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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의 새 를 보라 | 새찬송가 588장(통307)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답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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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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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공중의 새를 보라 (마6:26-27)

본문 26절 말씀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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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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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아침 설교 – 20160925m 공중의 새를 보라 (마 6:25-34)

왜 주님이 공중의 새,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그들의 능력을 보라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존재의 근거, 생존의 원리를 보라는 말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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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hegreen.or.kr

Date Published: 2/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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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6장 26~29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정대운 – 네이버 블로그

26절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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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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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보라, 백합화를 보라 – 주일낮예배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를 앉혀놓고 자연을 소개하고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하찮은 새, 꽃 한 송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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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bmjac.com

Date Published: 2/30/2022

View: 3848

공중의 새를 보라…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

단순하고 꾸밈없는 삶: 공중의 새를 보라…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마 6;26, 28). 예향원피정의집. 2019. 1. 24. 14:00 댓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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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9/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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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37 공중 의 새 를 보라 The 39 New Answer

생명의 말씀 – 공중의 새를 보라 (마6:26-27). Article author: www.ksch.net; Reviews from users: 22630 ⭐ Rating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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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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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찬송가 588장(통307) 공중 나는 새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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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공중 의 새 를 보라

  • Author: 방주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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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3d_e3vnIlpo

공중의 새를 보라 (마6:26-27)

2012. 1. 29.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47)

본문 : 마 6:26-27

제목 : 공중의 새를 보라.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베드로전서 강해설교를 들으신 분은 5: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라는 말씀을 통하여 염려에 대한 교훈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때 염라대왕과 그의 동생 염려대왕의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저세상에는 염라대왕이 있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염려대왕이 있는데 죽고 나서 염라대왕을 만나면 안 되고 이 세상에 살면서는 그 동생 염려대왕을 만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한 사람들이 나쁜 짓을 많이 하고 죽으면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서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그 말씀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염려대왕을 만나서 지옥 같은 세상을 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진짜 염라대왕이나 염려대왕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예를 들어 만들어 본 이야기입니다.

염려라는 것은 그렇게 좋지 않은 것임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염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이고 또 하나님과 재물 이 두 주인을 같이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처럼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먹고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우리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그 생명을 위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더 소중한지를 아는 사람은 염려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먹고 사는 것보다 우리의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오늘도 염려에 대한 교훈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26절, 27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염려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공중의 새를 보라.

본문 26절 말씀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옛날과 다르게 그렇게 먹을 것이 없어서 입을 옷이 없어서 그것 때문에 걱정하지는 않는 세상입니다.

좀 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 걱정하고 좀 더 멋있는 옷을 입기 위해서 걱정하지 아예 없어서 걱정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의식주 때문에 걱정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가 먹을 것을 주는 것도 아니고 입을 것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하고 열심히 일을 해야 먹고 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더 잘살아 볼까 하고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 됐다 이제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께서 다 먹여 주시는데 뭘 걱정하느냐 라고 생각을 해버립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한 노력 자체를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돈을 잘 벌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알아보고 계획도 세우고 노력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법칙은 뿌리는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는 것이 우리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주신 삶의 법칙입니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냥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다 동원하여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여기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지나친 염려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살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일을 하라는 명령은 따르지 않고 그냥 걱정만 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세상을 살고 있으면 더 이상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그냥 바라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새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서 보라는 것입니다.

새들이 씨를 뿌리는지 새들이 추수를 하는지 새들이 창고에 곡식을 쌓아두는지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새들은 우리처럼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회사에 출근을 해서 일을 하거나 시장에 가서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냥 매일 매일 나가서 자연 속에 있는 먹이들을 먹으면서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인간들이 새를 잡으려고 독약이 든 음식을 뿌려놓으니까 그것을 잘못 먹고 죽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새가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죽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새들을 기르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새들을 다 먹고 살게 해 주시기 때문에 새들이 다 먹고 살더라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새들이 몇 마리나 살고 있을 것 같습니까?

어떤 분이 조사를 해 보았는데 대략 1000억 마리쯤 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람들의 인구를 60억으로 본다면 사람 숫자보다 16배 이상이 많습니다.

이 천억 마리의 새들이 다 무엇을 먹고 살까요?

새들이니까 뭐 별로 많이 먹지 않겠지 라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 새들도 엄청 먹어댑니다.

어느 교수가 제비에 대해서 연구를 했는데 제비가 새끼를 키울 때 하루에 100번 이상 먹이를 물어다가 주더라는 것입니다.

어미 제비가 3주 동안에 곤충 2천 마리 정도를 잡아다가 먹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숫자의 새들이 그 많은 먹이를 먹고 사는데 하나님께서 그 새들을 먹이실 때 우리처럼 사료를 만들어서 먹이지 않습니다.

아주 자연산 그대로를 먹이시는데 다들 잘 먹고 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입니다.

인간들이 먹고 살 수 있게 하시려고 만물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만물들을 삶의 도구로 삼아서 먹고 입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하나는 만물들을 통해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염려하고 있는 우리들을 향하여 공중의 새를 보고 깨달으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게으른 자에게 가서 개미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우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히 일을 하여 겨울에 먹을 것을 모으는 개미를 보고 그 근면성을 배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개미는 열심히 일하여서 겨울을 잘 지내는데 베짱이는 노래만 부르고 놀다가 추운 겨울에 어려움을 당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개미와 베짱이의 삶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베짱이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개미의 수명은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개미를 중심으로 보면 1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베짱이는 6개월 밖에 못산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개미가 베짱이를 따라 여름에 노래나 부르면서 놀고먹었다면 겨울에 살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베짱이가 여름에 놀지도 못하고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만 했다면 참 억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수고한 모든 것이 다 개미의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6개월만 살다가 죽는 베짱이에게는 겨울을 대비하지 않고 그냥 있는 것만 먹고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겨울을 지내야 하는 개미에게는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 먹을 것을 모을 수 있는 기술을 주셨습니다.

개미나 베짱이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들에게 먹고 살도록 다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120년을 살도록 해 주셨습니다.

물론 원래는 영원한 생명을 주셨지만 타락한 이후의 수명은 120년으로 제한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120년을 먹고 살 수 있는 기술들을 주셨습니다.

농사를 짓고 짐승을 기르고 물고기를 잡고 하는 기술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서 먹을 수 있는 돈을 버는 방법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똑똑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방법 외에 더 많은 노력으로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하여 더 잘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창조질서를 위반하는 인간의 기술 때문에 우리는 점차 더 악한 환경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새가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배워야 합니다.

새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추수도 하지 않고 창고에 쌓아놓지도 않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먹이시기 때문에 걱정 없이 잘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모든 만물들은 그 만물들에게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하시고 살게 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2.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역시 26절 하반절 말씀에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라고 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도 다 우리 하나님께서 기르신다면 우리는 이 새들보다 더 귀한 인간이기 때문에 열려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새를 부러워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 부럽습니까?

하늘 높이 날아가는 새를 보면 참 부럽습니다.

나도 저렇게 날아갈 수 없을까? 그래서 이 세상 어디든지 날아가서 모든 것을 다 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부러워하던 사람들이 새처럼 날아가기 위해서 만든 것이 비행기입니다.

우리 직접 날개로 날지는 못하지만 비행기 날개를 이용해서 새들보다 더 높이 날고 있습니다.

새들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하늘을 날고 있지만 머리가 없어서 아직도 스스로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날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지혜가 있어서 새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날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 세상의 어느 동물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 세상의 것들과 다르게 구별해서 만드셨습니다.

인간에게는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를 하셨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영혼을 주셨고 신비한 몸도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우리가 짐승들과 같은 생명을 가졌다고 생각을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좀 귀엽고 잘 따른다고 해서 개를 인간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모든 자연의 만물들이 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주셨기 때문에 그 자연 만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와 같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개를 키우다가 죽으면 사람이 죽은 것처럼 슬퍼하고 무덤을 만들어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개는 짐승일 뿐이고 사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주 별 볼일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질서를 정하셨는데 어떤 이유든 그 질서를 깨면 안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무엇이 바른 것인지 무엇이 나쁜 것인지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 이 구별법입니다.

구별을 잘 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과 땅에 쌓아두는 것,

하나님을 주인을 섬기는 것과 재물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

성한 눈과 나쁜 눈을 가지는 것,

목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목숨을 위해서 있는 먹을 것 입을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이런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잘 분별을 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는 하늘의 새가 중요한가, 너희가 중요한가를 구별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미물에 불과한 새들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창조하신 우리 인간들을 그냥 두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를 듣고 어떤 학생이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먹이시는데 왜 아직도 이 세상에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게 질문을 하면 저도 대답을 잘 못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기르시는데 왜 굶어 죽을까요?

지난번에 말씀을 드린 대로 이 세상에 너무 많이 가진 부자들 때문에 못 먹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자기도 쓰지 않으면서 쓸데없이 재물을 모은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굶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계에 뜻있는 사람들이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서 분배를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잘못된 종교들 때문에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살고 못사는 것이 타고난 팔자라고 생각하는 불교국가나 이슬람 국가들 가운데 못사는 나라가 많습니다.

또 국가지도자가 독재로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에 못사는 나라도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나라나 기독교의 복음이 잘 전해진 나라들은 비교적 잘 살고 있습니다.

적어도 먹을 것 때문에 입을 것 때문에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전쟁 후 폐허인 상태에서 이렇게 급격하게 경제적으로 발전을 이룩한 것은 여러 가지의 원인이 있겠지만 기독교의 공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기독교를 욕을 하지만 뭘 몰라도 한참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학교를 만들고 병원을 만들고 갈 곳 없는 전쟁고아들을 돌보고 생각을 바꾸게 하고 새벽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열심을 내고 그런 노력들 때문에 나라가 이만큼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또 결정적인 것은 여기 “너희는”이라고 한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 너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우리 성도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도라고 할 때 그 뜻은 거룩한 무리, 구별된 무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사람들과도 구별이 되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특별한 우리가 공중의 새와 비교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과 부르심을 받아 성도가 된 우리는 정말로 위대한 사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관리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본문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염려의 무익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염려를 한다고 키가 한 자라도 커지더냐는 것입니다.

여기 키를 한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는 말은 수명을 일 년이라도 더 연장할 수 있겠느냐. 로 번역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NIV)에서는 그의 생명을 한 시간이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로 번역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노력해서 될 일이 있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키가 크게 하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키가 큰 사람을 좋아하니까 어떻게 하든지 키를 키우려고 노력들을 많이 합니다.

음식조절 운동요법들을 통해서 키가 크게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 노력에 의해서 조금은 달라지겠지만 한자 약 2-30센티 정도를 크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전자 속에 얼마나 키가 클 것인지를 정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도 우리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운동도 하고 체력조절도 하고 약도 먹고 수많은 노력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그 날은 넘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그런 것들 우리가 노력을 해도 어쩔 수 없는 일들 때문에 염려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우리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들 즉 하나님께서 조정하시는 일들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면서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요 염려를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염려 되는 일들이 많으십니까? 공중의 새를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씨를 뿌리지도 추수를 하지도 창고에 쌓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르시기 때문에 잘 살고 있습니다.

새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간들 그 중에서도 우리 성도들을 돌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염려해도 되지 않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맡기고 사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마6장 26~29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정대운

마6장 26~29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정대운 목사 2004.10.10

광장교회 [천안시 쌍용동] http://www.onbible.net/

< 마태복음 6장 26절 ~ 29절 >

26절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절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절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절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1. [청지기] – 나는 하나님의 머슴이다.

어느 목회자의 <머슴론>을 읽었습니다.(1997년 1월 24일자 국민일보)

성경에서는 ‘청지기’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머슴’으로 이해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이라고 했는데

헬라어 ‘두울로스’ 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머슴’ 이 적당합니다.

머슴 목회론을 읽으며 마음에 새겨진 것이 있어서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① 머슴은 주인이 시키는 그대로 합니다. 주인에게 절대복종합니다.

주인의 명령과 지시에 이유를 달 필요가 없습니다.

주인이 소를 몰고 오라면 비가 오든지 바람이 불든지 소를 몰고 와야 합니다.

주인의 명령대로 하면 잘했든 못했든 그것이 100점 – 만점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 착하고 충성된 머슴입니다.

② 머슴은 24시간 대기상태라야 합니다.

머슴은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있는 시간제 일꾼이 아닙니다.

1년, 2년, 평생의 시간을 바친 사람들입니다.

주인이 부르면 언제, 어디서나 “예” 하고 달려갑니다.

머슴은 주인이 깊은 잠에 빠져있는 새벽에도 일어나서 쇠죽을 끓입니다.

항상 깨어 있어 언제나 “예” 할 수 있는 사람이 지혜 있고, 진실한 머슴입니다.

③ 머슴은 주인과 주인의 가족까지 돌보아야 합니다.

머슴은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자녀를 돌보고 시장에 가라면 가야 합니다.

논, 밭, 산, 집안에서 주인이 필요로 하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묵묵히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말없이 충성하는 것입니다.

머슴의 역할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하는 것입니다.

집안의 모든 일을 말없이 순종할 때 착하고 충성된 머슴입니다.

④ 마지막으로 머슴은 걱정, 근심, 염려가 없습니다.

비가 오고 태풍이 와서 논에 있는 온갖 곡물들이 물에 잠겨도 걱정이 없습니다.

머슴은 가물어도 홍수가 나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머슴이기 때문입니다.

걱정하는 것은 주인 노릇하는 것입니다. 머슴은 공치는 날이 없습니다.

주인은 집안의 어른이요, 머리입니다. 머슴은 주인의 손입니다.

주인의 생각과 명령대로 움직이면 지혜 있고 진실한 머슴입니다.

밭에다가 보리, 밀, 수박, 참외, 배추, 무우를 심던지, 이 모든 것이 주인의

판단입니다.

가을에 추수하여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것도 주인입니다.

일년 농사가 잘 되고 못되어도 염려하는 것은 주인입니다.

머슴은 주인의 지시를 따라서 주인의 손, 발처럼 움직입니다.

그러나 머슴은 주인처럼 염려하지 않습니다. 염려는 주제, 분수에 넘는 것입니다.

2. [두개의 젖가슴] 나의 아버지는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 지 확실하게 알고 믿어야 합니다.

① 창세기17장1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엘 샷다이’ 라고 소개합니다.

‘샷다이’ 라는 말은 두 개의 산봉우리, 즉 ‘풍만한 가슴’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 이라고 그 이름을 새로 지어주실 때

‘전능한 하나님’ 즉 ‘엘 샷다이’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계시합니다.

하나님이 새로 주어 주신 이름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한 가족이나 한 부족의 아버지가 아니라 온 세상이 아빠 아버지입니다.

② 창세기28장3절에서 이삭이 야곱을 축복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 이라고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야곱에게 복을 주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기를 축복했습니다.

이때 쓰인 ‘전능하신 하나님’ 도 ‘엘 샷다이”입니다. 쌍봉의 하나님입니다.

이 ‘샷다이’ 라는 말은 ‘젓이 퉁퉁 불은 유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③ 창세기35장10절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새로 지어주십니다.

그리고 11절에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십니다.

‘엘 샷다이’는 축복과 풍요와 생육과 번성에 적용됩니다.

하나님에게서 젖과 꿀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④ 창세기48장3절,4절에서 야곱은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면서

“엘 샷다이가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내게 이르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며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입니다.

⑤ 창세기49장25절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 엘 샷다이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로다.” 했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부를 때

그 분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풍성한 젖과 달콤한 꿀을 주셨던 분입니다.

이삭이 메마른 땅에서 우물을 팔 때마다 땅속에서 샘물이 펑펑 쏟아지게 하신

분이십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았던 야곱이 어디를 가든지 도와주시고 함께 해주셨던 그 하나님

이십니다.

풍요와 다산과 축복의 신은 바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온 세상 사람에게 젖을 풍성하게 나누어 줄 수 있는 퉁퉁 불은 유방을 가지신

분입니다.

3. [하나님의 마음과 눈] 젖과 꿀이 흐르는 땅

① 성경에서는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젖과 꿀은 어디서 흐를까요?

가나안 땅은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산지입니다.

식물이 성장하는데 수분이 부족한 척박하고 메마른 땅, 천수답(天水沓)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려주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짐승들을 위해서 들에 풀이 나게 하시고, 그것을 먹고 배부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을 먹이시고 마시우게 하십니다.

② 보세요, 애굽 땅은 나일 강에서 물을 얻지만 가나안은 하늘에서 물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와 햇빛이 곧 젖과 꿀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를 기르시고 백합화를 기르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땅과 이 사람들을 살펴보십니다.(신11:12)

하나님은 풍성한 젖가슴을 가진 아버지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와서 값없이 먹을 수 있는 산이요, 들이요, 바다 같은 가슴입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젖가슴에서 먹고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경험입니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세상만물을 만드시고 기르시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염려할 것이 아니라 그 가슴으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4. [새와 들꽃]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1) [사람의 염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①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냐? 맘몬이냐?’를 택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 고 하십니다.

이 단락에서 ‘염려’ 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염려를 합니까? 우리의 믿음이 적은 연고입니다.

인간은 창조주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질 때 자신이 주인 노릇합니다.

문제는 믿음, 곧 ‘하나님이냐, 맘몬이냐’ 하고 우선순위가 무너질 때 염려가 옵니다.

염려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듭니다.

② 예수님께서 “공중의 새를 보라” 고 하십니다.

먹는 것 때문에 염려가 있는 사람은 공중에 나는 새를 보아야 합니다.

새는 곡식을 심지도 않고 가꾸지도 않고 거두어들이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은 새도 먹이십니다.

③ 예수님께서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고 하십니다.

입는 것 때문에 염려가 있는 사람은 들꽃을 보아야 합니다.

들의 백합화는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는데

아름다운 옷을 철따라 입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들꽃도 이렇게 입히십니다.

예수님은 백합화의 아름다운 모습을 솔로몬의 모든 영광에 비교합니다.

“솔로몬의 화려함이 이 꽃 하나만도 못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께서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하고 말씀하십니다.

④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하므로 그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느냐?” 하십니다.

이 말은 신장(身長)으로 번역할 수도 있고 수명(壽命)으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머리를 싸매고 아무리 염려를 해도 불가능한 일들이 많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한자도 늘일 수 없다는 점에서 키나 수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염려한다고 키가 자라거나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로 받아 들이셔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염려를 하지만 염려를 통해서 생존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생명은 먹고 마시고 입는 재물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고 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는 사람, 믿음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 [이방인의 기도] 우리는 다른 사람이다.

① 이방인의 관점 : 이방인은 목숨보다 음식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이방인의 관점 : 이방인은 몸보다 의복을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이방인은 알맹이를 잊어버리고 껍데기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껍데기 인생들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은 목숨을 주신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래서 내가 주인 노릇합니다.

이방인은 몸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래서 내가 염려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영광 돌리지도 못합니다.

이때부터 머리 속은 염려로 가득 찹니다.

② 이방인은 누구입니까?

이방인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이방인은 아비는 있지만 아버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고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합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은 그런 것들을 구합니다. 이방인은 소년소녀가장과 마찬가지입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을 모두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방인은 내가 주인이기에 염려를 해야 합니다.

염려와 근심과 걱정을 한다해도 아무런 해결방법이 못되지만 그냥 염려하며 사는 것

입니다.

③ 자녀의 필요가 무엇인지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들에서, 산에서,

그리고 바다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기르고 가꾸십니다.

공중의 새처럼, 들의 백합화처럼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노력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껍데기로 들은 사람은

‘이제는 땀 흘려 일하지 않고 수고할 필요가 없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한당(不汗黨)과 같이 무위도식(無爲徒食)합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이방인처럼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④ 우리 아버지는 새들이나 백합화보다 우리를 더 귀하고 사랑스럽게 여기십니다.

‘하물며’ 라는 단어가 바로 그런 뜻입니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고 하늘 아버지께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자녀를 돌보시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 신뢰입니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를 바르게 알고 믿으며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믿음이 적은 자들아”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염려합니까?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믿지 못하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적어서 염려하는 것이고, 욕심 때문에 염려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믿음이 10퍼센트라면 90퍼센트는 염려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90퍼센트라면 염려는 10퍼센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100퍼센트라면 염려할 것 전혀 없습니다.

죄가 무엇인가 아십니까? 죄는 아버지를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제는 ‘무엇을 믿느냐’에서 ‘얼마나 믿느냐’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믿음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자녀의<,올바른 관계>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우선순위>입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다시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냐? 염려냐?” 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지체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을 100퍼센트 믿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때 염려는 없어집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큰 믿음을 소유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새를 보라, 백합화를 보라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를 앉혀놓고 자연을 소개하고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하찮은 새, 꽃 한 송이를 먹이시고 자라게 하시거늘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새보다도 너를 더 사랑한다. 들에 핀 백합화보다도 너를 더 사랑하느니라. 그러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새를 들어서 말씀하신 것은 의미심장한 뜻이 거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 공중의 새를 보라.

공중의 새는 지금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새를 말합니다. 여러분, 잠자고 있는 새를 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하나라도 더 잡아먹는다고 했습니다. 부지런한 새가 열매를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는 자가 열매를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잠언 10장 4절 말씀에 그렇게 말합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지만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이 땅위의 인생의 삶을 살아가는 자는 땅위의 인생의 삶을 부지런하게 살아야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부지런한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공중의 새는 앞을 향해 날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잠자는 새가 아닌 공중의 새를 보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늘을 날고 있는 새는 오직 전진만 있을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새는 앞을 보고 앞을 향해서 날아가고 있습니다. 새는 뒤로 날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4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탄식하고 땅을 내려다보는 자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오직 앞을 향해 전진하는 사람이야말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도와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진 또 전진하며 나아가는 제단의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본문 28절과 29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공중의 새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히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을 수 있지만 광야에 피어난 백합화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뿌리를 박고 사는 꽃이기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광풍이 불어도 바위 뒤로 숨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험한 자연의 세계에서 백합화는 심히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29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이 땅위의 인생의 삶을 감사하며 달려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염려해봐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광야에 피어난 백합화를 키우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우리의 인생의 앞날을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고 꾸밈없는 삶: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마 6:26,28)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해보십시오.

그냥 자랍니다.

바다와 하늘과 별들과 달을 보십시오.

그것들은 다 그냥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얼마나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합니까?

종종 체계적이고 유용한 사람이 되려는

우리의 자아의식적 노력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통해 나타내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망쳐놓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오직 한 길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한 길은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위의 성경 구절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될까 염려하지 말고

단지 나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근원이신 하나님께 마음을 쏟으십시오.

그리하면 생수의 강이 당신으로부터 흐를 것입니다.

상식과 이성으로는

생명의 샘에 닿을 수 없습니다.

영적 성장은 신경을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 마음을 집중함으로 되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십니다.

하늘 아버지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아십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 집중하고 있으면

우리는 들의 백합화처럼 영적으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우리를 붙들고 많은 말을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늘의 별들처럼, 들의 백합처럼

단순하고 꾸밈없이 믿음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한 삶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만일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바른 관계를 맺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는 당신이 모르는 가운데

당신이 사는 매 순간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주님은 나의 최고봉’

강 애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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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공중의 새를 보라 (마6: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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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의 새 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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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6장 26~29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정대운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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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보라, 백합화를 보라 – 주일낮예배 – 남부민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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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의 새를 보라 (마6:26-27)

2012. 1. 29.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47) 본문 : 마 6:26-27 제목 : 공중의 새를 보라.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베드로전서 강해설교를 들으신 분은 5: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라는 말씀을 통하여 염려에 대한 교훈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때 염라대왕과 그의 동생 염려대왕의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저세상에는 염라대왕이 있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염려대왕이 있는데 죽고 나서 염라대왕을 만나면 안 되고 이 세상에 살면서는 그 동생 염려대왕을 만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한 사람들이 나쁜 짓을 많이 하고 죽으면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서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그 말씀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염려대왕을 만나서 지옥 같은 세상을 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진짜 염라대왕이나 염려대왕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예를 들어 만들어 본 이야기입니다. 염려라는 것은 그렇게 좋지 않은 것임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염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이고 또 하나님과 재물 이 두 주인을 같이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처럼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먹고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우리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그 생명을 위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더 소중한지를 아는 사람은 염려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먹고 사는 것보다 우리의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오늘도 염려에 대한 교훈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26절, 27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염려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공중의 새를 보라. 본문 26절 말씀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옛날과 다르게 그렇게 먹을 것이 없어서 입을 옷이 없어서 그것 때문에 걱정하지는 않는 세상입니다. 좀 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 걱정하고 좀 더 멋있는 옷을 입기 위해서 걱정하지 아예 없어서 걱정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의식주 때문에 걱정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가 먹을 것을 주는 것도 아니고 입을 것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하고 열심히 일을 해야 먹고 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더 잘살아 볼까 하고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 됐다 이제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께서 다 먹여 주시는데 뭘 걱정하느냐 라고 생각을 해버립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한 노력 자체를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돈을 잘 벌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알아보고 계획도 세우고 노력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법칙은 뿌리는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는 것이 우리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주신 삶의 법칙입니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냥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다 동원하여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여기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지나친 염려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살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일을 하라는 명령은 따르지 않고 그냥 걱정만 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세상을 살고 있으면 더 이상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그냥 바라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새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서 보라는 것입니다. 새들이 씨를 뿌리는지 새들이 추수를 하는지 새들이 창고에 곡식을 쌓아두는지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새들은 우리처럼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회사에 출근을 해서 일을 하거나 시장에 가서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냥 매일 매일 나가서 자연 속에 있는 먹이들을 먹으면서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인간들이 새를 잡으려고 독약이 든 음식을 뿌려놓으니까 그것을 잘못 먹고 죽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새가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죽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새들을 기르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새들을 다 먹고 살게 해 주시기 때문에 새들이 다 먹고 살더라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새들이 몇 마리나 살고 있을 것 같습니까? 어떤 분이 조사를 해 보았는데 대략 1000억 마리쯤 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람들의 인구를 60억으로 본다면 사람 숫자보다 16배 이상이 많습니다. 이 천억 마리의 새들이 다 무엇을 먹고 살까요? 새들이니까 뭐 별로 많이 먹지 않겠지 라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 새들도 엄청 먹어댑니다. 어느 교수가 제비에 대해서 연구를 했는데 제비가 새끼를 키울 때 하루에 100번 이상 먹이를 물어다가 주더라는 것입니다. 어미 제비가 3주 동안에 곤충 2천 마리 정도를 잡아다가 먹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숫자의 새들이 그 많은 먹이를 먹고 사는데 하나님께서 그 새들을 먹이실 때 우리처럼 사료를 만들어서 먹이지 않습니다. 아주 자연산 그대로를 먹이시는데 다들 잘 먹고 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입니다. 인간들이 먹고 살 수 있게 하시려고 만물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만물들을 삶의 도구로 삼아서 먹고 입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하나는 만물들을 통해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염려하고 있는 우리들을 향하여 공중의 새를 보고 깨달으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게으른 자에게 가서 개미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우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히 일을 하여 겨울에 먹을 것을 모으는 개미를 보고 그 근면성을 배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개미는 열심히 일하여서 겨울을 잘 지내는데 베짱이는 노래만 부르고 놀다가 추운 겨울에 어려움을 당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개미와 베짱이의 삶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베짱이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개미의 수명은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개미를 중심으로 보면 1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베짱이는 6개월 밖에 못산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개미가 베짱이를 따라 여름에 노래나 부르면서 놀고먹었다면 겨울에 살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베짱이가 여름에 놀지도 못하고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만 했다면 참 억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수고한 모든 것이 다 개미의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6개월만 살다가 죽는 베짱이에게는 겨울을 대비하지 않고 그냥 있는 것만 먹고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겨울을 지내야 하는 개미에게는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 먹을 것을 모을 수 있는 기술을 주셨습니다. 개미나 베짱이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들에게 먹고 살도록 다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120년을 살도록 해 주셨습니다. 물론 원래는 영원한 생명을 주셨지만 타락한 이후의 수명은 120년으로 제한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120년을 먹고 살 수 있는 기술들을 주셨습니다. 농사를 짓고 짐승을 기르고 물고기를 잡고 하는 기술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서 먹을 수 있는 돈을 버는 방법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똑똑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방법 외에 더 많은 노력으로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하여 더 잘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창조질서를 위반하는 인간의 기술 때문에 우리는 점차 더 악한 환경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새가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배워야 합니다. 새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추수도 하지 않고 창고에 쌓아놓지도 않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먹이시기 때문에 걱정 없이 잘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모든 만물들은 그 만물들에게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하시고 살게 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2.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역시 26절 하반절 말씀에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라고 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도 다 우리 하나님께서 기르신다면 우리는 이 새들보다 더 귀한 인간이기 때문에 열려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새를 부러워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 부럽습니까? 하늘 높이 날아가는 새를 보면 참 부럽습니다. 나도 저렇게 날아갈 수 없을까? 그래서 이 세상 어디든지 날아가서 모든 것을 다 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부러워하던 사람들이 새처럼 날아가기 위해서 만든 것이 비행기입니다. 우리 직접 날개로 날지는 못하지만 비행기 날개를 이용해서 새들보다 더 높이 날고 있습니다. 새들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하늘을 날고 있지만 머리가 없어서 아직도 스스로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날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지혜가 있어서 새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날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 세상의 어느 동물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 세상의 것들과 다르게 구별해서 만드셨습니다. 인간에게는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를 하셨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영혼을 주셨고 신비한 몸도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우리가 짐승들과 같은 생명을 가졌다고 생각을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좀 귀엽고 잘 따른다고 해서 개를 인간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모든 자연의 만물들이 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주셨기 때문에 그 자연 만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와 같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개를 키우다가 죽으면 사람이 죽은 것처럼 슬퍼하고 무덤을 만들어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개는 짐승일 뿐이고 사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주 별 볼일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질서를 정하셨는데 어떤 이유든 그 질서를 깨면 안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무엇이 바른 것인지 무엇이 나쁜 것인지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 이 구별법입니다. 구별을 잘 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과 땅에 쌓아두는 것, 하나님을 주인을 섬기는 것과 재물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 성한 눈과 나쁜 눈을 가지는 것, 목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목숨을 위해서 있는 먹을 것 입을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이런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잘 분별을 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는 하늘의 새가 중요한가, 너희가 중요한가를 구별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미물에 불과한 새들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창조하신 우리 인간들을 그냥 두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를 듣고 어떤 학생이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먹이시는데 왜 아직도 이 세상에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게 질문을 하면 저도 대답을 잘 못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기르시는데 왜 굶어 죽을까요? 지난번에 말씀을 드린 대로 이 세상에 너무 많이 가진 부자들 때문에 못 먹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자기도 쓰지 않으면서 쓸데없이 재물을 모은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굶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계에 뜻있는 사람들이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서 분배를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잘못된 종교들 때문에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살고 못사는 것이 타고난 팔자라고 생각하는 불교국가나 이슬람 국가들 가운데 못사는 나라가 많습니다. 또 국가지도자가 독재로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에 못사는 나라도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나라나 기독교의 복음이 잘 전해진 나라들은 비교적 잘 살고 있습니다. 적어도 먹을 것 때문에 입을 것 때문에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전쟁 후 폐허인 상태에서 이렇게 급격하게 경제적으로 발전을 이룩한 것은 여러 가지의 원인이 있겠지만 기독교의 공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기독교를 욕을 하지만 뭘 몰라도 한참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학교를 만들고 병원을 만들고 갈 곳 없는 전쟁고아들을 돌보고 생각을 바꾸게 하고 새벽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열심을 내고 그런 노력들 때문에 나라가 이만큼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또 결정적인 것은 여기 “너희는”이라고 한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 너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우리 성도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도라고 할 때 그 뜻은 거룩한 무리, 구별된 무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사람들과도 구별이 되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특별한 우리가 공중의 새와 비교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과 부르심을 받아 성도가 된 우리는 정말로 위대한 사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관리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본문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염려의 무익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염려를 한다고 키가 한 자라도 커지더냐는 것입니다. 여기 키를 한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는 말은 수명을 일 년이라도 더 연장할 수 있겠느냐. 로 번역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NIV)에서는 그의 생명을 한 시간이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로 번역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노력해서 될 일이 있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키가 크게 하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키가 큰 사람을 좋아하니까 어떻게 하든지 키를 키우려고 노력들을 많이 합니다. 음식조절 운동요법들을 통해서 키가 크게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 노력에 의해서 조금은 달라지겠지만 한자 약 2-30센티 정도를 크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전자 속에 얼마나 키가 클 것인지를 정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도 우리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운동도 하고 체력조절도 하고 약도 먹고 수많은 노력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그 날은 넘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그런 것들 우리가 노력을 해도 어쩔 수 없는 일들 때문에 염려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우리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들 즉 하나님께서 조정하시는 일들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면서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요 염려를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염려 되는 일들이 많으십니까? 공중의 새를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씨를 뿌리지도 추수를 하지도 창고에 쌓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르시기 때문에 잘 살고 있습니다. 새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간들 그 중에서도 우리 성도들을 돌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염려해도 되지 않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맡기고 사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마6장 26~29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정대운

마6장 26~29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정대운 목사 2004.10.10 광장교회 [천안시 쌍용동] http://www.onbible.net/ < 마태복음 6장 26절 ~ 29절 > 26절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절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절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절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1. [청지기] – 나는 하나님의 머슴이다. 어느 목회자의 을 읽었습니다.(1997년 1월 24일자 국민일보) 성경에서는 ‘청지기’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머슴’으로 이해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이라고 했는데 헬라어 ‘두울로스’ 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머슴’ 이 적당합니다. 머슴 목회론을 읽으며 마음에 새겨진 것이 있어서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① 머슴은 주인이 시키는 그대로 합니다. 주인에게 절대복종합니다. 주인의 명령과 지시에 이유를 달 필요가 없습니다. 주인이 소를 몰고 오라면 비가 오든지 바람이 불든지 소를 몰고 와야 합니다. 주인의 명령대로 하면 잘했든 못했든 그것이 100점 – 만점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 착하고 충성된 머슴입니다. ② 머슴은 24시간 대기상태라야 합니다. 머슴은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있는 시간제 일꾼이 아닙니다. 1년, 2년, 평생의 시간을 바친 사람들입니다. 주인이 부르면 언제, 어디서나 “예” 하고 달려갑니다. 머슴은 주인이 깊은 잠에 빠져있는 새벽에도 일어나서 쇠죽을 끓입니다. 항상 깨어 있어 언제나 “예” 할 수 있는 사람이 지혜 있고, 진실한 머슴입니다. ③ 머슴은 주인과 주인의 가족까지 돌보아야 합니다. 머슴은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자녀를 돌보고 시장에 가라면 가야 합니다. 논, 밭, 산, 집안에서 주인이 필요로 하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묵묵히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말없이 충성하는 것입니다. 머슴의 역할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하는 것입니다. 집안의 모든 일을 말없이 순종할 때 착하고 충성된 머슴입니다. ④ 마지막으로 머슴은 걱정, 근심, 염려가 없습니다. 비가 오고 태풍이 와서 논에 있는 온갖 곡물들이 물에 잠겨도 걱정이 없습니다. 머슴은 가물어도 홍수가 나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머슴이기 때문입니다. 걱정하는 것은 주인 노릇하는 것입니다. 머슴은 공치는 날이 없습니다. 주인은 집안의 어른이요, 머리입니다. 머슴은 주인의 손입니다. 주인의 생각과 명령대로 움직이면 지혜 있고 진실한 머슴입니다. 밭에다가 보리, 밀, 수박, 참외, 배추, 무우를 심던지, 이 모든 것이 주인의 판단입니다. 가을에 추수하여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것도 주인입니다. 일년 농사가 잘 되고 못되어도 염려하는 것은 주인입니다. 머슴은 주인의 지시를 따라서 주인의 손, 발처럼 움직입니다. 그러나 머슴은 주인처럼 염려하지 않습니다. 염려는 주제, 분수에 넘는 것입니다. 2. [두개의 젖가슴] 나의 아버지는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 지 확실하게 알고 믿어야 합니다. ① 창세기17장1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엘 샷다이’ 라고 소개합니다. ‘샷다이’ 라는 말은 두 개의 산봉우리, 즉 ‘풍만한 가슴’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 이라고 그 이름을 새로 지어주실 때 ‘전능한 하나님’ 즉 ‘엘 샷다이’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계시합니다. 하나님이 새로 주어 주신 이름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한 가족이나 한 부족의 아버지가 아니라 온 세상이 아빠 아버지입니다. ② 창세기28장3절에서 이삭이 야곱을 축복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 이라고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야곱에게 복을 주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기를 축복했습니다. 이때 쓰인 ‘전능하신 하나님’ 도 ‘엘 샷다이”입니다. 쌍봉의 하나님입니다. 이 ‘샷다이’ 라는 말은 ‘젓이 퉁퉁 불은 유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③ 창세기35장10절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새로 지어주십니다. 그리고 11절에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십니다. ‘엘 샷다이’는 축복과 풍요와 생육과 번성에 적용됩니다. 하나님에게서 젖과 꿀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④ 창세기48장3절,4절에서 야곱은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면서 “엘 샷다이가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내게 이르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며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입니다. ⑤ 창세기49장25절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 엘 샷다이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로다.” 했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부를 때 그 분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풍성한 젖과 달콤한 꿀을 주셨던 분입니다. 이삭이 메마른 땅에서 우물을 팔 때마다 땅속에서 샘물이 펑펑 쏟아지게 하신 분이십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았던 야곱이 어디를 가든지 도와주시고 함께 해주셨던 그 하나님 이십니다. 풍요와 다산과 축복의 신은 바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온 세상 사람에게 젖을 풍성하게 나누어 줄 수 있는 퉁퉁 불은 유방을 가지신 분입니다. 3. [하나님의 마음과 눈] 젖과 꿀이 흐르는 땅 ① 성경에서는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젖과 꿀은 어디서 흐를까요? 가나안 땅은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산지입니다. 식물이 성장하는데 수분이 부족한 척박하고 메마른 땅, 천수답(天水沓)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려주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짐승들을 위해서 들에 풀이 나게 하시고, 그것을 먹고 배부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을 먹이시고 마시우게 하십니다. ② 보세요, 애굽 땅은 나일 강에서 물을 얻지만 가나안은 하늘에서 물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와 햇빛이 곧 젖과 꿀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를 기르시고 백합화를 기르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땅과 이 사람들을 살펴보십니다.(신11:12) 하나님은 풍성한 젖가슴을 가진 아버지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와서 값없이 먹을 수 있는 산이요, 들이요, 바다 같은 가슴입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젖가슴에서 먹고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경험입니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세상만물을 만드시고 기르시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염려할 것이 아니라 그 가슴으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4. [새와 들꽃]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1) [사람의 염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①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냐? 맘몬이냐?’를 택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 고 하십니다. 이 단락에서 ‘염려’ 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염려를 합니까? 우리의 믿음이 적은 연고입니다. 인간은 창조주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질 때 자신이 주인 노릇합니다. 문제는 믿음, 곧 ‘하나님이냐, 맘몬이냐’ 하고 우선순위가 무너질 때 염려가 옵니다. 염려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듭니다. ② 예수님께서 “공중의 새를 보라” 고 하십니다. 먹는 것 때문에 염려가 있는 사람은 공중에 나는 새를 보아야 합니다. 새는 곡식을 심지도 않고 가꾸지도 않고 거두어들이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은 새도 먹이십니다. ③ 예수님께서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고 하십니다. 입는 것 때문에 염려가 있는 사람은 들꽃을 보아야 합니다. 들의 백합화는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는데 아름다운 옷을 철따라 입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들꽃도 이렇게 입히십니다. 예수님은 백합화의 아름다운 모습을 솔로몬의 모든 영광에 비교합니다. “솔로몬의 화려함이 이 꽃 하나만도 못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께서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하고 말씀하십니다. ④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하므로 그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느냐?” 하십니다. 이 말은 신장(身長)으로 번역할 수도 있고 수명(壽命)으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머리를 싸매고 아무리 염려를 해도 불가능한 일들이 많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한자도 늘일 수 없다는 점에서 키나 수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염려한다고 키가 자라거나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로 받아 들이셔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염려를 하지만 염려를 통해서 생존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생명은 먹고 마시고 입는 재물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고 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는 사람, 믿음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 [이방인의 기도] 우리는 다른 사람이다. ① 이방인의 관점 : 이방인은 목숨보다 음식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이방인의 관점 : 이방인은 몸보다 의복을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이방인은 알맹이를 잊어버리고 껍데기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껍데기 인생들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은 목숨을 주신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래서 내가 주인 노릇합니다. 이방인은 몸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래서 내가 염려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영광 돌리지도 못합니다. 이때부터 머리 속은 염려로 가득 찹니다. ② 이방인은 누구입니까? 이방인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이방인은 아비는 있지만 아버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고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합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은 그런 것들을 구합니다. 이방인은 소년소녀가장과 마찬가지입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을 모두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방인은 내가 주인이기에 염려를 해야 합니다. 염려와 근심과 걱정을 한다해도 아무런 해결방법이 못되지만 그냥 염려하며 사는 것 입니다. ③ 자녀의 필요가 무엇인지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들에서, 산에서, 그리고 바다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기르고 가꾸십니다. 공중의 새처럼, 들의 백합화처럼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노력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껍데기로 들은 사람은 ‘이제는 땀 흘려 일하지 않고 수고할 필요가 없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한당(不汗黨)과 같이 무위도식(無爲徒食)합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이방인처럼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④ 우리 아버지는 새들이나 백합화보다 우리를 더 귀하고 사랑스럽게 여기십니다. ‘하물며’ 라는 단어가 바로 그런 뜻입니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고 하늘 아버지께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자녀를 돌보시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 신뢰입니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를 바르게 알고 믿으며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믿음이 적은 자들아”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염려합니까?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믿지 못하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적어서 염려하는 것이고, 욕심 때문에 염려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믿음이 10퍼센트라면 90퍼센트는 염려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90퍼센트라면 염려는 10퍼센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100퍼센트라면 염려할 것 전혀 없습니다. 죄가 무엇인가 아십니까? 죄는 아버지를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제는 ‘무엇을 믿느냐’에서 ‘얼마나 믿느냐’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믿음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자녀의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입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다시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냐? 염려냐?” 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지체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을 100퍼센트 믿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때 염려는 없어집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큰 믿음을 소유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새를 보라, 백합화를 보라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를 앉혀놓고 자연을 소개하고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하찮은 새, 꽃 한 송이를 먹이시고 자라게 하시거늘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새보다도 너를 더 사랑한다. 들에 핀 백합화보다도 너를 더 사랑하느니라. 그러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새를 들어서 말씀하신 것은 의미심장한 뜻이 거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 공중의 새를 보라. 공중의 새는 지금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새를 말합니다. 여러분, 잠자고 있는 새를 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하나라도 더 잡아먹는다고 했습니다. 부지런한 새가 열매를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는 자가 열매를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잠언 10장 4절 말씀에 그렇게 말합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지만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이 땅위의 인생의 삶을 살아가는 자는 땅위의 인생의 삶을 부지런하게 살아야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부지런한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공중의 새는 앞을 향해 날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잠자는 새가 아닌 공중의 새를 보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늘을 날고 있는 새는 오직 전진만 있을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새는 앞을 보고 앞을 향해서 날아가고 있습니다. 새는 뒤로 날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4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탄식하고 땅을 내려다보는 자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오직 앞을 향해 전진하는 사람이야말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도와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진 또 전진하며 나아가는 제단의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본문 28절과 29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공중의 새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히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을 수 있지만 광야에 피어난 백합화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뿌리를 박고 사는 꽃이기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광풍이 불어도 바위 뒤로 숨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험한 자연의 세계에서 백합화는 심히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29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이 땅위의 인생의 삶을 감사하며 달려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염려해봐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광야에 피어난 백합화를 키우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우리의 인생의 앞날을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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