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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 장 12 절 | 십계명 강해(07) ‘옳은 일’ /출애굽기20:12/ 송태근 목사 181 개의 가장 정확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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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12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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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출애굽기 20장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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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m.co.kr

Date Published: 3/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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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장 12절 – 19절 > 매일성경 – 대광교회

출애굽기 20장 12절 – 19절 · 12.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 13.살인하지 살라 · 14.간음하지 말라 · 15.도둑질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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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knc.kr

Date Published: 2/30/2022

View: 7140

존중할 자를 존중하라(출 20:12) – 유평교회

본문 : 출애굽기 20장 12절. 설교자 : 최종혁. 지난 여름에는 십계명의 첫 네 계명을 통해 하나님 중심의 삶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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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church.or.kr

Date Published: 3/8/2022

View: 2563

출애굽기 20장 12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2014년 5월 11일 …

기도를 해도 자녀들이 잘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 한 마디를 해도 자녀들에게 유익한 말을 합니다. 순종하는 자녀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녀입니다. 둘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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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thelight.or.kr

Date Published: 10/11/2022

View: 5897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애굽기 20장 12절)_어버이 주일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애굽기 20장 12절)_어버이 주일. by 우주까지 2021. 5. 1. 순교자 주기철목사님의 옥중일기 중 늙으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쓴 글에 이런 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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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youno4u.tistory.com

Date Published: 9/11/2021

View: 1719

부모를 어떻게 공경할까? (출애굽기 20장 12절) – mission

부모를 어떻게 공경할까? (출애굽기 20장 12절)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10계명 중 다섯째 계명이지만 대인관계의 계명으로는 첫째 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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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ission.bz

Date Published: 11/30/2022

View: 3888

출애굽기 20 장 12 절 | 영유아유치 말씀송

출애굽기 20장 12절 – 19절 · 12.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 13.살인하지 살라 · 14.간음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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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pa.covadoc.vn

Date Published: 5/3/2022

View: 4720

출애굽기 20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출애굽기 20. 20. 1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2나는 너를 애굽 땅, … 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6/18/2022

View: 4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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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강해(07) ‘옳은 일’ /출애굽기20:12/ 송태근 목사
십계명 강해(07) ‘옳은 일’ /출애굽기20:12/ 송태근 목사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출애굽기 20 장 12 절

  • Author: SamilChurch삼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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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2. 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dJbvtv0kQgc

출애굽기 20장 12절 – 19절 > 매일성경

12.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살인하지 살라

14.간음하지 말라

15.도둑질하지 말라

16.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18.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English Bible (NIV)

존중할 자를 존중하라(출 20:12)

제목 : 존중할 자를 존중하라

본문 : 출애굽기 20장 12절

설교자 : 최종혁

지난 여름에는 십계명의 첫 네 계명을 통해 하나님 중심의 삶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 한 분 만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모든 일의 중심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것이 우리의 참된 예배다.

십계명의 나머지 6계명은 하나님과 나의 이런 수직적인 관계가 나와 이웃들 간의 수평적인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주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예수님께서도 밝히 말씀하셨듯 모든 율법의 계명은 크게 둘로 요약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크고 기초가 되는 계명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그 기초 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의 말처럼, 우리는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고, 반대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도 없다.

율법의 축소판과도 같은 십계명에도 이 두 요소가 잘 구분되어 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십계명의 돌 판이 두 개인 이유가 하나는 1-4계명이 기록되어 있었고, 다른 하나에 5-10계명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아마 그런 이유 보다는 언약의 관점에서 볼 때, 언약을 맺는 두 당사자를 위해 두 개의 돌판이 기록되어었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은 있다. 정확하게 두 개의 돌판에 같은 내용이 기록된 것인지, 각각에 나눠서 기록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겠지만, 명령의 내용이 크게 둘로 구분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두번째 명령들의 시작이 바로 5번째 계명이다.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오늘은 이 명령의 무게, 의미, 실천이라는 세 개의 포인트를 가지고 말씀을 나누겠다.

명령의 무게

앞의 계명들에 비해 5번째 계명은 무게감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갑자기 어린 아이들에게 해당되는 명령이 주어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읽는 우리는 거의 즉각적으로 “자녀들아, 부모님 말씀 좀 잘 들어라”로 읽어 버린다.

하지만 앞의 명령들과 이어지는 명령들의 대상이 동일한 것을 생각해 보면 이 명령만 주어진 대상이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 생각해보라. 이스라엘 백성 중 한 가족이 손을 맞잡고 이 놀라운 말씀을 듣고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1-4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5계명이 되자 옆에 자녀를 바라보면서 ‘이건 니 얘기야’ 이렇게 말했겠는가. 그렇지 않다.

5계명은 일차적으로 어린 아이들이 대상이 아니다. 어린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부모 아래 태어난 모든 사람을 말하고 있다. 부모가 없이 태어나는 사람이 없으니, 결국 모든 사람이 대상이 된다. 혹시 오늘 말씀 본문을 보고 내가 아닌 자녀를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 생각은 내려 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자녀들에 대한 말씀이 아닌 것도 아니니 자녀들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다음으로 5계명에 대해 생기는 질문은 왜 이것이 5번째, 즉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 중에서는 첫번째에 위치하느냐다. 이어지는 명령들이 이웃 간의 관계에 있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중요하고 심각한 주제를 다루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5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니 지키면 좋은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그 자체를 심각한 범죄로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도덕의 영역이지 법의 영역으로는 잘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계명이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의 첫번째에 위치한 이유는 있다.

십계명이 중요도에 따라서 순서가 정해져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번째 계명들의 기초가 제 1계명인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번째 계명들의 기초는 바로 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 태어나 가장 먼저 만나는 이웃이 바로 부모이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를 생각해 보라. 아이에게 있어서는 부모가 전부다. 아이가 배고프면 어떻게 하는가? 부모를 찾는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아플 때, 뭐가 잘 안될 때, 부모를 찾는다. 사고 쳐도, 억울한 일 있어도 부모를 찾는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부모에게서 숨는다. 즉, 부모가, 다른 말로 하면 가정이 우리 모두의 첫 학교이자 병원이자 정부이자 법원이자 사회인 것이다. 첫 교회도 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가정을 디자인하셨기 때문이다. 동물들을 보면 부모가 이런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들이 많다. 오히려 ‘가정’이라는 개념을 가진 동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그렇게 창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영원한 언약의 관계인 결혼에 기초하여 가정을 이루게 하셨고, 가정을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되게 하셨다. 사람은 그 가정을 통하여 사람으로서 성장한다. 육적으로 성장할 뿐 아니라, 인격적, 지적으로, 영적으로,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자라는데, 부모와의 관계가 여기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 5계명은 이웃 사랑 계명들의 기초가 되고 그래서 정말 중요한 계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계명을 어겼을 때의 형벌은 사형이었다.

출 21:17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신 21:18-21 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외식의 예로서 바로 부모 공경에 대한 명령을 그들이 하나님을 핑계로 지키지 않는 것을 말씀하셨다(마 15:3-6). 그만큼 부모 공경은 기초적이고 중요한 명령이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 5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앞선 명령들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어지는 명령들의 사이에 위치하여 연결 고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특히 모세오경에서는 이 ‘공경하라’는 명령은 하나님과 부모 외에는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고,그것이 우리 삶의 근간이 된다.

오늘날 전통적인 가족관이 변화의 정도를 넘어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도 이런 면에서 우리가 절대로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배우고 있듯이, 사탄은 계속해서 인간관계의 근간인 가정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결혼은 개인의 행복을 위한 것이니 전적으로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다. 또 같은 이유로 남남 혹은 여여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자녀를 낳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적인 선택의 문제로 본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것 비혼 출산도 같은 맥락에 있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이미 가정의 일이 아닌 사회의 일이 되어 버렸다. 부모들은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에게 내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육아독박(독박육아)’이라는 말은 정말 서글프다.

방금 언급한 것들은 그 자체로서 죄가 아닌 것들이 많다. 하지만 결국 그 이면에 있는 동기가 선하지 않고 끝내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가정의 원리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가 됨을 기억해야한다.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사탄은 가정을 공격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가정의 질서에 대한 명령을 자신의 백성들에게 다른 명령들보다 먼저 주신 것이다.

그럼 그 가정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령을 살펴보자.

명령의 의미

“공경하라”

이 명령을 거의 즉각적으로 아이들에게 적용하기 때문에 ‘공경하라’는 명령도 ‘순종하라’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명령은 아이들에게만 주어진 명령이 아니다.

공경하라의 문자적인 기본 의미는 ‘무겁다’다. 그래서 명사형으로는 하나님의 영광, 위엄을 나타내는 단어로 많이 사용되었다. 한자 무거울 ‘중’에 해당된다고 이해하면 쉽다. 그래서 이 명령은 기본적으로는 부모를 중하게 여기라는 명령이다. 부모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마땅한 대접을 하는 것, 즉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 높이 평가하고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역으로 이야기 하자면, 가볍게 보지 않는 것, 무시하지 않는 것, 하찮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부모는 그저 우연찮게 나의 부모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음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하게 부모를 대해야 함을 이 명령을 말하고 있다.

이 명령에는 ‘질서’가 강조되어 있다. 하나님은 가정에 대해서 다른 명령을 주실 수도 있으셨다. 대표적으로 가족이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명령을 주실 수도 있었다. 가족의 근간이 되는 관계인 부부에 대한 명령을 주실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가정 내에서의 수직적인 관계에 대한 명령을 주셨다. 즉, 이 명령은 질서가 강조되어 있는 것이다.

창세기 초반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기록에서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이 바로 이 ‘질서’에 대한 부분이다. 질서는 줄을 맞추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할 자리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셨을 뿐 아니라 그 만들어 내신 것들을 제자리에 두시는 일을 하셨다. 빛을 만드시고 빛과 어둠을 구분하셔서 각각의 자리에 두셨다. 물을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누셨고, 육지를 만드시고 물은 한 곳(바다)에 모이게 하셨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들을 하나님은 있어야할 곳에 두셨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의 질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창조의 모습이었다.

인간 사회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질서를 세우셨다. 이 질서는 변하지 않는 진리로서 우리 사회가 올바르게 동작하게 한다. 인간의 타락 이후로 조금씩 이 질서에 균열이 생겼고 그것이 사회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위에 우리 사회는 세워져있다. 그리고 그 질서의 기초는 앞서 말한대로 가정이다. 가정에서 이 질서가 바로 세워지지 않고, 가정에서 이 질서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사회의 질서도 그렇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다른 명령보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에 대한 명령을 주셨고, 그 핵심은 질서에 있다. 자녀가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세우신 권위인 부모를 존중하는 것이다.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명령에는 성경의 다른 명령들도 그렇듯, 마음과 행동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음으로는 부모를 전혀 존중하지 않으면서 다른 이유, 예를 들면 경제적인 이유나 물리적인 이유 때문에 부모의 말에 따르고 부모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기만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마음으로 존중한다고 하면서 아무런 행동이 없어서 부모가 그것을 전혀 알 수 없다면 그것도 존중한 것은 아니다.

이 명령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척하는 것도 사랑이 아니고 사랑하는 마음만 있는 것도 사랑이 아닌 것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것, 존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 진심이 있어야 하고 사랑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잘 표현되어야 한다.

“네 부모를”

다음으로 공경의 대상으로 하나님은 “부모”를 말씀하셨다. 부모, 즉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무섭게 하는 사람, 때리는 사람만 대상이 아니다. 반대로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 안때리는 사람만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가 존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는 부모를 수식하는 단어는 ‘너의’ 외에는 없다. 즉, 부모가 어떤 부모인지는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나의 부모라면 이 명령을 내가 실천하고 적용해야 할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부모의 성품에 관계 없다. ‘존중할만한’ 부모를 존중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부모라는 것 자체가 이미 ‘존중할 자’가 된 것이다. 부모가 얼마나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서 나에게 유익이 되는지도 관계 없다. 유산을 많이 남겨줄 부모만 공경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한테 까다롭지 않게 하고 잘 돌봐주고 내 말을 잘 들어주는 부모만 공경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또 여기에는 젊고 힘 있는 부모만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해서 독립을 했다고 해도 여전히 내 부모는 내 부모다. 어느 순간 부모님보다 내가 더 클 때가 있다. 육체적으로 뿐 아니라 여러모로 내가 더 큰 사람이 될 때가 있는 것이다. 더 많이 배우고 사회적 지위도 높고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 명령은 계속해서 적용된다.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나도 마찬가지다. 부모를 존중하는 모습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지만, 부모에 대해서 존중해야 한다는 명령 자체는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하기에 인간적으로 정말 어려운 상황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도저히 마음으로 존중해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 이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더 많은 도전을 받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부모를 존중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고 할 때 항상 우리가 마주치는 문제다. 나의 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해서도 우리는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쉬운 것이 나에게는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 바뀌지는 않는다. 우리가 힘들어도 다른 명령들에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처럼, 이 때도 그렇게 해야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어떤 상태에서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를 다시 마음에 새기고, 우리 모두는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그리하면 …”

다른 명령과 다르게 이 명령에는 약속의 말씀이 있다. 은혜의 약속이다. 이 약속은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상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인 일반 원리다. “땅에서 생명이 길리라”는 단순히 장수할 것에 대한 약속이라기 보다는 은혜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릴 것에 대한 일반적인 표현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악한 자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실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권하고 나쁜 것을 멀리하라고 하는 것이 부모다. 어려서부터 술담배를 권하고 마약을 권하는 정상적인 부모는 없다. 원하면 남의 것을 마음대로 훔치고 빼앗으라고 가르치는 부모도 없다. 특히 하나님의 교훈과 훈계로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라면 그 부모를 존중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삶을 망가뜨릴 수 있는 많은 위험을 피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결국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이 은혜의 약속은 부모를 공경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여기에 더해서 성경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옳은 것’이며(엡 6:1), 또한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골 3:20). 부모를 존중하는 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하고 이 명령을 정말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명령의 실천

이 명령이 적용되는 범위는 사실 가정을 뛰어 넘는다. 이 원리를 적용하면 단순히 ‘부모’를 존중하라를 넘어서서 신약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존중할 자를 존중하라’는 명령이 되기 때문이다(롬 13:7).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안에서 우리는 마땅히 존중할 자들이 있고 그들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제 5계명의 핵심은 가정에 있으므로 가정 내에서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 보자.

성경을 보면 부모 공경과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가 강조됨을 알 수 있다. 여전히 부모의 권위 아래 있는 어린 자녀와 장성한 자녀의 경우로 나눠서 생각해 보자.

어린 자녀 : 부모에게 순종하라

어린 자녀란 부모의 공급과 보호 아래서 함께 살아가는 자녀를 말한다. 이 경우는 부모의 권위 아래 있는 것이고, 따라서 부모를 존중하는 모습으로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순종이다.

앞서 읽었던 신명기 말씀에 나오는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순종하지 않은 것이다. 잠언은 일차적으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교훈의 말씀인데, 그것을 잊지 말고 순종해야 할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예, 잠 6:20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신약에서 사도 바울은 자녀들에게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분명한 명령으로 주었다(엡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과거에 비해 오늘날은 자녀들이 이 말씀에 따르는 것이 더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귄위는 우리 사회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기 때문이다. ‘권위적’인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사회 제도는 점점 권위 자체를 제거하는 쪽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다. 교권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고, “웃어른”, “공경”과 같은 단어는 점점 사장되어가고 있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도 부모의 권위보다는 아이의 인권이나 자율성이 더 강조된다. 물론 아이의 인권을 무시하고 부모의 권위를 세우는 것만 중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 둘을 대립하는 것으로 만들어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문제다. 순종은 구시대적 가치라는 생각이 문제다.

아이들의 인권 혹은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아이들이 자신의 행복에 관한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또 그래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이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하는 것은 결코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모의 사랑 어린 지도와 인도가 필요하다. 2살짜리 아이가 원한다고 해서 날카로운 칼을 쥐어줘서는 안된다. 5살짜리 아이가 원한다고 해서 자동차 핸들을 쥐어줘서는 안된다. 15살짜리 아이가 원한다고 해서 자기가 원하는 집에서 혼자 마음대로 살게 두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기위해 부모에게는 권위가 필요하고 아이들은 부모의 권위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이고 올바른 가정의 모습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순종하는 것일까. 우선은 앞서 명령의 의미에서 말했던 것처럼 부모를 가볍게 보지 말고 존중해야 한다. 그것은 부모의 말에 따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부모의 말에 하나님의 권위가 있음을 알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 순종이다.

어떤 이의도 제기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아니다. 자녀는 자라면서 생각이 자라고 분별력이 생긴다. 자기 의견을 부모에게 말할 수 있다. 부모가 하나님은 아니기에 자녀가 아는 것을 모르고 잘못된 순종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정중하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다.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존중하면서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부모에 대한 태도도 중요하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가 하라는대로 하기는 하지만 의도적으로 말을 못들은 척하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나중에 한다고 미루기도 한다. 이 역시 순종하는 모습은 아니다. 부모에게 무례하게 말하는 것,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에게 부모의 좋지 않은 면을 말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부정적인 예를 들었지만, 결국 부모의 말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해서 순종하는 것이 어려워졌다고 이 명령에 따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사춘기가 되어서 중2병에 걸렸어도 마찬가지다. 고3님이 되셔도 마찬가지다. 어떤 경우에도 부모를 경멸할 수 있는 권리가 자녀에게 생기지 않는다. 존중할 자를 존중해야 한다.

어린 아이를 둔 부모 역시 이 계명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순종하기를 가르쳐야 하고 권위를 가르쳐야 한다. 친구 같은 좋은 관계가 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를 가진 자로서 양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풍성한 삶이 되도록 그렇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 뿐 아니라, 좋은 믿음의 본을 보여서 그들이 더욱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야 한다. 완벽한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가르칠 것을 가르치고,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성장해 가는 본이 어린 자녀들에게는 필요하다.

성인 자녀 : 부모를 돌보라

다음으로 성인이 된 자녀를 생각해 보자. 이 경우는 대부분 결혼을 해서 독립을 한 상황을 말한다. 요즘처럼 결혼이 늦는 시대에는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경제적으로 독립 하고 스스로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성인 자녀로 봐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성경이 강조하는 부모 존중의 모습은 순종이 아닌 돌봄이다. 독립을 했다는 것은 더 이상 부모의 권위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순종의 의무는 없다. 하지만 부모를 여전히 존중해야 하고 그때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부분이다.

예수님은 제 5계명을 통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꾸짖으시면서 이 부분을 언급하셨다.

마 15:3-6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여기서 부모를 ‘공경한다’는 말은 경제적인 도움을 드리는 일이다.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마땅히 부모에게 드려야할 것을 “하나님에게 드렸다”라고 하기만 하면 부모에게는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바울도 이것이 마땅히 해야할 일임을 강조했다.

딤전 5: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딤전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부모는 그만큼 더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스럽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들이 생긴다. 경제적인 필요가 있다면 도와야 한다. 외로워 하신다면 대화 상대가 되어드릴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부모님의 지혜와 조언을 구할 필요도 있다. 그대로 해야하는 의무는 없지만 신중하게 고려하여 부모를 존중해야 한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은 어떨까? 요즘은 부모들이 먼저 싫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닫아 두어서는 안된다. 부모와 가까이 있으면서 지속적인 도움을 드려야할 상황도 있고, 그럴 때 자녀들은 기꺼이 부모의 의견을 존중하여 그렇게 할 수도 있어야 한다. 어쩌면 지금 부모님이 성인 자녀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전화 한 통, 식사 한끼 일 수도 있다.

지혜자는 잠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잠 23:22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앞서 말한 구체적인 적용은 다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성인이 되었다 해도 여전히 부모는 내가 존중할 자고 그렇기에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도전

어쩌면 오늘 말씀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낡은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현대의 사회학이나 심리학에 따르면 이런 이야기는 예전의 이야기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오래된 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오늘날 우리가 순종해야 할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특징 중의 하나를 사람들이 ‘부모를 거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부모를 존중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향은 사회 안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사람 사이에는 존중이 사라지고 편 가르기와 갈등만 늘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렇게 멸망을 향해 가는 세상 속에서 빛을 비추는 일이다. 전도가 필요한 가족이 있다면,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십계명의 제 5계명을 기억하고 순종해 보기 바란다. 그 가족이 어린 아이이든 나이드신 부모님이든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 모습에서 세상과는 다른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 가정이 제 5계명에 순종하는 가정이 된다면, 또한 세상의 다른 가정에게도 복음의 빛을 비출 수 있을 것이다.

제 5계명은 풍성한 삶이라는 은혜의 약속이 있다. 이것은 비단 우리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복이 아니다. 우리의 자녀, 우리의 부모님, 우리의 배우자, 직장 동료, 이웃 주민에게 참되고 영원한 삶을 정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존중할 자를 존중하는 우리의 삶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기도한다.

출애굽기 20장 12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2014년 5월 11일 어버이 주일

2014년 5월 11일 어버이 주일

출애굽기 20장 12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려면 지켜야할 기본적인 율법을 주셨는데 그 율법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법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위로 하나님을 섬기는 법 네 가지와 이웃을 섬기는 법 다섯 가지가 주어졌습니다. 그 사이에 부모 공경에 대한 계명이 끼어 있습니다. 부모공경은 율법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선 부모공경에 대한 계명이 하나님을 향한 계명과 이웃을 향한 계명 사이에 있는 이유는 부모 공경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기초가 되고 시작점이 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해야하는 첫 번째 이유는 부모님은 나의 생명의 근원이며 나를 오늘이 있기까지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고 희생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부모님들이라면 잉태하는 수고, 해산하는 수고, 양육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나의 나됨은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부모님의 수고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모 공경은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의무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아무리 잘 섬긴다 해도 부모님들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것의 일부만 갚을 수 있을 뿐입니다.

둘째로 부모공경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까요?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그 시작점이 바로 부모공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부모님을 멸시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강하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부모공경을 할 때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공경하고 섬길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웃 사랑도 부모님을 공경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먼저 관계를 맺는 사람이 바로 부모님입니다. 자라면서 부모님에게 배우기도 하지만 점점 사회성이 발달하면서 이웃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주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실 때 그 사랑의 시작이 바로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시작이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공경은 이웃 사랑의 시작이 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으면서 이웃을 사랑한다고 무엇인가 하는 사람들은 대개 위선자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로 이 땅에서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부모공경은 이 땅에서 장수하며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공경에는 상급을 걸어 놓으셨습니다. 왜 부모공경이 이 땅에서 잘 되는 길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해 놓으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 됩니다. 또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했는데 부모공경은 의도적인 결단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모님을 공경할까요? 첫째는 순종입니다. 부모님들의 기본적인 마음은 자녀가 잘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도 자녀들이 잘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 한 마디를 해도 자녀들에게 유익한 말을 합니다. 순종하는 자녀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녀입니다. 둘째는 부모님들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부모님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아픔을 준다면 불효자입니다. 셋째는 부모님을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존귀하게 여겨야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부모공경을 통해 하나님 공경을 배울 수 있습니다. 부모공경을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해 갈 수 있습니다. 어버이 주일에 부모님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복된 시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애굽기 20장 12절)_어버이 주일

순교자 주기철목사님의 옥중일기 중 늙으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쓴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아끼지 아니하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부모를 생각지 아니하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어머님이 나를 낳아 애지중지 키우고 가르치신 은혜 태산같이 높습니다. 어머님을 봉양하지 못하고 잡혀 다니는 불효자의 신세, 어머니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내 어머님은 금지옥엽으로 길러주신 이 몸이 남의 발길에 채이고 매 맞아 상할 때, 내 어머니 가슴이 얼마나 아프실까? 춘풍추우 비바람이 옥문에 뿌릴 때, 고요한 밤 달빛이 철창에 새어들 때, 어머님 생각 간절하여 눈물 뿌려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을 봉양한다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할 수는 없었습니다.

주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당신의 아픔도 잊으시고 십자가 밑에서 애통하는 어머님을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시던 주님 심정 어떠하였을까? 십자가 하에서 가슴 치며 애통하시는 마리아의 아프신 가슴 어떠하였을까?

오! 당신 어머님을 요한에게 부탁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을 부탁합니다.

불효한 이 자식의 봉양보다 무소불능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을 부탁하고, 나는 주님 자취를 따라 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사랑하는 나의 어머님을, 팔십 넘어 늙으신 내 어머님을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합니다.” 일제 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감옥에 갇힌 주기철 목사님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옥중기도였습니다.

성도님,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있습니다. 부모 없이 출생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실 때는 부모를 통해서 태어나게 했습니다. 부모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언젠가 자녀 된 우리도 부모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인데, 그것은 사람의 본분인 하나님의 영광과 인생의 행복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십계명이고, 십계명은 구원받은 백성이 살아야 할 하나님관계의 계명과 인간관계의 계명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제5계명은 부모공경에 대한 것인데, 이는 인간관계에서 첫 번째 계명입니다. 어버이 주일 아침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받기 원합니다.

1.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지금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인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어린 양의 고기를 먹음으로 죽음이 넘어간 구원의 표적을 간직한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에, 그 서문이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20:1-2)고 합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비롯한 십계명은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삶의 기본 원리라는 말입니다. 즉 오늘 본문에 “부모 공경”이란 효도는 인간이 고안해 낸 법이 아니란 말입니다. 인간들이 모여서 제정한 법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제정하여 하나님 백성에게 주신 인간관계에서 해야 할 첫 번째 법칙입니다.

특히 본문 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여기 “공경하라”는 말은 히브리 명령형으로 “키베드”(דבכ)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무겁다”라는 말에서 왔는데, 사람의 장기(臟器) 중 “간”(肝)이 제일 무거운데, 히브리말로 “간”을 “카베드”라고 합니다. 즉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부모의 교훈이나 명령이나 부탁이나 요구나 희망을, 자기 몸에서 분리할 수 없는 간(肝)처럼 소중히 여기고, 귀히 여기며, 무게 있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보이는 부모를 잘 모시지 못한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수 있느냐, 그것은 거짓말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15:4-6).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것이 첫째로 부모 공경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영감의 저자 솔로몬은 잠언 1장 8절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잠언 23장 22절에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했으며, 25절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는 부모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간처럼 무겁게 여겨야 합니다. 부모님을 즐겁고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그 근본 이유는 자기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영적인 하나님을 신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충북 제천 출신의 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허리가 굽은 장애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술과 도박에 빠졌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도박을 끊기 위해 손가락까지 잘랐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다시 노름을 했습니다. 손가락이 다 잘려나가 손으로 화투를 잡을 수 없게 되었을 땐 대리자를 세워 노름을 했습니다.

결국 모든 가산을 탕진하고, 온 가족은 어머니의 삯바느질 품을 팔아 겨우 연명하였습니다. 그 아버지는 한밤중에 집에 들어와서 노름 밑천을 내놓으라고 어머니를 닦달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홧김에 마루에 있던 어린 아들을 마당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이 일로 아이는 곱사등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아이에게 함께 놀아줄 친구들은 없었습니다. 그는 외로워서 교회로 가게 되었고,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사법고시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판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판사가 된 아들이 자기를 이렇게 만든 아버지를 잘 모시는 것입니다. 그의 성장과정을 알고 있는 동네 사람들은 효도하는 모습이 남다른 그 판사를 존경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부모를 공경하는 효성에 까닭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그의 마음속에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님,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어떤 처지나 어떤 상황에서도 공경할 수 있는 사람은 참다운 신앙인입니다. 오늘 본문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사람의 마음과 형편에 맞든지 안 맞든지, 혹은 하고 싶든지 하기 싫든지, 하나님의 자녀는 반드시 지켜야할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중요한 것은 부모공경은 단순한 자연인 효도, 세상 사람들의 효도 방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효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효도는 주님을 떠나서, 십자가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성도의 삶의 시작이 십자가에서 출발하고, 십자가에서 완성됩니다. 우리의 구원이 십자가 때문이라면 구원 받은 우리의 효도도 십자가를 중심할 때, 가장 값지고 참된 효도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효도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여 부모님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윤리와 이방 종교에서 말하는 효도는 십자가가 없는 구원이 없는 인본주의 효도에 불과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일반인들의 효도는 고사하고, 신자들까지도 부모 공경을 자식들의 고민거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타락한 시대상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여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즉 종말 시대의 현상을 가리켜, 자기를 사랑하는, 자기가 중심이 되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 결과 자기 부모말씀을 거역하고, 부모에게 감사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거룩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2천 년 전에 기록한 말씀인데, 오늘 이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입니다. 시대는 변하고 문화도 세월과 함께 변화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은 변치 않으십니다. 또 하나님의 명령은 어느 시대나 흔들림이 없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고 지나가지만 율법은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짐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에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지금도 명령하십니다.

2. 부모 공경은 축복이 따르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본문 12절을 다시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습니다.

본문을 다른 각도에서 기록하고 있는 신명기 5장 16절에는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6장 2-3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한 결 같이 약속하고 있는 축복이 “네 생명이 길리라”, “복을 누린다”, “잘 된다”, “장수한다”고 합니다.

앞서간 신앙의 조상들 중에 부모공경을 통하여 복을 누린 이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삭은 모리아 산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묶어 번제단에 제물을 삼기까지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인 메시야를 보내주겠다는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경험하였습니다.

요셉은 야곱에게 극진한 효성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다가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의 양곡정책에 대한 소신은 바로 왕의 마음을 움직였고, 성공적인 정책을 수행하였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계신 아버지와 형제들 생각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요셉은 양식을 사러 온 형들을 보고, 자신의 정체를 숨겼으나 결국 방성대곡하면서 “나는 요셉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형들에게 물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십니까?”(창45:3) 요셉이 자기 자신을 더 숨기지 못하고, 자기가 요셉인 것을 밝힌 것은 아버지의 안부가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그에게는 자나 깨나 잊을 수 없었던 것이 아버지에 관한 소식이요, 듣고 싶고, 보고 싶고, 묻고 싶었던 안부였습니다.

요셉은 그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시는가? 라고 묻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아직도 살아계심을 확인하고서는 자기의 소식을 이렇게 전합니다. “내가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생각할수록 효도의 사람입니다. 훗날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장사하면서 사십일을 애곡하였다고 합니다(창50:1-3).

사사시대의 룻 역시 유명한 효도의 자부입니다. 룻기 1장 16절에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지극한 효도의 결과 룻은 성경에 기록된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부모를 섬기는 공경의 모범을 친히 이 세상에서 보이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 51절에 “예수님께서 한 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렸을 적 모습 속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우리에게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보이신 부모공경의 또 다른 본은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우리에게 더 아름답게 보여주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십자가 밑에서 아들의 모습을 울면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어머니를 내려다보며 말하기를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 이다”라고 울고 있는 어머니를 위로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고통 중에 제자 요한에게 “네 어머니라”고 하시며, 자기 어머니 봉양을 부탁하셨습니다.

미국 텍사스에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와 네 명의 자녀를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30년 동안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으면서 자기의 시체를 고향 텍사스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텍사스에 살고 있던 아들들은 모두 그 소식을 듣고 “그 사람이 우리와 무슨 상관있어? 아버지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뭔데? 그 사람 때문에 어머니와 우리 모두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왜 우리가 그 시체에 수고와 돈을 들여야 하지?” 하면서 분개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심 깊은 큰 아들은 동생들의 불평에도 아랑곳 않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아버지의 시체를 운구해 오기 위해, 자기 트랙터와 농기계들을 저당 잡혔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난 후 큰 아들은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씌어 있는 것을 나는 실천했을 뿐이란다.”

그런데 장례를 치른지 얼마 후 변호사로 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아버지가 객지에서 평생 모은 막대한 재산을 장례를 치러준 아들에게 상속해 달라는 메시지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큰 아들은 어떤 보상을 바라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것이 아니지만, 부모에게 효도하면 이런 뜻밖의 복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효도하는 자식에 대한 축복뿐만 아니라, 부모를 거역한 자들에 대한 벌도 말씀하십니다.

노아의 세 아들들 중에 둘째 함이란 아들이 있습니다. 그는 포도주에 취한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기는커녕 폭로하고 비웃는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그의 자식은 영원히 저주를 받아 종들의 종들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9:25). 함의 후손들이 지금 아프리카 대륙에 흩어져 사는 자들입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일어난 아프리카인들의 눈물의 기원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불효에서 온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셋째 아들 압살롬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흠 없이 잘 생긴 아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그를 따르는 자가 많았고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그러자 압살롬은 자기 인기를 이용하여 이복 형 장자 암논을 죽이고, 부모를 거역하여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왕궁에서 내쫓는 불효를 저질렀습니다(삼하13:29, 15:6). 그 결과 압살롬은 기드온 골짜기에서 창에 찔려 죽고 말았습니다(삼하18:15). 후에 성경은 압살롬의 묘를 지나는 사람들이 돌을 던지면서 부모에게 불효한 압살롬이라고 저주하였습니다.

신명기 21장 18-21절에는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부모 공경을 명하고, 불효를 강하게 벌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된 여러분이 부모님께 정성어린 효도를 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 공경을 못하는 것은 신자의 첫걸음도 못하는 부끄러운 것입니다. 바울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효를 행하지 않는 것은 믿음을 배반한 것이라고 합니다.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했습니다(딤전5:8).

성도 여러분!

부모가 없는 사람, 조상이 없는 사람, 스승이 없는 사람, 영적 지도자가 없는 사람, 그 사람은 전통이 없는 사람입니다. 엄격히 말해서 자기 자신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거기에는 성도의 신앙도, 소망도, 사랑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질서도, 규율도, 새로운 창조도, 발전도 없이 혼란만이 반복될 따름입니다.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어디가나 문제를 일으킵니다. 어디가나 불편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부모 공경 할 줄 아는 사람은 성경은 그 오른손에 장수가, 왼손에 부귀영화가 보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잠3:16).

성도님, 모든 계명은 내가 살아있는 날까지 같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면, 회개할 기회가 있고 회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부모님이 안계시면 다시 회복할 수 없고, 고쳐질 수 없는 계명입니다.

그러니 기회가 주어질 때에 최선을 다해 부모님을 공경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이미 이 축복의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식들에게 이 축복의 진리를 가르쳐 자녀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복되게 살게 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워싱턴(G. Washington, 1732-1799)의 부모 공경 이야기를 하고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워싱턴은 원래 고기를 잡는 뱃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서양 바다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기로 하고, 바다에서 평생 살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워싱턴은 더 큰 선원이 되기 위해 위험한 배에 짐을 싣고 배를 타려고 합니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러자 워싱턴은 따라 나온 하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배에서 내 짐을 가져와라. 어머니를 슬프게 하면서까지 내 꿈을 좇을 수는 없다.”

그때 어머니는 아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복 주신다는 성경 말씀처럼, 네 장래에도 큰 복이 있을 것이다.”고 축복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이 장면을 목격했더라면 다들 혀를 찼을 것입니다.

꿈을 이루겠다고 나서는 자식의 발목을 잡는 어머니나, 또 어머니가 눈물을 흘린다고 꿈을 접고, 주저 않는 아들이나 다들 얼마나 한심해 보입니까?

그러나 어머니의 축복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워싱턴은 뱃사람이 아니라 미국의 건국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어머니를 극진하게 생각하는 워싱턴의 인생을 하나님은 약속대로 축복하신 것입니다. 워싱턴이 자기 생각대로 했더라면 그는 기껏해야 조금 큰 배의 선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 공경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 결과 미국이라는 거대한 배를 움직이는 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효도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하나님 자녀들에게 인간관계에서 해야 할 첫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말씀 가슴에 새기는 성도님 되시길 소원합니다.

부모를 어떻게 공경할까? (출애굽기 20장 12절)

부모를 어떻게 공경할까? (출애굽기 20장 12절)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10계명 중 다섯째 계명이지만 대인관계의 계명으로는 첫째 계명입니다. 첫째부터 넷째 계명은 대신계명 즉 하나님께 대하여 지켜야 할 계명이고 다섯째부터 열째까지는 대인계명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그런데 대인계명 중에는 제일 첫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보다도 앞서 있고 “도적하지 말라”는 계명보다도 앞선 계명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 2-3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계명은 대인계명의 첫째 계명일 뿐 아니라 축복의 약속이 붙은 계명입니다. 대인계명 중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 이 계명에만 축복의 약속이 붙어 있습니다.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축복을 약속했습니다.

1. 왜 이 첫째 계명을 주셨는가?

하나님이 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첫째 계명으로 주셨을까요? ①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모라고 하는 권위는 어느 사람이 준 것도 아니고 어느 인간의 제도가 만든 것도 아닙니다.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그 누구도 이 부모의 권위를 거역할 수 없는 계명이며 이 하나님의 권위를 거역하면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무식해도, 부모가 자식을 호의호식 못 시키고 많은 교육을 받게 하지 못했어도 부모는 부모라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반드시 공경해야 하고 또 이 계명대로 순종할 때에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계명입니다.

노아는 홍수 심판 때 유일하게 구원받은 의인이었지만 그도 실수를 범했습니다. 하루는 포도주를 많이 마시고 취해서 그만 벌거벗은 하체를 드러내놓고 잠을 자다가 셈, 함, 야벳 세 아들 중 가운데 함이 이를 보았습니다. 이때 함은 허물을 덮어드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입을 삐죽이고 비웃고 떠들고 흉을 보았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노아는 이 사실을 알고 저주하기를 “가나안(함)은 종의 종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함은 아프리카의 선조가 되어 그 후손들이 종 노릇하며 헐벗고 굶주리며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그 사실을 알고 홑이불을 가져다가 아버지의 허물을 안 보려고 뒷걸음을 쳐 들어가 허물을 가리우고 덮어드렸습니다. 노아는 이 사실을 알고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영적인 축복을 했습니다. 예수님도 셈족에서 태어났습니다. 또 “야벳은 창대케 하시리로다” 하고 물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대체로 백인들은 유색 인종보다 문명하고 잘사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노아가 실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무시하고 도전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죄이기 때문에 노아가 윤리, 도덕으로 지은 죄보다 열 배 백 배 큰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화가 어떻게 변하든지, 윤리, 도덕이 어떻게 바뀌든지 이 계명은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명령이고, 이 계명을 지킬 때 그 가정과 그 나라가 잘 되고 장수하게 됩니다.

② 완전한 부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노아가 홍수 심판 때 구원받은 당대의 의인이었지만 포도주를 마시고 그런 창피스런 실수를 범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며 독자라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제단에 바치는 믿음의 사람으로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도 여종 하갈을 취하여 아들을 낳기도 하고 아비멜렉 추장한테 예쁜 아내를 빼앗길까봐 자기 누이라고 거짓말도 한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선민 이스라엘이 가장 존경하고 높이는 다윗왕도 자기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이를 숨기려고 살인죄까지 지었습니다. 인간은 다 실수가 있고 죄가 있습니다. 완벽한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잘못이 있건 없건, 훌륭하든 못하든, “자기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부모는 부모라는 이유 때문에 공경해야 합니다. 자격이 없어 보이는 부모일수록 효도하고 공경하면 더 복을 받습니다.

③ 부모와의 관계가 다른 모든 관계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면 사회생활에서 상사를 존경할 줄 모르고, 따라서 인정받지 못하고 성공적인 생활을 못합니다. 부모와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면 직장생활도 잘하지 못하고 가정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2. 어떻게 공경할까요?

① 어린 아이 때는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어렸을 때는 무엇보다도 순종하고 존경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려서 부모에게 순종할 줄 모르면 커서도 부모에게 순종할 줄을 모릅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우상숭배나 기타 죄짓는 일 외에는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가 또 순종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19남매를 키우면서도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운 분인데, 그 분은 자녀들이 어려서 자기 고집을 꺾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멋대로 하게 버려두는 부모는 그 자식을 마귀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부모가 먹여 주고, 입혀 주고, 교육시켜 주었기 때문에 간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무질서하고 살벌하고 죄악이 관영한 세상이 된 것은 자식을 하나, 둘만 키우면서 과잉보호하고 제멋대로 하게 버려두었기 때문입니다. 체벌이 없어졌기 때문이고, 자유방임주의 교육철학의 영향 때문입니다.

② 청년 때에는 용납하고 감사함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에는 자기 부모가 최고로 보이다가도 자라면서 사춘기가 되고 청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부모의 잘못과 결점을 보게 됩니다. 공부를 좀 해서 지식이 들어가면서 부모의 행실을 비평하게 됩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부모가 약점이 있고 실수가 있어도 이를 이해하고 용납하고 감사하면서 공경해야 됩니다. 공경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를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났고 부모를 통해서 먹고 입고 양육되었으며 많게든 적게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반드시 용납하고 감사하며 공경해야 합니다.

용납이란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부모가 지나친 것 같고 잘못하는 것 같아도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잠언 23장 22절에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요사이 도덕이 땅에 떨어져서 학생이 선생을 구타하고 자식이 부모를 갖다버리고 구타까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수가 자기 아버지를 죽이기도 합니다. 상상도 못할 죄악들입니다.

부모에게 죄가 있고 실수가 있고 결점이 있어도 용납하고 감사함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존경이 안 가고 감사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부모일지라도 그런 부모를 공경하면 그 자식은 더 복을 받습니다.

③ 성인이 되어서는 부모를 인정하고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요사이 부모를 모시고 제주도나 해외여행 가서 늙은 부모를 버리고 오는 자식들이 일 년에 800건이나 된다고(10년 전 통계) 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통계입니다. 자식을 어렸을 때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씻겨 주었으니 성인이 되면 입장이 바뀌어서 늙은 부모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씻겨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늙으면 자식이 부모의 희생과 노고를 알아주기 원합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고, 디모데전서 5장 4절에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가족이나 친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도 믿음을 배반한 자라고 했는데 하물며 자기를 낳고, 먹여 주고, 입혀 주고, 키워 주신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더 큰 죄겠습니까?

④ 부모의 영혼을 구원하고 영혼이 잘되도록

돌보아 드리는 것이 가장 큰 효도입니다.

어느 부흥 강사님은 부모가 안 믿으면 한 달만 금식하고 기도하면 믿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옥갈 부모를 구원하여 천국에 가시게 하기 위해서는 무슨 노력인들 아끼겠습니까? 육신이야 아무리 잘 먹고 잘 입고 행복하게 해드려도 100년 미만에 끝나지만 영혼이 잘되는 것은 천 년 만 년이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지 못한 부모님이 계시다면 어찌하든지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면하고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해드리는 것이 세상에서 고대광실 높은 집을 사드리고 호의호식하게 해드리는 것보다 억만 배 더 큰 효도입니다.

만일에 믿는 자녀를 둔 부모가 이 다음에 지옥불에 떨어진다면 얼마나 그 자식이 원망스럽겠습니까? “이런 고통의 장소가 있는 것을 알았다면 내가 싫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잡아끌어서 교회로 데려 갔어야지, 내가 싫단다고 그대로 두었느냐, 못된 자식아!”라고 할 것입니다.

일본에 강도질하는 아버지에게 예수님을 잘 믿는 19세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아버지를 위해 기도도 많이 하고 눈물로 호소도 해 보았으나 도무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히브야 공원으로 칼을 들고 강도질하러 나가는 것을 그 딸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소녀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입던 숙녀복으로 갈아입고 어머니가 들고 다니던 핸드백을 들어 아버지의 뒤를 몰래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컴컴한 곳에서 살해할 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한 숙녀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자기 딸인 줄 모르고 칼로 찌르고 핸드백을 빼앗아 도망갔습니다. 집으로 달려가 돈이 얼마나 들었나 보려고 불빛 아래서 자세히 보니 많이 보던 핸드백이었습니다. 그 백을 열어보니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는데 바로 자기 딸의 편지였습니다. 읽어보니까 “아버님 전상서. 아버지, 이 불효한 여식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오늘밤 아버지의 칼날에 죽어 쓰러지는 것이 아버지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잘못인 줄 모르는 바 아니오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의 영혼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모시는 길은 이 길밖에 없는줄 알고, 저는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최후로 이 길을 택하였으니 나를 자식으로 아시거든 불쌍하다 보시고 회개하고 예수님 믿으시다가 천국에서 하나님 보좌 앞에서 만나뵙기를 바랍니다. 불효 여식 올림”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편지를 읽고 통곡하며 가슴을 치다가 그 길로 달려가 자수하였다고 합니다. 형무소 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잘 하여 모범수로 출감되어 신앙생활을 잘 하였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구원받고 또 그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 은혜받는 길로 인도하고 교회에 잘 모시고 다니는 일과 교회에 나오시는 것이 불가능하면 설교 테이프나 비디오 테이프를 들려드리며 기도해 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도라고 봅니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제일 큰 효도입니다.

할렐루야!

출처/김홍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출애굽기 20 장 12 절 | 영유아유치 말씀송_ 출애굽기 20장 12절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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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찌니라 14 간음하지 말찌니라 15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18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21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의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가니라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가 친히 보았으니

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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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십계명 강해(07) ‘옳은 일’ /출애굽기20:12/ 송태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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