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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 하면 |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공통적으로 이 성품을 가졌습니다. #이재훈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172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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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국민일보 크리스천리더스포럼(CLF)에서 설교자로 선 이재훈 온누리교회 목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강조했다. 이 목사는 “어린아이에게도 분명한 인식의 변화가 생기는 때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아이는 권력이 무엇인지 모를 때, 누군가를 자기편으로 만들고 지배하고 세상적인 정치적 힘이 무엇인지 모르는 때를 말한다”며 “누가 나에게 다가와도 맞이해줄 수 있고 또 다가갈 수 있는, 비교 평가하지 않는 때”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았다”며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내 안에 예수님 닮은 어린아이 같은 성품을 형성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하나님 나라는 왕이 종이 돼 섬기는 나라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지만 하늘 영광 버리고 이 땅에 오셨다”며 “우리가 예수님 닮기 위해선 어린아이 같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안에 어린아이 같은 성품이 나타날 때 CLF가 하나님 나라 역사가 일어나는 모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션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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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마 18:1~11) – 마태복음 큐티(수정)

너희가 돌이켜(변화되어, 생각을 바꾸어)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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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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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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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마 18:3, 개역)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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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어린이주일) – 사랑으로 사는 교회

(1) 질문하였고,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한 아이를 불러 거운데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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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와 같은 자 / 마태복음 18장 2절 ~ 3절 / 오늘의 말씀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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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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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 본문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아니하면”은 낮아짐에 대한 요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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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마 18:1-6) – 기멀전

왜냐하면 그 시대는 어린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 사회의 구성원으로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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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odpeople.or.kr

Date Published: 6/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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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공통적으로 이 성품을 가졌습니다. #이재훈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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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 하면

  • Author: 더 미션 [국민일보]
  • Views: 조회수 2,535회
  • Likes: 좋아요 60개
  • Date Published: 2020. 11. 1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4__5y1yj8Lg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마 18:1~11)

* 오늘의 말씀 :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마태복음 18:1~11)

* 본문요약

제자들이 예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인지를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드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자신을 실족하게 하는 것을 찍어 내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찬 양 : 356장(새 216) 성자의 귀한 몸

346장(새 211)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 본문해설

1.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5절)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이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 를 불러 그를 가운데 세우고

3)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변화되어, 생각을 바꾸어)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가장 큰 자이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니

– 어린아이(2절) : 파이디온

어린아이는 ‘파이디온’으로 대략 6~7세의 어린이를 가리키는 말이나,

여기에서는 겸손하게 순종하는 어린이들의 특징을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

–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되지 아니하면(3절) : 스트라페테, 게네스쎄

‘돌이켜’에 해당하는 ‘스트라페테’는 ‘회개하다’라는 뜻이고,

‘되다’에 해당하는 ‘게네스쎄’는 ‘상태가 변하다, 발생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3절의 뜻은 ‘회개하여 어린아이처럼 변화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 영접하면(5절) :

예수님의 영광과 축복이 그에게 있기를 바라면서 그를 환영하고 받아들이고 돕는 것.

2. 실족하게 하지 말라(6~11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런 어린아이(작은 자, 소외된 자) 하나를

실족하게 ( 걸려 넘어지게 , 죄를 짓게 )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 을 그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편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걸려 넘어지게, 죄를 짓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지옥의) 불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에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 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에 한 사람이라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없음(일부 사본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인자는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노라.』”

– 실족하게 하면(6절) :

큰 충격을 가하여 정신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일.

그를 유혹하여 범죄 하게 하거나 죄에 빠지게 하는 일.

– 연자 맷돌(6절) : 뮐로스

‘뮐로스’는 손으로 돌리는 맷돌이 아니라, 나귀 같은 짐승이 돌리는 큰 맷돌입니다.

이런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는 것은

이런 자는 반드시 멸망을 당하리라는 심판의 말씀이기도 합니다만,

그보다는 이런 자가 살아있다면 계속해서 다른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할 터이니

이런 자가 살아있을까 봐 걱정된다는 것을 유머스럽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 지옥 불(9절) : 게헨나

지옥불로 번역된‘게헨나’는 예루살렘 남쪽 ‘힌놈의 골짜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래 그곳은 아이들을 몰록신에게 불에 태워 바치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시아 왕 때 쓰레기를 불에 태우던 곳이 되었고,

그 후로 불에 타다 남은 쓰레기와 벌레들이 항상 들끓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게헨나를 마귀와 악령들과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지옥)에 대한 이미지로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 묵상 point

1.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이니이까(1절)

예수께서 이미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 삼일 만에 부활하리라는 말씀을 하셨으나,

제자들은 여전히 주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신 후에

자기들이 각자 어떤 자리에 앉게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제자들이 예수님의 두 번째의 수난 예고를 들은 후에

잠간 근심을 하고는 곧바로 천국에서는 누가 더 큰 자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3절)

이에 예수님은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 어린아이를 가운데 세우고는

돌이켜서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여 어린아이처럼 변화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처럼 되어야한다는 것은 다음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가 되어라

예수님은 어린 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천국 백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천국 백성으로 어린아이를 비유로 드신 두 번째 이유는

어린아이들의 겸손한 모습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사람이 천국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남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교만을 가진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말씀으로 나를 비추어 교만이 생기지 않게 하고,

교만한 마음 생겼으면 그것이 내 마음에서 터를 잡기 전에

얼른 제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자라고 성장할수록 교만해지고 완고해집니다.

어린아이일수록 겸손하고 순전한데, 자랄수록 이기적이고 완악해집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의 그 겸손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가 하는 말씀묵상과 기도를 통해

교만을 씻어내고 겸손을 회복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2)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한 마음으로 천국을 받드는 자가 되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마가복음 10:15)

예수님이 천국 백성으로 어린 아이를 비유로 드신 두 번째 이유는

어린아이들은 순전한 마음으로 천국을 바라고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전에 어린이들에게 ‘개털 모자’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지 않으면 천국에 가도 개털 모자를 쓰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른들은 웃어 넘길만한 이야기입니다만,

아이들은 자기도 개털 모자를 쓰면 어떻게 되느냐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처럼 이렇게 순전하게 천국을 사모하고 천국을 받드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 묵상 :

어른이 되어갈수록 천국에 대한 소망은 사라지고 이 땅의 소망만 가득해집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돌이켜 어린아이나 연약한 자를 영접하는 자가 돼라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고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받드는 자가 되는 것과 함께

기억해야 할 또 하나는, 어린아이들을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의 이름으로 어 아이를 영접하는 자는

곧 주님을 영접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어린아이를 영접하십시오.

어린아이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를 받아들이는 자,

어린아이를 돕고, 그를 가르치고, 그를 인도하는 자는

예수님 바로 그분에게 그렇게 한 것으로 인정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건강한 영적 인격을 가진 아이가 되도록 그의 마음을 항상 살피며,

힘들어하고 어려워할 때 늘 붙들어주고 인도해주는 신앙과 인생의 멘토 역할을 할 때

주께서 그들의 섬김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2) 힘없고 연약한 자를 영접하십시오.

5절에서 ‘어린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신 예수님은,

6절에서 ‘작은 자(그 공동체에서 소외된 연약한 자)’라는 뜻의 용어로 바꾸셨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어린이들이 소외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어린이들이 부모의 물건처럼 여겨졌습니다.

심지어 어린이들은 부모가 죽일 수도 있는 시대였으므로

예수님은 어린아이에 대한 말씀을 하시다가

어린이들처럼 세상에서 소외된 연약한 자들 역시 받들고 섬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묵상 :

어린이는 자라나는 세대이기에 우리가 힘써 섬겨야 하고,

또 소외된 연약한 자들은 주께서 그들을 주목하시므로 그들을 섬기고 받들어야 합니다.

3.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어린이이든 소외된 자이든 간에

나보다 힘이 없고 연약한 자를 업신여기거나 멸시하지 마십시오.

마태는 주를 믿는 자들은 모두 그 사람을 담당하는 수호천사가 있다고 말합니다(10절).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나보다 연약하다 하여 그를 업신여기거나 멸시하면,

그의 수호천사가 날마다 하나님을 뵈옵고는 하나님께 그 일을 보고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마음속으로 판단할 수는 있습니다.

그가 나쁜 사람인지, 나를 해칠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그를 멸시하거나 업신여기지는 마십시오.

● 묵상 :

① 힘없고 연약한 자를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

힘없고 연약한 자들, 그래서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 역시

주께서 십자가로 세우신 하나님의 귀한 백성들입니다.

그들이 힘이 없는 연약한 자들이라고 해서 그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면

이것은 곧 그들을 자신의 귀한 백성으로 여기시는

하나님을 바로 그분을 직접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② 판단하기만 하고 업신여기지는 말라는 것

판단하는 것과 업신여기는 것은 다릅니다.

그를 보고는 그를 가까이 할 것인지 멀리 할 것인지만 판단하십시오.

그를 멀리해야 하겠다고 생각되면 그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하는 것까지만 해야지,

그를 멸시하거나 업신여기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업신여기거나 멸시하는 것은 그의 인격에 대한 모독입니다.

이것은 그를 만드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4.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지 마십시오.

➠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한다는 것은

① 내가 한 말이나 행동으로 그가 큰 충격을 받아 마음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것과,

② 내가 한 말이나 행동으로 그가 범죄 하거나 죄에 빠지게 된 것을 말합니다.

1) 내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게 하지 마십시오.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 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를 업신여기거나 멸시할 때 나타나는 일일 것입니다.

내가 생각 없이 내뱉은 말로 그가 큰 충격을 받아 마음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을 때

주께서 차라리 그를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야 몸은 죽어도 그의 영은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 내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이 죄에 빠지도록 하지 마십시오.

또 내가 한 말이나 행동으로 그가 유혹을 받아서 그가 범죄를 저지르거나,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어떤 일들을 행하게 되었다면

그도 그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겠지만,

그를 저주받게 한 자 역시 지옥 불을 면치 못하리라는 말씀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우리는 특히 말을 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내 말이나 행동으로 누구든 상처를 입지 않을까,

나로 인하여 누군가 죄에 빠지지 않을까 항상 조심하며 말하고 행동합시다.

* 기도제목

1. 어린아이처럼 겸손한 자가 되고,

어린아이처럼 순전한 마음으로 천국을 받드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2. 어린아이와 연약한 자들을 영접하고 섬기게 하옵소서.

3.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가 되게 할 만한

말과 행동을 하지 말게 하옵소서.

21. 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을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마18:3절과 4절에서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와 같아지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린아이의 어떤 점 때문에 어린아이와 같아지라고 하신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어린아이’ 하면 ‘순진하고 착한’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착해야 한다라 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순진하고 착하다고 해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순진함과 착함이 전제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무능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해 주심으로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보거나 학자들이 연구하여 발표한 자료를 보면 어린아이들은 순진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세파에 때 묻은 어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순진하기도 하고 착하기도 합니다만, 어린아이만 놓고 세밀하게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갓난아이 때부터 사람은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배고프면 울기부터 합니다. 또돌만 갓지나도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일 앞에서는 울거나 슬픈 표정을 지어 부모로부터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받아 냅니다. 일종의 속임수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둘째가 태어나면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닌데도 동생을 시샘하고 미워합니다. 먹을 것을 주면 자기 혼자 먹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예들은 어린아이라고 해서 순진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다는 단적인 예입니다.

일곱 살이 되면 그 앞에 ‘미운’ 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어른의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하고 사춘기가 되면 괴물로 변한다고 보는 것이 많은 부모님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성경에서 주님이 어린아이와 같아져야 한다고 하는 말속에는 착하고 순진한 자로서의 상징이 아니라, 가진 자가 아니라는, 무능한 자의 상징으로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능력이 없는 자요, 자기의 필요를 스스로 채울 수 없는 자요, 타인보다 낫다는 우월감으로 충만하지 않은 자요, 외부로 부터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로서의 어린아이 말입니다. 어린아이는 다른 것이 다 없어도 부모만 있으면 됩니다.

모든 사람(어른)은 힘을 동경합니다. 돈의 힘, 권력의 힘, 명예의 힘 같은 힘 말입니다. 왜 사람(어른)들이 힘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타인을 지배하고, 누르고, 폼 내고, 자랑하고, 뻐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 살기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이러한 힘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며, 이 힘이 없기 때문에 늘 자존심 상해합니다.

소위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의 최대의 병(病)은,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의 최대의 병은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자기만큼 똑똑하지 못한 사람들이 일을 하니 그것을 볼 때 마다 못마땅하고 속터진다 고 하는 것입니다. 툭하면 ‘내가 미쳐’, ‘환장하겠네’ 라고 합니다. 그래서 흔히들 똑똑한 것이 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능한 상사를 모시고 일하는 똑똑한 부하가 화병이 나는 법입니다. 바보는 화병 나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에게 있는 이러한 스스로의 똑똑함이 그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길을 막습니다. 자신의 똑똑함으로 하는 그 비판이 늘 자기 자신을 힘들게 만듭니다. 똑똑한 사람에게는, 그가 가진 똑똑함으로 보면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우습게 여겨지고, 말도 안 되게 보이고, 미련하게 보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씻는다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안 믿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구속사를 이루러 오신 예수님도 힘 있는 자의 모습으로 권세자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53:1-3) 즉, 예수님도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눈 여겨 볼만한 구석이 아무데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구세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지요.

사람들은 그래도 구원으로 가는 길에 자기 속에 아주 작은 그 무엇이라도 쓸 만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하나님은 눈곱만큼도 쓸 만한 것이 없다고 하시고, 이 말을 들은 지혜로운 사람과 똑똑한 사람들은 분노하는 것입니다. 자존심 상해합니다.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 앞에서 무엇인가 가진 존재로 있지 않고 언제나 부모의 도움을 받아 생존한다는 자세로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무능과 부족을 고백하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자 / 마태복음 18장 2절 ~ 3절 / 오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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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2절 ~ 3절 (마태복음 18:2~3 / 마 18:2~3)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있던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여기서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어린아이는 자기 인생이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린아이는 자기 스스로는 자기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어린아이는 그 부모에게 의탁된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그 아이가 사는 길은 오직 그 부모를 의지하는 길뿐입니다. 그 아이는 그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과 돌봄과 지킴으로 살아갑니다.

이는 곧 어린아이는 전적으로 그 부모에게 맡겨진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어린아이 같지 아니하면”라는 의미는,

성도 역시 자기 인생이 없는 자라는 말이요,

이는 곧 하나님을 절대 의존하여 사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나는 없고)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결코 나의 제자(그리스도인)가 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기 인생을 예수님에게 전적으로 의탁하고 맡겨버린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은 그들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디서 살까? 결코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인생을 자신이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엄마 아빠가 없으면 죽을 것 같이 여기며 자기 부모 곁에만 꼭 붙어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부모만 의지해서 살면 됩니다. 그들은 자기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저 부모에게 손만 내밀면 됩니다. 이것이 그들이 사는 방법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이와 같이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곁을 떠나면 죽을 같이 여기며, 어린아이들과 같이 오직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만 붙들고 의지하여 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너희 모든 삶을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만일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절대 의존해서 살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공중에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고 배우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은 자기 생명을 자기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배우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들판에 작은 풀 한 포기도, 하늘을 나는 작은 새 한 마리까지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아들의 피로 값 주고 산 자기 백성들이야 당연히 먹이고 입히시지 않으시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마 6:26~31)

너희가 너희 조상들이 애굽에서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40년 동안 농사도 짓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반석에서 물을 주어 다 먹고 마시며 살게 한 것을 알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사막과 같은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살게 한 것을 믿는다면 너희는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시겠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염려하지 말라는 말은 다 책임져 주시겠다는 약속이지요.

그런데도 우리가 염려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에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맡기지 못하기에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기에 신앙생활이 늘 자신이 없고 확신이 없는 종교적 생활이 될 뿐인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어린아이가 단순히 그 부모만을 절대 의지하여 사는 것같이, 하늘의 시민 된 성도 역시 하나님만 절대 의존하여 단순하게 주님을 바라보며 살 것을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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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의 것?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 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 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막 10:13~16)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사실 어린아이라면 보통 천진무구한 순수함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천진무구란 눈과 같이 희고 한 점의 때도 없는 순진함을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천국에 갈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일 것으로 보입니다. 어른이 되면서 험악한 세상살이 하다 보니 세상의 때가 많이 묻게 되고 속을 일도 많다 보니 쉽게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 어른들에겐 본문이 순수하고 단순하게 그저 가르쳐 주는 대로 믿는 어린아이로 돌아가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교훈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물론, 요즘 초등학생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는 분도 계십니다. 우리나라의 치열한 교육 현실 속에서 아이들의 삶이 어른만큼이나 경쟁적이고 사회의 개인주의로 아이들도 어른 못지않게 이기적이 되어 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사회가 척박해도 대체로 아이는 아이입니다.

가끔 어린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지고 기분도 좋아집니다. 세상에 찌들지 않아 티 없이 맑고 고운 아이들의 미소와 눈빛을 바라보면 내 맘도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예수의 사람이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더욱이 한 발짝도 부모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겠구나 하는 마음도 듭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어린아이는 이런 순수함, 가식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의미일까요? 학자들 사이에서 60년대까지는 이 어린아이에 관한 내용을 “아이의 수용력”에 대한 이야기로 보았습니다(예를 들어 Vincent Taylor,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rk, London: Macmillan & Co. 1955, 412-422). 어린이의 특성이 모든 것을 순수히 선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믿음이란 분명히 선물을 받기 위해 벌린 어린아이의 빈손과 같습니다. 본문처럼 예수님의 팔에 안겨서 어떠한 계산 없이 축복을 순수하게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믿음인 것은 틀림없지요. 그래서 어린아이가 의미하는 비교의 중점이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순수한 “수용적인 자세”, 그리고 타인들의 보살핌과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절대 의존 상태”로 보았습니다(D. E. Nineham, Saint Mark, Baltimore: Penguin, 1963, 268). 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성품인 것이 틀림없음에도, 본문이 진정 말하려는 바는 아닙니다. 오히려 본문의 의도는 어린아이의 “무력하고 천한 사회적 위치”로 보입니다.

당시의 어린아이는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었을까요? 어린아이는 당시 여성의 천함, 가난한 자 부정한 자와 같은 무력함과 소외됨과 같은 계층의 사람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오늘날 선진국의 어린아이 말고 제3세계의 아이들의 상황을 보십시오. 부유한 집 아이들이 아니고는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경우들이 허다하고 어떤 아이들은 일부 어른들의 범죄에 가까운 행동, 혹은 범죄의 희생양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역사 속에서 빈곤과 기아로 시달리는 시절일 때 어린아이들은 자주 길거리에 버려졌으며 어른들의 범죄에 이용당하거나 영양실조로 아사하기 일쑤였습니다. 서양에서도 “올리버 트위스트”나 “성냥팔이 소녀” 같은 이야기가 그런 상황을 반영하지요. 어린아이는 당시 가정에서 사회에서 가장 작은 자였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에게 종속되었기에 쉽게 군림당하고 착취당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아이가 대접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당시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 분개하셨습니다. 그분이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십시오!”라고 호소하고 다니신 것만 보아도 우리나라 사람들도 얼마나 어린아이들을 하대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많은 노력으로 말미암아 당시 어린이를 부르던 보편적이었던 ‘아 새끼’란 표현이 점차 사라지고 어린이란 표현이 사회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지요.

당시의 어린아이는 부유층이나 귀족 같은 특권계층이 아닌 다음에는 현대사회와 같은 위치와 권리를 누리던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부모는 신생아를 버려 노출에 죽게 내버릴 법적 권리가 있었습니다. 때론 낯선 사람이 신생아를 데려갔는데, 대부분 그런 아이들은 노예가 되었답니다. 이방 문화에서 어린아이들에 대한 성적 학대가 자주 일어났습니다. 당시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체벌은 심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폭력적이었던 스파르타 문화에서는 사내아이들을 강한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 사내아이들이 7세가 넘으면 모두 막사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게 하면서 때론 이유 없이 정기적인 채찍질과 폭력을 가했습니다. 의도적으로 음식을 부족하게 제공해 훔치는 기술을 터득하게 했고 아이들의 모든 잘못에 대하여는 심한 채찍질로 다스리기도 했습니다. 스파르타처럼은 아니더라도 로마의 학교교육도 꽤 엄격했는데 주로 그리스출신 노예들로 이루어진 선생들은 학생들을 심한 체벌로 다스렸습니다.

유대의 어린아이도, 당시 주변 문화처럼 대체로 천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방어 능력도 없고 생산능력이 없던 어린이들은 어른들에게 복종해야 할 뿐 그 어떤 높임의 대상도 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1960년대 이후 학자들은 마가복음 10:15절을 어린아이의 “낮은 위치”를 말하는 마가복음 9:23~27절을 통해 읽어나감으로 아이의 성품이 아니라 당시 어린아이의 낮은 사회적 지위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막 9:35~37)

마가복음 10:13~16절의 본문이 위치한 큰 문맥인 8:22~10:52절에서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천하여지고 낮아져야 함을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이는 제자들이 따라야 할 예수님의 삶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당하실 고난과 십자가를 언급하며, 그리고 그 이후에야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막 9:31)

사회적으로 예수님을 통해 높아지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제자들은 그러나 비천하게 낮아지시는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십자가에 사형당하실 것이라는 말씀에 공포를 느끼기만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막 9:32)

예수님께서 자신이 곧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가르쳐 주시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제자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에만 관심을 보이며 한심한 논쟁을 벌입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막 9:33~34)

9장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답답해하시며 진정 높아지기 위해 세상의 가치관과 정반대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당시 낮고 보잘것없는 약자였던 어린아이를 예로 드신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낮은 자가 되어야 높은 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이처럼 천한 자를 영접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나를 영접하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가장 낮은 자를 영접하는 것이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라는 역설적 진리입니다(막 9:35~37). 예수님은 어린이의 예를 통해 천한 자를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무력하고 천한 자의 자리까지 낮아짐이 진정 높아지는 길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에서 어린아이가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신분과 소외된 자를 의미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특히 37절 말씀은 마태복음 25:40절을 연상시키는데 마태복음에서는 어린아이란 표현 대신 직접 “작은 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마가복음 10장 13~16절에서 사용된 어린아이의 의미라 생각됩니다.

마가복음 10장 13~16절은 세 단락의 순서로 전개됩니다.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을 사람들이 데리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예수님이 아마 그들을 만져주시며 축복해 주시길 원하기 때문입니다(16). 제자들은 그러나 그들을 꾸짖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그러하듯 그들도 어린아이를 하찮고 귀찮은 존재로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이 낮은 자리에 서라고 바로 전에 하신 말씀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막 9:30~37).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사회적 신분상승의 욕망을 채우는 곳으로 엉뚱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예수에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고 꾸짖음을 당할 때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시고,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막 8:33).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 모두 여전히 영적으로 장님인 상태입니다(비교 막 8:17~2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화를 내시면서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사회적으로 낮은 자와 소외된 자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도 그런 모습이 되어야겠지요.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막 10:14~16).

본문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아니하면”은 낮아짐에 대한 요청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무력하여 공격당하기 쉽고 천한 자세로 하나님 나라를 받드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나가는 말

마가복음 10장 14~16절에서 어린아이의 의미는 결코 이상적인 순수함이 아닙니다. 고대사회에서 어린아이는 그리 존중받지 못했는데 본문은 당시 어린아이의 낮은 사회적 위치를 예로 든 것입니다. 여기서 어린아이의 의미는 전체 문맥인 8:22~10:52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다가올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낮아짐의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신분상승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처럼 무력하고 공격당하기 쉬운 천한 자의 위치로 낮아지는 자세가 오히려 높아지는 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낮고 천한 자의 겸손과 섬김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천한 자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마가복음 10장 15~16절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제자들은 무력하고 사회에서 소외된 자의 자세로 하나님의 나라를 받들어야 한다는 의도를 지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진정 자신을 천하게 낮추는 겸손한 자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어린아이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어린아이들을 만져주시기를 원했고, 제자들을 그들을 꾸짖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시며(13, 14) 어린아이를 안아 주시고 안수하시고 축복까지 해 주시십니다(16). 이는 세상에서 천하고 낮은 자인 어린아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고귀하고 축복의 대상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행동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히 낮고 천한 자로 자신을 낮추고 그런 위치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떠받드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중요하게 생각하고 높이는 사람에겐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를 떠받드는 우리 사회에서 이 표현은 이제 새로운 문화 번역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들어갈 자격으로 어린아이는 무력하고 천한 자의 의미입니다.

이민규 / 한국성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어린이주일]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마 18:1-6)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마 18:1-6)

오늘은 어린이날이요 어린이 주일이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지만 어린이도 무척 사랑하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성경에서 어린이를 여러 번 언급하시면서 어린이를 통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들을 주셨다. 오늘은 어린이를 통해서 주시는 예수님의 교훈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려고 한다.

1.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자.

하루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길을 가다가 자기네들끼리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자기들 가운데 누가 큰 사람인가? 천국에 가면 누가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였다. 각자 여러 이유를 들어서 자기가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주장을 했을 것이다.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께 찾아가서 자기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 될지 여쭈어 보았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수제자인 베드로가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누가 큰 사람이 될 것인지를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 대신에 한 어린 아이를 불러서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18:3)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은 그 시대의 관념으로 볼 때는 매우 충격적인 말씀이었다. 왜냐하면 그 시대는 어린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 사회의 구성원으로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다.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이기에 천국에 들어가는 요건이 된다는 말씀일까? 여러분도 모두 천국에 가고 싶지 않는가? 천국에 가려면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니 어린 아이와 같이 되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1)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마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어린 아이와 같이 되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 말씀대로 어린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겸손하다. 물론 그렇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어린이들은 대개 겸손하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통로 사람들을 마주쳤을 때 인사를 가장 잘하는 사람은 어린 아이들이다. 어른들은 서로 모른 채하고 서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먼저 인사를 한다.

어릴수록 인사를 잘한다. 유치원 아이들과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인사를 잘한다. 어떤 초등학생은 길을 가다가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인사를 한다. 그런 아이를 만날 때면 저절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는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죄를 회개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 회개하는 것은 영적으로 겸손한 것이다.

(사57:15)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곳에 계시지만 동시에 통회하는 마음, 겸손한 자의 마음에도 계신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과 영을 소성케 하신다. 새롭게 하신다. 새 생명을 주신다. 구원을 받는다.

그런데 이처럼 구원 받을 때는 통회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졌는데 나중에 교만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 교만한 마음을 대적하신다. 반면에 주님 앞에서 어린 아이와 같이 계속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더 큰 은혜를 주신다.

(벧전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 받을 때 어린 아이와 같은 겸손한 마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항상 어린 아이와 같은 겸손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말씀대로 항상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 매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주신다. 항상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2) 순수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는 것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어린이들 일반적으로 마음이 순수하다. 어린이의 마음을 도화지에 비유한다. 하얗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준 대로, 보여준 대로, 가르친 대로 아이들의 마음에 그림이 그려진다. 그들의 습관과 인격과 지능이 결정된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구원의 복음을 듣고 깨닫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마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예수님은 그 당시에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오히려 배움이 없고 신분이 천하지만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성경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 홍해가 갈라진 사건,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은 사건,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신 사건 등 인간의 이성과 상식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능치 못할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라는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 모든 것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믿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처럼 구원 받을 때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구원 받은 이후에 이런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인간의 이성과 지혜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지하지 않게 된다면 우리는 큰 실패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항상 깨어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 세상의 죄악에 때 묻지 않는 비둘기 같이 순결한 마음을 갖게 하신다. 그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2. 예수님처럼 어린 아이들을 섬기자.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들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병을 고쳐주시느라 매우 바쁘고 쉴 틈이 없었다. 제자들도 그 순서를 정리하느라 힘이 들었다. 그런데 어떤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와서 자녀들의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 기도를 해주기를 부탁하였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들 정리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제자들이 화를 버럭 냈다. 지금 어른들 순서도 끝이 없는데 어린 아이들까지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을 본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크게 화를 내시고 나무라셨다.

(막10:14)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그리고는 어린 아이를 품에 안으시고 그들 머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해주셨다.

(막10: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그 시대에는 어린 아이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여기지 않던 시대이다. 그랬기 때문에 제자들이 어린이들을 무시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의 관념과 상관없이 예수님은 결코 어린이를 무시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들도 한 인격체로 보셨다. 그래서 어린이들을 가까이 오게 하시어 품에 안아주시고 안수기도해주시고 축복해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들지 않는 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셨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어린 아이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섬겨야 한다. 어린 아이라고 해서 무시하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처럼 어린이들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잘 섬겨야 한다. 어떻게 어린이들을 섬길 것인가?

1) 기도하고 축복해주어야 한다.

(막10: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예수님이 어린 아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안수하시고 축복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어린이들을 품에 안고 안수기도도 해주고, 축복 기도도 해주어야 한다.

유대인들은 지난 수천 년에 걸쳐서 안식일마다 아버지가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 기도해준다. 지금도 변함없이 하고 있다.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가 유대인들에게 본 받아야 할 점 중에 하나이다.

지금은 율법의 시대가 아니라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에 반드시 유대인처럼 안식일마다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도 아버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주일이든 평일이든 우리는 자녀를 위해서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자녀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나는 감사한 것이 있다. 장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장모님이 수시로 손자, 손녀를 앞에 두고 기도해주시고, 권면해주시니까 내 아이들이 큰 도움을 받았다. 특히 아들은 사춘기 시절 방황할 때 외할머니의 기도와 권면을 통해서 믿음이 성장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어린 아이들을 품에 안고 안수기도해주시고, 축복해주셨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내 자녀들과 내 주변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마음껏 축복해주도록 하자.

2) 말씀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부모가 어린 아이를 왜 사람이 많은 곳에 데리고 왔나? 물론 첫째는 예수님께 기도를 받게 하려고 데리고 왔다. 또 한 가지는 자신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하려고 데리고 온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처럼 아이들에게 말씀을 들려주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장 중요한 씀이 있다. 이 말씀을 쉐마의 말씀이라고 부른다.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 지니라

요약하면 이렇다. “이스라엘 백성아 들어라. 우리의 신은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란 이름을 가진 분이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여호와를 사랑하라. 너희가 먼저 이 말씀을 마음에 단단히 새겨라. 그런 후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쳐라. 집에 있을 때, 길을 함께 걸어갈 때, 잠자리에 누웠을 때, 아침에 일어나서 새 날을 맞이할 때, 언제든지 수시로 항상 이 말씀을 가르치고 가르쳐라. 이 말씀을 아예 가죽에 새겨서 손목에 매고, 얼굴 눈 사이에 붙이고, 집안의 기둥과 대문에 기록하여라.”

예수님도 이 말씀을 강조하셨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세상 공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말씀 공부이다. 세상 공부는 하라고 다그쳐도 정작 말씀을 읽으라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자녀를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지금 시대는 율법의 시대가 아니라 복음의 시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대해서 잘 가르쳐야 한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나의 자녀와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항상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꾸준히 읽도록, 주일학교 예배를 빠지지 않고 참석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복음을 가르치는 것으로 어린이를 섬기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3) 사랑으로 공급해주어야 한다.

(마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어린 아이에게 냉수 한 그릇을 떠 준 것도 하늘에서 기억하시고 상을 주신다고 하셨다. 어떻게 기억하시는 지 구체적인 말씀을 하셨다. 어른들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들에게도 천사들이 따라다니는데 그 천사들이 누군가 어린 아이에게 물 한 그릇을 떠주었다. 천사가 그 사실을 하늘에 올라가서 보고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매우 정확한 표현을 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 아이들의 필요를 돌아보고 누구보다도 먼저 그들의 필요를 채워줘야 한다. 보호가 필요한 연약한 어린 아이들을 우선 배려하고,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우리 사회의 큰 과제가 되어야 한다. 최근에 어린이 집에서 교사들이 아이를 폭행했다는 기사를 들었을 때 우리 사회가 참 악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또한 선교사가 세운 고아원에서 아이들의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서 가혹행위를 했다는 기사를 보고 탄식을 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을 시원케 하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 들렸다. 지난 토요일 중앙일보에 소개된 한 젊은이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 명문대를 나와서 금융계에서 젊은 나이에 성공을 하고 큰 돈을 벌었다. 회사까지 차리고 승승장구하였다. 그러나 그는 2년 만에 회사를 넘기고 세계 어린이 돕기 단체를 만들었다. 지금은 아프리카의 어린이들 가운데 백반증에 걸린 아이를 구제하는 활동을 집중하고 있다. 까만 피부가 하얗게 되어서 40세가 되기 전에 죽는 난치병이다. 그런데 탄자니아에서는 백반증 환자 아이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으면 건강에 효험이 있다면서 백반증 환자 아이들을 몰래 죽인다는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이런 잘못된 관습을 막고 백반증 환자 어린이를 구제하는 일에 청춘을 바치고 있다. 37세인데 결혼도 하지 않았다. 신문 기사를 읽고 너무 감동을 받았다.

말씀을 정리하자. 어린이 날 예수님이 어린이와 관련해서 크게 두 가지 교훈을 주셨다.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천국을 받들자.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마음, 세상에 때 묻지 않는 순수한 마음을 지키자. 우리도 예수님처럼 어린 아이들을 섬기자. 기도로 섬기자. 말씀으로 섬기자. 사랑으로 섬기자. 특별히 어린이날을 맞이해서 어린이들을 섬기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 어린이들과 함께 오후에 체육대회를 하려고 한다. 많이 참가하시고 사랑으로 섬겨주시기를 바란다. (예닮교회 김창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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