가 사막과 산악지형이고 동쪽으로 덴버시를 벗어나면 바로 광활한 중부대평원이 펼쳐진다.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계곡길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다시 초원으로 바뀌기를 몇 번이고 반복되면서 고도가 서서히 높아갔다. 그랜드 정크션을 나선 후 3시간 조금 지난 10시 20분께 엠파이어 조지타운이란 마을에서 북쪽으로 꺾어 로키산국립공원으로 올라가는 40번 국도를 탔다.

40번 도로가 시작되는 곳에서 로키산국립공원을 돌아 덴버로 이어지는 거리가 250km에 이른다. 엠파이어 조지타운마을을 지나 산으로 접어들자 주변이 순식간에 산악경관으로 바뀌었다. 계곡으로 맑은 물이 흘러내렸다. 콜로라도강 상류였다. 콜로라도강은 로키산맥 해발 3,104m높이에 있는 라 포드레 패스 늪에서 시발하여 서쪽으로 2,330km를 굽이쳐 흘러가 태평양으로 빠져나간다. 개천 같은 강을 몇 번이고 넘나들며 한 시간 남짓 산 길을 올라가다 점심시간이 되어 길 옆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손바닥 두 개 만한 작은 나무간판에 ‘스위스 카페’라고 쓴 아담한 식당이었다. 바쁘게 오가는 여종업원에게 맛 있는 것 추천해달라고 하자 주저 않고 스테이크를 권했다. 도시식당 것 보다 배나 큰 스테이크가 정말 맛있었다. 맛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우자 처녀가 먹는 우리 보다 더 좋아했다. 기념으로 가게를 카메라에 담았다.

점점 경사가 가팔라지는 산길을 30여 분 올라가자 길 옆에 원목을 깎아 흰 페인트를 입히고 녹색으로 ‘ROCKY MOUNTAIN NATIONAL PARK(로키산국립공원)’라고 쓴 표지판을 자연석으로 쌓은 대 위에 세워 놓았다. 입구초소에서 5달러를 내고 지도를 한 장 받았다. 여기서부터 차량주행속도가 45마일로 제한됐다. 속도제한이 없다 해도 속력을 내기가 어려운 길이었다. 공원입구를 들어서자 우선 산의 수종이 달라졌다. 로키산의 주 수종은 가문비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수인 스프루스다. 보통 20m에서 60m까지 자라는 스프루스는 밑둥치에서부터 가지가 뻗으며 솔잎이 가시처럼 날카롭다. 길 양 옆으로 구름 한 점 없는 창공을 향해 곧게 뻗은 스프루스가 마치 사열식의 병사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갈 길은 아직 시작일뿐인데 하오의 맑은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정상의 만년설이 가파른 오르막길을 숨차게 기어오르는 여행자에게 어서 오라 유혹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길은 점점 좁아지고 굴곡도 심해졌다. 용기를 내어 곁눈질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순간 몸이 오그라들었다. 천야만야한 벼랑이었다. 계곡을 한번 보라는 나의 권유에 운전이나 신경 쓰라며 겁에 질린 아내는 꼼짝도 않고 앞만 보고 있었다.

기어가 듯 느린 속도로 한 시간을 몰아 힘겹게 공원 정상의 알파인 휴게소에 이르렀다. 해발 3,595m(11,796피트)라고 쓰인 작은 나무표지판이 휴게소 담에 걸려있었다. 휴게소 인근에는 키 큰 나무라곤 한 그루도 없는 완전한 툰드라지대였다. 오랜 세월 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만 맞은 키 작은 관목들이 땅바닥에 착 달라 붙은 채 질기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원목을 격자무늬 모양으로 덮은 지붕에 돌담을 두른 투박한 알파인 휴게소가 험준한 로키산과 잘 어울렸다. 10월초인데도 길 옆으로 눈이 20cm나 쌓여있었다. 이 휴게소는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해빙기인 늦봄까지 폐쇄된다. 찾아갔던 때가 마침 도로가 닫히기 한 주쯤 앞이라서 운이 좋았다. 이 험산도로가 1933년에 개통됐으니 당시 미국의 국력수준을 알만했다.

알파인 휴게소에서 따끈한 찻잔을 앞에 놓고 저마다 키 재기 경쟁이라도 하듯 하늘 높이 솟은 준봉을 완상하며 한 숨 돌린 후 오후4시쯤 동쪽 내리막 길로 방향을 돌렸다. 굴곡이 심한 내리막길 역시 운전수를 긴장케 했다. 처음 한동안은 기어가 듯 속도를 낮추었다. 고도가 낮아짐에 따라 기압이 올라가면서 귀가 완전히 막혀버렸다. 입을 문채 코를 막고 힘껏 숨을 내쉬어 귀를 뚫었으나 그 것도 잠시뿐이었다. 엔진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무음상태로 한 시간 가량 미끄러져 내려와 해발1,600여m 고지에 위치한 덴버 인근에 이르자 갑자기 폭발이라도 하 듯 귀가 펑 하고 뚫렸다. 소음이 반갑게 느껴지는 걸 처음 느꼈다. 콜로라도 주 수도인 덴버는 골드러시 시대인 1858년에 건설된 도시이다. 해발1,000마일(1.609m))높이에 위치하고 있어 ‘마일 하이(mile-high)도시’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덴버시 중심가에서 다시 70번 고속도로에 올라 동쪽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유타 주에서 시작되는 산악시간대(mountain time zone)가 콜로라도 주를 벗어나면서 중부시간대(central time zone)로 바뀌기 때문에 한 시간 빨라졌다. 오후 6시쯤 덴버를 벗어났다. 덴버에서부터 동부 켄터키 주까지 산다운 산을 볼 수 없는 광활한 대평원이 1,800여km 가까이 이어진다. 그리고 수십km가 직선으로 뻗은 도로구간도 수없이 많다. 덴버를 떠난 후 한 시간가량 지나자 라이먼 이란 마을에 모텔이 있다고 도로표지판이 알려주었다. 대지에 어스름이 깔릴 무렵 ‘라이먼 인’이란 작은 모텔에 들었다. 라이먼은 전형적인 중서부 농촌마을이었다. 외국인을 보기가 쉽지 않은 농촌이라 서인지 문을 열고 들어서자 프런트에 않아있던 주인이 벌떡 일어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투숙서류국적기입난에 한국이라고 쓰자 동양인을 맞기는 처음이라며 몇 번이고 우리를 보며 신기해 했다. 지은 지 오래잖은 아담하고 깔끔한 모텔이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가 몇 시부터냐고 물었더니 모텔에는 식당이 없다며 주인이 가까운 레스토랑을 소개해 주었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챙이 넓은 카우보이 모자를 쓴 채 아침을 먹고 있던 대 여섯 명의 농부들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왠 동양인이 이른 아침에 이런 곳에 나타났는가 하는 표정이었다. 호기심 어린 그들의 시선이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천천히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서부터 다음 캔자스 주 초입의 브루스터 마을까지 무려 200여km의 도로가 거의 직선이었다. 특별히 들를 곳도 없어 계속 달려야 하는 단조로운 길이었다. 어쩌다가 시야에 들어오는 해바라기 밭 외엔 가을걷이가 대부분 끝난 대평원이 끝없이 펼쳐졌다. 지평선을 지나면 다시 지평선이 나타났다. 제한속도인 시간 당 75마일(120km)로 스피드를 고정시키고 발은 페달에서 뗀 채 운전대만 잡고 앉아있으니 차가 가는지 서있는지 느낌이 없었다. 차가 길옆 전신주를 향해 돌진하는 꿈을 꾸었다. 깜빡 졸았던 것이다. 눈을 뜨자 실제로 차가 길을 살짝 벗어났고 저만치 앞에 전신주가 있었다. 위기를 모면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전에도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중서부평원이 정말 넓구나 싶었지만 차를 타고 가면서 받은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산도 강도 없는 이런 들판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일상대화에 서 사용하는 단어가 그리 많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일랜드의 어느 외진 농촌에 사는 주민들이 평소 쓰는 단어가 350여 개에 불과했다는 한 언어학자의 연구발표가 생각났다.

점심시간 조금 지나 캔자스 주 애빌린에서 잠시 차를 세웠다. 현재 6,2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는 애빌린은 지금은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도시지만 한때 미국에서 가장 큰 소 시장이 있었던 곳이다. 1857년 역마차 역이 들어서면서 형성된 애빌린은 1867년 대도시로 연결되는 철도가 마을을 통과하게 됨으로써 인근 오클라호마와 멀리 텍사스 등지로부터 카우보이들이 몰고 온 소를 하루 2천여 마리씩 기차에 실어 시카고와 뉴욕 등지로 보낸 붐 타운이었다. 애빌린은 이 시대 카우보이의 활약을 주제로 한 서부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마을이다. 지금은 시내에 옛날 소 시장의 흔적이 아무데도 남아있지 않아 점심만 먹고 가던 길을 재촉해야 했다. 애빌린은 아이젠하워대통령의 고향으로 도 이름난 곳이다. 텍사스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애빌린으로 이주한 아이젠하워는 웨스트 포인트에 진학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애빌린에는 그가 살았던 아담한 2층 목조주택과 기념관이 남아있다.

아빌린을 뒤로하고 다시 70번 고속도로로 올라가 동쪽을 향해 달렸다. 250여km를 뛰어 오후 5시쯤 캔자스 시에 이르렀다. 캔자스 시는 시내 한 가운데로 흘러가는 미주리 강 가운데를 경계선으로 서쪽 반은 캔자스 주에, 그리고 동쪽 반은 미주리 주에 속해있다. 양쪽 모두 같은 이름으로 불리나 캔자스 주의 캔자스 시는 1868년에, 미주리 쪽 캔자스 시는 1838년에 형성됐다. 미주리 강에 걸쳐있는 70번 도로 한 가운데에 주경계표지판이 걸려있었다. 특히 미주리 주 캔자스 시는 로마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분수가 많은 도시로 이름이 나 ‘분수의 도시’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

퇴근시간에 걸려 캔자스 시를 빠져가는데 예정보다 20여 분 늦어져 이날 목적지로 잡은 미주리 주 컬럼비아에는 초저녁에야 도착했다. 시내 초입에 있는 모텔에 차를 세웠다. 계기판에 하루 달린 1,011km가 추가돼 있었다. 컬럼비아 시는 인구가 11만여 명에 불과한 작은 지방 중소도시이지만 미주리대학을 비롯해 대학이 3개나 있으며 대학졸업자가 전체 시민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교육수준이 미국에서 최상위권에 들어가는 곳이다. 이 같은 사실을 반영하듯 컬럼비아 시를 ‘미주리 의 아테네’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언론인 중에 미주리대학에서 수학한 사람이 많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여행도중 처음으로 모텔에서 컵라면을 끓여먹었다. 알싸한 매운맛이 입안에 가득 퍼지면서 순간 가뿐해지는 기분이 느껴졌다. 한국사람은 아무래도 매운 음식을 가끔은 먹어야 되는 체질이다 싶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사흘이 지났는데 거리로는 목적지까지 5분의 2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7시 조금 전에 모텔을 나섰다. 이날 첫 기착지인 세인트 루이스까지는 170여km. 9시쯤 시 외곽에 이르렀다. 인구 30여 만 명을 안고 있는 세인트 루이스는 교통, 경제, 문화,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미국내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비 유럽권에서 최초로 일찍이 1904년에 올림픽이 열린 곳이 세인트 루이스이고 세계최대 종자회사인 몬센토의 본사도 이곳에 있다. 세인트 루이스에는 명물이 하나 있다. 높이가 무려 192m에 이르는 거대한 스테인리스 게이트웨이 아치(Gateway Arch)가 그 것이다. 아치는 시가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미시시피강 서쪽 둑에 서있다. 1965년에 완공된 이 아치는 19세기 전반 이민자들이 서부로 몰려 갈 때 보여준 개척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포장마차를 끌었던 말의 편자를 형상화한 조형물이다. 미시시피 강을 오가는 유람선을 바라보며 아치공원벤치에 앉아 잠시 다리를 쉬었다. 10여 년 전 워싱턴특파원시절 미국무성이 해외특파원들을 위해 주선해 준 디펜스 투어(Defense Tour) 때 이곳을 지나간 일이 문득 생각났다.

캔자스 주와 미주리 주의 경계선이 미주리 강 한가운데로 그어진 것처럼 미주리 주와 이웃 일리노이 주는 미시시피강 가운에서 갈라지고 있다. 세인트 루이스에서 길을 바꿔 64번 고속도로로 갈아탔다. 일리노이 주로 들어서자 도로주변경관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서양 쪽 동부지역이 점차 가까워지면서 자연이 한결 다채롭고 풍요로워지는 듯 했다. 인디아나 주 남단을 지나가는데 아미시(Amish)레스토랑간판이 눈에 들어와 잠깐 들렀다. 종업원에게 물어 백여km 떨어진 곳에 아미시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만만찮은 거리지만 자주 있을 기회가 아니다 싶어 가르쳐 준 길로 차를 돌렸다. 편도1차선의 좁은 길이었지만 들판인데다 오가는 차가 별로 없어 속력을 낼 수 있었다. 기초정보를 얻기 위해 마을입구에 있는 작은 생필품판매가게에 들어갔다. 마을은 1800년대 중반에 형성됐으며 현재 650세대의 아미시가 살고 있다고 주인이 일러주었다.

아미시는 1525년 메노 사이몬이 주도한 스위스 재침례교인 메노나이트 지파로 1693년 야콥 암만에 의해 창설됐다. 이들은 검소한 생활과 철저한 성경주의에 입각한 삶을 신조로 하는 일단의 급진개혁개신기독교도들이다. 아미시라는 이름은 암몬 추종자들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아미시는 18세기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주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오하이오, 인디아나, 아이오와 등 20여 개 주로 거주범위가 넓어졌다. 문명세계와 단절하고 고유의 신앙생활을 고집하는 아미시는 일정한 교회 없이 20-40세대규모의 그룹을 만들어 격주로 교인들의 집에서 예배를 보며 일요일에는 완전휴무를 신조로 삼고 있다. 의복은 검은 색과 짙은 갈색 및 청색 등 단색뿐이며 전기와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를 금하고 자동차 대신 ‘버기(Buggy)’라는 검은 색 마차를 이용한다. 아미시는 가족유대강화를 최우선가치로 삼고 있으며 자녀교육은 그들의 학교에서 15세까지 고유언어와 기본과목만 가르친 후 바로 농사일에 전념케 하고 있다. 아미시는 주로 펜실베이니아 독일어를 사용한다.

마을로 들어서자 얼른 보아 미국의 여느 마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도로가 비포장이고 흰 집이 많고 길에는 아무데 고 마분이 널려있었다. 지나다가 한 부부가 뜰에서 일을 하고 있길래 들어갔다. 이국인의 난데 없는 방문에 당황하며 경계하는 빛이 역력했다. 목례를 하고 영어와 독일어 단어를 섞어가며 말을 걸자 무어라고 하는데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대여섯 살 배기 남매가 우리주변을 맴 돌며 신기한 듯 연신 킥킥거렸다. 동양인을 처음 보는 듯 했다. 사진 한 장 찍겠다고 영어로 말하고 촬영자세를 취하자 소리를 지르면서 손사래를 쳤다. 가까이서 닭을 잡고 있던 부인도 외계인이라 도 보듯 곁눈질로 우리를 힐끔 힐끔 쳐다보았다. 대화가 되지 않아 나오 고 말았다. 여행 도중 뒤에 다른 사람에게 들은 얘기로는 최근 들어 일부 아미시는 자동차와 전기를 사용하며 특히 젊은이들의 외부진출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1985년 현재 미국 내 아미시는 12만5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아미시 마을을 뒤로하고 64번 고속도로로 되돌아와 동쪽으로 가던 길을 재촉했다. 처음 예정 보다 2시간 반 남짓 늦어진 오후 1시 반에 켄터키 주 루이빌에 닿았다. 켄터키 주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생장 지이고 미국민요 켄터키 옛집의 무대이며 닭튀김 KFC(켄터키프라이드치킨)의 발상지인 점 등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처음엔 루이빌 시내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시간이 늦어 점심을 도로변 휴게소 레스토랑에서 닭고기튀김으로 대신했다. 본고장이라는 선입감 때문이었는진 몰라도 더 맛있게 느껴졌다.

루이빌에서 점심을 끝내고 서둘러 70여km 남쪽 핫젠빌 마을 싱킹 스프링 농장에 있는 링컨 생가와 그가 소년시절 짧게 살았던 놉 크리크로 갔다. 링컨이 태어난 통나무집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며 지금의 집은 그의 사후 30년 뒤에 복제한 것이다. 이 복제 통나무집은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모양으로 지은 석조건물 안에 보존돼있다. 통나무집이라고 해서 나무로만 지은 것이 아니고 통나무를 촘촘히 세우고 그 사이를 흙으로 매웠으며 10평 남짓한 흙 바닥 방에 소박한 벽난로가 하나 있을 뿐 다른 가구는 아무 것도 없었다. 1809년 2월12일 토마스 링컨의 둘째로 이 집에서 태어난 링컨은 2년 뒤 동북쪽으로 10km 떨어진 놉 크리크로 이사했으며 거기서 5년간 살았다. 링컨은 누나인 사라와 함께 가까운 학교에 다녔고 집 앞으로 흘러가는 실개천에서 고기를 잡으며 즐거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놉 크리크 집도 생가와 크기가 비슷한 통나무집이었으며 지금도 남아있다. 핫젠빌마을 중앙네거리광장에는 링컨의 앉아있는 동상과 기념관이 있다. 이 마을은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갔던 날도 단체관광객을 실은 여러 대의 버스가 생가와 마을을 번갈아 오갔다. 훗날 대통령이 된 뒤에도 링컨은 놉 크리크 시절이 가장 그립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링컨 생가는 미국 국가사적으로 지정돼있다.

놉 크리크에서 좁은 지방도로를 타고 40여km동북쪽에 있는 켄터키 옛집(My Old Kentucky Home)으로 올라갔다. 주변경관이 우리나라의 여느 농촌을 연상케 하는 길에는 오가는 차도 뜸했다. 우리 귀에 익숙한 민요로 잘 알려진 켄터키 옛집은 평균주택보다 훨씬 큰 건물이었다. 로완이란 사람의 개인주택이었던 붉은 벽돌3층 구조의 이 집은 미국 민요작곡가인 스티븐 포스터가 이 마을에 살고 있던 친척을 찾았다가 일대를 주제로 한 ‘켄터키 옛집’ 곡을 발표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연구가들은 민요 ‘켄터키 옛집’은 스티븐 포스터가 해리엇 스토우 부인의 명작 ‘엉클 톰스 캐빈’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며 실제로 포스터의 스케치 북에 실려있는 노래제목도 ‘푸어 엉클 톰, 굿 나잇’으로 돼있다고 밝히고 있다. 건물 가까운 곳에 앉아서 연주하는 스티븐 포스터의 동상이 방문객들을 맞고 있었다. 3층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준 여자안내원의 모습 한 컷을 카메라에 담은 후 다음 행선지인 웨스트 버지니아 주를 향해 길을 서둘렀다.

오후 4시가 막 지날 무렵 다시 64번 고속도로에 올라 동쪽을 향해 속력을 높였다. 다음날로 예정한 미국에서 사적지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버지니아 주를 여유 있게 돌아보기 위해 좀 무리해서라도 웨스트 버지니아 주까지 가야 했다. 버지니아 주는 미국의 역사가 시작된 곳으로 미국에서 역사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다. 켄터키 주 렉싱턴과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찰스톤을 지나 450km를 거의 쉬지 않고 달려 앨러게이니 산맥 자락에 있는 베클리에 이르자 시간은 이미 밤9시를 넘어섰다. 독립전쟁 당시 남부 민방위군 지휘자였던 앨프레드 베클리의 이름을 딴 이 마을은 석탄광산이 많은 웨스트 버지니아에서도 공기가 비교적 맑아 ‘연기 없는 석탄수도’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이다. 단풍이 절정기를 맞은 철이라 관광객이 몰려 모텔이 대부분 만원이었다. 몇 곳을 돌아 라마다 인에 간신히 방을 하나 얻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 긴장이 풀린데다 계속된 무리한 여정에 아내가 피곤하다고 했다. 슈퍼마켓에서 야채와 과일을 사다 몇 일 만에 따뜻한 밥을 지어먹고 뜨거운 물에 들어가자 마치 물속으로 가라앉듯 나른해졌다. 모처럼 숙면의 밤을 보냈다.

다음 날은 좀 여유 있게 호텔을 나와 우선 버지니아 주의 남쪽 애퍼매톡스로 갔다. 애퍼매톡스 마을에서 서쪽으로 5km떨어진 애퍼매톡스 코트 하우스는 남북전쟁을 마감한 종전협정이 맺어진 곳이다. 1865년 4월 9일 북군의 그랜트 장군과 남군의 리 장군은 전쟁종결 협의를 위해 당시 윌머 맥클린이란 사람의 저택이던 맥클린 하우스에서 만났다. 승자인 그랜트 장군과 가진 90분간의 회담에서 항복문서에 서명을 마친 리 남군사령관은 그랜트 장군과 함께 밖으로 나와 도열해 있던 북군에게 거수경례를 한 후 말없이 말을 타고 지금의 알링턴 국립묘지인 그의 농장으로 돌아갔다. 이로부터 사흘 뒤 남부연합군은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개인소유의 말과 무기를 가지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종전협정 서에 서명하면서 그랜트 장군은 “이제 전쟁은 끝났다. 우리는 다시 한 국민이 됐다”고 선언했다.

종전협정이 체결된 방은 10여 평 남짓한 의외로 좁은 방이었다. 입구 정면에 벽난로가 있고 그 왼쪽에 리 장군이, 그리고 오른쪽에 그랜트 장군이 앉았던 의자와 탁자가 당시 모습대로 놓여있었다. 그런데 승자인 그랜트 장군의 의자와 탁자가 수수한 목재인 데 반해 패장인 리 장군의 의자는 더 크고 탁자도 흰 대리석으로 장식돼 더 화려했다. 애퍼매톡스 박물관에는 승자인 그랜트 장군 대신 패장인 리 장군의 유품으로 거의 채워져 있는데 이는 리 장군에 대한 남부인의 애정과 존경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부에 대한 남부인의 끈질긴 저항 심리의 표출이라 는 해석도 있다.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돼있는 애퍼매톡스 코트 하우스는 건물이 10여 채 뿐인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애퍼매톡스를 뒤로하고 동쪽으로 200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제임스 타운으로 차를 돌렸다. 제임스타운은 영국이민자들이 최초로 신대륙에 상륙한 곳이다. 애퍼매톡스에서 제임스 타운으로 가는 도로주변은 전형적인 동부농촌이다. 1606년 말 영국 버지니아회사가 보낸 143명의 남자들은 3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반 년 가까운 항해 끝에 이듬해인 1607년 5월 14일 지금의 버지니아 주 남쪽 대서양의 체서피크 만에 닻을 내렸다. 이들은 강 하구에 통나무집을 짓고 당시 영국 왕이었던 제임스1세의 이름을 따 마을이름을 제임스 타운으로 정하고 정착에 들어갔다.

이들이 타고 갔던 수전 콘스탄트, 고드스피드, 디스커버리 등 3척의 복제선박이 마을 앞 하구에 전시돼있다. 이곳엔 나무울타리를 두른 옛 마을이 재현돼있으며 연중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첫 이민자들은 도착한 해 겨울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반 이상 사망했고 처참한 생활로 서로간에 싸움이 잦아지는 등 존립위기에 까지 이르렀으나 존 스미스 선장의 지도력으로 위기를 넘겼고 여기에 그 지역 인디언의 도움을 받아 안정을 찾았다. 더욱이 2년 뒤엔 영국에서 보낸 10여명의 처녀들을 맞아 젊은 청년들이 가정을 이룸으로써 마을에 활기가 살아났다. 일단의 순례자들을 태운 메이플라워 호가 보스턴 남쪽 플리머스에 착륙한 것은 제임스 타운 보다 13년 뒤인 1620년 이었다.

제임스 타운에서 수목이 울창한 콜로니얼 파크웨이를 따라 동쪽으로 20여km를 달리자 식민지 미국이 영국군을 패퇴시킨 요크 타운 전쟁터가 나타났다.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식민지정규군과 민병대, 그리고 미국을 지원한 프랑스군이 이끄는 미불연합군에게 완패 당했다. 이곳에는 당시의 프랑스군진지와 그들의 전사자공동묘지가 지금도 남아있다. 시산혈해를 이루었을 넓은 전쟁터도 지금은 넓은 초원으로 바뀌어 관광객들에게 편안한 휴식처가 되고 있었다. 전시돼있는 당시의 대포가 아니면 치열한 전쟁터였음을 말해주는 흔적은 아무 것도 없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요크 타운을 찾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전쟁터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그냥 돌아서곤 했다. 전쟁터 옆에 세워둔 승전기념탑에 이렇게 씌어있다. “One Country, One Constitution, One Future.”

세 곳을 돌고 나자 오후 5시가 넘었다. 서둘러 이날의 마지막 목적지로 잡은 윌리엄스버그로 가 홀리데이 인에 짐을 내려놓고 시내로 들어갔다. 제임스 타운, 요크 타운과 함께 미국의 ‘역사삼각지’를 이루는 윌리엄스버그는 1632년부터 취락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미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시 중심 지에는 옛 총독관저를 비롯한 당시의 건물들이 보존돼있다. 윌리엄스버그는 1699년부터 1780년까지 식민지수도였다. 윌리엄스버그는 특히 초기식민지시대의 정치와 교육 중심지였으며 1693년에 개교한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은 하버드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긴 역사를 지니고 있고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을 비롯하여 제임스 몬로, 존 타일러 대통령과 미국건국에 기여한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여행 마지막 날이 왔다. 오늘은 토마스 제퍼슨의 저택이었던 몬티첼로 와 그가 설계하고 세운 버지니아대학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를 열었다. 윌리엄스버그에서 몬티첼로까지는 약 200km의 거리였다. 다행히 가는 길이 고속도로여서 1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미국에서 건물로는 유일하게 유네스코문화유산에 올라있는 몬티첼로는 샬로츠빌 교외의 낮은 산 정상에 있다. 7.8제곱km에 이르는 이 산은 본래 토마스 제퍼슨 가의 농장이었으며 제퍼슨은 이 산을 그의 아버지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제퍼슨은 26세 때부터 산을 개간하고 터를 닦아 집을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의 증축을 거쳐 대통령의 임기를 마친 1809년에 지금의 건물을 완공했다.

제퍼슨이 손수 설계한 이 건물은 집 내부가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 차있다. 중앙의 로툰다를 중심으로 좌우가 정확한 대칭을 이루고 있는 몬티첼로는 반자동문과 냉장고역할을 한 건물지하관통터널 그리고 실내에서 바깥 바람의 방향을 알 수 있는 실내풍향계, 벽과 벽 사이에 침대를 배치한 공간활용 등 재기 넘치는 설계가 보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열 두 명의 손자와 손녀들까지 함께 한 대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1826년 6월 4일 눈을 감은 제퍼슨은 그의 혼이 밴 이 집에서 여생을 보냈다. 이 밖에도 400여 점에 이르는 유품과 1600여권의 고서, 그리고 많은 그림들도 깔끔하게 정돈돼있다. 건물 아래 완만한 산중턱에 제퍼슨가의 공동묘지가 있다. 국무장관과 대통령을 지낸 정치경력이 화려한 그였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묘비에는 ‘버지니아대학설립자. 버지니아종교자유조례제정자. 미국독립선언문작성자’라는 3가지만 기록돼있었다.

토마스 제퍼슨은 인권의 절대성을 강하게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가 초안을 잡은 미국독립선언문에서 제퍼슨은 “만인은 평등하게 창조 됐으며 창조주는 인간에게 양도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다” 고 선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그는 노예제도를 “가증스러운 범죄”라고 비난했다. 그런 그도 110명의 노예를 소유했으며 이 중에는 4대째 까지 이어온 노예도 많았다. 그가 소유했던 노예는 대부분 유산으로 받았으며 생전에 자유인이 된 노예는 2명에 불과했고 유언에서 그의 사후 추가로 5명에게 자유인으로 허락했을 뿐이다. 나머지 103명은 그의 사후 모두 팔아 저택건축 때 진 부채를 갚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간평등을 주장한 그의 인간관이 마치 다른 사람의 얘기처럼 느껴졌다. 자유인으로 풀려난 7명은 모두 그가 범했다 는 여자노예 셀리 헤밍스가 낳은 자녀로 알려져 있다.

몬티첼로에서 내려와 버지니아대학을 잠깐 돌아본 후 북쪽으로 차를 돌려 셰난도아 국립공원으로 올라갔다. 10억년 전후 캠브리안 기(紀)에 형성된 세난도아 일대의 지질은 지세가 우리나라 산의 완만한 능선과 흡사하다. 몬티첼로에서 쉐난도아 공원 남단입구까지는 50km의 가까운 거리였다. 셰난도아는 숲이 좋아 워싱턴 특파원시절 주말이면 머리를 식히려 즐겨 찾았던 생각이 났다. 미국동부 애팔래치아 산맥의 정상능선을 따라 하늘을 덮은 원시림 아래로 구불구불 이어지는‘스카이라인 드라이브’를 처음으로 달리며 느꼈던 그 때의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공원입구검문소에서 입장료 5달러를 내고 산길로 들어섰다. 북단의 프런트 로열과 남쪽 끝 웨인스보로 마을까지 이어지는 169km의 스카이라인 드라이브는 미국에서도 이름 난 관광도로의 하나다. 이 길 중간쯤에 펼쳐지는 넓은 초원 빅 메도우 휴게소 바깥 벤치에 앉아 10년 전 처음 들렀을 때를 회상하며 잠시 다리를 쉬었다.

대공황 후 실업자구제대책의 하나로 만들어진 스카이라인 드라이브는 1936년에 완공됐으며 평균 700m 고지를 S자형으로 번갈아 가며 이어진다. 계절 상관없이 이 산길을 찾는 관광객이 연중 3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스카이라인 드라이브를 달리다 보면 길을 넘나들거나 때로는 천연스럽게 길옆에 앉아 지나가는 차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사슴은 말할 것도 없고 운이 닿을 때는 곰이나 칠면조, 여우, 너구리와도 심심찮게 조우하게 된다. 200 종이 넘는다는 온갖 새들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의 하나다. 갔던 때가 마침 10월 중순이라 파란 하늘에 오색물결이 출렁이듯 절정에 이른 단풍이 온 산을 뒤덮어 여행의 흥취를 한층 더 돋워주었다. 하늘을 가린 상록의 햄록을 비롯하여 전나무와 참나무, 그 사이에 점점이 박힌 노란 자작나무, 그리고 진홍의 단풍나무와 이름 모를 온갖 수목이 서로를 섞어 만들어 내는 담황과 노랑과 빨강과 녹색의 현란한 조화는 신이 그린 천상의 그림이었다. 머리 속이 온 갓 물감으로 가득 찬 듯 했다.

벤치에서 일어나 여행의 최종목적지인 워싱턴을 향해 다시 페달을 밟았다. 10년 전 편도 1차선이었던 농촌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되고 주변이 산뜻한 건물들이 길 따라 줄을 이었다. 도로가 넓어 달리기는 좋았으나 찾을 때마다 일에 찌든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준 평화롭던 농촌풍경이 사라져 무척 아쉬웠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미국처럼 넓은 나라도 예외가 아니구나 싶었다. 대지에 박모가 깔릴 무렵인 7시쯤 3년 동안 살았던 아파트 인근의 콤포트 호텔 앞에 차를 세웠다. 계기판의 숫자가 LA 출발 때 보다 6,235km(3,875마일) 불어나 있었다. 태평양연안 LA에서 시작하여 아리조나와 유타 주의 끝없는 사막을 거쳐 험준한 로키 산맥을 넘고 광활한 중서부대평원을 지나 동부 애퍼래치아 산맥을 넘나든 긴 여정이었다. 벼렸던 미국대륙횡단자동차여행의 꿈이 이루어졌다. 엔진을 껐다. 무사도착을 확인한 순간 아내와 나는 마주보며 가벼운 미소를 주고받았다.

이곡권태명

모하비 사막

그랜드 캐니언

로키산

콜로라도 강 (로키산록)

로키산

모뉴먼트밸리

70번 고속도로(남북으로 미대륙 중간)

애미시 족의 마차 버그

게이트웨이 아치(세인트 루이스 시 미시시피강변)

애빌린 시 철도기년관(캔자스 주)

에이브러햄 링컨의 어릴 시절 집

남북전쟁 종전 서명 장면(린컨의 고향 핫젠빌 기념관 소장)

남북전쟁 종전 서명 장소, 버지니아 애퍼매톡스 마을

미국 민요 켄터키 옛집의 무대가 된 건물

토마스 제퍼슨의 저택, 몬티첼로

토마스 제퍼슨의 노예에 관한 기록

제임스타운

미국독립전쟁 종전 장, 요크타운

요크타운 전쟁 터

셰난도아국립공원

셰난도아국립공원의 스카이라인 드라이브

미국여행 투어로드

미국 대륙횡단의 기간

인터넷을 검색을 하다 보면 몇가지의 코스를 제시하면서 마치 그것이 미국대륙횡단의 정답이나 모델처럼 되어 있는데, 이는 가벼운 참고 사항일 뿐 원칙이 아닙니다. 대륙횡단의 기간 및 노선은 개인의 여행경험과 계절적 특성을 조합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며, 차량이나 이동 수단 여행 방법에 따라 준비되고 계획되어야 합니다.

보편적으로 인터넷의 떠도는 대륙횡단 노선이 15-20일 정도를 기준으로 합니다. 그런데 15-20일 정도의 일정은 미서부의 주요여행지를 돌아보기도 바쁜 시간입니다. 즉 이런 노선들은 횡단의 진정한 의미가 없습니다. 단순히 동서를 연결하다 보니 정말로 꼭 방문해야 할 곳은 생략이 되는 경우가 많고 단순히 이동의 편의성이 대륙횡단의 목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노선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륙횡단을 계획한다면 최소 20일 이상의 일정부터 계획하는 것이 좋습니다. 20일 이상은 되어야 동서의 주요한 여행지를 포함하는 일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30일이상이 되는 것이 좋고, 여행지를 대부분 돌아본다면 5월중순~10월 초순사이에 40일 이상의 코스를 선택해야 합니다.

대륙횡단의 코스

미국대륙횡단의 코스는 계절적요인에 따라서 여러 가지를 선택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대륙횡단의 목적입니다. 단순히 동서를 횡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느냐, 여행지를 충실하게 돌아보느냐에 따라 코스를 결정해야 합니다. 당연히 후자가 목적이 되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대륙횡단의 최고의 코스는 캘리포니아 남부-라스베가스-유타등을 거쳐서 옐로스톤-다코다-시카고-나이아가라-뉴욕의 일정입니다. 이 일정은 가장 다양한 형태의 관람지를 방문할수 있고, 노선의 축소, 증가가 가장 편리한 노선입니다. 동절기에는 미국 남부를 중심으로 한 일정을 만들 수도 있으나 여행으로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어쩌다 해외여행 | 4000km 대륙 자동차 횡단 초현실적 풍경 속을 질주하는 로드무비

맥도날드 광고탑은 여전히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어 준다. 저걸 보고 들어가면 주유소 정도는 꼭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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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은 오대호 주변 국유림,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깊은 숲 통나무집에 들어가 며칠 지내는 것이었으나 현지인의 전투력을 자극하는 마초적 권유를 듣고 시애틀까지 횡단 여행을 해보는 걸로 일정을 변경했다. 죽기 전에 미국 대륙을 한번 가로지르는 것도 괜찮은 추억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 생각도 여정 변경의 동기가 되었다.미 북부 대륙횡단 하면 보통은 뉴욕과 시애틀을 잇는 80번 – 90번 – 94번 고속도로 여행을 뜻한다. 도로 상황, 안전도, 기점 도시들 등을 고려한 상식이다. 출발 도시를 동쪽 뉴욕으로 할 것인지, 서쪽 시애틀로 할 것인가는 개인의 취향, 여행 동선에 따라 다르겠으나 운전 컨디션이나 시야, 안정된 마음의 리듬 등을 생각해보면, 개인적 의견이지만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것이 좋다는 게 결론이다. 해를 등지고 가야 시야가 넓고 맑으며, 게다가 동선이 길 때는 더욱 그러하다. 또한 해질녘이 되면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구름, 형형한 색깔의 하늘 모습을 보면 마음도 그렇게 편안해질 수가 없다. 이번 여행은 엄밀하게 말해 온전한 횡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뉴욕 – 피츠버그 500km 구간이 생략되었고, 피츠버그는 횡단 목적이 아닌 앤디워홀뮤지엄 관광 차 들렸던 도시이지 출발 지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츠버그를 찍긴 했으므로 ‘기록을 중시’하는 마초적 발상을 소환, 피츠버그를 출발 지점으로 해버렸다. 그렇게 해서 계산해보니 거리가 약 4000km이다. 내가 사는 제주의 동쪽 끝 한동리에서 서쪽 끝 애월 일대까지의 거리는 100km 미만이다. 제주로 관광 온 친구가 불과 40분 거리, 30km 떨어진 제주 시내에서 ‘보고 싶다’고 불러도 ‘멀다, 니가 오든지’라며 귀차니즘을 감추지 않았던 내가, 4000km를? 과연?횡단 여행의 조건은 첫째 ‘마음 먹기’다. 사실 운전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특별한 준비물도 필요 없다. 트렁크에 생수 한 박스, 한국 마트에서 구입한 컵라면을 실었다. 내키진 않지만 만약을 대비해 에너지드링크 대여섯 병도 조수석에 올려놓았다. 오하이오 컬럼버스에서 피츠버그 다녀올 때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야 했던 경험이 (‘카페인 과다로 인한 사망 사고’ 기사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챙기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음식이든 물이든 음료든 가급적 먹는 일은 삼가하기로 작정했다. 먹고 마셔봤자 툭하면 화장실을 불러댈 것이고, 그때마다 고속도로를 벗어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단조로운 도로와 그 풍경이 그 풍경일 게 뻔한 평원을 끝없이 달리는 일이므로 음악 선곡도 미리 해두었다. 평소 즐기는 늘어지는 리듬의 재즈 대신 보사노바, 미국의 컨트리음악을 앨범 단위로 보관했다. 미국 고속도로 이용법과 주유법도 사전에 체험과 복습을 해두었다.▶고속도로에 휴게소가 없어미국 생활 경험이 있거나 장기 여행을 해본 사람은 피식 웃겠지만, 미국 횡단여행이 처음인 나에게 주유법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미국의 모든 주유소는 셀프로 기름을 넣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계산도 셀프로 해야한다. 주유소에 들어가 주유기 옆에 차를 세우고 주유기 모니터를 보면 ‘살래?’ 라는 신호가 뜬다. 오케이 하면 카드를 꽂으라고 한다. 꽂으면 ‘신용카드니? 현금카드니?’가 뜨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이제 주유기를 꺼내 주유구에 꽂으라’고 한다. 꽂고 기름 종류를 선택한 후 노즐을 당기면 주유가 시작된다. 다 끝나면 영수증을 발행해주는 걸로 업무는 종료되는데, 이때 막판에 주유기를 다시 들어 주유구에 넣고 손잡이를 당기는 일이 중요하다. 결제는 끝냈지만 호스에는 아직 기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미국 고속도로에는 도로변 휴게소가 없다. 그래서 식사, 주유를 위한 나들목 확인이 중요하다. 방법은 간단하다. 도로변에 간헐적으로 서 있는 나들목(EXIT) 입간판을 보면 된다. 간판에는 나가는 길 번호와 그곳에 있는 편의 시설들이 아이콘으로 소개되어 있다. 주유소, 음식점, 햄버거, 모텔 등의 표시가 그것들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없는 곳도 있다. 간혹 달랑 주유기계 그림 하나만 덜렁 있는 곳도 있다.횡단 여행 중 자동차 연료가 바닥을 향할 땐 무조건 처음 만나는 주유소에 들어가는 게 상책이다. 시카고를 빠져나가는 도슨(Dawson)이라는 곳에서의 일이다. 한 50km 전부터 연료 게이지가 거의 바닥 근처까지 왔는데, 그만 나들목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곧 나오겠지라는 막연한 바람은 가도가도 끝이 없는 직선 도로를 달리며 불안으로 변했고 결국 표시등에 ‘앞으로 3마일 가면 끝’이라는 시그널이 뜨기에 이르렀다. 말이 시카고지 이미 도시를 넘어온지 오래라 긴급 주유 서비스를 받는다 해도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도슨 근처에서 주유기가 그려져 있는 입간판을 발견했고, 즉시 나들목으로 나가 마을로 들어갔다. 과연 주유기 하나만 있는, 영화 의 ‘하비에르 바르뎀’ 같은 악당이 나와 총질을 할 것같은 분위기의 주유소가 나를 살려주었다. 그런데 이 주유소의 주유기는 시내 주유소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1980년대에 사용되던 방식으로 가뜩이나 서툰 나를 더욱 헤매게 만들었다. 다행히 뒤에 들어온 트레일러 기사의 도움을 받은 게 행운이었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돌아서는 내게 기사가 말했다. “이 주유기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 따라 어디 가다 보았던 그런 방식인데, 참 특이한 주유소네요.”게다가 구닥다리 주유기를 사용하는 주제에 값은 또 왜 그렇게 비싼지, 보통 갤론 당 2.2달러 정도 하는 기름값이 이 깡통 시골에서는 2.5달러에 육박했다.▶햄버거 먹겠다고 햄버거집 찾아다니지 말기미국 고속도로의 휴게소 개념이 우리의 그것보다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이번 여행에서 하게 되었다. 편리하긴 한국의 고속도로가 최고다. 달리다 슝 들어가 볼일 다 보고 출발하면 바로 또 고속도로니 시간도 절약되고 기름도 아낄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런데 미국의 고속도로에는 휴게소가 없다. 대신 나들목을 나가면 곧, 또는 5분쯤 들어가면 마켓 존이 등장한다. 그곳에 주유소, 상점, 모텔, 식당들이 집중되어 있다. 고속도로 회사에서 운영하며 임대하는 개념이 아닌 지역 소상공인들이 경영하는 시설인 것이다. 밥 때가 되면 그곳에서 식사도 하게 되는데, 웬만한 식당에는 햄버거나 핫도그를 판매하므로 굳이 따로 햄버거 간판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나는 한국에서 즐겨 먹었던 버거킹, 맥도날드 등을 주목했는데, 이것은 거의 바보짓이라고 할 수 있다.몬테나주를 지날 때 나는 몹시 배가 고픈 상태였다. 수시로 입간판을 보며 ‘어휴, 그 많던 맥도날드는 다 어디 간거야?’ 하며 투덜대다 결국 허기를 견딜 수가 없어서 글렌다이브(Glendive)라는 작은 도시로 나가버렸다. 식당은 달랑 한 개 뿐. ‘씨씨스 패밀리카페(CC’s Family Cafe)’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었다. 허름해 보이는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며 ‘허기나 해결하자’는 심정이었는데, 홀에 손님이 가득한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 오늘이 어머니날(Mother’s Day)이지.’ 미국은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어머니날, 6월 셋째 주 일요일은 아버지날이다. 이날은 어머니날이었고, 그래서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그렇게 많았던 것이다. ‘날이 날이니만큼 그런 거겠지, 그닥 맛집은 아닌 것 같아’라고 중얼거리며 메뉴판을 열었고, 햄버거 메뉴 가운데 이름도 특이한 산타페버거와 해시브라운(미국식 감자전)을 주문했다. 그런데 이 햄버거가 우주 최강이었다. 패티가 아닌 다진 고기와 각종 야채, 그리고 산타페라는 이름의 야채 소스가 뿌려져 펼쳐진 채 나온 이 햄버거는 평소 햄버거를 즐겨먹는 내게 신세계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오죽했으면 먹다 말고 벌떡 일어서 노래를 부를 뻔 했을까. 펼쳐진 상태로 나온 버거의 패티와 야채를 수습해 다시 오무려 잘라 먹는 그 맛이 촉촉, 달콤 새콤했다. 곁들여 주문한 해시브라운도 예술이었다. 갑자기 막걸리가 간절해질 정도로 강원도 감자전과 흡사했다. 주방장 손도 큼직해 결국 다 먹지 못하고 포장을 했는데, 저녁 때 머문 모텔에서 맥주와 함께 먹은 식은 감자전 맛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뿐이다. 식어도 맛있으려면 대체 뭘 넣었다는거지? 마약 감자전이니?▶오줌보 터질 뻔한 원인은 고속도로 살인사건 때문잘 달리던 도로가 일순간에 정지했다. 클린턴 시티 근처에서였다. ‘가다 서다’도 아니고 그냥 정지였다. 건너편 도로에도 차 한대 오지 않았다. 조금 전에 ‘공사중’ 안내판을 봤기 때문에 양쪽을 다 막고 뭔가를 하나보다 했는데, 30분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 결국 기다리다 지친 운전자들이 도로로 내려와 서성이기 시작했고, 물어보니 ‘공사는 아닌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분명 사고라는 것이다. 대형 교통사고가 났다는 말인가? 한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인내는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고, 차에서 내려 아무리 둘러봐도 내 한 몸 숨긴 채 볼 일을 볼 지형은 없었다. 앞쪽에 있는 캠핑카 주인장에게 부탁해야겠군, 하는 순간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대편 도로를 이용해서 5분쯤 달리니 이쪽 도로 한쪽에 경찰차 5~6대와 지역 방송국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카메라를 열고 서 있었다. 주변 곳곳에도 경찰차가 서 있는 걸로 봐서 사고가 분명했다. 조금 더 가자 나들목이 나왔고, 그곳 주유소 마트의 화장실 앞에는 열 명 정도가 줄을 서 있었다. 그 순간 모두가 ‘너도 고속도로에 갇혔었니?’ 하며 구시렁 구시렁. 마을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엿들어 보니, 순찰차 경찰이 수상해 보이는 차를 세워 검문을 하려 하자 그쪽에서 총질을 시작했고, 즉시 대응한 경찰들의 총격에 의해 용의자 세 명 모두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주유소 마당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철수 중인 경찰차와 견인되어 가는 범인들의 차가 보였다. 범인들의 자동차는 불투명 랩을 둘둘 만 상태다. 증거 보전을 위해 그렇게한다고 누군가 말해 주었다.미국의 경찰은 진짜 무섭다. 일단 경찰차의 포스가 깡패 수준이다. 시카고 지역을 빠져나올 때 공사 중인 구간에서 갑자기 제한 속도가 줄어든 걸 모르고 질주하다 바로 뒤에 추돌할 듯 달라붙은 경찰차를 룸미러로 보며 바짝 졸아든 적이 있었다. 약 10초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세우면 어쩌지? 창문을 열고, 두 손을 핸들에 올려 손바닥을 펴고, 내리라고 하면 살살 내려 바닥에 엎드려야 하고, 그러다 실수해서 총맞으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들 만도 한게, 교통 법규 위반했다 오해 살만한 행동을 하는 바람에 벌집이 되는 장면은 한두 번 본 게 아니지않나. 아무튼 내 차 꽁무니에 바짝 붙어 쫓아오던 경찰차는 내가 속도를 줄이고 차선을 옮겨가자 곧 추월해 사라져버렸다. 알아보니, 뒤에 바짝 붙어서는 차량 넘버를 조회하고, 범죄, 위법 사항이 발견되면 일단 세우고, 그렇지 않을 경우 봐준다고 한다. 또한 순찰차가 앞에서 천천히 간다고 함부로 추월하는 것은 삼가는 게 좋다고 한다. 답답하더라도 그냥 졸졸 따라가다 순찰차가 도로에서 사라지면 그때 제 속도를 내는 게 상책이란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고속도로는 중앙분리대가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신 상행선과 하행선 사이에 공지가 있고, 양쪽 차선이 연결되어 있는 곳이 간혹 나오는데, 그곳에 순찰차가 서 있는 경우가 많다. 과속, 수상한 차를 발견하면 바로 경광등 켜고 추적하는 것이다. ‘언더커버’도 조심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도입된 언더커버는 평범한 차량으로 위장한 경찰차를 말하는데, 경찰차 없다고 까불다가 이 차에 적발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언더커버를 눈치 챌 방법은 없다. 단지 관공서 차는 주로 포드나 GM 등 미국차를 사용하는 게 대부분이란 게 참고 사항이 될 수 있을까? 법규를 엄격하게 지키는 게 미국에서의 자동차 여행을 무사히 마치는 유일한 방법이다.▶가도가도가도가도 끝이 없는 평원의 초현실적 풍경대륙이 왜 대륙이 되었을까. 나는 시카고를 벗어난 뒤 처음 본 산이(그것도 산인가?) 루즈벨트 국립공원이었다. 교차로에서 고속도로로 들어가면 보통 500km에서 1000km 직진하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가 뜬다. 그리고 그 1000km를 달리는 동안 산이라고는 단 한 개도 볼 수가 없다. 오직 평원 뿐이다. 평원에서 본 경제 행위는 딱 세 가지였다. 가장 흔한 게 농업이다. 그런데 모든 밭들이 지평선을 보유하고 있다. 물 주는 기계는 마치 우주선처럼 생겼고 대형 트랙터 움직이는 모습이 개미 새끼와 같다. 또 하나는 목장이다. 방목된 소들의 색깔은 주로 검은색이다. 우람한 녀석들이 풀을 뜯거나 꼬리를 세우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살짝 부럽기도 했다. 소도 저렇게 살아야 결국 사람에게 좋은 것 아닐까. 다코다 지역에서는 소규모 유전이 보였다. 오일 쇼크 때 이 지역에 개발 붐이 불었는데, 유전을 발견하기도 전에 기름값이 내려 맥이 빠진 상태라고 한다. 아무리 달려도 끝이 나오지 않는 여정은 한편 고독의 길이기도 하다. 생각을 내려놓는 것도 여행의 목적 중 하나다. 광활한 대지 위를 혼자 운전하며 달리자니, 우주를 유영하는 뿌듯한 고독감도 느낄 수 있었다. 횡단 여행의 묘미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운전만 했다고? 결코 후회할 수 없는 승용차 대륙 횡단숙소는 60달러 안짝의 모텔을 주로 이용했다. 고속도로변의 모텔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순수 숙박만 하는, 메리어트 스타일의 모텔들과, 조리가 가능한 콘도식 모텔인 익스텐디드 스타일이 그것들이다. 나는 메리어트 스타일이 좋았다.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운전하고 숙소에 들어가 또 밥 해먹겠다고 부산 떠는 게 귀찮았고, 장기 투숙객을 주로 받는 익스텐디드 스타일은 상대적으로 좀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대륙 횡단이라는 단순 체험과 여행 기록을 쓴다는 것 말고, 솔직히 주구장창 운전만 하는 횡단 여행은 그닥 권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눈 내리는 록키산맥을 넘으며 잠시 생각했었다. 횡단 여행은 광활한 여정이다. 승용차 한 대 빌려 달달달달 달리는 것보다는 캠핑 트레일러를 빌려 깊은 자연에서 며칠씩 머물며 이동하는 게 진리라는 여행 선배들의 충고가 새삼 절실하게 가슴을 후볐다.그렇다고 승용차 횡단을 후회하진 않는다. 좁은 지역이나 기차, 비행기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광활한 대지와 초현실적인 풍경을 계속 감상하며 달릴 수 있을 뿐더러 기동력이 좋아 낯설고 한적한 나들목으로 들어가 평생 잊을 수 없는 감흥을 가슴에 남길 수 있었으니 이 또한 횡단 여행의 기쁨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록키 산맥을 넘으며 본 폭설은 심장을 쫄깃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무리 북쪽이라 해도 지상은 늦봄인데 펑펑 내리는 눈이라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시애틀 남쪽 커먼스먼트만이 내려다 보이는 페더럴웨이 달방에 머물고 있다. 횡단 여행하며 유일하게 관광객 모드로 여유를 즐겼던 루즈벨트국립공원, 시애틀, 기타 등등 이야기는 다음호부터 나누기로 한다.[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81호 (17.06.06일자) 기사입니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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