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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1 장 | 욥기 11장 상위 47개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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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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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제공 : CGN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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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1

소발의 첫번째 말. 1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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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25/2021

View: 7070

욥기 11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욥기 11 · 1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가로되 · 2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입이 부푼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 3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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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8/11/2021

View: 799

욥기 11 KLB – 소발 – 그때 나아마 사람 – Bible Gateway

네가 자랑할 때 나는 잠자코 있어야만 하겠느냐? 네가 비웃으면 너를 부끄럽게 할 자가 없겠느냐? 4 너는네가 믿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며 하나님 앞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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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7/21/2022

View: 5426

2018/03/12/(월) \”욥기 11:1-20\”/ 작성: 이동규

11절입니다.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하나님은 죄를 상관하지 않으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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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9/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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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2월 12일. 욥기 11장. – 하늘품은교회

저희의 알량한 지식으로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아는 것처럼 행세하지 않게 하시고, 참된 것 곧 진리를 말할 때도 사랑으로 말하도록 은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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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poom.or.kr

Date Published: 7/15/2021

View: 8321

20181107 다 보고 계신 하나님 (욥기 11장 1-12절)

11절 말씀, “(욥 11:11)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여기서 소발이 말한 ‘허망한 사람’은 하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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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pcgl.org

Date Published: 10/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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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11장, 소발의 첫 번째 공박 – Daum 블로그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잘못하는지를 분명히 아시고, 악을 보시면 곧바로 분간하신다.” 그래서 네게 정당한 재앙을 내리셨다는 겁니다. 욥이 자신의 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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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0/28/2021

View: 4201

욥기 11장 본문 설명

욥기 11장 본문 설명 · “ · 하나님이 두루 지나다니시며, 죄인마다 쇠고랑을 채우고 재판을 여시면, ·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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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yusikjung.blogspot.com

Date Published: 6/14/2021

View: 5808

[욥기 11장 – 교사용]

고래로 말이 많은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던가? … 소발은 욥을 바보 취급하고 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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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9/27/2022

View: 6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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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1장
욥기 11장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욥기 11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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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2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dbJrkJs4BGk

욥기 11

소발의 첫번째 말

1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3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4 네 말에 의하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5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6 지혜의 오묘함으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

7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8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9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10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재판을 여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

11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12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의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13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14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15 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16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기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17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18 네가 희망이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며 두루 살펴보고 평안히 쉬리라

19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은혜를 구하리라

20 그러나 악한 자들은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들의 희망은 숨을 거두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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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가로되 2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입이 부푼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3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4 네 말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의 목전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5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6 지혜의 오묘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너는 알라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 7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8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9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10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개정하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 11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12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13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2018/03/12/(월) \”욥기 11:1-20\”/ 작성: 이동규

본문 욥기11장1-20절

찬송가 146장 ‘저 멀리 푸른 언덕에’

오늘 말씀은 욥의 친구 나아마 사람 소발의 대답입니다. 계속되는 욥과 욥의 친구들의 변론으로 공격과 방어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곧 욥의 친구들은 욥을 공격하고 욥은 친구들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론의 주제는 의입니다. 옳음입니다. 곧 욥의 친구들은 욥이 의롭지 못한 결과로 지금 이런 고난을 겪고 있다는 것이고, 욥은 자신은 여전히 옳고 의로우며 지금의 고난은 무고하게 당하는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욥과 욥의 친구들의 변론을 통해 깨달음을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로 오직 하나님만이 의로우신 분이며, 의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일깨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스스로 자기를 의롭다고 해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누군가 나를 의롭다고 한다고 해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의의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시기에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바로 의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의롭다 하시기에 사람이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믿음의 의 안에서 말씀을 따라 성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2-4절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네 말에 의하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소발은 먼저 앞에서 욥이 한 말을 거론하며 ‘너는 너 스스로 자랑하고 정결하다고 말하는구나’ 라고 욥을 비판하고 반박합니다.

5-6절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지혜의 오묘함으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 그리고 이어 욥이 말을 하듯 하나님께서 욥을 향해 입을 열어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언어들이 있습니다. 나라마다 종족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언어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중요하게 대별되는 두 개의 언어가 있습니다. 바로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은 크게 이 두 개의 언어로 나뉘며, 그 언어로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어적 존재인 사람에게는 먼저 언어를 통한 소통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언어를 통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일이 진행되고,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고, 관계가 발전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시중 서점에 대화와 관련된 책들이 많이 나와 있기도 하고, 사람들은 대화의 기술에 큰 관심을 갖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에게는 사람의 말보다 더 우선적이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말보다 우위에 있으며 절대적인 우선권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언어가 있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이 세상 만물과 인간과 언어를 존재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본질적 문제인 죄 문제를 해결해 주고,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어적 존재인 사람이 언어 사용을 바르게 하고, 선하고 지혜롭게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경험하고, 말씀에서 온전한 말을 배우고 말을 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과 선하고 신실한 말은 영원한 자신의 현실과 평가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말씀과 함께 말씀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7절에서 9절은 하나님의 오묘하심과 광대하심에 대한 소발의 증언입니다. 7-9절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행하심은 오묘함, 그 자체입니다. 인간의 판단이나 지혜로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신비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측량할 수 없는 신비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고, 지금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하나님의 은혜의 지도를 우리 인생 속에 그려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10절에서 20절은 크게 하나님은 죄에 대해 상관하지 않으시거나 모르시는 분이 아니라, 반드시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증언입니다. 11절입니다.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하나님은 죄를 상관하지 않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무관심하시거나, 방치하시거나, 용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악함과 불의와 죄를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죄에서 돌아서는 것이 답입니다. 궁극적으로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알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속죄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말씀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굳게 서서 두려움 없는 인생을 살고, 참된 소망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죄가 넘치는 시대입니다.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써대고, 쉽게 동조하고 즐기며, 함부로 사는 악함이 습성이 된 절망의 시대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들이 죄에 병들어 있습니다. 그런 인생에게는 약속의 소망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의를 경험한 그리스도인 된 자들이 누구보다 말을 조심하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말씀과 함께 말씀을 따라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는 동안 언제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갈 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고, 모든 비정상이 정상이 됩니다.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삶은 비로소 제 모습을 살며, 인생 지도는 비로소 바르게 그려집니다. 말씀은 모든 것을 회복하고, 온전케 하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돌아가 말씀을 기억하며 기꺼이 주님께 드려진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의를 경험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의안에서 말을 조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며, 기꺼이 주님께 드려진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사는 하루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근본적으로 의는 누구의 것이며 누구에게서 나옵니까?

2. 인간의 언어보다 우위에 있고 절대적으로 우선하는 언어는 무엇입니까?

3. 주님 안에서 자신의 언어 사용은 과연 어떠한지 진심으로 돌아봅시다.

4. 하나님은 죄에 대해 어떤 분이십니까?

5. 그리스도인이 매일 돌아가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작성: 이동규)

매일말씀묵상. 2월 12일. 욥기 11장. > 매일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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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1장.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

1. 욥의 세 번째 친구 소발이 처음으로 입을 엽니다 . 경험과 개인적인 계시에 의존하는 엘리바스 , 전통에 의거하여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빌닷 , 이제 소발은 욥의 처한 상황을 평가하되 , 욥의 탄식을 조금도 동정하지 않습니다 . 소발은 세 친구 중에서 가장 잔혹하고 무례합니다 . 소발은 자기 견해와 충돌하는 것을 조금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

2. 소발의 말은 욥에 대한 정죄와 (2~3) 경멸 어린 질책으로 시작합니다 (4~5). 욥이 받고 있는 벌은, 욥이 지은 죄에 비하면 가벼운 것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도 욥은 불평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소발은 하나님의 지혜를 예찬하면서 네가 어떻게 그 지혜를 알 수 있다고 감히 하나님 앞에서 너의 무고함을 주장하느냐고 욥을 질책합니다(7~9). 하나님 앞에서 말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3. 사실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그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도 이 말씀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소발이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소발 자신은 얼마나 하나님을 알고 지혜를 알기에, 이렇게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 말하며 욥을 꾸짖을 수 있는가 말입니다.

4. 소발에 말에 따르면, 욥이 처한 상황은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 욥이 도덕적으로 부패한 자인 것을 규정하는 것이므로 , 소발이 욥에게 촉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회개입니다 . 회개하면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13~20). 욥은 자신이 정당하다고 소리치지만, 그 소리는 무시하고, 욥의 처한 상황이 욥이 죄인이라는 증거이니, 그저 회개하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5. 소발이 촉구하는 회개는 네 단계입니다(13~14). 1)마음을 바로 정하고, 2)주를 향하여 손을 들어 간구하며, 3)손에 죄악이 있거든 버리고 4)불의가 자기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15~19절에서는 그 회개에 따르는 복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회개하면 모든 것이 회복될 것이라고 소발은 말하면서, 욥이 옳다고 주장하는 모든 말을 멈추고,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6. 믿음의 삶은 회개와 순종에 기초한다는 소발의 말은 옳습니다 . 그러나 다른 친구들의 말처럼 그것은 일차원적인 혹은 반쪽의 진리일 뿐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예측할 수 없게 ‘겉으로 보기에’ 불공평한 고난을 허락하실 때도 있습니다. 소발은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기 지식과 논리에 꿰어 맞추려고 할 뿐입니다. 이것이 욥의 마음을 더욱 쓰리게 했을 것입니다. 잔인하게도 소발은 욥의 가장 깊은 필요들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7.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제와 자매들에게 ,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 뿐인 , 신앙의 단순논리를 적용하여 ‘ 회개하라 ’ 고 촉구해야만 한다면 ,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이 본문에 기록된 소발의 말들입니다 . “ 옳은 것은 언제나 사랑과 함께 가야 합니다 .” 공의와 사랑은 항상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진리를 말하되 그것은 언제나 사랑 안에서 행해져야 합니다(엡 4:15). 우리가 우리의 이웃에게 소발과 같은 끔찍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 “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 고전 13:2).”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알량한 지식으로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아는 것처럼 행세하지 않게 하시고, 참된 것 곧 진리를 말할 때도 사랑으로 말하도록 은혜를 허락하여 주셔서, 저희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깊이 드러내고, 곤고한 형제들이 저희로 인하여 은혜를 경험하고 회복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81107 다 보고 계신 하나님 (욥기 11장 1-12절) – 코너스톤장로교회

http://thececc.com/wp-content/uploads/2018/11/20181107.mp3 욥기 9-10장의 긴 지면을 통해 욥은 자신의 결백함과 의로움을 친구들에게 변론했습니다. 자신을 이러한 고난을 당할 만한 그 어떠한 죄도 짓지 아니하였으며, 하나님께 자신을 괴롭히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그만 멈추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차라리 죽게 내버려 달라고 까지 말합니다. 욥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말까지 했겠습니까? 한참 욥의 말을 듣고 있던 세 번째 친구 소발… 안타깝게도 그 역시 나머지 두 친구들처럼 욥을 위로하기 보다는 욥을 질책합니다.

“(욥 11:2)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입이 부푼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욥은 자신의 처지를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소발은 오히려 말이 많은 욥이 어리석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소발은 자신이 어리석은 욥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소발이란 사람의 성격을 보게 됩니다. 친구라는 사람이 욥의 고통 때문에 위로 해주기 위해서 입을 열기는커녕 아파하는 친구를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며 그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고 하는 소발은 참 냉정한 사람입니다. 친구의 진심도 헤아려 주지 못하는 이 사람이야말로 미련한 사람 아닐까요? 소발은 욥이 스스로를 의롭다고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평가 했습니다.

“(욥 11:4) 네 말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의 목전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소발은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는 욥이 사실은 자신의 죄를 감추고 헛된 말을 악의적으로 뱉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소발의 눈에는 욥이 거짓말쟁이로 보이는 것이죠. 그래서 소발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욥을 폄하합니다. “욥 너가 그렇게 의롭다고 하는 것은 악한 것이다. 죄를 지었으면 어서 실토해라!”는 식으로 소발은 욥을 질책합니다. 6절 후반절에 그는 말합니다. “너는 알라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 소발 참 무서운 사람입니다. 지금 전 재산을 잃어버리고 열 자식을 잃어버린 친구 욥에게 하는 말이 “너는 이거보다 더 큰 재난을 당해야 마땅했어!”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너를 불쌍하게 보셔서 너의 죄보다 가벼운 벌을 주신 거야. 이 정도면 양호한 줄 알아!”하고 욥에게 말하며 욥이 결코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할 처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을 죄인으로 단정짓고 그에게 이야기 하는데, 그 중 소발이 가장 욥을 나쁘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의 말은 무정하고 잔인합니다. 소발은 지금 욥이 받고 있는 고난이 작은 것이라고 말하며, 만일 욥이 이대로 회개하지 않고 자신의 결백만 주장한다면 하나님께서 더 큰 형벌을 내리실 거라고 경고와 협박까지 한 셈입니다.

7절부터는 소발이 욥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데, 너까짓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겠느냐는 식의 어투를 사용합니다. “(욥 11:7)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욥 11:8)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소발은 욥에게 지금 따지듯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 아까 너가 하나님 보고 ‘나는 의로운데 왜 나를 괴롭히십니까?’라고 말했지? 너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어떻게 다 측량하겠니? 너가 어떻게 전능자의 뜻을 다 알겠어? 너가 하늘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뜻을 다 알겠어? 음부보다 깊으신 주님을 어떻게 다 이해하겠어?” 소발은 무한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욥의 한계를 대조하며, 겸손한 태도로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9절, “(욥 11:9)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우리가 사람의 키를 재거나 물건의 크기를 잴 때 자를 사용하죠? 하나님의 크기는 무엇으로 잴 수 있을까요? 9절에 ‘그 도량은’이란 말은 하나님의 뜻과 지혜의 크기를 재기 위한 물건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다고 한 것은 크신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결국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소발은 욥에게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강조하며, 욥은 결코 하나님 앞에서 땅콩보다 작은 존재이니 함부로 입을 열지 말라는 식으로 욥을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욥에게 일어난 재앙이라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신 일인데 어찌 욥이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틀렸다고 이건 아니라는 식으로 뭐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그러면서 동시에 다시 한 번 욥이 이렇게 고통 당한 것은 그의 죄 때문임을 지적합니다. 11절 말씀, “(욥 11:11)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여기서 소발이 말한 ‘허망한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즉 소발은 욥이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함으로 하나님께 신성모독적인 일을 했다고 고발하고 있는 것이죠. “욥 자네가 앞서 말한 것은 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라네. 하나님은 악한 일을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시지만 다 보고계셔!” 이 말은 즉슨, 욥의 은밀한 죄를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오늘 욥을 향한 소발의 질책 그 크라이막스는 12절 입니다. “(욥 11:12)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12절은 소발이 욥을 대놓고 모욕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이걸 쉽게 다시 번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욥 11:12) 미련한 사람이 지혜로워지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들나귀가 사람 낳기를 기다리는 게 나을 걸세.” 누구보고 하는 말입니까? 고대 근동에서 들나귀는 가장 교만하고 미련한 동물로 여겨집니다. 지금 소발이 욥에게 하는 말이에요. “자네가 바로 교만하고 미련한 들나귀였구만!” 영어 성경에는 들나귀를 당나귀 혹은 노새로 번역 되어 있습니다. 혹시 당나귀나 노새 우는 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사람은 그게 무슨 말인지 당 채 알 수가 없습니다. 소발은 지금 욥이 하는 말들이 다 이렇게 아무 의미 없는 들나귀의 울음소리 같다고 빗대어 조소한 것입니다. 참 욥기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는 욥의 친구들이 얼마나 정 없고, 냉정한 사람들인지 꺠닫게 됩니다. 이 사람들이 정말 친구인지 의심이 될 정도 입니다.

욥기가 읽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러한 세 친구의 글들이 계속 이어지다보니까 어느 내용에서 은혜를 받아야 하는지 골라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원자력 기술이란 것이 잘 적용되면 많은 이들에게 유익을 줍니다만, 그것을 잘 못 사용하면 엄청난 해악과 인명피해가 일어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진리는 우리의 영혼을 자유케 합니다. 그러나 칼 같이 날카로운 진리를 가지고 상대방을 정죄하고 해하려는 욥의 친구들은 욥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가져다 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11절 말씀대로 ‘(욥 11:11)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하나님은 이 모든 광경을 다 보시고 진짜 누가 미련한 자인지, 누가 악한 자인지 다 판단하고 계셨습니다. 소발이 지금은 옳은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그는 하나님 앞에 책망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행위가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그것은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내 배우자, 내 가족, 내 직장 동료 혹은 다른 누군가가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유심히 지켜보고 계신 하나님께서 선과 악을 판단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악한 일을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 해도 다 보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가 행한 대로 하나님은 선과 악을 심판 하십니다. 오늘 이 하루 우리의 삶을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으로 들이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냉수 한 그릇

◈소발의 첫 번째 공박 욥기11장 출처, 정리

※하단 ◑적용 단락에 인사이트가 있어서, 스크랩 했습니다.

▶세 친구가 욥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을 보면, 각자의 성품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4:2 “누가 네게 말을 걸면 너는 짜증스럽겠지.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참을 수가 없다”

빌닷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8:2 “언제까지 네가 그런 투로 말을 계속할 테냐?

네 입에서 나오는 말이 거센 바람과도 같아서 걷잡을 수 없구나”

본문 2-3절에서, 소발의 시작하는 말을 보세요.

2 네가 하는 헛소리를 듣고서, 어느 누가 잠잠할 수 있겠느냐? 말이면 다 말인 줄 아느냐?

3 네가 혼자서 큰소리로 떠든다고 해서, 우리가 대답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네가 우리를 비웃는데도, 너를 책망할 사람이 없는 줄 아느냐?

그 강도를 놓고 볼 때 소발이 한 말이 가장 과격합니다.

따라서 엘리바스가 비교적 점잖은 사람처럼 보이고,

빌닷은 조금은 더 정죄하는 스타일의 사람처럼 보이고,

소발의 감정이 가장 격하고, 오만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욥이 하는 말을 쭉 듣고 있다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일축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소발이 던진 발언의 요점은,

인간의 제한된 지혜로서는 감추어져 있고

무한한 하나님 지혜의 신비를 다 헤아릴 수 없으므로

쓸데없는 변론을 즉각 중단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면

운명을 뒤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 對 제한된 욥의 지혜를 훈계하는 소발 11:2-12

▶소발이 욥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참을 수 없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바로 욥 스스로가 죄 없다는 결백성의 주장이었습니다.

소발이 볼 때 어리석은 인간이 짧은 지혜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와 무죄성을 주장하는 것이 주제 넘는 일입니다.

4 너는 네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고 주님 보시기에 네가 흠이 없다고 우기지만,

5 이제 하나님이 입을 여셔서 네게 말씀하시고,

6 지혜의 비밀을 네게 드러내어 주시기를 바란다.

지혜란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네게 내리시는 벌이 네 죄보다 가볍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6절을 보세요. 소발은 먼저 세 가지를 지적합니다.

-욥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흠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가당치 않다. :4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아둔한 머리로 헤아리기에는 너무 어렵다. :6

-하나님께서 욥이 지은 죄에 응당 받아야 할 벌보다 가벼운 벌을 내리신다. :6

이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런 말이 될 것입니다.

욥이 아주 짧은 지혜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숨겨진 무궁무진한 지혜의 빛에서 볼 때 어이없는 짓이며,

하나님의 지혜로 조명해 볼 때에도

욥은 오히려 당연히 받아야 할 벌보다 가벼운 벌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빌닷도 욥의 자녀들이 죽은 것은, 자기들의 죄 때문이라는 망언을 했지만, 8:4)

본문의 소발도, 친구치고는 아주 과격하고, 직설적인 언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 이런 관점에서 7-12절 말씀을 보세요.

7 네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다 알아낼 수 있느냐? 전능하신 분의 무한하심을 다 측량할 수 있느냐?

8 하늘보다 높으니 네가 어찌 미칠 수 있으며, 스올보다 깊으니 네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9 그 길이는 땅 끝까지의 길이보다 길고, 그 넓이는 바다보다 넓다.

10 하나님이 두루 지나다니시며, 죄인마다 쇠고랑을 채우고 재판을 여시면,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느냐?

11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잘못하는지를 분명히 아시고, 악을 보시면 곧바로 분간하신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지혜로 네게 공평한 환란을 내리셨는데, 너는 스스로 의로움을 주장하느냐?)

12 미련한 사람이 똑똑해지기를 바라느니 차라리 들나귀가 사람 낳기를 기다려라.

소발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의 4차원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늘보다 높고(높이), 스올보다 깊고(깊이),

땅 끝까지의 길이보다 길고(길이), 바다보다 넓다(넓이)는 것입니다(8-9절).

이 말씀은 엡3:18절에서 언급한 그리스도 사랑의 4차원성을 연상시킵니다.

“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지혜도, 그 높이와 깊이와 길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소발이 이와 같이 무제한적인 하나님의 지혜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욥의 어리석은 지혜와 비교하기 위함이지요.

바로 앞장(10장)에서 욥은 빌닷에게 대꾸하면서

하나님 창조의 선한 목적과 의미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소발이 보기에, 욥의 어줍잖은 지혜로

하나님 창조의 신비, 운운한다는 것이 가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7절 말씀을 보세요.

“네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다 알아낼 수 있느냐? 전능하신 분의 무한하심을 다 측량할 수 있느냐?”

무한하고 신비한 하나님의 지혜 앞에

감히 욥이 명함도 내밀 수 없다는 일갈(一喝=한 번 큰 소리로 꾸짖음)이지요.

이제 하나님의 지혜 앞에 선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겠느냐는 물음 앞에서의 무지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 앞에서의 무능 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11절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잘못하는지를 분명히 아시고, 악을 보시면 곧바로 분간하신다.”

그래서 네게 정당한 재앙을 내리셨다는 겁니다.

욥이 자신의 죄에 관해서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혜와 분별력이 넘치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결국 소발이 보기에, 욥은 미련하기 때문에,

자기 결백을 주장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욥은, 내가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재앙을 만나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왜 이러시는지 도통 모르겠다.. 는 논지를 펼쳤습니다.)

12절 말씀을 보세요.

“미련한 사람이 똑똑해지기를 바라느니 차라리 들나귀가 사람 낳기를 기다려라.”

소발은 욥을 미련한 사람, 원어대로 하면 골이 ‘텅빈 사람’인데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지혜롭기 되기는

아예 들나귀가 사람을 낳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해버립니다.

욥은 선천적으로 골이 빈 사람이기에

지혜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소발의 단정은

얼마나 가혹한 말인지요?

◑2. 회개냐? 고집이냐? 11:13-20

▶이렇게 무섭게 욥을 몰아 부치던 소발이

이제 욥에게 미래의 회복 가능성에 대해서 권고합니다.

엘리바스나 빌닷이나 소발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셋 다 욥을 심문하고 정죄한 뒤

반드시 미래에 대한 해결책도 함께 제시한다는 사실 입니다.(5:8 이하, 8:5-7)

“병주고 약준다.”는 속담 그대로이지요.

무엇보다도 소발이 제시한 해결책은 빌닷이 준 충고,

이른바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는 말씀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그러면 욥이 어떻게 해야지만 회복될 수 있습니까?

13-14절 말씀을 보세요.

13 네가 마음을 바르게 먹고 네 팔을 그분 쪽으로 들고 기도하며,

14 악에서 손을 떼고, 네 집안에 불의가 깃들지 못하게 하면.

여기 보세요. 욥이 지금 당하는 고난의 삶을 청산하고

서광이 비치는 미래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마음의 자세와 행실을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마음을 바로 정하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야합니다.

그런 다음에 죄악에서 떠나 불의를 청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어떤 축복이 기다립니까? 15-19절 말씀을 보세요.

15 너도 아무 부끄러움 없이 얼굴을 들 수 있다. 네 마음이 편안해져서, 두려움이 없어질 것이다.

16 괴로운 일을 다 잊게 되고, 그것을 마치 지나간 일처럼 회상하게 될 것이다.

17 네 생활이 한낮보다 더 환해지고, 그 어둠은 아침같이 밝아질 것이다.

18 이제 네게 희망이 생기고, 너는 확신마저 가지게 될 것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걱정할 것이 없어서, 안심하고 자리에 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19 네가 누워서 쉬어도 너를 깨워서 놀라게 할 사람이 없고, 많은 사람이 네게 잘 보이려고 할 것이다.

부끄럼 없이 얼굴을 들 수 있으며 편안해져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될 것이며

괴로운 일을 다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둠이 물러가고 아침 같이 환한 세상이 펼쳐질 것이며

희망에 가득차 아무 걱정거리가 없이 자리에 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욥이 자기의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기만 하면

소망과 안식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나 만일 욥이 고집을 부리고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20절을 보세요.

20 그러나 악한 사람은 눈이 멀어서, 도망 칠 길마저 찾지 못할 것이다.

그의 희망이라고는 다만 마지막 숨을 잘 거두는 일뿐일 것이다.

만일 욥이 악인의 길을 계속 고집할 경우

눈이 어두워 도망칠 길마저 찾지 못하고, 쓸쓸히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적용

▶1. 우리가 욥기를 읽을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욥과 세 친구들의 논쟁편입니다.

언뜻 보아서는 세 친구들이 훨씬 더 신앙적으로 보이고

옳은 말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면에 욥의 말을 들어보면,

불신앙적이고 지나치게 도전적이고 불순종적인 것처럼 비칩니다.

내용을 모르고,

그저 그가 한 말만 놓고 (모르는 사람이) 평가한다면,

욥의 세 친구들은, 똑 부러지는 설교/권면/논리/훈계를 한 것이고,

그에 반해서 욥은, 하나님께 대들고, 이해가 쉽지 않은 논리를 들고 나옵니다.( 9~10장)

이러한 피상적인 느낌은

욥이 세 친구들과 더불어 세 바퀴 논쟁을 벌이는 내내 계속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가면 하나님께서 친구들이 아닌 욥의 손을 들어주십니다.(42:7)

다시 말해 옳다 인정받은 사람은 욥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께서 비록 옳은 논리를 가졌더라도

선생인냥 정죄하는 사람들이 아닌

욥과 같이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반항적이고 전투적인 탄식까지도

다 받아주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지금 ‘외모’만 놓고 본다면, 세 친구들이 훨씬 의인이고,

욥은 그들의 말처럼 ‘큰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욥은 지금 풍비박산이 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언사’만 놓고 본다면, 세 친구들이 훨씬 의인이고,

욥은 그들의 말처럼 ‘큰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욥은 지금 말이 거칠게 들립니다.

‘한탄/죽고 싶다/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외모만 보고, 또는 그의 언사만 보고

사람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십중팔구, 욥에게 돌을 던졌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가라지를 뽑지 말고, 추수 때까지 그냥 두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가라지를 뽑는다고 하면서, 알곡(욥 같은)을 뽑기가

십중팔구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비방과 비난은 신중하게,

가급적 내가 하지 않고, 하나님의 판단에 다 맡기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2. 우리는 친구들에게서 교사적인 냄새, 율법주의적 취향을 강하게 느낍니다.

이들이 던지는 말은 오랫동안 전수되어 내려온 지혜의 보고에서 나온 말이기에

거의 다 옳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점은 친구가 얼마나 큰 아픔을 겪고 있는가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다는데 있습니다.

이들은 인과율로 욥이 당하는 고난의 문제를 풀어보려 했지만

욥은 자신의 고난이 그와 같은 고전적인 이론만으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는 생각에서

전투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를 보입니다.

이것은 신앙 없는 교만과 불순종의 소치가 아니라

하나님을 진실로 대면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 베드로의 통곡, 믿음의 손익분기점

예수님 시대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적어도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자녀요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인격 존재로 여기신

세리와 창기들을

그냥 율법적인 전통을 따라 죄인들로 보았습니다.

그들의 말은 옳았지만

그들의 시각과 삶이 하나님을 닮지 못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에게는 욥과 같은 실존적인 고통의 경험 없이

객관적인 관찰자의 입장으로 해석하고 정죄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고만 합니다.

여기에, 친구들과 욥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있습니다.

소발의 말도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옳은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혜롭다 한들

어떻게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지혜를 당할 수 있단 말입니까?’ :7~:9

욥이 아무리 하나님 앞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에 이의를 제기한다한들

어찌 하나님의 숨겨진, 신비한 지혜까지 다 헤아릴 수 있습니까?

(그 지혜로, 하나님은, 올바른 판단을 내리셔서, 욥에게 환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소발이 무식했다면, 이렇게까지 비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식하니까, 자기 눈에 비난할 꺼리가 더 많이 보입니다.

오늘날에도 ‘내가 말은 바르게 한다’는 사람들,

‘입은 삐뚤어져도, 바른 말을 한다’는 사람들,

만약 사랑이 없다면.. 그건 결코 바른 말이 아닙니다. 정죄의 말입니다.

오늘 나는, 내 바른 말로, 누구를 정죄하고 있습니까?

그를 위해, 조용히, 대신 중보기도해야 하지 않습니까! 주1)

▶3. 그러나 이제 12장에서 드러나겠지만

소발이 지적하는 것처럼

욥이 자기 지혜의 연약함을 모르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욥의 탄식과 저항은

견딜 수 없이 깊은 고난의 심연에서 분출되어 나온

자연스러운 반응일 뿐입니다.

그의 탄식은 어떤 지식이나 교리나 객관적 관찰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처절한 고난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자연스레 쏟아져 나온

인간의 반응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담학에 있어서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자기의 고통을 다 털어놓고

하소연만 할 수 있어도, 웬만한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 합니다.

욥도 더욱 더 온전하고 성숙한 신앙 인격으로까지 올라가기 위해서

이와 같은 탄식과 항의와 절규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즉, 우리 주위에, 이런 자기 격정을 토로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꾸 설교하려고 하지 말고,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그의 격정과 토로를.. 가만히 들어주는.. 다 받아주는

그런 성숙한 상담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국 소발의 공박을 읽으면서 어설픈 논리로

고난당하는 이웃의 아픔을 해석하고 정죄하는 것보다

진지한 공감과 정직한 침묵이 훨씬 더 낫다는 사실을 또 다시 깨닫습니다.

…………………

주1)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 동생은 의식 불명인 상태로 누워 있었다.

튜브와 전선들이 동생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동생을 기계에 연결시키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서는 불규칙한 심장 박동이 물결선을 그리고 있었다.

목사로서 나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가족들을 종종 만나왔다.

나는 그 때마다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적절한 말, 용기를 주는 성경 구절,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위로받는 입장에 처하게 되자,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힘든 기간동안 제수씨(동생의 아내)와 나는 희망과 포기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우리는 모든 방문객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의식불명인 상태에서 깨어나 정상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사한 마음으로 들었다.

또한 슬픈 시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그들이 들려주는 사려 깊은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들이 우리를 염려해주고 있음을 우리는 알았다.

하지만 많은 방문객들은 말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와, 말하면서 문을 닫고 나갔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이 같은 처지에 놓였을 때 그들에게 뭔가 ‘말’을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항상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의 친구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우리와 함께 침대 옆에 서서 동생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서 있었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갑자기 감정을 수습하고 그가 말했다.

“아, 정말 안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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