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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 상 21 장 | 열왕기상 21장 72 개의 자세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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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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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은 CGNTV와 공동체성경읽기(PRS)가 공동기획하여 제작한 영상으로 무단으로 영상을 편집 및 재배포가 금지됩니다.
*영상 제공 : CGN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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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1 – 나봇의 포도원 – Church of Jesus Christ

나봇의 포도원.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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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9/20/2022

View: 2767

열왕기상 21 KLB – 나봇의 포도원 – 이스르엘에 – Bible Gateway

열왕기상 21 … 21 이스르엘에 나봇이라는 사람이 아합의 궁전 부근에 포도원을 가지고 있 었다. … 21 그래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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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10/18/2022

View: 9413

2017/09/18(월) “열왕기상 21:1-29” / 작성: 문종윤

본문 열왕기상 21:1-29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오늘 말씀은 아합 왕이 자신의 왕궁 근처에 있는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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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8/30/2021

View: 3346

열왕기상 21장 & 성경주석 – BIBLE STORY

악한 왕 아합이 회개하자 하나님이 그의 심판을 연기함. <열왕기상 21장 개역한글>.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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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ble-story.tistory.com

Date Published: 12/13/2021

View: 2584

매일말씀묵상. 10월 18일. 열왕기상 21장. – 하늘품은교회

우리의 심령, 우리의 가정,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형제들, 우리 교회의 성도들, 이들을 믿음으로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죄와 타협하거나, 탐욕에 휩싸이지 않게 하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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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apoom.or.kr

Date Published: 3/18/2021

View: 6871

열왕기상 21장 강해(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 – Daum 블로그

왕이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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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1/24/2022

View: 8011

아합의 탐욕과 그로 인한 범죄 (왕상 21:1-29)

2016년 2월 10일 수요예배.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0 ✦. “아합의 탐욕으로 인한 범죄”. (열왕기상 21장 1-29절). [들어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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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pccoh.org

Date Published: 12/26/2022

View: 1159

열왕기상 21장 본문 설명 – Walking with the Bible

열왕기상 21장은 북 이스라엘 왕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자기 정원으로 사용하려고 악한 방법으로 빼앗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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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yusikjung.blogspot.com

Date Published: 5/30/2021

View: 6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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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1장
열왕기상 21장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열왕기 상 21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 Views: 조회수 15,7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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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2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EYoicJO0S8w

열왕기상 21

나봇의 포도원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5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6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7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8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9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10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11 그의 성읍 사람 곧 그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이세벨의 지시 곧 그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12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13 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14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15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16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17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8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19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20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21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22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23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24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

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26 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

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28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9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2017/09/18(월) “열왕기상 21:1-29” / 작성: 문종윤

본문 열왕기상 21:1-29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오늘 말씀은 아합 왕이 자신의 왕궁 근처에 있는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이야기입니다. 아합은 나봇에게 더 좋은 포도밭을 주거나 돈으로 사겠다고 했지만 나봇은 거절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모든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 땅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분배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잘 지키며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나봇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봇의 대답을 들은 아합은 4절을 보면 “근심하고 답답하여” 머리를 싸매고 자리에 누워 식사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때에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 아합에게 주기 위해 아주 사악한 계략을 꾸몄습니다. 8절부터 10절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이세벨의 계략은 마치 아합 왕이 편지를 쓴 것처럼 합법적인 절차로 위장을 합니다. 그리고 금식을 선포하여 경건함으로 위장을 합니다. 그리고 불량배 두 명으로 거짓 증언을 하게 함으로써 나봇을 돌에 맞아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세벨의 단독범행이 아니었습니다. 11절을 보면 나봇과 같은 성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나봇의 무죄함을 알고도 아합 왕과 이세벨의 미움을 받을까봐 나봇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악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무죄한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우고 매장시키는 일은 종종 있는 일입니다. 악한 것임을 알고서도 자기에게 피해가 올 까봐 협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세벨은 아합이 갖지 못해 안달이 났던 나봇의 포도원을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근심하고 답답하여 자리에 누워있던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 일어났다” 고 16절은 말씀합니다. 아합처럼 우리 인간은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해 놓고서 얻은 재물을 놓고 매우 기뻐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매우 싫어하십니다. 이 세상은 아합과 같은 악인이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는 것처럼 불의가 지배하는 세상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때가 차면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하기에 오늘 우리가 무엇을 뿌리며 살아가는 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뿌리든지 하나님께서는 다 보시고 우리를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내려갔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다고 17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로 하여금 아합왕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댓가로 아합이 받아야 할 하나님의 재앙은 21절부터 26절까지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 뿐만 아니라 그 집안 전체를 멸하시고 그 아내 이세벨도 개들이 먹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재앙의 말씀을 들은 아합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27절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하나님의 재앙의 말씀을 들은 아합 왕은 금방 사람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엘리야와 아합은 서로 원수지간처럼 한 번도 좋은 말이 오고 간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엘리야가 보기에 아합이 근신하는 행동은 어쩌면 가식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 그 죗값을 톡톡히 치르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다시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엘리야로 하여금 아합을 너무 가식적인 사람으로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점이 바로 우리 인간이 죄인을 보는 눈과 하나님이 죄인을 보시는 눈과 다른 점입니다. 사람들은 악독한 죄를 지은 죄인에게 너그럽지 못합니다. 비록 그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도 어서 빨리 그 죗값을 치루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봇의 억울한 죽음을 당장이라도 아합왕에게 갚아주시는 것처럼 엘리야를 통해 재앙을 선포했지만, 아합의 뜻밖의 겸비한 모습으로 보시고는 그 재앙을 아합의 시대에 내리지 않고 그 아들의 시대에 내리시기로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아합의 형벌을 잠시 집행유예 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99가지를 잘하고 한 가지 잘못한 것으로 인해 그 잘한 것 99가지를 덮어버리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99가지를 잘못하였다 할지라도 한 가지 잘한 것이 있다면 그 한 가지 잘한 것으로 인해 그 잘못한 99가지를 덮으시며 인자한 눈으로 바라보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커다란 폭풍과 소나기속에 잠시 햇살이 비치는 것처럼, 죄악의 폭풍과 소나기속에 잠시 회개의 햇살이 비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희미하게 비추는 회개의 햇살도 바라보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이 베옷을 입고 금식을 하며 풀이 죽어 다니는 모습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님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인자하심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악독한 아합 왕일지라도 겸비의 모습을 보일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고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재기의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하루도 이러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인자하심을 바라보는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하루의 시간을 주님안에서 영원한 의미로 건져 올리며 살아가는 한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통해 이득을 얻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는지 되돌아봅니다. 하나님, 오늘 이 하루도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인자하심을 바라보며 주님안에서 영원한 의미로 건져 올리며 살아가는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어떠한 방법으로 차지했습니까?

2.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자 어떠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합에게 임했습니까?(19절-24절)

3. 하나님께서는 아합의 겸비함을 보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4. 아합을 통해 죄인(악인)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묵상해 보십시오.

(작성: 문종윤)

열왕기상 21장 & 성경주석

<열왕기상 21장 흐름정리>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 토지는 개인의 소유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소유이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업이었다. 따라서 그 기업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봇의 포도원을 탐낸 아합은 이세벨과 공모하여 나봇을 죽이고 그 포도원을 탈취하였다. 이 사건은 단순한 권력형 비리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언약과 규례를 거스른 죄악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그들이 비참한 죽임을 당하리라고 저주하셨다. 한편, 이런 저주를 선고받은 아합이 회개하자 하나님은 심판을 일시 유보하셨다. 만일 그와 그 자손이 계속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하나님은 심판을 거두셨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까닭에 결국 저주는 그대로 성취되었다.

<열왕기상 21장 줄거리>

1.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얻지 못하여 근심함.

5. 이세벨이 나봇에게 편지를 보내고, 왕을 저주한 죄로 그를 쳐죽이게 함.

15. 아합이 포도원을 취함.

17.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에게 심판을 선언함.

25. 악한 왕 아합이 회개하자 하나님이 그의 심판을 연기함.

<열왕기상 21장 개역한글>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 왕 아합의 궁에서 가깝더니

2. 아합이 나봇에게 일러 가로되 네 포도원이 내 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나물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합의하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찌로다 하니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업을 왕께 줄 수 없다 함을 인하여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

5. 그 아내 이세벨이 저에게 나아와 가로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6. 왕이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저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않겠노라 함을 인함이로라

7. 그 아내 이세벨이 저에게 이르되 왕이 이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8.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쳐서 그 성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인들에게 보내니

9.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힌 후에

10. 비류 두 사람을 그 앞에 마주 앉히고 저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저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 하였더라

11. 그 성 사람 곧 그 성에 사는 장로와 귀인들이 이세벨의 분부 곧 저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대로 하여

12.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13. 때에 비류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거를 지어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저를 성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고

14.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15.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포도원을 취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16. 아합이 나봇의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17.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8.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거하는 이스라엘 왕 아합을 만나라 저가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19. 너는 저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하셨다 하고 또 저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셨다 하라

20.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나의 대적이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21.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22. 또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의 노를 격동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23.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개들이 이스르엘 성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찌라

24.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저가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음이라

26. 저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한것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

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

28.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29.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저가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열왕기상 21장 성경주석>

21:1 포도원.

이스르엘은 길보아산 북쪽에 있는 에스드랠론 평지에 있었다. 이곳은 북동쪽을 향한 바위투성이 산비탈의 깎아지른 산마루에 있었다. 고대의 포도원들이 도성 동편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아합의 궁정도 그와 같은 쪽에 있었을 것이고(참조 18:45 주석), 거기서 요단강 쪽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다 볼 수 있었다.

21:2 아합이 나봇에게 일러 가로되.

이 이야기는 아합 왕의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급한 성격과 왕비 이세벨의 매몰차고 용의주도한 잔인성을 잘 드러낸다.

21:3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나봇에게는 자신의 포도원을 양도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레위기의 율법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유업은” “이 지파에게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다 각기 조상의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민 36:7~9)이라고 규정한다. 만약 무슨 사정이 있어서 기업을 팔게 되면 그 기한에 미쳐 본 소유주의 가문으로 되돌리도록 하는 특별한 법규가 마련되어 있었다(레 25:13~28). 나봇은 자신의 유업을 왕에게 양도하는 것이 레위기에 나오는 율법의 영적인 목적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여겼다.

21:4 근심하고 답답하여.

전에도 아합은 벤하닷과의 거래가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행한 것이 아님을 알고 “근심하고 답답하여” 집으로 돌아 온 적이 있었다(20:43). 이번에도 그가 마음에 둔 포도원을 얻을 수 없게 되자 또다시 “근심하고 답답하여” 집으로 갔다. 그의 태도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버릇없는 어린아이의 태도와 같다. 그가 제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자 골이 나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워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다.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얻지 못한다면 그의 온 왕국도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21:7 왕이 이제…다스리나이까.

이세벨의 말에는 멸시와 조롱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한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람이 작은 땅 한 필지도 마음대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하잘것없는 백성 한 사람이 왕의 뜻을 꺾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아합이 왕이란 말이냐? 그 문제는 쉽게 처리될 수 있었다. 그녀가 친히 그 문제에 관여하여 그런 일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여 주겠다는 것이다.

21:8 편지들.

포도원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이세벨이 그것을 어떻게 손에 넣든지 아합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세벨이 자신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도장을 찍는 것을 막지 않았으므로 아합도 그 비열한 행동에 대해 공동 책임이 있었다.

21:9 금식을 선포하고.

이 금식은 그 더러운 죄를 신성한 종교적인 외투로 가리고, 어떤 은밀한 죄가 저질러졌는데 올바로 속하지 않으면 온 도성에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올 것임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선포되었다. 이렇게 하여 거짓 송사와 피해자의 죽음을 위한 길이 마련될 것이었다.

21:9 높이 앉힌 후에.

높여 존경하기 위함이 아니라 공판에 붙이기 위함이었다.

21:10 비류.

(「제임스왕역」에는 “sons of Belial”[벨리알의 아들들]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무가치하고 사악한 죄악의 아들들. 악한 것은 무엇이든 저지를 수 있는 비열한 불량배들을 말한다(참조 삿 19:22; 20:13; 삼상 1:16; 2:12; 10:27; 25:17, 25; 30:22; 삼하 16:27; 20:1 등).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가운데서 그런 사람들이 발견되었다고 말한 것은 이스라엘에 관한 슬픈 기록이다.

21:10 두 사람.

율법에 규정된 대로(민 35:30; 신 17:6) 필요한 두 사람.

21:11 편지에 쓴 대로.

이 비열한 음모를 실현시키는 일에 도성의 관리들이 순순히 따랐다는 것은 동방의 전제주의(專制主義) 정치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최악의 특성이었다. 왕의 말이 곧 법이었다. 비열한 살인까지도 법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었다. 이렇듯 도성의 장로들과 귀인들이 기꺼이 순응한 것은 백성들의 깊은 도덕적 타락상을 나타낸다.

21:13 돌로 쳐죽이고.

왕하 9:26에 의하면 나봇뿐 아니라 그의 아들들까지도 돌에 맞아 죽은 것으로 보인다. 아간이 사형에 처해질 때 그의 자녀들도 함께 돌에 맞아 죽었다(수 7:24, 25). 나봇의 아들들을 제거하면 포도원의 법적 소유권을 주장할 상속자가 없어질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죄의 가증함은 배가(倍加)되었다.

21:15 취하소서.

나봇과 그의 아들들이 죽었으므로 이제 나봇의 모든 소유는 왕의 소유가 되었다. 아합은 뒤따를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즉시 내려가 나봇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삼았다.

21:17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세벨은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을 미처 생각하지 않았다. 하늘에 계신 여호와가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모두 보고 있었다. 아합의 그 끔찍한 죄를 책망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하늘의 기별을 전하기 위해 엘리야를 보냈다. 여호와께서는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당신을 위해 기꺼이 사명을 담당할 사람을 찾아가신다.

21:18 사마라아.

13:32에서처럼, 사마리아 성읍이 아니라 사마리아 지방을 말한다.

21:19 네가 죽이고…빼앗았느냐.

엘리야가 아합을 만나자 예를 갖추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왕이 손을 들어 자행한 잔인무도한 살인과 약탈 행위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아합에게는 변명이나 구실을 댈 만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의 끔찍한 죄는 즉시 그 흑막이 벗겨지고 왕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냈다. 곧 비정하게 사람을 죽이고 희생자의 재산을 탈취한 파렴치한 약탈자요 살인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21:19 네…피도 핥으리라.

선고는 참으로 공정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21:20 네가 나를 찾았느냐.

아합의 입술에서 이 말이 터져 나오게 한 것은 그의 죄된 양심이었다. 아합이 가장 대면하기 싫은 사람이 나타나서 그의 악한 행위의 현장에서 그를 붙잡은 것이다. 엘리야는 아합의 대적이 아니라 친구였다. 아합의 가장 흉악한 대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고, 따라서 엘리야는 그를 그 자신으로부터 구원하려고 애썼다. 하나님의 기별은 비록 유죄를 선고하는 것이었지만 거기에는 여전히 자비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아합에게 그가 뿌린 씨앗의 무서운 열매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회개할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21:21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참조 16:12.

21:22 집처럼 되게 하리니.

여로보암의 집이 망할 때 아합은 부정할 수 없는 실물 교훈을 받았다. 그의 집은 사라졌다. 그의 집이 망한 것은 죄 때문이었다. 아합은 그와 똑같은 과정을 밟고 있으며, 따라서 똑같은 운명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21:23 개들.

동방의 개들은 온갖 종류의 썩은 고기를 먹어치우는 청소부이다. 만약 이세벨의 시체가 그냥 노천에 버려진다면 주변의 개들이 금방 먹어 치울 것이다.

21:24 죽은 자.

이세벨에게 예언된 운명은 그의 자녀들에게도 닥칠 비극적인 운명이었다.

21:25 아합과 같이.

25, 26절은 막간에 삽입된 구절로, 아합의 집에 끔찍한 파멸이 닥칠 이유를 드러내고 있다.

21:25 충동되었음이라.

죄는 아합의 가슴속에서 타는 불이었지만 이세벨이 계속 부채질하여 가장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게 하였다. 아합이 꼬임을 당하여 바알 숭배를 받아들이고(16:31),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도록 허락하고(18:4), 엘리야를 추방하도록 허락하고(19:2), 마침내는 나봇을 죽여 그의 땅을 빼앗은 것(21:7, 15)은 모두 이세벨의 영향 때문이었다.

21:26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한 것같이.

고고학적 연구의 결과로 고대의 우상숭배와 관련된 행습들이 얼마나 가증스러웠는지 지금은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것에는 가장 비열한 형태의 죄악과 부도덕한 행위가 있었고, 잔인함과 피흘림이 있었으며, 구역질나고 타락한 의식이 수반된 귀신 숭배가 있었다. 이 모든 것 때문에 아모리인들과 가나안의 다른 모든 족속들을 그 땅에서 쓸어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아합이 그와 똑같은 행습들에 빠져 있었다.

21: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엘리야가 왕의 행동에 대해 던진 말은 준엄한 고발이었고, 따라서 그 말은 마치 비수처럼 아합의 가슴속 깊이 꽂혔다. 그 마음은 아직 온전히 악하지는 않아, 감동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이제 아합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있었고 자신에게 임박한 파멸을 생각하며 두려워 몸을 떨었다.

21:27 그 옷을 찢고.

엘리야의 호된 질책으로 아합은 베옷을 두르고 티끌에 앉았다. 그 교만하고 포악한 왕이 애도자의 옷을 걸치고 회개의 태도를 취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21:29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아합이 베옷을 입은 것은 단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은 물론 하나님도 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왕이 그의 치세 초기에 여호와께 이렇게 돌아섰더라면 백성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온 나라를 뒤흔드는 큰 부흥을 가져왔을 것이다. 아마도 회개가 너무 늦은 것이었든지 아니면 대부분 공포심에서 나온 회개의 몸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동기가 무엇이든 하나님은 양심의 아픔이 아무리 미약하다 해도 그것을 보았고, 왕의 자책과 슬픔의 말에 귀를 막지 않았다. 하나님은 훗날 니느웨의 왕과 백성들이 베옷을 입고 금식하는 것을 주목하신 것처럼 아합 왕이 베옷을 입고 금식하는 것을 주목하셨다.

21:29 저의 시대에.

하늘이 내린 심판의 선고는 흔히 조건적이다. 사람이 진지하게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시기 때문에 심판을 면할 수도 있다(렘 18:7, 8; 욘 3:4, 5, 10). 아합은 자기의 집에 대하여 예언된 파멸의 운명을 일시적이나마 면할 수 있을 것임을 알고 만족스러워했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매일말씀묵상. 10월 18일. 열왕기상 21장. > 매일말씀묵상

열왕기상 21장. 불의한 시대를 살았던 한 의인의 이야기.

1. 아합은 수도 사마리아 외에 이스르엘에도 왕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그는 그 근처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가지고 싶어 했습니다 . 이것은 분명히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 ,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범하는 일입니다 . 자기에게 값을 주고 팔라고 하는 아합의 요구에 대하여, 나봇은 포도원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기에 팔 수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2. 아합의 탐욕은 모든 이들의 탐욕이 그렇듯이 채워질 줄 몰랐습니다 . 나봇은 이런 아합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 나봇은 불신앙의 시대 , 우상숭배와 배교의 시대에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 신실한 남은 의인의 모습을 대변한다 할 수 있습니다 . 아무리 시대가 어두워져 가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남겨두십니다(19:18).

3. 나봇은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과 자기에게 주신 ‘ 기업 ’ 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 그도 물론 왕의 호의를 얻을 기회를 알았을 것이고 , 두둑이 땅값을 챙길 수 있는 기회도 알았을 것이고 왕에게 미움을 사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예상했을 것입니다 . 그러나 그는 일언지하에 ‘하나님께서 금하신다’고 거절합니다. 한 마디로 이것은 타협할 문제이거나 경제적인 유익을 얻을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은 결코 타협할 문제가 아닙니다 . 나봇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나오자, 유약하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왕 아합은 몸져 눕게 됩니다.

4. 상황을 알게 된 이세벨은 ‘ 조금의 주저함이나 망설임도 없이 ’ 극악한 음모를 꾸미고 이것을 실행에 옮깁니다 . 나봇의 성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왕의 도장을 찍어 편지를 보내고, 나봇에 대하여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거짓 증언을 할 사람 둘을 세워, 그 죄목으로 돌로 쳐 죽이라는 지시였습니다.

5. 이세벨의 이 악독한 음모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는 두 세 사람의 증인을 세우라는, 하나님의 율법 조항들에 맞추어서 진행시켰다는 것은 놀랍습니다(민35:30; 신17:5~6; 19:15). 하나님의 율법을 빙자하여 악독한 일을 하고 있는 것 입니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왕과 왕의 부인을 더 두려워했던 장로와 귀족들은, 이세벨의 분부를 수행하여 의인 나봇을 돌로 쳐 죽이고야 맙니다.

6. 하나님은 엘리야를 명하여 아합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을 여로보암이나 바아사의 집과 같이 멸하실 것이며, 개들이 시체를 먹음으로 이세벨이 땅에 묻히지도 못할 것을 전합니다. 성경기자는 덧붙이기를 , ‘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25) 고 말합니다 . 그렇다고 해서 모두 이세벨의 죄이며 , 아합의 죄는 가볍다고 핑계 댈 수는 없습니다 . 그는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한 것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기’ 때문입니다(26). 누구 때문에 죄를 행했다는 핑계가 하나님 앞에서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 그 누구 때문에 지은 죄는 , 결과적으로 내가 스스로 지은 죄입니다 .

7. 이 말을 들은 아합은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였습니다 (27). 이것은 분명히 회개의 표시입니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러한 태도를 보시고 재앙을 그의 시대에는 내리지 않고 다음 세대에 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29). 먼지만한 회개에도 은혜를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8. 그러나 정말로 진심으로 , 아합이 회개했을까요 ? 그의 이후의 모든 행적을 보건대 그의 회개는 진정한 것이었다고 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일시적인 그의 “ 겸비함 ” 을 인정해주셔서 심판을 연기해주시기까지 하십니다 .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합을 길게 기술하면서, 성경기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무궁하심을 더욱 드러내고 있습니다 . 하나님은 이 악한 왕에게 다른 왕들보다 더 많은 선지자를 보내셨고, 게다가 구약 역사 최고의 선지자라 할 엘리야를 보내주셨고, 참고 참으시면서 기회를 제공해주셨습니다 . 아무리 악한 자라도 하나님은 그의 회개와 돌이키심을 기뻐하시지 , 그의 멸망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 이 세상 누구에게라도 하나님은 심판하기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 매튜 헨리는 이렇게 주석합니다. “가식적인 회개가 그의 집에 심판의 일시 유예를 가져왔다면, 신실한 회개는 그의 집에 의롭다함을 가져왔을 것이다.”

9. 탐욕과 권력 ( 재력 ) 의 위험을 알아야 합니다 . 우리 안의 탐욕의 실상을 보지 못하면 위험합니다 . 그 정체를 모른 채, 권력이나 재력을 가지는 것은 더욱 위험합니다. 탐욕은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 대상입니다(갈5:24). 또한 죄의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 죄의 유혹들과 타협하고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 일언지하에 ‘ 하나님이 금하신다 ’ 고 말하고 멀리하는 것입니다 . 나봇이 했던 것이 이것입니다. 나봇은 아합과 앉아서 차를 마시며 오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언지하에 끊어버렸습니다. 죄와 대화하지 마십시오.

10. 나봇이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지키려고 감당한 희생은 ,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는 복된 믿음의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 당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기업,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손해를 무릅쓰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보배로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당신은 당신의 삶을 조정하고 있습니까? 믿음의 타협을 시대의 탓으로, 다른 사람의 유혹으로 핑계하고 책임을 돌릴 수 없습니다. 나봇은 물질적인 이익을 희생하고 통치자의 진노를 감수할 정도로 하나님의 법을 깊이 경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과 같은 불신앙의 시대에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믿음을 지키고자 할 때 ,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의 믿음을 지켜주셨습니다 . 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십시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불의하고 타락한 시대에, 끝까지 보배로운 믿음을 지키고, 주님께서 주신 기업을 지키게 하옵소서. 우리의 심령, 우리의 가정,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형제들, 우리 교회의 성도들, 이들을 믿음으로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죄와 타협하거나, 탐욕에 휩싸이지 않게 하시고, 끝까지 굳건하고 단단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된 삶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이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워터타운 한인 침례교회 사랑방

열왕기상 21 장 강해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

서론)

오늘 말씀은 아합 왕이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탈취한 사건 이야기입니다. 나봇이란 농부의 포도원이 사마리아 왕 아합의 별궁 가까이에 있었답니다 . 그런데 아합이 그 포도원이 얼마나 아름다고 좋은지 탐심을 억제 못하고 나봇에게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주겠으니 그 밭을 자신에게 달라고 회유합니다 . 그러나 나봇은 열조의 유업이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 이로 인해 자존심이 몹시 상하여 식음을 전패하고 근심하고 있는 아합을 위해서 그의 아내 이세벨이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나봇을 모함하여 죽이고 아합으로 하여금 그 포도원을 취하도록 한 이야기입니다 .

본론)

오늘 본문 1-4 절을 보면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 왕 아합의 궁에서 가깝더니 아합이 나봇에게 일러 가로되 네 포도원이 내 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나물 밭을 삼게 하라 .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 만일 합의하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업을 왕께 줄 수 없다 함을 인하여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

여기서 ‘그 후에’라는 말은 아합이 벤하닷과의 두 번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한 후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합이 벤하닷과의 두 번에 걸친 전쟁에서 하나님의 붙여주심으로 인하여 대승을 거두게 됨으로 인해 일시적인 안정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그는 자신의 궁전 가까이에 있는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보자 탐심이 동하여 자신에게 그것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 이스르엘은 사마리아에서 약 38km 거리에 위치해 있었고 , 에스드렐론 평원의 동쪽 끝에 있던 잇사갈 지파의 성읍이었습니다 . 이곳은 경치가 매우 아름답고 수려하여 왕이 별궁을 지어 거주한 곳입니다 ( 참조 . 왕상 18:45).

당시 아합이 이스르엘에 건축한 별궁은 상아궁이라고 불리워질 정도로 호화스러운 궁전이었습니다( 왕상 22:39).

. 그러나 나봇은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신 것이다”고 하며 거절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습니다 ( 레 25:23).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이방 백성들처럼 땅을 자기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없었습니다 ( 참조 . 레 25:23-28).

나봇은 그 밭을 아합 왕에게 주면 자신은 경제적으로 큰 이득을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토지법에 근거하여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 이것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자 노력했던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

나봇의 거절로 인해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자기 원하는 것을 소유하지 못해 짜증을 부리는 것과 같은 아주 유치한 행동이었습니다 .

본문 5-10 절 말씀을 보면 “그 아내 이세벨이 저에게 나아와 가로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 왕이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저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않겠노라 함을 인함이로라 . 그 아내 이세벨이 저에게 이르되 왕이 이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쳐서 그 성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인들에게 보내니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힌 후에 비류 두 사람을 그 앞에 마주 앉히고 저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저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 이세벨이 아합에게 ‘왕이 이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이까 ? ’라고 합니다 . 이 말의 의미는 ‘제발 당신은 이제 이스라엘 나라 위에 왕권을 행사 하십시오’라는 말입니다 .

이세벨은 왕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나봇이 사는 성읍 장로들과 귀인들에게 보냈습니다. 그 편지 내용이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힌 후 비류 두 사람을 시켜 나봇이 하나님과 아합 왕을 저주했다고 거짓 증거케 하여 돌로 쳐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9-10).

이스라엘에서 공적인 금식선포는 국가적으로 커다란 고난이나 재앙이 임했을 때나, 아니면 공동체 내에 숨겨진 악행이나 죄로 인해서 집단적으로 참회가 필요할 때 행하여졌습니다 ( 참조 . 삿 20:26; 삼상 7:6; 욜 1:14, 2:12 등 ). 여기서 이세벨이 금식을 선포하는 것을 보면 이세벨도 국가적 재앙이나 죄로 인해 금식하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율법을 악용하여 나봇이 죽게 한 것입니다 .

오늘 본문 11-16 절을 보면 “그 성 사람 곧 그 성에 사는 장로와 귀인들이 이세벨의 분부 곧 저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 때에 비류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거를 지어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 무리가 저를 성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고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포도원을 취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 아합이 나봇의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고 했습니다 .

당시 이세벨이 율법을 악용하여 죄없는 나봇을 죽였음과 당시 장로들과 귀인들, 곧 백성의 지도자들의 타락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나봇이 주은 후, 아합은 기뻐하며 그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해 깅릉 떠나갑니다 . 그때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였습니다 .

본문 17-19 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거하는 이스라엘 왕 아합을 만나라 . 저가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너는 저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하셨다 하고 또 저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말씀입니까?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한 아합의 태도가 어떻습니까 ? 20a 절을 보면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나의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라고 합니다 . 아합이 자신에게 여호와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엘리야를 향하여 ‘나의 대적자여 ! ’라고 합니다 . 엘리야가 자신을 대적하는 자라고 합니다 . 이것은 참으로 적반하장입니다 . 엘리야가 아합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아합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 얼마나 사악한 자입니까 ?

그러자 아합에게 엘리야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20b-26 절을 보면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 네가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의 노를 격동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개들이 이스르엘 성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저가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음이라 . 저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한 것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 ”고 저주했습니다 .

그러면 아합에게 임할 하나님의 재앙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는 또한 아합 집으로 여로보암과 바아사의 집처럼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 여로보암과 바아사는 다같이 자신의 왕조를 열었으나 부하에 의해 살해 당하고 왕조를 연지 2 대만에 모두 멸문지화를 당한 인물들입니다 . 이들이 이처럼 엄청난 화를 당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신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숭배로 이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왕상 15:29-30; 16:8-14).

27-29 절 말씀을 보면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 저가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

엘리야로부터 여호와의 재앙에 대해서 들은 아합은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며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합이 결국 회개한 모습을 말해 줍니다 . 고로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아합의 회개를 감안하셔서 그의 생애에는 그 집에 재앙을 내리지 않고 그 아들의 시대에 그 집에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하십니다 . 역대하 22:8 절에 보면 여호와의 이 말씀대로 아합의 아들 요람 때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

결론)

우리는 아합이 회개했을 때 그것을 기억하시고 그 집에 대한 재앙을 당대에 내리지 아니하시고 그 아들 대에 내리시겠다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합처럼 빼앗고 죽인 자라도 회개하면 자비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 우리는 이 사실을 다윗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 참조 . 시 51 편 ).

우리도 종종 하나님 앞에 불순종의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마다 속히 하ㅏ님 앞에 무릎을 끓고 회게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면 큰 징벌을 면할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이 원하시는 심령은 회개 자복하며 통회하는 심령이라 했습니다. 늘 하나님 앞에 겸손히 행하시는 여러분과 저가 되길 원합니다 .

040919 안익선 목사

아합의 탐욕과 그로 인한 범죄 (왕상 21:1-29)

요즘 진행되고 있는 미국 대선후보 경선 뉴스를 보면 그 열기가 정말 대단합니다. 경선에서 1등이 되는 것뿐 아니라, 2등과 3등이 누가 되느냐에도 열기가 뜨겁습니다. 그토록 힘들게 고생해서 정치를 하고 권력을 손에 쥐려고 애를 쓰는 이유는, 힘을 갖게 되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다는 착각 비슷한 소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그런 정도인데, 절대군주 체제의 왕정 시대에 왕이 되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진 힘이 클수록 그것이 잘못 사용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칩니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이스라엘 왕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탐욕을 채우는 데에 사용함으로써, 자신과 백성들과 나라 전체를 불행으로 몰고 갔습니다. 권력자가 주어진 힘을 잘못 사용할 때 어떤 재앙이 올 수 있는지를 아합이 잘 보여줍니다.

1. 아합의 탐욕과 범죄

1) 근심하는 아합

지난 본문에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께 불순종한 아합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와서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을 선포했는데도, 아합은 회개하지 않은 채 그냥 근심하고 답답해하며 분노하기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다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왕으로서 아합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래 가진 사람일수록 욕심이 더한 법이라, 아합은 자신의 궁전과 이웃해 있는 이스라엘의 포도원이 무척 탐이 났습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인 나봇에게 그것을 팔라고 요구합니다.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1-2절)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갖기를 원했던 데에는 별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자기 궁전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사서 채소밭을 삼겠다고 합니다. 그 대신 훨씬 더 좋은 포도원을 주려고 하고, 그게 싫으면 충분한 값을 치르겠다고 합니다. 아합은 왕의 제안이고 이 정도의 조건이면 나봇이 당연히 받아들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상 외로 나봇은 왕의 제의를 단번에 거절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3절)

원래 이스라엘의 토지는 하나님의 소유로서 개인이 함부로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각 지파의 크기와 필요에 따라 직접 지파별, 부족별로 나눠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지파 자손대대로 물려주는 땅은 개인이 함부로 사고 팔 수 없었습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레 25:23)

이 사실을 아합도 몰랐을 리가 없었지만, 아합은 포도원을 자기에게 팔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더라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겠다는 뜻입니다. 아합에게는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나봇은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다 우상을 섬기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감히 왕의 요청을 거절한 나봇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가 이 땅을 팔기 싫어서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합 왕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큰 이익을 볼 수 있고, 나라에서 가장 높은 권력자인 왕과도 아주 친밀한 사이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그런데도 나봇은 굴러들어온 절호의 기회를 제 발로 차버리고 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절대 권력자인 왕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목숨을 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기는 물론 온 가문이 모두 멸망당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아합은 정상적인 왕이 아니고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며 그 아내인 이세벨 역시 최고 악질인 것을 나봇이 몰랐겠습니까? 이러다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도 잘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봇은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 사람으로서, 자기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합의 요구를 거절한 나봇의 결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 나봇에게는 경제적인 이득과 정치적인 성공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행하는 만큼 믿는 것이다. 믿으면 순종한다.” 믿는다고 하면서 말씀대로 행하고 순종하는 것이 없다면 진짜로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약 2:17-19)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9)고 하신 말씀을 모르는 크리스천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할 때까지는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지금 내게 미워하는 사람이나 불편해 하는 사람 또는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말씀을 믿고 있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쉬워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은 참 어렵습니다. 자존심 상하고, 하기 싫고, 그 사람을 보기도 싫습니다. 그러나 해야 합니다. 왜?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단순합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셨으니까 순종합니다. 주님의 명령인데도 내가 싫어서 안 한다면,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고 아버지의 뜻대로는 행하지 않아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자들과 다를 게 없지 않습니까?

그런 면으로 볼 때 나봇의 용기 있는 결단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얼마나 많은 경우 우리는 훨씬 쉬운 문제 앞에서도 쉽게 타협하고 맙니까? 크리스천이라면 주일에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을 다 알지만, 주일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할 기회가 주어질 때, 돈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선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또 집안 좋고 학벌 좋고 직장도 좋고 완벽한 조건을 갖춘 신랑감인데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미신을 섬기는 집안일 경우, 신앙의 집안이라도 눈 딱 감고 타협해 버립니다. 그러면서 붙이는 이유는, “네가 가서 전도하면 된다.” 그러나 정말 전도하기 위해서 결혼시키는 게 아니라 배경이 그 이유 아닙니까?

이런 일들은 더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지만, 정말로 주님의 말씀을 따르면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생길 때,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손해 보는 쪽을 택하겠습니까? 그런 말을 들으면 그건 현실을 잘 모르는 이야기라고 할 사람이 많겠지만,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정말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버텨 보았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나봇은 목숨을 걸고 왕의 제안을 거절하자, 아합은 다시 근심하며 궁으로 돌아옵니다.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4절)

아합이 얼마나 상심했는지, 침상에 누워 식사도 하지 않습니다. 아합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정말 낙제점입니다. 왕이라면 근심하는 내용이 백성들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것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껏 한 사람의 재산을 탐내다가 그것이 자기 소유가 안 되니까 그것 때문에 화가 나서 근심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공과 사를 전혀 구분하지 못합니다.

우리도 점검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근심하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의 삶 때문에 근심하는지, 아니면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이유 때문에 근심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2) 악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이세벨

이 한심한 남편에게서 사정을 들은 악한 왕비 이세벨은 아주 악한 일을 꾀합니다.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7절)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라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그러고도 당신이 왕이라는 말입니까? 일개 백성의 포도원 하나 마음대로 못 하고 그 일 때문에 식사도 안 하며 근심하다니, 참으로 한심하군요. 내가 다 해결해드릴 테니 어서 일어나 식사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가지세요. 에이, 쯧쯧…”

아합은 적어도 나봇의 대답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근심이라도 했는데, 이방 여인이며 우상 숭배자였던 이세벨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 상황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교활한 계획을 세웁니다.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8절)

이세벨은 아합 왕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써서 왕의 도장을 찍고 나봇이 사는 성의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냅니다. 편지도 한 장이 아니라 “편지들”을 여러 장 보냅니다. 그만큼 치밀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말입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9-10절)

먼저, 성읍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백성들을 모으라고 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큰 죄를 범했을 때 모두를 다 모이게 하는 비상사태를 의미했습니다. 거기서 나봇을 백성들 가운데 높이 앉히고, 불량자 두 사람을 거짓 증인으로 내세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거짓 증언을 하게 지시합니다. 그리고 바로 분위기를 몰아 나봇을 끌어내서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이라고 합니다.

이세벨의 계획은 재빠르게 실행되었고, 하나님 앞에 신실했던 나봇은 순식간에 악을 행한 자로 몰려 돌에 맞아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11-13). 이세벨은 나약한 남편 아합 왕의 이름으로 계략을 꾸며 성실하고 결백한 국민 한 사람을 파멸로 몰아넣고 죽게 했으니, 참으로 악한 사람입니다. 백성들이 잘못된 길을 가면 바로잡아주어야 할 국가 지도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국민을 사형시켜버렸습니다. 게다가 이세벨은 성읍의 장로들과 귀족들도 공범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금식을 선포하는 것이나 두세 증인을 세우라는 율법에 따라 불량배들을 거짓 증인으로 내세워 나봇을 모함하여 죽인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자신의 사악한 계획에 악용한 무서운 범죄입니다. 이런 면에서 이세벨은 두고두고 거짓 선지자의 대명사가 되어 요한계시록에도 언급되는 저주 받을 존재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계 2:20)

이세벨의 명령을 받고 그대로 따른 장로들과 귀족들은 권력 앞에서 해를 당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한 일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행해야 마땅한 지도자들이 악한 명령을 그대로 따랐다는 것은 범죄입니다. 이세벨은 아합 왕의 이름으로 편지를 썼지만 그들은 그것이 이세벨의 명령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합이 아니라 이세벨에게 보고한 것입니다.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14절)

이세벨의 명령이 하나님 앞에 큰 죄악이라는 것을 그들이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악한 지시를 따랐고, 결국 아무 죄가 없는 나봇을 억울한 죽음으로 모는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열왕기하 9:26을 보면, 성읍의 장로들과 귀족들은 이세벨의 지시에 따라 나봇뿐 아니라 그의 아들들까지도 다 죽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서는 상속자들까지 제거하여 화근을 없애야 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성읍의 장로들과 귀족들을 비롯하여 그들의 말을 듣고 나봇을 죽인 사람들이 정말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은 악한 명령을 거부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비겁했고, 이세벨과 아합의 권력 앞에 굴복하여 악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죄 없다고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상황이 어려워서 타협하여 죄를 지었을 때, 어쩔 수 없어서 그랬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신앙이라는 것이 목숨을 걸고 믿는 게 아닙니까? 어쩔 수 없이 악을 행했다는 변명은 하나님 앞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악한 일인 줄은 알지만 내가 손해보고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봇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 죽임을 당할 때 그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갚아주십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천국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돌봄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나봇이겠습니까, 아니면 아합이나 이세벨이나 성읍 장로들과 귀족들이겠습니까?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눈앞의 상황만 보는 사람은 참된 신앙인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자신의 계획대로 나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받은 이세벨은 아합에게 그것을 알리고, 가서 나봇의 포도원을 접수하라고 합니다.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15-16절)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합의 태도입니다. 그는 나봇이 갑자기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어떻게 된 일인지 묻지 않습니다. 그는 분명히 이세벨이 손을 써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은 나봇의 죽음에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이제 그 포도원을 자신이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을 뿐입니다.

한 집안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이, 오직 자신의 탐욕을 채우게 된 사실만으로 좋아하며 단숨에 일어나 달려가는 아합의 이런 모습은 최악의 리더십입니다. 그런데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셨으며, 이제 곧 무서운 심판의 칼을 들고 그에게 다가오고 계셨습니다.

2. 아합과 이세벨의 죄악에 대한 심판의 선포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이스르엘로 내려가는 아합에게,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십니다. 그리고 아합에게 무서운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십니다.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19절)

이세벨의 간교한 계략대로 나봇이 죽자 아합은 소원대로 그의 포도원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포도원의 원래 주인이시며 천지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악한 행위를 그냥 두고 보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라는 말씀은, 이세벨의 계략대로 이루어진 이 모든 악행의 책임은 결국 아합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네 아내가 죽이고 빼앗았느냐’라고 하지 않으시고 아합에게 책임을 물으십니다.

물론 아합이 직접 이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은 아닙니다. 이세벨이 계획하여 지시했고, 성읍 사람들이 충실하게 그대로 수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은 결코 “이건 전부 다 내 와이프가 한 일입니다. 아랫사람들이 죽인 거예요. 난 아무것도 모릅니다.”라고 발뺌할 수 없습니다. 아합은 이 일에 충분한 원인을 제공했고, 이세벨이 악한 계획을 세울 것을 알고도 그냥 방치했으며, 일이 다 벌어진 후에도 아무런 조사 없이 그냥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왔습니다. 아합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벌어진 악행이기 때문에 아합이 책임져야 할 일이었습니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시 7:9)

하나님은 마음을 다 꿰뚫어 보십니다. 그런데 자기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포도원을 드디어 차지하러 온 아합은 욕심을 채웠기에 언제 근심을 했냐는 듯, 만면에 미소를 띄며 의기양양하게 포도원으로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그의 앞에 엘리야가 나타나자 가슴이 덜컥하며 입에서 독설이 나옵니다.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20-22절)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를 향하여 “내 대적자여”라고 부르는 아합의 말은 평소에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내 원수야, 네가 또 나를 찾아왔느냐?”(새번역) 이 말은, 그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살았고 그 말씀을 전하는 엘리야를 거북해하며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자신의 범죄 현장에서 이 엘리야를 딱 만났으니 또 뭔가 무서운 말이 전해질 것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아합의 예상대로 직설적으로 아합의 죄를 지적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한마디로 아합의 집안이 완전히 망하고, 아합 집안의 남자는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 씨도 남기지 않고 멸망당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무서운 심판입니다.

아합이 이런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20).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22). 아합은 자기만 죄를 지은 게 아니라 백성들까지도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리더가 잘못하면 자기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로 몰고 가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심판도 몇 배로 무섭습니다. 그래서 리더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직분자들이 책임이 무겁습니다. 장로, 권사, 집사도 그렇고, 특히 목사는 더 큰일입니다. 직분자들이 더 많이 기도해야 하고 늘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직분자이면서 말씀과 기도생활을 제대로 안 하게 되면 불순종의 길로 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기만 아니라 자기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의 대형교회 목회자들에게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소식을 들을 때 욕하고 비난하기보다는, 그분들을 위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목회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담임하는 교회의 수많은 성도들, 그리고 나아가 한국 교회 전체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합에 대한 심판에 이어서, 아합을 충동질하여 죄를 짓게 만든 악한 왕비 이세벨에게도 무서운 심판이 선포됩니다.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 (23-24절)

이 예언은 아합이 죽고 난 후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그대로 성취됩니다. 신하들의 손에 의해 창밖으로 던져진 이세벨의 시체가 개들에게 먹힘으로 두골과 발과 손 외에는 남은 것이 없게 됩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사람들 앞에서는 권세 있는 왕과 왕비였을지 몰라도,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아주 객관적이고 냉혹합니다.

“자기 아내 이세벨의 충동에 말려든 아합처럼, 주님께서 보시기에 이렇게 악한 일을 하여 자기 목숨을 팔아 버린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아합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눈앞에서 쫓아내신 그 아모리 사람이 한 것을 본받아서, 우상을 숭배하는 매우 혐오스러운 일을 하였다.” (25-26절, 새)

3. 아합의 겸비함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까지 수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아무런 회개를 하지 않았던 아합이, 이제 무서운 심판의 메시지를 받고 나서 겸비함으로 나아갑니다.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27절)

이것은 죄를 애통해하며 뉘우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아합의 이런 행동들이 가식이 아니라 진심이었음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29절)

그렇게 악한 죄인인 아합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며 회개하니까, 딱 한 번 그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에 대한 심판을 연기해주십니다. 그래서 아합에게 선포된 심판은 그의 아들 요람 대에 가서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봅니다. 그 동안 저지른 아합의 죄악을 생각하면 그는 용서를 받을 자격이 하나도 없습니다. 갈멜 산에서의 분명한 하나님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아람과의 싸움에서 두 번이나 기적의 승리를 주셨지만 불순종하여 아람 왕을 살려줬습니다. 죄 없는 나봇을 모함하여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탐욕죄와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표현으로도 아합은 ‘자신의 목숨을 팔아 가면서까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만 하는 자’(20)였습니다. 끔찍한 죄를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적으로 밥 먹듯이 범한 아합이었지만, 아합처럼 악을 행한 자가 또 없다고 하실 정도의 악인이었지만, 그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애통해하자마자, 하나님은 자비를 베풀어 심판을 연기해주십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애 3:22-23)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는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약하셔서 결정을 바꾸시면 어떻게 공의가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벌을 받아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악인이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악인이 죽는 것을, 내가 조금이라도 기뻐하겠느냐? 오히려 악인이 자신의 모든 길에서 돌이켜서 사는 것을, 내가 참으로 기뻐하지 않겠느냐? 너희는, 너희가 지은 죄를 모두 너희 자신에게서 떨쳐내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왜 죽고자 하느냐?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나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겔 18:23, 31-32, 새)

어찌 아합만이겠습니까? 사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다 죄인이 아닙니까? 우리도 다 한 꺼풀만 들춰 보면 차마 드러내기도 힘든 더러운 죄가 있는 죄인들이었습니다. 아합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자비가 불공평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바로 그것이 나라고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아합이나 나나, 모두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 죄인입니다.

죄를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심지어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불순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진정한 회개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항상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죄를 보면서 전심으로 통회하고 회개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귀한 길로 인도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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