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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을 이기는 믿음 |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무엇인가 – 데이비드 차 선교사 상위 236개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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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2019년 8월 15일에 촬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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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믿음 – 다음블로그

세상을 이기는 믿음 · 1.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 안에서 발견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요일 5:4). 하나님께로서 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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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0/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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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믿음 – Faithlife Sermons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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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ermons.faithlife.com

Date Published: 9/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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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믿음 – 당당뉴스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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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angdangnews.com

Date Published: 11/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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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을 이기는 믿음 : 목회·신학 – 기독일보

그러므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방패와 말씀의 검을 가지고 깨어있기를 바랍니다. 1.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사람이 세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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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daily.co.kr

Date Published: 1/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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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30 세상을 이기는 믿음 – 정필도목사

우리가 이 세상을 이기려면,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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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ildo.kr

Date Published: 11/13/2022

View: 658

세상을 이기는 믿음 (요일 05:1-8) – 기멀전

믿음은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자 예수를 중심에 모실 때 하나님의 언약으로 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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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odpeople.or.kr

Date Published: 5/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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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믿음 – YES24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과 세 친구는 마치 오늘날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과 같다. 이방 학문과 종교의 거센 도전 속에서도 꿋꿋하게 믿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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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8/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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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목사 설교] 세상을 이기는 믿음 – 크리스천투데이

불교적인 용어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세상과 인생을 고해라고 이야기합니다. 고생과 고통의 바다라는 뜻입니다. 인생은 고해라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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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6/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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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세상을 이기는 힘은 믿음입니다. – 광성교회

본문 5절 말씀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싸워서 이겨야 되는데 그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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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sch.net

Date Published: 9/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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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무엇인가 - 데이비드 차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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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세상 을 이기는 믿음

  • Author: HOLY 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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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6. 2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PwPF83-RepM

세상을 이기는 믿음

세상을 이기는 믿음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요일 5:4-5).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의 나찌가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에 민간인 사이에 독일의 체제에 저항하며 싸우는 전사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조직한 그룹이 레지스탕스였습니다. 레지스탕스의 뜻은 저항입니다. 프랑스가 자유를 누리며 평안을 누리고 있을 때에 독일의 나찌가 침략하여 나라를 점령하고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빼앗아가자, 이러한 체제에 대하여 저항함으로 독일군에 큰 피해를 입히고 무고한 유대인들을 돕기도 하는 저항운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공중의 권세잡은 자 마귀가 통치하며 다스리는 세상입니다. 에베소서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 사탄은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을 세상의 임금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각 나라가 있고 통치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 권세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취하고 어둠의 길에서 인도하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어두움의 세상을 밝히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셨고, 나라를 세우셨으며, 선지자를 세우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셨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 16:3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핍박하였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두운 세상을 보시며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어두움의 본질은 어두움의 주관자 사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사탄의 권세를 무너트리셨고, 부활하심으로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골로새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 2:1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사탄의 권세를 무너트리시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승리하신 것처럼, 주님 안에 거하는 성도의 삶도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위해서 성경이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 안에서 발견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요일 5:4).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누구인가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의 씨앗이 능력이 되었고 성령의 중생하시는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사람의 행실이 아니라 믿음을 통한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 우리는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영생을 얻어 영원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고통 속에서 땅에 묻히지만 생명은 주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영생의 중요한 포인트는 생명으로서의 영원한 삶을 의미하지만, 질적인 의미로의 영생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초청이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심으로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식으로도 배우지만, 더 나아가 생명으로 그 분의 존재를 느끼며 동행하며 음성을 듣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과 그 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삶이 얼마나 귀한 삶인가요?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은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먼저는 생명의 변화는 가치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이러한 가치는 성경적인 가치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서 이루게 하는 능력의 가치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삶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며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요일 1:7). 우리의 거룩한 행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우리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모시는 성전으로서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가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로서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의 의미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고자 하는 열정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타락해가며 하나님을 떠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는 사랑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요일 4:20).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형제를 사랑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서 지키며 교회의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강력한 가족으로서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임을 선포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2.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우리가 이겨야 할 세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세상’은 헬라어로는 ‘코스몬’인데,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적인 태도나 가치를 의미합니다. 요한1서 기자는 그리스도인들과 세상과의 관계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 2:15-1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을 사랑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세상은 육신의 정욕과 같은 죄에 대한 욕심을 의미하며, 이생의 자랑은 탐욕으로 이끄는 세상의 소유욕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세상의 물질로서 높이려는 교만한 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 18:36).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천국이며 하늘에 속한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왕으로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셔서 그 나라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지금은 믿는 자의 마음에 거하시면서 교회와 성도들을 이끄시는 왕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임하시는 날에는 왕 중의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이 세상은 공중의 권세잡은 자 마귀가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가치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가르치는 가치와 철학 등을 경계해야 하며, 특히 믿음에서 떠나 배교하는 종교인들의 위선을 경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겨야 할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치와 철학, 그리고 태도입니다. 얼마전에 미국의 휴스턴에서 동성애를 비판하는 목회자들을 감시하기 위하여 미국 휴스턴 시의 레즈비언 시장이 목사들에게 설교문을 제출하는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미국에서 큰 논란이 되었고, 그곳에 있는 성도와 목회자들이 항의 차원에서 성경을 시장에게 보내고 설교문을 보냈습니다. 수많은 성경과 설교문이 들어오자 당황하여 결국은 그 법안을 철회하였다고 합니다. 아직도 미국의 크리스쳔들이 믿음으로 신앙과 성경의 가르침을 지키려는 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의 논란 중의 하나가 마리화나입니다. 현재 콜로라도 주와 워싱턴, 그리고 오레곤 주에서는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의 타락을 이끄는 도구로서 쓰임받는 것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합법화 및 결혼 인정 등이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에 위반하는 것이며 세상의 가치인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는 진리가 아니기에 시대에 따라서 변화하고 점점 타락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은 진리를 대적합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할 수 없듯이, 세상은 교회와 믿음의 사람들을 핍박하고 어려움을 주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굴복하여 믿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핍박 속에서 더욱 강력한 믿음의 사람들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가치와 풍속을 대적하고 이기고자 하는 열정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세상을 이기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요셉이 세상이 주는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종이 되었듯이,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이기고자 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3. 세상을 이기는 능력은 믿음입니다.

“…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요일 5:14-15).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요?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세상을 이기는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하면서 예수를 바라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믿음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는 이유는 자신을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최고로 고상한 지식이었으며, 그 분을 믿는 믿음은 최고의 소중한 확신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 분과 함께 죽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난 후에는 이제 그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서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에 그 분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기로 결단했으며, 그 분을 믿기에 그 분의 모든 말씀을 진리이며 삶의 지표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에 우리의 생명이 주님 안에 있으며 영원한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에 주님이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 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 1:30). 우리의 주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에 우리는 세상이 주는 유혹을 이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운 분이시기에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에 세상이 주는 세상의 가치를 거절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 삶의 지혜가 되시며 참된 가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것에 위배되는 것은 우리가 거절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그 분만을 따르는 성도의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실족하지 아니하고 넘어지지 않으며 영원한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오늘도 주님을 따르며 한 걸음 한 걸음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가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트가 되어서 주님의 군사로서 세워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요한1서 5:4–5 ESV

For everyone who has been born of God overcomes the world. And this is the victory that has overcome the world—our faith. Who is it that overcomes the world except the one who believ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세상을 이기는 믿음

세상을 이기는 믿음

요일5:1-8

(2021/05/30, 성령강림 후 제1주, 삼위일체 주일) 음성으로 듣기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낳아주신 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 그분이 낳으신 이도 사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다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그는 물과 피를 거쳐서 오신 분인데,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다만 물로써 오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셨습니다. 성령은 증언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곧 진리입니다. 증언하시는 이가 셋인데, 곧 성령과 물과 피입니다. 이 셋은 일치합니다.]

∙한 몸 공동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어느 곳에서 예배를 드리든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입니다.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찬양의 소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니 계신 곳 없이 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요한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권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저절로 발생하는 감정이 아니라, 애써 선택해야 할 삶의 지향입니다. 사랑스러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무례한 사람, 제 욕심만 차리면서도 뻔뻔한 사람, 과도할 정도로 자기 감정에만 충실한 사람, 거칠고 난폭한 사람, 자기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 이런 이들과는 거리를 두고 사는 게 지혜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들은 우리 감정을 소진시킵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도 이런 이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그런 이들까지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일반 사회에서라면 그런 이들과 굳이 만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교회는 한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녀노소, 가난한 사람과 부자, 건강한 사람과 병약한 사람, 배우지 못한 사람과 지식인, 느긋한 사람과 성마른 사람, 이타적인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이 한 몸 공동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질집단에 속한 이들을 만날 때 우리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반면 그렇지 않은 이들과의 만날 때는 긴장하게 마련입니다. 감정은 가급적 드러내지 말아야 하고, 행동도 조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서로 다른 이들이 어울려 꽃동산을 이루라고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다름을 받아들일 때, 더 나아가 차이를 존중할 때 우리 영혼이 확장됩니다. 용서와 용납, 그리고 사랑이야말로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끈입니다. 요한은 그래서 아주 단호하게 말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요일4:20)

우리는 흔히 ‘사랑‘ 하면 고린도전서13장을 떠올리지만 요한1서 3장과 4장은 사랑에 바치는 송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중가요나 드라마는 만남과 사랑과 이별 그리고 아픔을 노래하지만 자기애에 충만한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그런 감상성과는 많이 다릅니다. 형제자매 사랑의 근거는 그들의 사랑스러움이나 덕성이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가없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의지적인 선택

사도는 그 사랑의 신비를 정교한 논리로 설명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입니다. 낳아주신 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이 낳으신 이도 사랑합니다. 그분이 낳으신 이는 믿음 가운데 형제와 자매로 맺어진 이들입니다. 하나님이 낳으신 이들을 우리가 어떻게 함부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속량하신 사람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 안에 있는 사랑은 의식적이고 의지적인 선택입니다. 사랑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향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존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본능적으로 반감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반감을 넘어 사랑을 선택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럴만한 자격이 없는데도 나를 귀히 여기는 사람과 만난 적이 있으신지요? 그 사랑 혹은 받아들여짐은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빚어줍니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일이고, 잊고 있었던 자기의 참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창문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서 죄는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사랑은 서로 만날 수 없던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다리입니다.

참 믿음은 사랑 안에서 역사합니다. 그리스도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원수가 되어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바울 사도가 “내가 여러분에게 여러 번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빌3:18)라고 말했겠습니까. 앎이 사랑과 함께 가지 않을 때 그 앎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합니다. 안타깝지만 그리스도를 들먹이면서도 실상은 그리스도를 밀쳐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지만 무지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자기만 사랑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지만 온통 관심은 자기 이익에 붙박여 있는 이들은 십자가의 원수일 뿐입니다. 그들은 사랑과 일치가 아니라, 증오와 분열의 영에 사로잡힌 자들입니다. 자기애와 탐욕에 사로잡힌 이들은 사랑에 무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인력을 넘어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세상을 이깁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코스모스)은 경건하지 않은 세태 혹은 하나님께 등을 돌린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그런 세태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길들이려 합니다. 세상의 유혹은 달콤하지만, 동시에 두려움을 자아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부추기기에 달콤하고, 거기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사람을 세상이 미워하기에 두렵습니다. 세상의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타협하여 살다보면 욕망의 쳇바퀴를 돌리기 위해 끊임없이 질주해야 하고, 그래서 숨이 넘어갈 정도로 분주하게 살게 됩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도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벗어나는 순간 영원한 루저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입니다. 소비사회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두려움을 숙주로 하여 번성합니다. 사람들이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기뻐한다면 소비의 경제는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을 따라 살지 않는 사람, 그래서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사는 이들이 느끼는 만족감이 의외로 큽니다. 인디언 혈통을 타고난 미국 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의 책을 읽다가 만난 구절이 떠오릅니다.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순진무구해 보이지만, 혁명적 개념이기도 하다. 소비 사회에서 만족은 급진적 태도다.“(로빈 월 키머러, <향모를 땋으며>, 노승영 역, 에이도스, p.169)

감사가 혁명적 태도라는 표현과 만났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소비 사회는 늘 새로운 욕망을 창조함으로 번성합니다. 그러나 감사는 그런 경제 논리에 타격을 가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우정과 사랑, 나눔과 돌봄, 자족과 절제의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꼭 붙들어야 하는 것은 우리를 길들이려는 세상에 맞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16:3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겪어온 경험을 토대로 하여 세상은 위험한 곳이라고, 아무도 신뢰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정말 세상이 그렇게 악하기만 할까요? 우리는 나쁜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을 텐데도, 나쁜 기억들이 우리 삶을 장악할 때가 많습니다. 나쁜 기억에 사로잡히는 순간 우리 속의 선한 생명력은 줄어듭니다. 하지만 마음을 열면 보이는 세상이 있습니다.

독일 사람 하랄트 헤르메스는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서 집시들을 조심하라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집시들은 늘 그의 눈에 거슬렸습니다. 1950년대에는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집시들을 보았고, 1960년대에는 모퉁이 술집에서 싸움을 일삼던 집시들을 자주 보았습니다. 70세가 훌쩍 넘은 하랄트는 유럽에 난민들이 유입될 때 롬족들이 독일에 밀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골칫거리’가 들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함부르크 북쪽의 연립주택 단지에서 50년째 살고 있었고, 은퇴생활자로 비교적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웃이 세상을 떠나거나 이사해 빈집이 생기자 시 당국은 난민들을 그곳에 수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시청에 항의 전화를 하고 의회에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조용했던 주택 단지는 시끄러워졌고, 베란다에는 낯선 빨래들이 널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거주 규정을 위반하는 사례들을 카메라로 찍어 관리사무소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위집에 외국인 가족이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이 뛰는 소리에 신경이 거슬렸고, 창문을 열고 크게 틀어놓은 텔레비전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어느 날 그의 집 베란다에 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하랄트의 아내 크리스타가 윗층으로 올라가 초인종 누르고 항의했습니다. 영문을 몰라 하는 그 가족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다 보니, 그 집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크리스타는 한눈에 세르비아 출신의 그 가족에게 세탁기도, 건조기도, 빨래 건조대도 없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손빨래가 얼마나 고단한지 알았기에 크리스타는 그 가족이 딱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지하창고에 있는 빨래 건조대를 그 가족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상한 첫 접촉 이후 두 가족의 왕래도 빈번해졌습니다. 크리스타는 그 가정에 필요한 식기, 포크, 이불, 베개, 냄비, 프라이팬, 전기포트, 커피머신을 가져다 주었고 커피도 함께 마셨습니다. 나중에는 함께 여행도 했습니다. 그 경험을 기자에게 들려주면서 하랄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그렇게 온전히 애정을 줄 수 있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 일은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냥 그렇게 된 거예요.“(바스티안 베르브너, <혐오 없는 삶>, 이승희 옮김, 판미동, p.23)

하랄트는 그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속에서 성령의 일하심을 봅니다. 성령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줍니다. 아픔에 공감하고, 그 아픔을 덜어주려는 마음을 품게 하십니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만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라고 노래합니다. 그러나 이 노래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사랑의 나눔이 일어난다’고 고쳐 부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랑의 경험은 우리 속에 있는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베드로도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준다”(벧전4:8)고 말했습니다. 혐오와 정죄와 불평을 넘어 낯선 이들과 접촉할 용기를 내는 것, 그리고 그들의 무거운 짐을 나눠질 마음을 품는 것, 바로 그것이 평화를 파종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바로 그런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

∙물과 피로 오신 주님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니고 누구겠습니까?“(요일5:5) 사도는 예수님을 가리켜 물과 피를 거쳐서 오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거쳐서 오다‘는 말은 헬라어 ‘에르코마이(erchomai)를 번역한 것입니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이동이라는 뜻도 있지만 ‘모습을 드러내다‘라는 뜻을 내포하는 단어입니다. 주님은 물과 피를 통해 세상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학자들은 물은 세례를 뜻하고 피는 십자가 사건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물과 피는 요한공동체가 예수님이 참 사람이었음을 드러내기 위해 종종 등장시키는 두 요소입니다. 요한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옆구리를 병사가 창으로 찔렀을 때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고 증언했습니다(요19:34). 굳이 이런 표현을 반복한 것은 예수의 죽음이 가상의 죽음이었다고 말하는 이단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인성을 부인하는 이들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실제였습니다. 그 죽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구원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물과 피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아멘이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가없는 사랑이고, 자기를 희생하여 다른 이를 살리려는 숭고한 삶을 가리킵니다.

성령께서도 예수님이 참 사람이고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깊은 사랑의 일치 속에 머무시면서 우리를 그 사랑 안으로 초대하십니다. 그 사랑에 접속될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길들여진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를 사랑으로 뒤흔드는 사람이 되십시오. 일상 속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을 귀히 여기는 일로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십시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그 사랑과 존중의 범위를 넓혀 가십시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사랑 안에 머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지속할 때 우리 영혼은 더욱 굳건해질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기뻐하는 한 주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설교] 세상을 이기는 믿음

기독일보

트윗하기 언제인가 우리나라와 중국의 축구경기를 보았습니다. 비슷한 체구의 사람들이 운동장을 달리면서 공을 몰아 골대로 향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가 골을 넣었을 때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다음에 중국 선수가 한 골을 넣었을 때 나도 모르게 ‘에이’ 하며 안타까움의 탄성이 나왔습니다. 반대로 중국 응원석에서는 신바람이 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과 저는 속한 국가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영육간의 자연의 법칙은 속해 있는 곳을 보호합니다. 우리는 가족을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합니다. 또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같은 교회에 속해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소속이 중요합니다. 인생을 멋지게 사는 방법은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께 속하여 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한다’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계명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그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세상은 우리의 안식할 곳도, 믿는 자를 위하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5:4)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승리하기를 원하시고, 사랑하기를 원하시고,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비록 육체는 땅에 있어도 그의 소속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요일4:4~6)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법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화목하고 화평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서로 사랑합니다.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고, 그의 몸 된 교회에 속하고, 믿는 무리 속에 속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과의 원수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믿는 성도를 공격해 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공격하고 감정을 상하게 합니다. 사람과 학문과 물질을 통해서 우리를 유혹하기도 합니다. 사단이 성도를 공격할 때 목사라고, 장로라고, 권사라고 피해가지 않습니다. 더 열심히 공격합니다. 사도 요한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나를 위하여 피와 물을 흘리셨고 성령이 나에게 오셨음을 온전히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방패와 말씀의 검을 가지고 깨어있기를 바랍니다. 1.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사람이 세상을 이깁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일5:5~7)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선물로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 세상을 이기는 실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의 대장 예수 그리스도가 이기신 세상을 예수님과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세상에서 이기게 하시기 위하여 그분은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피’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는 역사적인 사실로 강조합니다.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19:34)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임한 사랑은 최고의 사랑입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이 피는 우리의 원죄, 자범죄를 용서해주는 사랑의 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외적으로, 내적으로 깨끗해집니다. 이유는 더러운 세상에 빠져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예수님을 믿는 사람 중에도 인생을 실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정욕과 명예 그리고 물질에 미혹됨으로 실패합니다. 내적으로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귀한 자리에 있었지만 사단에게 미혹당해 예수 그리스도를 은 30냥에 팔아버렸습니다. 그 결과, 자살의 길을 택하고 제자 중에서 가장 비참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속하면 성령과 물과 피로 거듭나고 그 속에서 역사하는 능력으로 정욕과 마귀와 물질적인 유혹까지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이 세상을 이기길 바랍니다. 2.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일5:6~11)

이 영원한 생명은 물과 피와 성령에 의해 살아났고 자라고 활동합니다. 물세례를 통해 정결케 하시고, 십자가를 통해 인간의 죽음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내적 증거와 그리스도의 영적인 생명이 임했습니다.

이 땅에는 많은 생명이 있습니다. 식물의 생명도 이 땅에서 끝이 나고, 동물의 생명도 끝이 나고 육체의 생명도 끝이 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벧전1:19~25)

주의 말씀이 세세토록 있는 것처럼 구원받은 우리들도 세세토록 있을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한 사람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늙어서 혼자 사는 것을 불행하다고 하지만 정말 불행한 것은 신랑 되신 예수님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구약에 나오는 다니엘과 세 명의 친구들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으로 세상의 권세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권세에 의해 풀무 불에 떠밀려 들어갔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단3:19~25)

영원한 생명이 활동하는 자들에게는 육체의 생명과 삶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롭게 됩니다. 행복은 예수님 안에서만 보장됩니다. 세상을 이기는 생명을 키워 가시길 바랍니다. 그 생명은 말씀을 들을 때 성장합니다. 기도할 때 강해집니다. 계명을 지키고 서로 사랑할 때 능력을 얻습니다. 3. 생명이 있으면 환경을 이길 수 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5:12) 생명은 굉장히 신비합니다. 생명이 있는 나무는 장마와 가뭄에도 성장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죽은 나무는 장마와 가뭄이 올수록 썩는 것이 더 촉진됩니다. 살아있는 물고기는 바닷물에서 먹이를 찾고 바다를 헤엄치면서 새끼를 낳고 키우지만 염분이 배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은 고기는 겉도 속도 짜고 바다 속에서 고기밥이 됩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어떤 곳에서도 자라납니다. 성도가 예수님의 생명을 가지면 환난이나 고통, 부(富)가 와도 성장하고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부활이 있고 예수님 안에 평강이 있고 예수님 안에 형통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5:24~26)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4:12)

여러분이 이 땅에서 하시고자 하는 사명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세상에서, 이 땅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16:25) 입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타락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꿈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여러분! 세상을 이깁니다. 시련을 이겨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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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30 세상을 이기는 믿음

세상을 이기는 믿음20100430본문 / 요한일서 5:4~5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전쟁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그치지 않고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그런데 이 세상은 성도들에게 영적 전쟁터입니다. 성도들은 날마다 치열한 전쟁 가운데 살아갑니다.본문 요한일서 5장 4~5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과 항상 전쟁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패하면 안 됩니다. 이 전쟁에서 패하면 비참합니다. 불행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본문 요한일서 5장 4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에 이긴다고 기록되어있으므로 이깁니다. 거듭난 사람은 세상을 이긴다고 하셨으므로 이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그대로 이루어집니다.본문 요한일서 5장 5절에 보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는 사람은 세상을 이긴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깁니다. 그리고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승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고난이 와도 어떤 핍박과 환난이 와도 승리한 사람들입니다.믿음의 사람은 승리합니다. 치열한 전쟁터인 세상에서 일평생 이기려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그러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첫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구원받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자녀를 사랑하시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됩니다.그런데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비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사랑이 크신 하나님이십니다.이것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천국시민이 됩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지십니다.우리는 자기가 낳은 자식을 끝까지 책임질 능력이 없어서 그렇지, 사랑하는 자녀를 끝까지 책임지고 싶어 합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므로 하나님의 자녀를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실수하거나 실패하심이 없이 완전하게 책임지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은 세상을 이깁니다.둘째,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심을 믿는 믿음입니다.이사야 49장 14절에 보면,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난을 당하고 전쟁에 패하고 포로가 되고 기근이 오고 고생을 많이 하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셨나보다고 생각했습니다.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에 보면,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잠시도 잊지 아니하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하십니다.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갈 때, 자기 혼자인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창세기 28장 10~16절에 보면,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위급한 상황에 부딪혀 도망갈 때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야곱도 전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 혼자인 줄 알았습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누워 있는 자리에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십니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심지어는 우리가 죄를 짓고 있는 자리에도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요셉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유혹했을 때,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라고 말하며 단호하게 뿌리쳤습니다.다윗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었습니다. 사자가 나타나고 곰이 나타나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막대기와 물맷돌을 들고 사자와 싸워 이겼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아주 담대했습니다.골리앗과 대결할 때에도 혼자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었으므로 담대하게 나아가 골리앗의 목을 벨 수 있었습니다.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담대함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하셨습니다.창세기 39장 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아브라함과 함께하신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인 우리들과도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느끼든지 못 느끼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있으니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함께하시는 분은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마태복음 10장 17~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므로 우리가 할 말을 성령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박해를 받아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매를 맞으면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그 안에 성령께서 계십니다. 그 사람은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요한복음 14장 16~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를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장 25~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시편 23편 4절에 보면,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고백했습니다.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갈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죽을 것처럼 두려운 곳입니다. 그래도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고 고백했습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는 다윗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이사야 43장 1~3절에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하나님께서 함께하셔도 물을 통과해야 하는 어려운 때가 올 수 있습니다. 강을 건너야 하고 불 가운데로 지나가야 하는 때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여호수아 1장 3~6절에 보면,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 영토가 되리라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아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도 우리의 대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강하신 분이기 때문에 당할 자가 없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요즘 젊은이들이 취직하기가 어려워 걱정을 많이 할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히브리서 13장 5절에 보면,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우리가 이 세상을 이기려면,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을 생각하십시오.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있을 때에 광야만 바라보았습니다. 광야를 바라보면 희망이 없습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농사를 짓겠습니까? 양을 치겠습니까? 불뱀과 전갈이 있고 낮에는 뜨겁고 밤은 춥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만 바라보니까 항상 염려했습니다. 먹고 살 것과 앞길이 걱정되고 불안합니다. 언제 불뱀과 전갈에 물려죽을지 몰라 항상 불안하니까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우리를 이런 광야로 인도하느냐고 모세에게 원망 불평했습니다.이사야 63장 8~10절에 보면, “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환난의 날에 환난만 쳐다보고 있으면 안 됩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들어 안고 가십니다. 이것을 알고 살면 담대할 수 있고 평안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찬양하며 살 수 있습니다.광야 길을 혼자 걸어왔는데 뒤를 돌아보니 한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자기 발자국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안고 오신 주님의 발자국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들어 안으셨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바보 같은 백성이 어디 있을까요?여러분, 꼭 명심하십시오. 어려움을 당할 때, 외롭고 고독할 때, 슬플 때, 절망적일 때,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안고 계신 것을 믿으십시오.저는 집회를 인도하러 가면, 영적 전쟁을 하느라고 긴장되어서 텔레비전도 잘 보지 않고 먹는 것도 절제합니다. 관광지에 가도 관광도 잘 하지 않고 조심합니다.그런데 집회를 마치고 부산에 도착하여 우리 교회 가까이에 오면, 마치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기는 것 같습니다. 평안하고 행복합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안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모르고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원망 불평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으면, 이 말씀대로 됩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이라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정비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무슨 일을 당하든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습니다.요셉을 보십시오.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지나고 보면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절대로 억울하게 하지 않으십니다.다니엘은 날마다 기도하는 것 때문에 사자 굴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면서 기쁨으로 기도하고 사자 굴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자의 입을 봉하셔서 무사히 살아나오게 하셨습니다. 오히려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이려 하던 못된 사람들과 그 집안 식구들은 죽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전화위복 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다니엘은 이전보다 더 잘되었습니다.어촌에 사는 한 아낙네가 한밤중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바깥에 나가 먼 바다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험악한 밤에 아낙네가 잠을 자지 않고 바깥에 나간 이유는 자기 남편이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밤에 돌아오지 못하면 그 남편은 죽은 것입니다.그래서 안타깝게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집에 켜놓은 등잔불이 쓰러져서 집이 불타버렸습니다. 남편도 돌아오지 못했는데 집까지 불이 났으니 기가 막힙니다.그런데 풍랑 때문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헤매던 남편은 그 환한 불빛을 보고 ‘저기가 바로 사람들이 있는 곳이구나.’라고 깨닫고 그 방향으로 돌아왔습니다.오히려 잘된 것 아닙니까. 남편이 살아서 돌아왔으니 집은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죽지 않으면 기회가 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오늘의 고난과 슬픔과 억울함과 모든 것이 절대로 헛된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기다려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축복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분명히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세상을 이깁니다.넷째,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들 이삭이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 22:7)”라고 물었을 때, 아브라함은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고 대답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람을 만드시기 전에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대학교에 가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빨리 취직해서 먹고살 것을 생각해야 했습니다.고등학교 3학년 때, 저는 ‘내가 대학교에 가지 못하니 고등학교 때의 실력이 나의 평생 실력이 되겠구나. 그러니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아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그래도 선생님께서 원서를 써주셨습니다. 시험을 쳤습니다. 그런데 합격자 발표되기 전에 학비가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준비해놓고 계셨습니다.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돌이켜 보면, 당장은 없어도 때가 되면 다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 준비해놓으셨습니다.그래서 괜히 걱정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에 걱정을 많이 한 것이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로 걱정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먹을 것이 있어 먹었으면 감사하세요. 내일 먹을 것은 하나님께서 내일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미래를 끌어다가 미리 걱정하지 마십시오.하나님께서는 여호와 이레, 미리 준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있어야할 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누가 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다섯째, 영원불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히브리서 13장 8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하나님은 성품 자체가 아주 신실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실뿐 아니라 신실하시고 영원불변하십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면, 영원히 택하신 것입니다. 한번 우리를 사랑하셨으면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변덕을 부리지, 하나님께서는 변덕을 부리시지 않으십니다.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영원불변합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합니다.우리를 항상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좋은 일과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에만 우리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넘어지고 만신창이가 되어도,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할 때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배반하지 않으십니다.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원불변한 약속을 믿으면 좋을 텐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이 없어서 밤낮 불평이나 하고 이제라도 돌아가자고 했습니다.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믿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들어가자고 외쳤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이기려면, 하나님은 영원불변 하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여섯째,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의 계획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입니다.요셉이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들어가도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보기에는 절망적이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하나하나 이루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종으로 끌려가 괴로웠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총리로 만드시기 위해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감옥이 험악했지만 요셉을 총리로 만드시기 위해 감옥에 가게 하시고, 왕의 떡과 술을 만들어 드리는 관리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총리가 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거꾸로 가는 것 같고, 망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취직이 되지 않고,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할지라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현상이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됩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바벨론이 메대와 바사라는 나라로 바뀌고 해방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그러나 70년 만에 너희들이 회복되어 돌아오리라고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 다니엘은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3주 간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에스라 1장 1절 이하에 보면,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하나님이 그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고레스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 돌아가서 성전을 지으라고 하면서 옛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빼앗아 왔던 성전의 은 그릇 금 그릇과 기구들을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70년이 되니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졌습니다.사람이 보기에는 절망적이고 희망이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사람들을 구원할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시며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욘 1:2)”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러나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욥바에 가서 배타고 도망가다가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요나는 바다에 빠져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요나를 회개하게 하셔서 물고기가 요나를 해변에 토해내게 하시고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나를 니느웨로 가게 하셔서 외치게 했습니다.요나는 악독하고 사나운 니느웨 백성들이 죽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임금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백성들이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사람이 생각하기에는 불가능하고 사건이 꼬일 것 같아도,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그대로 진행됩니다.이사야 46장 11절에 보면,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이사야 55장 11절에 보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마태복음 24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된 후에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아무리 전도하기 힘들고, 선교사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내쫓고, 아무리 방해해도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집니다.이사야 11장 9절에 보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이 세상에 충만해지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그 날이 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이사야 19장 21~2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주시리라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꿈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될 것입니다. 아무리 회교도들이 못된 짓을 해도 복음은 들어갈 것입니다. 택한 백성은 다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그래서 전 세계 곳곳에 하나님을 아는 백성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시편 22편 27~28절에 보면,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성도들에게 가장 큰 위기는 순교하는 순간입니다. 딱 붙잡혀서 순교하는 찰나가 가장 위험합니다.요한계시록 13장 15~17절에 보면,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아주 강력한 적그리스도, 독재자가 나타나 우상을 만들어놓고 절하지 않는 자는 내치든지 모두 죽이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요한계시록 13장 8절에 보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그러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습니다.누가복음 12장 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러므로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순교자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가 순교자의 반열에 선 사람이라면 순교자가 될 것이요, 순교자의 반열에 서지 않은 사람이라면 순교할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세상이 험악해지고 재난이 많아져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늘과 땅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께서 주장하십니다. 순교자가 된다면 영광으로 아십시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성도들도 예수님과 함께 이긴다는 것입니다.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가 혼자라면 승리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기심으로 우리는 덩달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 (요일 05:1-8)

사람이 사람을 이긴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축구팀이 외국에 나가서 경기를 하여 우리 나라 팀이 이기면 얼마나 좋아합니까 몇 년 전인가요 우리 나라가 외국과 경기를 할 때 지고 있다가 극적으로 이겼습니다. 이 것을 텔레비전보고 있던 사람이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좋으면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흥분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었겠습니까

특히 한국사람들은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작은 운동경기에서도 서로 이기려고 기를 쓰고 덤비다가 작은 트라불이 생기면 체면을 다 팽개치고 큰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경우들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목사님들과 축구나 족구를 해보면 목사님들도 서로 이기려고 열심히 경기를 하다가 심판이 조금만 잘못을 하여도 언성이 높아지고 다투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우리들은 운동회에서도 내 자녀들이 남을 이겨야 한이 풀리고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해서 옆집아이를 이겨야 살맛이 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기심이 가득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이 봉 독한 말씀에서 “대저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세상을 이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이김은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사는 생존 경쟁에서 이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무슨 스포츠에서 이김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을 이긴다.” 라는 말은 세상의 어두움의 죄악과 싸워서 승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헤어지는 인사를 할 때 “승리 하십시요.” 라는 말을 사용을 합니다. 이 말은 “세상에서 범죄하지 말고 승리하라”는 인사입니다. 또한 “사탄의 시험에 들지 말고 예수 님처럼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의 성공은 악을 이기고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악을 이기고 사탄이의 어두움의 권세를 이기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12:21에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셨습니다. 또한 고전 9:25에서는 “우리는 승리의 면류관을 얻을 때까지 절제하며 전진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승리자가 되는 비결을 생각하여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영국의 전쟁영웅인 몽고 메리 원수는 그의 저서 지도자론 에서 세계 여러 지도자를 다루면서 성공한 지도자의 공통된 5가지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 신앙이 있는 지도자가 성공 곧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 적으로 말하면 믿음을 가진 자가 승리자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이 있는 지도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밀고 나아가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까지 인도한 모세를 보면 그가 얼마나 적극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 이였던 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왕과 싸워서 이긴 것도 믿음 하나만 가지고 이긴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고 건널 수 있었던 것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 하나였습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한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인도해 낸 것도 오직 적극적인 믿음 하나로 이긴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대한 굳은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였기에 승리한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어린 아이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은 그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두려움 때문에 약해진 것입니다. 그는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는 믿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나니까 그의 약하던 믿음이 강하고 적극적인 믿음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담대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강해진 베드로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어린 아이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은 그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두려움 때문에 약해진 것입니다. 그는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는 믿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나니까 그의 약하던 믿음이 강하고 적극적인 믿음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담대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강해진 베드로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셔서 나를 도우시고 인도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이기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낙망하고 좌절하고 쓰러져서 실패자 될 것입니다.

2)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결단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매일매일 결단을 하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을 한 것도 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결단이 있었고, 또한 이 사람과 살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신 것도 대단한 결단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결단력도 믿음에 의하여 좌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 빨리 결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믿음이 없는 사람은 결단성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늘 우유부단하고 남에게 끌려 다니는 모습을 하게 되며 주체성이 상실된 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승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이였지만 결단성이 부족한 사람 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돔 성이 죄악으로 가득하여도 그 성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살고 있다가 소돔 성이 유황불로 불탈 때 자신의 모든 것도 함께 타버린 것입니다.

지금 우리 곁에 소돔성의 롯과 같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사람하고 믿는데 몸은 아직 죄악의 땅 소돔성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결단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승리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까지 죄악에 거하여 살았습니까 아니면 우유부단하게 살아왔습니까 지금이 바로 믿음으로 살 때임을 믿으시고 결단해야 합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바르게 결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롭게 변화를 받고 세상에서 승리하는 자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용기가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역사는 영웅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도 굴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고난을 뛰어 넘어서 전진하는 자들이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진정한 힘도 어디에서 나올 수 있겠습니까 이 힘도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믿음을 가진 자가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고후8:1-2을 보면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의 시련 가운데서 넘치는 기쁨을 가졌고 극한 가난 속에서도 넘치도록 연보를 하였다.” 라고 하셨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 교회는 많은 핍박과 환난을 당하고 있는 교회였지만 넘치는 기쁨을 소유했으며 극한 가난 속에서도 남을 돕기 위한 헌금을 넘치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환난 속에서도 기뻐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가난하여 어려움 속에서 남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이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이 것은 세상이 알 수 없는 믿음을 가진 자들만의 용기인 것입니다.

일곱 집사 중의 하나였던 스데반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증거 하다가 포악한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성밖으로 끌려나와서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이 때 스데반은 전혀 두려움 없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 시옵소서! 하고 또한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고 잠이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용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이 종교를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면 민족의 반역자, 또는 종교의 이단자로 낙인을 찍혀서 공직자가 될 수가 없고 협동농장이나 공장에서 받아주지 아니하므로 실업자가 되기 쉽고 구멍가게를 하여도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파리만 날리게 되여 생계가 곤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 유대교를 버리고 예수를 믿게 되면 외국으로 이민을 가든지 아니면 이스라엘에 있는 어느 외국회사에 취직을 하든지 교회의 기관에서 일을 해야 생계를 우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국민학교에 들어가도 “나사렛도당”이라고 놀려대는 바람에 어떤 아이는 학교를 네 번이나 옮겨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인들의 개신교 교회가 있습니다. 그들은 가정집을 사들여 교회로 만들고 120여명이 모여서 자신의 민족과 조국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4) 끈기 있게 참고 기다리는 인내를 가진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기쁨보다 슬픔이 많고 즐거움 보다 고통이 많은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이 인생에서 길게 참고 기다리는 사람은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패배자 알콜 중독자, 마약중독자, 자포자기하는 사람. 자살하는 사람. 모두가 인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인내를 가지기 위해서는 믿음을 기초로 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소망이란 바라보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남편을 바라보며 사는 여인은 남편이 소망입니다. 그런데 남편을 바라보고 살기 위해서는 남편이 듬직한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남편이 언제 배신할 지 모르고 능력이 없어 믿을 수 없는 남자라면 누가 그 남자를 바라보며 살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야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실패하게되면 환경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거나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패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실패하는 것은 믿음으로 인내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대통령을 세 번한 사람이 [프랭클린 루즈벨트]인데 이 사람은 소아마비 환자로 다리를 저는 사람 이였고 휠체어를 타고 집무를 보는 사람 이였습니다.

[윈스턴 처어칠]도 소아마비 환자였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드골 장군]도 당뇨병환자로 그 후유증으로 백내장까지 앓고 있던 사람 이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위대한 전도자 [사도 바울]은 간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로서 가끔씩 뒤로 넘어지기도 하였다고 [칼빈]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위대한 승리자들은 어려운 환경과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믿음을 가졌고 소망을 가졌기에 낙심하지 않고 이내하며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며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자들인 이 땅의 고통과 괴로움을 이길 수 있는 인내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불우할 수도 있습니다. 나 자신이 병들어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사업이 힘들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삶이 침체의 늪에 빠져 절망이 밀려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믿음으로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5) 성실성이 있는 사람이 승리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열심히 일하는 자들을 사랑하십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사람이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성경에서는 “충성된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충성된 자란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요, 또한 마음이 변절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 또는 “오직 한분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의 전폭을 쏟아 붓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승리자의 다섯 번째 비결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나에게 주신 일을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워커 박물관에 가면 콘트로라가 그린 충성이라는 이름의 그림이 있습니다. 그 그림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옛날 로마시대에 폼페이 시가 베스 베어스 화산이 폭팔 하여 용암이 쏟아져 나오고 폼페이 시를 덮쳐서 완전히 땅에 뭍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현대의 고고학자들이 폼페이 시를 발굴을 하는데 참으로 감명을 주는 일을 발견을 했습니다. 그것은 성문을 지키는 병사가 화산이 폭팔 하여 용암이 흘러 내려오는데도 성문을 떠나지 않고 부동자세로 지키다가 그대로 화석이 되어 있는 모습 이였습니다. 이 것을 그림으로 그렸고 제목이 충성이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현대인들이 생각할 때 미련스럽게 보이도록 용암에 불타며 그 자리에서 죽었지만 충성스런 사람 이였고 승리한 사람인 것입니다.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님의 간증을 보면 곽선희 목사님 부인이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데 옆에 앉은 젊은 새댁이 “아주머니 믿으세요!”하면서 전도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전도를 받아보는 것도 신기해서 예수를 안 믿는 척했다는 것입니다. 이 젊은 여인은 열심히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자기 교회 목사님이 훌륭하고 설교도 은혜 스러 우니 꼭 우리교회에 나오셔서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모님이 어느 교회에 다니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곽선희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소망교회에 다니더라고 하더랍니다. 이 여인은 큰 교회에 다니니까 자기교회의 목사의 부인의 얼굴은 모르지만 참으로 충성스러운 일꾼이고 이러한 사람 때문에 소망교회가 부흥된다는 이야기입니다.

2. 성경 적으로 세상을 이기는 믿음에 관하여 말씀드리려 합니다.1)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믿음입니다.(1)요1:1

2. 계3:20

본문 1절에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서난 자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란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셔들이고 영적인 관계를 이루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여 믿을 때에 하나님의 언약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속 량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으로 성령이 그 사람 속에 오셔서 본질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안에, 그가 하나님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로운 출생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의 권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자 예수를 중심에 모실 때 하나님의 언약으로 죄를 속 량 받고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마음 가운데 오십니다. 하나님의 자녀 권세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권세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2)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입니다(벧전5:7-8)

시 37:5절에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 있으면 능히 세상을 이깁니다.

자력으로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호흡한번 제대로 할 수 없고 걸음 한발 짝 띨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로 우주는 지어졌고 그의 섭리와 역사로 나는 생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사는 존재들이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맡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내 생명과 생각과 삶 전체를 하나님께 맡길 때에 어떤 경우라도 참 안식이 옵니다. 어제 좋았던 조건이 오늘 나쁜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결별된 삶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면 요동함이 없는 안식을 얻습니다.

사탄의 궤계가 흉흉하고 재앙의 세력들이 산재해 있는 이때에 하나님의 보장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벧전 1:5절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어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라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에 보면 요셉 이라는 인물은 17세의 어린 나이에 종으로 애 굽으로 팔렸으나 자기의 인생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나아갈 때 13년의 어려운 시험과 연단을 거처 30세에 애굽의 국무 총리가 되며 정상에 우뚝 서서 승리자 성공자가 된 것입니다(창37-50장)

3)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믿음입니다(요1서4:15)수1:7-9

요일 4:15절에는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자도 하나님 안에 거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밥을 먹으면 밥 속의 칼로리가 섭취됩니다. 과일을 먹으면 과일 속의 자양분이 우리 몸에 유익하게 작용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와 성령으로 함께 하심을 알고 믿고 의지할 때에 세상을 이기는 권세가 실제로 나의 삶 속에 나타납니다.

여호수아 1:7-9절에 여호수아에게 약속하기를 하나님이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므로 승리자가 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말씀을 중심에 새기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가나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세상은 [돈고스몬]이라고 하는데 죄악으로 타락한 세상을 가리킵니다. 사탄의 세력에 고통과 저주를 받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심판을 받을 세상을 가리킵니다.

또한 여기서 이긴다는 말은 헬라 원어로 [니카]인데 “이긴다 “정복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계속 승리의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한번이기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이긴다는 것은 계속 승리의 상태에 머물러 있고 승리의 행진을 계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승리에 지금 머물도록 하고 영원토록 승리하게 하신 믿음으로 세상을 능히 이기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믿음대로 되게 하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히 11:1-2절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믿음을 얻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 속에 믿음대로 되게 하시는 언약을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이 믿음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을 받은 성도 여러분에게 이 같은 믿음으로 능히 세상을 이기는 권세가 나타나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사랑하는 믿음이다(3) 롬8:32-38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계명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요1서 4:15에 누구든지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는 자리에서 찾을 수 있는 힘입니다.

사람들은 계명을 윤리적이고 도덕적 관점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는 자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요1서 2;23에는 이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도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는 있느니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예수를 시인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또 하나의 과제는 형제사랑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고질적인 병패는 이기주의입니다. 자신만 알고 형제는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세상을 이기는 자는 되지 못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과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굳게 믿는 믿음에서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믿음에 바로 서면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위해 자신을 죽이고 겸손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의 믿음은 생명이 있는 믿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생명이 넘치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로마서8:37-39절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8) 내가 확신 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5)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기도의 제단이 있어야 승리합니다.

신앙 인에게 기도가 없다면 마치 알맹이 없는 열매와 같을 것이며 호흡이 멈춘 사람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분명히 응답해 주십니다. 요 14:13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하였습니다. 주님께 구하면 시행하십니다. 즉시 행동에 옮기신다는 말입니다.

출 17:8-16절까지의 내용은 [르비딤]에서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모세는 아론과 훌을 대동하고 산 위에 올라갔습니다. 산 위에서 산 위에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이 사실을 본 아론과 훌은 돌을 가져다가 가운데 놓고 모세를 앉게 하고 한 사람은 오른손을 한 사람은 왼손을 들어주기를 저녁때까지 하였더니 이스라엘이 승리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 그리고 훌이 기도했더니 승리하였습니다. 기도해야 승리합니다.

우리 나라가 승리하고 번영하려면 교회마다 그리고 정부와 정치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6) 말씀대로 살 때 승리합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영양분이 없으면 영양실조로 건강을 지탱할 수 없습니다. 신앙 인이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영적으로 영양실조에 걸려서 신앙을 지켜 나갈 수 없습니다. 말씀이 있어야 함이 있고 힘이 있어야 싸워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히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 하 시나니..” 하였는데 말씀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의 복음, 사랑의 복음, 거룩하신 말씀으로 악한 것들과 싸워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니라”고 한 귀한 말씀대로 살아서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7)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십자가를 의지할 때 승리합니다(고전1:18)

십자가란 의미<고전1:1 8.요3:13-16.요1서3:16.갈6:14>

(1)신학적 의미(요3:16 요1서3:16)

①하나님의 공의의 만족

②하나님 사랑의 증거

③공의+사랑=구원(예수 그리스도-죽음. 부활)

(2)구속사적 의미(고전1:18)

①구원-용서. 속죄. 사함.

②능력-믿음. 세상. 자신.

③승리-죄. 사망. 마귀.

(3)생활적 의미(마16:24)

①나는 즐겁고 남이 보기에 고통스럽게 보임

②성도의 의무와 사명(마10:38)

③화해와 사랑의 생활(엡2:16)

(4)성경 적 의미(히12:1-2 빌2:5 갈2:20)

①복종=겸손(빌2:8)

②부끄러운 것=인내(히12:2)

③죽고 사는 것=죽음과 부활(갈2:20.고전15:3

1.롬6:6.요11:2

8.요6:63

신앙 인에게 십자가가 없으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골 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 하셨느니라”고 하였는데 우리 예수님의 승리는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우리도 십자가로 승리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며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의지해야 합니다.

마 16:24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진실로 예수님을 따르려면 나에게 있는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

(1) 내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2) 사랑해야 합니다.

(3) 희생해야 합니다.

(4) 순종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하고 이 십자가를 의지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의지하여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 인은 승리해야 합니다. 패배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적극적이고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어서 날마다 승리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악하고 패 역한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이여 악한 사단과 싸워 승리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충만히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르므로 축원합니다.

(결론) 승리자가 있는 세 가지 증표(요1서5:6-8)

A.물(말씀) B.피(그리스도의 보혈) C.성령(성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세상에서 승리자가 되고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은 믿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빌4:13에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영접하고 의지하고 임마누엘의 믿음과 사랑하는 믿음과 기도와 말씀과 십자가를 지는 신앙으로 가득 차 있을 때에 우리는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나약한 모습으로 살지 마십시요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다니는 연약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믿음을 굳게 가지시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푯대를 정하고 힘차게 전진하여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세상을 마귀를 이기는 승리하자

세상을 이기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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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힘은 믿음입니다.

2008. 5. 1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60)

본문 : 요일 5:4-5

제목 : 세상을 이기는 힘은 믿음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크게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로 구별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하나님 나라가 있고 그와 반대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사탄을 숭배하며 사탄이 만들어놓은 온갖 죄악들을 행하면서 사는 사탄의 나라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도 섬기지 않지만 사탄도 섬기지 않기 때문에 나는 중립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은 무조건 다 사탄에게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은 중립지대가 없는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 이 두 가지로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두 나라는 서로 화합을 하거나 타협을 하여 적당히 공존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두 나라이기 때문에 서로 싸우면서 살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 즉 사탄의 나라와 싸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상에 있는 교회를 전투하는 교회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조심해야 할 것은 사탄의 나라를 정확하게 구별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라고 할 때 이 세상의 모든 것 육신적인 모든 것을 우리가 싸워야 할 사탄의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이나 과학이나 문화나 예술이나 등산이나 스포츠나 오락이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싸워야 한다고 하면 이런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교회에서만 생활하고 영적인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좋은 것들입니다.

자연세계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너무나 좋은 것들입니다.

과학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창조의 질서를 발견하여 우리의 삶에 응용하는 것입니다.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의 세계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시기 위해서 이미 그 원리를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이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악한 것으로 분류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이런 것들이 원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목적대로 쓰이지 못하고 사탄의 역사에 의해서 잘못 사용 되어질 때 우리의 적이 될 뿐입니다.

자연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영광을 받을 때 그것은 사탄이 됩니다.

태양을 신이라고 섬기거나 이상한 바위를 신성시할 때 그것은 죄가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모든 자연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것들입니다.

과학을 통하여 인간의 기술을 하나님 보다 낫다고 여기거나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자연의 법칙을 바꿔버리면 그것은 악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을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세계가 너무나 오묘함을 밝히고 하나님의 능력에 영광을 돌리며 우리의 삶에 잘 활용한다면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음악을 가지고 사탄을 찬양한다거나 도덕적으로 퇴폐한 일에 사용을 한다면 그것은 악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음악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의 삶에 기쁨을 누리게 한다면 그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노래를 불러서 인간이 재미있고 행복하게 된다면 그것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받아서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사는 것이 제일 큰 목표라고 할지라도 매사 모든 일에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을 통하여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면서 사는 것도 좋은 일들입니다.

세상에 있는 악한 것들을 정확하게 분별하여 그들과 싸우면서 사는 것이 우리 성도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우리가 그런 악한 세상과 싸울 때 승리할 수 있는 무기가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싸워야 승리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깁니다.

본문 4절 말씀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참 강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거부하고 사탄의 세력과 하나가 되어 있는 이 세상은 너무나 강합니다.

그런데도 그 악하고 강한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생명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에 거듭난 우리 성도는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강할지라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하나 우리에게 힘이 되는 것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가 세상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이 우주 만물이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임을 믿고

지금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경말씀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침서로 주심을 믿고

그 말씀대로 그 약속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믿음”이라는 말 속에는 더 깊고 오묘한 진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라고 할 때 그 말이 강조하는 강조점은 “행함으로”라는 말과 반대되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한다고 할 때 우리 스스로의 행동으로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가 아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나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 성도들은 세상과 싸우는 방법을 자신의 힘으로 싸워 이겨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수도원의 생활이었습니다.

수도원적인 생활은 분명히 세상과 싸우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방법은 수도자들이 암굴이나 산위에 올라가 세상과 전혀 격리된 채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인간의 의지력을 최상으로 올리면서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견디고 이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규율을 만들어 놓고 그 규율들을 엄격이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의 악은 너무 강하게 때문에 철저히 세상에서 나와서 격리된 채 사는 길만이 세상을 이기는 것이라고 저들은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기기 위해 집, 직업, 가족, 소명 들을 버리고 수도원으로 들어가거나 암굴이나 산 속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주로 그들은 세상의 생각을 하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기도와 말씀 속에 묵상을 많이 하였습니다.

한 주간에 두 번 이상 금식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이상 많은 금식을 하였습니다.

사순절과 같은 특별한 절기에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육신을 철저히 부인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금욕주의적인 수도원 생활의 문제가 있다면 모든 성도들이 다 이런 생활을 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몇 몇 그럴만한 여건이 주어진 사람들만이 그래도 가질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었습니다.

이 금욕주의는 이에 철저하게 자신을 드린 사람들에게 성자 칭호를 주고 그들은 구원을 이루고도 남음이 있는 공로를 쌓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의 공로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결국 다시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가 아닌 인간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 방향으로 나가게 하였습니다.

심지어 이들이 죽은 후에는 이들에게 기도하면서 그들의 공로를 비는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게 하였습니다.

수도원 운동의 큰 실수는 세상이라는 것이 성도의 밖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에도 엄청난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 데 있습니다.

그리고 수도원 운동은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결국 이행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다 산 속에 올라가 있으면 누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썩어져 가는 세상 속에서 누가 소금이 되겠습니까?

어둠에 잠긴 세상에 누가 빛이 되어 주겠습니까?

누가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겠습니까?

오늘날도 “믿음생활” 하면 얼른 이 수도원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을 거부하고 단절하고 떠나서 저 깊은 산속에서 수도를 하면서 사는 것이 믿음생활의 최고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도원이나 기도원이 아니라도 늘 기도하고 금식하고 고행이나 선행을 하면서 사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사명을 망각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과 싸우지 않고 세상을 피하여 도망가는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 나아가서 그들과 싸울 때 우리를 승리자가 되게 해 주시는 귀한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그 말씀을 가지고 나아갈 때 그 말씀이 능력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 성도들이 그 말씀을 가지고 산 속으로 들어가 버리거나 세상에 나아가면서 이 말씀을 두고 간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그저 시험을 보기 위한 하나님께 관한 지식을 쌓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을 했지 실지 전투에서 사용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려고 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세상을 살면서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적당히 타협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수학을 싫어합니다.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더하기 빼기나 곱하기 나누기는 우리가 흔히 쓰는 것이니까 재미있었는데 그런데 방정식과 부등식 이런 것이 나오고 미분과 적분 이런 것이 나오니까 실생활에 쓸모도 없어 보이는 것들이 복잡하기만 해서 그만 흥미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필요한 중요한 것인 줄 알았다면 더 열심히 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경말씀에 흥미를 잃는 것도 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성경말씀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있어야 할 필요한 말씀인줄 알았다면 성경을 더 많이 일고 열심히 공부도 했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서 여러 가지 후회가 되는 일들이 많음을 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성경말씀을 삶에 실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알고 그 말씀대로만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앞에 놓고 믿음으로 공부를 하고, 믿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믿음으로 사업을 하고, 믿음으로 모든 일들을 해 나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많은 세월들 속에 그 많은 시간들이 있었는데 성경말씀을 읽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작은 성경책 하나 가지고 늘 그 성경말씀을 일고 묵상하고 실천하면서 살았으면 하는 후회가 막심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한번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성경말씀을 늘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면서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목표가 무엇인지 분야가 어떤 것인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관계가 없이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이 하나님의 말씀은 즉 우리가 가진 믿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세상을 이깁니다.

본문 5절 말씀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싸워서 이겨야 되는데 그 힘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가 하니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믿는 믿음이 이 세상을 이기게 해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니냐. 라는 것을 따져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 그 속에 함유된 뜻을 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과 그렇지 않고 예수님께서 단순히 사람 중에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을 때의 그 믿음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낳게 하셨다

죽은 사람을 살리셨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다 하는데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이런 능력들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 기적이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라고 강조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기 보다는 예수님께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의심 없이 믿는 사람이라면 그까짓 일들을 행하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말씀으로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신데 그깟 병자 고치고 살리는 것은 이야기 거리도 못되는 것입니다.

마치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을 자랑하면서 아 우리 아이가 말을 할 줄 알아요. 우리 아이가 한글을 알아요. 라고 자랑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도덕적인 가르치심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신 일에 억울한 사람들의 편에 서 주시는 일에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다면 그런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면서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다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다. 라고 할 때 그것을 믿는 믿음이 세상을 이긴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지은 죄로 인하여 영원한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지만 우리는 그 죄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지 못하는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선을 행하고 고행을 하고 덕을 쌓아서 의로운 사람이 되어 보려고 몸부림을 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단번에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신 칭의”의 진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이런 말씀들에 대해서는 로마서와 에베소서 강해설교를 통하여 귀가 따갑도록 들으셔서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이 진리를 알고 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의인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을 넉넉히 이기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거기에서 흘리신 보혈이 우리를 죄인에서 의인으로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멸망의 자리에서 영생의 나라로 옮기게 했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은 이악하고 강한 세상과의 싸움에서 능히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에 대해서 많이 들어서 이미 알고 있고 또 6절에서 12절에 이를 계속해서 설명을 하기 때문에 오늘은 더 설명을 하지 않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 즉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세상을 이기게 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번에 고향엘 다녀왔습니다.

순교하신 목사님 기념사업을 위해서 다녀왔습니다.

살아계신 분들을 통해서 저희 집안에 복음을 가지고 오셔서 온 집안에 예수님을 믿게 하신 저희 할아버지와 순교하신 동생 할아버지 목사님에 대한 증언들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저희 할아버지가 노래를 좋아하셨다는 것과 오늘날의 지휘자처럼 찬송을 앞에서 지도하시면서 부르셨다는 것과 그리고 그 중에서 늘 즐겨 부르시던 찬송이 오늘 우리가 가진 찬송가 475장 “ 이 세상은 요란하나”라는 찬송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은 요란하나/ 내 마음은 늘 편하다/ 구주의 뜻 준행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그 암울한 일제 강점기를 살면서 구주되신 예수님을 알고 그 뜻을 따라 삶으로 평안함을 누리면서 사신 모습으로 보게 됩니다.

“이 세상은 늘 변하고/ 험악한 일 참 많으나/ 주 은혜만 생각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도참 쉽게 변하고 사람들의 마음도 잘 변하고 험악한 일들도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이기면서 승리하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 못 볼 때에/ 신령한 눈 곧 밝히사/ 저 천성문 보게 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남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저 천국을 알고, 보고, 믿고, 살아가는 우리가 참으로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육신의 복락보다는 신령한 복이 참 좋습니다.

우리의 맘과 우리의 뜻을 다 합하여 저 천국을 향하여 나가는 삶이 참으로 행복한 삶이며 이 세상을 이길 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자신의 본분을 잊고 사탄과 하나가 되어 악한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악한 세상과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이악하고 강한 세상과 싸워서 이기는 길은 믿음으로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는 믿음만이 이 세상을 이길 강한 힘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강한 용사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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