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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 수훈 정리 | 10분 성경 몰아보기ㅣ산상수훈 완벽정리, 마태복음 5~7장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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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 #마태복음 #산상수훈
보통목사와 함께하는 한 장 묵상입니다.
오늘은 산상수훈의 말씀(5~7장)을 하나로 묶어낸 영상입니다.
따로 따로 들을 때와는 또 다른 깨달음과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주님이 크고 높으시니, 우리는 그저 보통이면 됩니다.
0:00 마태복음 5장
06:53 마태복음 6장
14:41 마태복음 7장

————————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맛있다 달고나커피 – https://youtu.be/lhgAmp0S-TU
🎵Track : A Temple of Asadal – https://youtu.be/FBxFGl2NcDM
🎵Track : Equality – https://youtu.be/VfImFoOi5EU🎵Music provided by 크리스찬 BGM
🎵Music provided by 크리스찬BGM
🎵Track : 아바 아버지
🎵Track : 예수 나의 치료자
🎵Track :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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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 정리와 간단한 설명 – Daum 카페

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 정리와 간단한 설명. 할렐루야!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무더운 여름에도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성경을 읽고 정리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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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11/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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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Sermon on the Mount) – 좁은문 – Good4Joy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Matthew) 5장부터 7장까지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설교로 마태복음이 …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 정리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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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ood4joy.org

Date Published: 8/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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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산상수훈

성경의 산상수훈(山上垂訓)과 김교신의 팔복(八福) 해설 … [이 책의 서문; 산상수훈에 대해 잘 정리된 간략한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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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hs.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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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 예수의 윤리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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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ruthlee.tistory.com

Date Published: 5/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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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일, 마 5:1-7:29, 산상수훈 < 성경통독 ... - 크리스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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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cjlogos.org

Date Published: 1/23/2022

View: 2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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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성경 몰아보기ㅣ산상수훈 완벽정리, 마태복음 5~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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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산상 수훈 정리

  • Author: 보통목사의 10분성경
  • Views: 조회수 49,26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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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3. 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i_FbtVrqkk4

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 정리와 간단한 설명

산상보훈: 팔복- 제자들, 병든 자들, 같이 온 자들

1-10 팔복: 산에 올라가 가르치심. 가난. 애통. 온유. 의. 자비. 청결. 화평. 의

천국, 위로, 땅, 배부름, 긍휼, 하나님 봄, 하나님 아들, 천국

11-12 예수님으로 인해 모욕을 받고 박해를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상이 큼이라

13-16 소금과 빛: 13 소금 14-16 빛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7-20 율법에 대한 교훈: 율법을 완성하려 오심/ 천국에서 큰 자/ 천국 입성에 대해

21-26 형제에 대한 교훈/ 형제를 욕하지 마라/ 형제와 사화 하라

21-24 노함/ 라가/ 미련한 자, 형제와 화해 25-26 고소인과의 화해

27-30 간음 : 음욕을 품는 자는 간음 자/ 오른 눈 오른손 범죄 시

31-32 이혼 : 음행의 이유 없이 이혼 금지/ 이혼 증서/ 간음하게 되는 자

33-37 맹세 금지: 예, 아니오 하라

38-42 보복 금지: 오른쪽 빰, 왼쪽 빰, 겉옷 속옷, 오리 십 리, 구하는 자 꾸고자

하는 자에게 주라

43-48 원수를 사랑하라: 박해하는 자 위해 기도하라 하나님의 아이들이 되리라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1. 팔복(1-12절)의 설명

8복에 대해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에 대해서 이미 설명을 드렸지만 저는 성령을 받은 자로서 성령의 충만을 늘 갈급해 하고 성령의 충만을 기다리는 자로 설명을 했고 이런 사람은 처음부터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본인의 노력도 꼭 필요하다고 오천만의 로마서 사복음서 정리 코너의 산상수훈을 배우며에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도 역시 그 코너에서 말씀을 드렸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의는 하나님의 의이며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목마른 것도 역시 성령을 받고서 가장 하나님의 의를 잘 이룰 수 있는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이에 해당함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율법에 계시된 의이기도 하지만 또 복음에 나타난 의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의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에 매달리심, 그리고 죽으심으로 해결하심으로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고, 이를 통해서 믿는 자에게 미치는 의가 있는데 이 모든 의의 추구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모습이며 이렇게 하나님의 의로우심으로부터 나타난 칭의로 인해서 의롭게 된 성도의 세상에서 정의로운 삶이 너무나 필요함을 또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했는데 마음이 청결하기 위한 가장 정확하고 완전한 방법은 우리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모든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는 길이 마음이 청결하게 되는 유일하고 가장 올바른 길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용서받은 죄인의 죄에 대한 투쟁과 죄를 지으면 이에 대한 온전한 회개가 마음을 청결하게 만드는 줄로 믿는데 이런 사람이 받는 복이 하나님을 뵈옵는 복이라고 했으니 거룩하신 하나님을 죄인이 죄를 가지고서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 시대에 제사장이 성막에 들어갈 때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하고 죄가 있을 때 먼저 짐승의 피 흘림의 제사를 통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께 나아갔는데 그렇지 못할 때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미국의 대학에서 자신이 우주에서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의 모습은 뵐 수가 없다고 강의하자 한 학생이 이 말씀을 인용해서 반박했다는 내용은 모두가 잘 알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가 있으면 믿지 하는데 자신이 죽는 일도 모르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죄인인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평의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음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불의한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길을 예수님께서 열어놓으셨는데 전하는 사람이 없으면 이를 알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화평의 복음의 신을 신자라고 했고 전하는 발걸음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어디에 가서든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사람을 대하지 말고 그 사람이 모든 사람과 화평케 되도록 사랑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 팔복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5장의 아래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 것입니다.

11-12절의 말씀은 예수를 믿는 어떤 사람도 경험하게 되는 일입니다. 세상 사람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을 주관하는 영이 다릅니다. 특별히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이 없는 집단에 들어가면 거의 왕 따를 당하는 수준의 핍박이 있고 모욕이 있고 그리고 미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다 같이 집단이 되어서 괴롭힘을 당할 수가 있는데 교묘하게 괴롭힙니다. 이럴 때 화를 내고 같이 악으로 대하지 말고 도리어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참으로 현실에서 쉽지가 않지만 주님의 명령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믿음의 백성이 하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백성이 믿지 않는 자들과 도리어 하나가 되어서 선하게 착하게 살고자 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같이 괴롭힌다면 이는 믿는 자의 도리를 완전히 저버린 죄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가 되고도 약 8년을 세상에서 다양한 직장을 가지고 생활을 하는데 참으로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서 도움도 많이 받고 위로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직위를 이용해서 그리고 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을 더 우선시해서 신자의 도리를 저버리는 사람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특히 타 교인에 대한 부분과 천주교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 너무나 잘못 배워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넓히지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도 못하는 교인들이 너무나 많음을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께서 분명하게 아셔야 할 것입니다.

어디에나 예수님은 믿는 자와 함께 하시고 예수님은 나 혼자의 예수님도 내 교회만의 예수님도 아니고 모든 세상의 믿는 자의 주가 되심을 반드시 믿으셔야 합니다. 세상에서 출세하고 세상의 조직에 충성하고자 형제를 저버린 모든 자는 예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을 하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7장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2. 율법에 대한 말씀

17-20은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도 아니고 베드로의 말씀도 아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의 서신서를 잘못 이해하면 율법을 우리는 참으로 배우지도 실천하지도 않고서 세상의 법을 달달달 외우고 세상의 법을 지키는 일에는 목숨을 거나 주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데에는 진작 그 명령이 무엇인지 명령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키지도 않습니다. 이 율법에 대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길 어떤 서신서의 내용도 전혀 없음을 믿으시고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율법을 완성합니까? 이미 예수님께 잘못하고 있다고 혼이 난 바리새인과 같이 율법을 달달달 외어서 실천을 해야 합니까? 이도 너무나 필요합니다. 율법을 우선 잘 배우는 것은 너무나 필요한 일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성도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 구체적으로 생기는 일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된다고 규정을 해 놓은 것입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내용은 절대로 지켜야 합니다. 예를 들면 땅에 대한 내용은 국법에서 사유를 허락하고 소유를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서 끝도 없이 가져도 벌을 주지 않는다고 할 때(지금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 율법에서 하나님께서 토지에 대한 규정을 모르면 이렇게 사는 것이 죄가 되지 않을 것으로 크게 착각을 할 수가 있는데 율법은 땅의 소유에 대해서 엄격하게 제한을 하고 땅은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명령을 하시며 함부로 사고팔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같이 집을 여러 채 소유하고 땅을 많이 가지는 자는 반드시 저주를 받아서 그 집에 폐가가 될 것이고 땅에서 소산이 현저히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율법을 잘 배워서 구체적인 상황에서 지켜야 합니다. 율법은 사랑을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냐 정해 놓은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이고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틀림없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율법 613조문을 요약한 말씀이 10계명인데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백성의 큰 계명입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 모든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자신의 혈육의 형제와 같이 자신의 자녀와 같이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든 계명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 율법의 내용에 대해서 잘 배우고 반드시 때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잘 지켜야 합니다. 성경 속에 유교의 사람에 대한 질서 못지않은 질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규정은 죄의 용서에 대해서 사형에 해당하는 죄는 짐승의 제사로도 사할 수가 없었고 반드시 죄를 지은 사람을 죽어야 했습니다. 간음에 관한 죄도 그러한 죄였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용서를 해 주셨습니다(간음한 여인) 이렇게 율법이 불가한 내용도 예수님을 통해서 완전케 되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그 조문을 다 지킨다고 의롭게 되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모든 죄를 용서받은 새로운 창조물이 된 신자가 성령을 받아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되면 이를 통해서 율법의 완성이 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율법을 모르면 절대로 사랑을 실천할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지금도 성도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잘 알아야 하고 가장 잘 지켜야 하는 법입니다. 절대로 예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인간의 서신서를 통해서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들 서신서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기에 절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감동은 있을 수가 없고 단지 서신서의 본 의미를 해석을 통해서 왜곡시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 간음과 이혼에 대한 말씀

간음에 대해선 더욱 엄격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은 현대 특히 서양에서 너무나 잘 지키지 않는 부분이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간통죄가 있었는데 지금은 서로 합의가 되면 간통이 성립이 되지 않고 있는데 절대로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있으니 성경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이혼에 대해서도 같은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올바르고 세상의 법은 신자에게 절대로 올바르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4. 원수사랑에 대해서

이제 성도가 왜 원수도 사랑을 해야 합니까? 우리 모두는 죄인이었고 그리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기 전에는 모두가 예수님의 원수들이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반드시 죄로 인해서 죽어야 할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도모지 들지 않고 불의로 진노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고 불화로 모든 저주를 받아야 할 자들이 저를 포함해서 모든 성도들입니다. 이런 하나님과 원수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의롭게 되어 이 세상을 살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우리는 당연히 이제는 우리에게 원수가 되는 사람들, 우리에게 불의하게 대하는 사람들, 우리를 괴롭히고 속이고 죽이려는 우리의 원수를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우리도 이들을 용서하고 축복하고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를 위한 십자가의 사랑을 묵상하며 죽이고 싶은 원수라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이러한 원수였다는 인식이 없이 그리고 예수님의 나를 위한 십자가의 수난을 묵상함 없이 원수를 사랑하긴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를 용서를 해야만 우리의 죄도 또 용서받는 길이 열리고 용서를 받아야 기도도 상달이 되기에 우리는 반드시 이 말씀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전도하면 정말로 끝까지 참아야 되고 참으로 참기가 어려운 일들도 있음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그래도 축복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완전한 사람이 되라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도 주신 명령이고 우리에게 또 주시는데 이도 반드시 율법을 알고 실천을 해야 합니다.

산상수훈 (Sermon on the Mount)

Good4Joy

산상수훈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Matthew) 5장부터 7장까지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설교로 마태복음이 기록한 5개의 설교 (Five Discourses) 중 첫 번째 입니다. 산상수훈은 복음서에서 기록한 설교 중 가장 긴 것으로 “팔복”, “주기도문” 등의 유명한 가르침을 포함한 예수님의 아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입니다.

개요와 구조

산상수훈은 우리의 실질적인 왕으로서 예수님의 취임사로 비교할 수 있으며 그 취임사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어떻고 그 백성이 어때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개요

주제: 천국(축복, 기쁨, 행복)과 천국 백성의 윤리

시간: 공생애 시작; 갈릴리 사역; AD 30년경 (4:12-25)

장소: 갈릴리 (이스라엘 북쪽, 갈릴리 호수 서쪽) 지역의 한 산 (5:1); 전승에 의하면 가버나움 (Capernaum)과 디베랴 (Tiberius) 사이의 한 언덕

청중: 제자 (5:1, 7:28), 천국 백성이 될 사람

산상수훈은 한 번의 가르침이 아니고 여러 번 하신 가르침의 모음이라는 의견도 있음

마태복음의 산상수훈 중 34개 절이 누가복음 6장에 있고 이를 평상수훈(Sermon on the Plain)이라 부름

가르침의 기준

산상수훈을 통해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도덕과 윤리의 기준이 높습니다.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가르침이 실제적이지 않다고 일축하거나 미래 천국에서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오늘을 살아가는 제자(크리스천)에게 기준을 주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천이 천국에서 박해받을 일(5:10)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힘으로는 이 가르침의 기준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에 있어 우리의 어떤 것도 내세울 수 없음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롬 3:19-20)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갈 3:23-24)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산상수훈은 선행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방법을 제안한 것이 아니라, 죄인임을 깨달은 이(심령이 가난한 자)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회개하고 진정한 믿음이 순종의 열매를 맺는 것이라 믿습니다.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설교 구조

산상수훈은 3 포인트 설교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3 포인트 (도입, 본문, 결론/적용):

천국 백성 (5:3-16): 팔복 (Beatitudes) 즉 천국 백성의 축복과 역할 (빛과 소금) 천국 율법 (5:17-7:6): 예수님의 율법 완성, 예수님의 윤리 가르침과 유대의 율법주의 전통의 대조 천국 들어가기 (7:7-27):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좁은 문, 분별/열매, 반석 위의 집

설교는 반석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의 비유로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가르치며 마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실 심판자라 말씀하시며 산상수훈의 결론을 내리셨고 청중은 그의 가르침의 권위에 놀라며 산상수훈은 마치고 있습니다 (7:28-29).

산상수훈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신 후에 첫 사역을 갈릴리 지역에서 하셨는데, 마태복음 4-14장이 그 사역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5-7장)은 갈릴리 사역 중 일부이고 산상수훈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 시작 때문입니다.

(마 5: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여기서 “ 입을 열어 ”하는데, 예수님이 입을 여시는 것 자체가 축복이요 그분의 말씀이 곧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복있는 자는” 하십니다. 행복, 기쁨, 천국의 복음 즉 기쁜 소식입니다.

그리고 설교의 끝은 (7: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로 맺고 있습니다.

천국 백성

천국 백성은 어떻고 이 땅에서 그들의 목적을 소개하며 설교를 시작하십니다.

팔복 (The Beatitudes 5:3-12)

천국 백성의 축복의 선언으로, 여기서 복(Blessed)은 처한 상황에 좌우되는 세상적 행복(happy)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하나님 나라에서 구원받은 백성이 누리는 완전한 행복(wellbeing)이고 특별한 영적 기쁨입니다.

주요 구절: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같은 가르침: 눅 6:20-23

빛과 소금 (5:13-16)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사 42:6)을 이루시며 “이방의 빛”이 됨을 이루셨습니다.

(사 42: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보며 (눅 2:30-32)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역할을 계속 이어서 수행할 것을 기대하십니다.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같은 가르침: 막 9:50; 눅 14:34-35

참고 말씀: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빌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천국의 율법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자비가 아닌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의 율법의 기준을 낮추거나 변질 시켰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 정리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수정이나 없애려는 것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곡하고 잘 못 행하고 있는 것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17-20에서 예수님과 율법/율법의 완성으로 개관 설명하시고 5장 마지막까지 하나씩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님과 율법/율법의 완성 (5:17-20)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알리심으로 그것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내재한 깊은 원리를 가르치시며 그 율법을 단순한 지식, 외형, 혹은 종교 행위로서가 아닌 온전한 순종(하나님을 온 맘으로 사랑)을 강조하십니다.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22:37…39)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은 두 가지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에 새겨 주신 십계명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오심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율법입니다. 그러나 십계명 외의 생활 율법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폐하게 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사 율법은 단번에 영원한 속죄양이 되어주심으로 우리가 다시는 양을 잡아 하나님께 대속 물로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히10장 참고)

또한 유대인들은 당시 많은 규례를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벗어나 그들 스스로 의인임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즉 마음에서는 멀고 행위만을 함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했고,

(마 15:3)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예수님은 이러한 잘못된 율법 적용에 대해서 재정리해 주십니다. 즉 노하지 말라 (살인), 간음하지 말라, 맹세, 용서와 사랑으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십계명을 비롯한 구약의 주요 가르침 비교할 수 있습니다.

노하지 말라 (5:21-26)

“살인하지 말지니라”(출 20:13)의 구약의 가르침과 비교하여, 살인이라는 행위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내면적이고 원론적인 부분을 지적하시며, 화내는 것은 마음으로 살인하는 것과 같다 가르치십니다.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같은 가르침: 눅 12:57-59

제자 요한의 관련 가르침:

(요일 2: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간음하지 말라 (5:27-32)

“간음하지 말지니라”(출 20:14)의 구약의 가르침과 비교하며, “살인”(“노하지 말라”)에 대한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중요성 지적하십니다. 성적 타락 주의에 대해 예수님께서 여러 번 강조하셨고 제자들도 서신서를 통해 같은 내용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심지어는 영적 리더들의, 간음의 죄와 유혹의 위험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자신의 성적 타락에 대한 죄에 대해 극단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28-2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같은 가르침: 마 19:9; 막 10:11-12; 눅 16:18

참고 말씀:

(욥31:1)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잠6:25) 네 마음에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눈을 빼고” “손을 찍어 내버리는 (cut it off and throw it away)” 표현을 쓰시며 극단적인 대응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예를 들면, 맹인도 상상하며 간음의 죄를 지을 수 있으니, 예수님은 우리에게 불구가 되라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고 죄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대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같은 표현: 마 18:8-9; 막 9:43-48

맹세하지 말라 (5:33-37)

구약은 신성을 모독한 이 외의 맹세/서원(oaths)은 허락하고 있습니다. (레19:12, 신23:21, 삿 11:30) 하나님도 하십니다. (창 26:3; 시 132:11) 그리고 신약의 예도 있습니다. (행 18:18, 계 10:6)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결혼 서약, 법적 계약 등 약속을 해야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맹세를 많이 했을 뿐만 아니라 등급을 정해놓고 했었습니다. (참고: 마23:16-22) 깊이 생각지 않고 무심코 난발하는 것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특히 즉흥적인 “하나님 이름이로”, “내 목숨을 걸고” …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맹세는 마치 믿음이 강한 것을 자랑하는 과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없으며 우리가 미래를 주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히 맹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은 말할 수 있고 진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제자 야고보의 같은 가르침: 약 5:12

보복하지 말라 (5:38-42)

보복하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와 약한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주신 자비의 율법을 유대인들은 보복하는 “권리”로 악용했습니다.

(출 21: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모든 문제를 보복이나 폭력으로 풀려하지 말고 평화하기를 명령하십니다.

평화를 위하여 가능한 참고 주님께 걱정을 맡겨라. 크리스천은 분쟁과 분란을 피해야 합니다.

(5:39)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참고 말씀:

(롬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원수를 사랑하라 (5:43-48)

당시 유대인들은 이웃을 이스라엘 즉 같은 민족과 같은 종교의 범위에 두고 그 테두리 안에서 사랑의 율법을 지키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편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이들뿐 아니라 원수를 포함하여 모두를 사랑하라 명령하십니다. 특히 모든 이의 영혼을 사랑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5:44)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세상 사람과 다르지 않고 (우리의) 원수까지 사랑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러므로”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같은 가르침: 눅 6:27-36

참고 말씀:

(벧전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레 11:44; 19:2; 20:7

구제, 기도/주기도문, 금식 (6:1-18)

구제, 기도, 금식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종교 행위였습니다. 3가지 모두에서 예수님은 외식(남들에게 보이려는)을 삼가라 지적하십니다. 모두 비밀스럽게 즉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마음으로 하라고 가르치십니다.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3가지는 (2) “구제할 때에”, (5) “기도할 때에”, (16) “금식할 때에”로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때에”의 영어 해석은 “when you …” 입니다. “if”가 아닌 “when”으로 3가지를 할 때 이렇게 하라 가르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이 구제, 기도, 금식하는 것을 전제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주기도문으로 알려진 (6:9-12)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기도는 하나님 찬양, 하나님 나라의 완성, 죄 용서, 그리고 필요를 구합니다.

같은 가르침 (기도): 눅 11:2-4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걱정하지 말라 (6:19-34)

사람들의 눈 때문에 외식하거나 자기 자신을 위한 이기주의가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을 위해 살아가라 가르치십니다. 전능하시고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이 있어야 할 줄을 다 아시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 가르치십니다.

(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참고: 마태복음 6:19-34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비판 말라 (7:1-6)

스스로 의인이라 생각하거나 혹은 남보다 내가 낫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자신의 죄는 보지 못하고 남의 죄를 지적하지 말라 가르치십니다. 자기가 먼저 큰 죄인인 것을 알고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그의 진정한 복을 위해)으로 조심스럽게 다른 이의 잘못을 시정해 주어야 합니다.

분별하지 말라거나 형제의 잘못을 간과하라는 가르침은 아닙니다. 바른 분별이 필요하고 내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처럼 형제의 거룩 추구에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천국 들어가기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7:7-12)

하나님은 찾는 자를 만나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11)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같은 가르침: 눅 11:9-13

“좋은 것” 을 같은 가르침이 있는 누가복음에는 “성령” 이라 쓰고 있습니다. (눅 11:13)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좁은 문 (7:13-14)

(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예수님이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 좁은 문이십니다. 예수님만을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같은 가르침: 눅 13:24

참고 말씀: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열매로 분별/행하는 자

거짓 선지자는 열매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바른 믿음을 가진 이는 말씀을 듣고 행하므로 좋은 열매를 맺고 그들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같은 가르침: 눅 6:43-44, 47-49; 13:25-27

관련 자료

평상수훈 (Sermon on the Plain)

누가복음 6:17-49에 기록하고 있는 평상수훈은 복과 화 (Blessings and Woes), 원수 사랑, 비판하지 말라, 열매/듣고 행하는 자 산상수훈의 일부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평상수훈이라 부르는 이유는, (눅 6: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왜 같은 내용을 마태는 산에서 누가는 평지에서 했다고 기록했을까 라는 질문에, 어떤 이는 예수님께서 비슷한 설교를 여러 번 하셨다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대중적인 해석은 높은 산도 아니었고 산에도 평평한 지역이 있을 수 있기에 같은 설교라고 설명합니다.

참고로 누가는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 내용을 4:14-9:9에 담고 있습니다.

참고한 자료

성경의 산상수훈

성경의 산상수훈(山上垂訓)과 김교신의 팔복(八福) 해설

과거 거의 2000 년간 서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책은 신약과 구약으로 이루어진 성경(聖經; bible)이다.

다음에 성경 신약의 마태복음 5 장에서 7 장 첫 부분까지를 옮긴다. 이 부분은 산상수훈(山上垂訓; 산 위에서의 가르침)이라고 부르는 예수님의 가르침으로만 이루어진 유명한 부분이다. 힌두교도인 간디가 이 부분을 좋아하여 일생동안 삶의 규칙으로 삼았다(확인은 못하였으나)는 이야기도 있다.

종교와 이념을 떠나서 평온한 마음으로 읽어보기 바란다. 가능한 한 주석을 달지 않았다. 마음으로 느끼기 바라기 때문이다.

단지 과거에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라 어려운 한자어가 많아 영어 번역을 같이 첨부하였다. 이 영어는 현대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번역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산상수훈

[마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Now when he saw the crowds, he went up on a mountainside and sat down. His disciples came to him,

[마 5: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and he began to teach them, saying:

[마 5:3] 심령(心靈)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 이 저희 것임이요

”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

[임성삼의 생각; 첫 번째 복이면서 가장 귀중한 복이다.

겸손하며, 자만하지 않는 사람,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는 사람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어 성경과 프랑스어 성경에 이 구절이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虛心的人 有福了, 因爲天國是他們的 허심적인 유복료, 인위천국시타문적(중국어 성경)

“마음이 비어 있는 사람”이 좋은 번역이라고 느껴진다.

Heureux les pauvres en esprit, car le royaume des cieux est a eux!(프랑스어 성경)]

프랑스어 성경은 영어 성경과 단어대 단어로 동일하다. 독일어 성경도 거의 완전히 같은 내용이다.] [마 5:4] 애통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 를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임성삼의 생각; 두 번째 복이다.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슬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계시다.] [마 5:5] 온유 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 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

[임성삼의 생각; 세 번째의 복이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람들이 이 땅의 주인일 것임을 확인하신 말씀이다.] [마 5:6] 의(義) 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Blessed are those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 for they will be filled.

[임성삼의 생각; 네 번째 복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의(義)에 갈구(渴求; 몹시 애타게 구함)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이 만족하게 될 날이 온다는 선포이시다. 아직 오래 살지는 않았으나 의(義)가 실현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 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 을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will be shown mercy.

[임성삼의 생각; 다섯 번째 복이다. 선을 베푸는 사람이 그대로 보답을 받는다는 것은 동양과 서양의 보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그만큼 실제적인 사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 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 임이요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will see God.

[임성삼의 생각; 여섯 번째 복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복이다.] [마 5:9] 화평케 하는 자 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 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sons of God.

[임성삼의 생각; 일곱 번째 복이다. 신(神)의 아들은 사람들을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선언하셨다.] [마 5:10] 의(義)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 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 임이라

Blessed are those who are persecuted because of righteousness ,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임성삼의 생각; 여덟 번째 복이다. 의(義)를 위하여 핍박 받은 사람과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늘의 왕국을 자기의 것으로 할 수 있다.] [임성삼의 주(註); 이 여덟 가지 복 중 다섯 가지에 대한 “김교신”의 해설을 뒤에 붙인다.] [마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Blessed are you when people insult you, persecute you and falsely say all kinds of evil against you because of me.

[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Rejoice and be glad, because great is your reward in heaven, for in the same way they persecuted the prophets who were before you.

[임성삼의 생각; 기독교도들이 핍박을 받을 때,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 상황을 넘은 사례는 역사상 적어도 수 백 번이 넘는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loses its saltiness, how can it be made salty again?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by men.

[임성삼의 생각; 본질을 잃지 말라는 준엄한 말씀이시다. 또한 세상을 썩지 않게 하며, 스스로도 결코 변하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 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on a hill cannot be hidden.

[마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Neither do people light a lamp and put it under a bowl. Instead they put it on its stand, and it gives light to everyone in the house.

[마 5:16 ]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In the same way, let your light shine before men, that they may see your good deeds and praise your Father in heaven.

[임성삼의 생각; 착한 행실을 하는 것은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인하여 많은 기독교도들은 착한 행실을 할 의무가 있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Do not think that I have come to abolish the Law or the Prophets; I have not come to abolish them but to fulfill them.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I tell you the truth, until heaven and earth disappear, not the smallest letter, not the least stroke of a pen, will by any means disappear from the Law until everything is accomplished.

[마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Anyone who breaks one of the least of these commandments and teaches others to do the same will be called least in the kingdom of heaven, but whoever practices and teaches these commands will be called great in the kingdom of heaven.

[임성삼의 생각; 예수님은 개혁자이셨으나, 과거의 모든 규범을 완전히 인정하셨다.]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義)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For I tell you that unless your righteousness surpasses that of the Pharisee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you will certainly not enter the kingdom of heaven.

[임성삼의 생각; 여기의 서기관, 바리새인은 당시 율법을 신조로 살던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보다 더 철저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한다.] [마 5:21]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to the people long ago, ‘Do not murder, and anyone who murders will be subject to judgment.’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But I tell you that anyone who is angry with his brother will be subject to judgment. Again, anyone who says to his brother, ‘Raca,’ is answerable to the Sanhedrin. But anyone who says, ‘You fool!’ will be in danger of the fire of hell.

[임성삼의 생각; 법률의 단계를 뛰어 넘는 매우 준엄한 개념이다.

“라가”는 유태인의 욕이다.] [마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Therefore, if you are offering your gift at the altar and there remember that your brother has something against you,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leave your gift there in front of the altar. First go and be reconciled to your brother; then come and offer your gift.

[임성삼의 생각; 유태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은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형제와의 화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다.] [마 5: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 (私和; 송사(訟事)를 화해함) 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Settle matters quickly with your adversary who is taking you to court. Do it while you are still with him on the way, or he may hand you over to the judge, and the judge may hand you over to the officer, and you may be thrown into prison.

[마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I tell you the truth, you will not get out until you have paid the last penny.

[임성삼의 생각; 이 가르침을 거의 2천 년 동안 받은 서양의 그 많은 변호사 숫자를 보면, 그들이 이 말씀을 잘 받아들인 것 같지는 않다. 간디도 자서전에서 말했다. 예수님을 닮은 서양 사람들을 보지 못하였다고.] [마 5: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Do not commit adultery.’

[마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But I tell you that anyone who looks at a woman lustfully has already committed adultery with her in his heart.

[마 5:29]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If your right eye causes you to sin, gouge it out and throw it away. It is better for you to lose one part of your body than for your whole body to be thrown into hell.

[마 5: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And if your right hand causes you to sin, cut it off and throw it away. It is better for you to lose one part of your body than for your whole body to go into hell.

[임성삼의 생각; 매우 준엄한 말씀이어서 성직자들도 여러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마 5: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It has been said, ‘Anyone who divorces his wife must give her a certificate of divorce.’

[마 5: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But I tell you that anyone who divorces his wife, except for marital unfaithfulness, causes her to become an adulteress, and anyone who marries the divorced woman commits adultery.

[마 5: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Again,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to the people long ago, ‘Do not break your oath, but keep the oaths you have made to the Lord.’

[마 5: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But I tell you, Do not swear at all: either by heaven, for it is God’s throne;

[마 5:35]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or by the earth, for it is his footstool; or by Jerusalem, for it is the city of the Great King.

[마 5: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And do not swear by your head, for you cannot make even one hair white or black.

[마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Simply let your ‘Yes’ be ‘Yes,’ and your ‘No,’ ‘No’; anything beyond this comes from the evil one .

[임성삼의 생각; 중요한 가르침이시다. 진리는 복잡하지 않다.

세상을 살면서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면 충분하다.

다음의 공자의 말을 생각해보자.

子曰 由아 誨女知之乎인저 知之爲知之오 不知爲不知이 是知也 니라 (논어 위정편 爲政十七)

유(자로)야, 내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 [마 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Eye for eye, and tooth for tooth .’

[임성삼의 생각; 기원전 천 수백 년 전 모세가 전(傳)한 중요한 기준이다.] [마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But I tell you, Do not resist an evil person.

If someone strikes you on the right cheek, turn to him the other also.

[마 5: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And if someone wants to sue you and take your tunic, let him have your cloak as well.

[마 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If someone forces you to go one mile, go with him two miles.

[마 5:42 ]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말라

Give to the one who asks you, and do not turn away from the one who wants to borrow from you.

[임성삼의 생각;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도 내밀어라”는 말씀이 나온 곳이다.] [마 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Love your neighbor and hate your enemy.’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But I tell you: Love your enemies and pray for those who persecute you,

[마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that you may be sons of your Father in heaven. He causes his sun to rise on the evil and the good, and sends rain on the righteous and the unrighteous.

[임성삼의 생각;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이 곳에서 시작되었다.] [마 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If you love those who love you, what reward will you get? Are not even the tax collectors doing that?

[마 5: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And if you greet only your brothers, what are you doing more than others? Do not even pagans do that?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Be perfect , therefore,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

[임성삼의 생각; “완전해져라. Be perfect!” 이 말씀 속에 모든 내용이 있다.

“원수를 사랑하고”, “오른 뺨을 맞거든, 왼 뺨을 돌려대”면 완전해진다.

대학(大學)의 다음의 구절이 “Be perfect!”와 일맥 상통한다.

君子 無所不用其極 군자 무소불용기극

군자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일이 없다 ] [마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義)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Be careful not to do your ‘acts of righteousness’ before men, to be seen by them. If you do, you will have no reward from your Father in heaven.

[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外飾; 겉을 꾸밈)하는 자 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So when you give to the needy, do not announce it with trumpets , as the hypocrites (위선자; 가장(하기), 착한 체하는 사람) do in the synagogues and on the streets, to be honored by men. I tell you the truth, they have received their reward in full.

[마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But when you give to the needy, do not let your left hand know what your right hand is doing,

[마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so that your giving may be in secret. Then your Father, who sees what is done in secret, will reward you.

[임성삼의 생각;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의 출전이다.] [마 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 에 외식(外飾)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And when you pray, do not be like the hypocrites, for they love to pray standing in the synagogues and on the street corners to be seen by men. I tell you the truth, they have received their reward in full.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But when you pray, go into your room, close the door and pray to your Father, who is unseen. Then your Father, who sees what is done in secret, will reward you.

[마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And when you pray, do not keep on babbling like pagans, for they think they will be heard because of their many words.

[마 6: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Do not be like them, for your Father knows what you need before you ask him.

[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임성삼; 아래 부분은 기독교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라는 뜻으로 “주기도문 主祈禱文”이라고 부른다. 신(神)께 인간이 기원하는 모범적인 내용(prototype; 수리학[水理學]에서 사용되는 protytype의 용법과는 다르다)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This, then, is how you should pray: “‘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

[마 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마 6: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日用)할 양식을 주옵시고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

[마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

[임성삼의 생각; 주기도문 끝. 우리가 신께 구해야 하는 것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자.

신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그날 먹을 음식을 바라고

우리가 잘 못한 일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내가 나쁜 일을 행하지 않도록 구해 주시기를 기원하는 것.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마 6: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For if you forgive men when they sin against you, your heavenly Father will also forgive you.

[마 6: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But if you do not forgive men their sins, your Father will not forgive your sins.

[마 6:16] 금식(禁食)할 때에 너희는 외식(外飾)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When you fast, do not look somber as the hypocrites do, for they disfigure their faces to show men they are fasting. I tell you the truth, they have received their reward in full.

[마 6: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But when you fast, put oil on your head and wash your face,

[마 6: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so that it will not be obvious to men that you are fasting, but only to your Father, who is unseen; and your Father, who sees what is done in secret, will reward you.

[임성삼의 생각; 겉으로 꾸미는 것을 매우 싫어하셨다.]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Do not store up for yourselves treasures on earth, where moth and rust destroy, and where thieves break in and steal.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But store up for yourselves treasures in heaven, where moth and rust do not destroy, and where thieves do not break in and steal.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your heart will be also.

[마 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The eye is the lamp of the body. If your eyes are good, your whole body will be full of light.

[마 6: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 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But if your eyes are bad, your whole body will be full of darkness. If then the light within you is darkness, how great is that darkness!

[임성삼의 생각; 우리는 우리 정신의 빛을 밝게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임성삼; 아래 부분은 물질을 삶의 목적으로 여기는 사람에 대한 말씀이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No one can serve two masters.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he will be devote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ou cannot serve both God and Money.

[마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Therefore I tell you, do not worry about your life, what you will eat or drink; or about your body, what you will wear. Is not life more important than food, and the body more important than clothes?

[마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Look at the birds of the air; they do not sow or reap or store away in barns, and yet your heavenly Father feeds them. Are you not much more valuable than they?

[마 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Who of you by worrying can add a single hour to his life ?

Qui de vous, par ses inquietudes, peut ajouter une coudee a la duree de sa vie ?[불어 성경] [임성삼의 생각; 우리말 성경과 다른 나라 성경이 차이가 나는 흔하지 않은 구절이다.

영어 성경은 “염려함으로 그의 생명을 단 한 시간이라도 연장할 수 있느냐?”이고,

불어 성경은 “염려함으로 그의 삶의 기간을 une coudee(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 약 50 cm)라도 더할 수가 있느냐?”이다.

원래의 언어로 하면 양쪽으로 모두 해석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마 6: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 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And why do you worry about clothes? See how the lilies of the field grow. They do not labor or spin.

[마 6: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Yet I tell you that not even Solomon in all his splendor was dressed like one of these.

[마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If that is how God clothes the grass of the field, which is here today and tomorrow is thrown into the fire, will he not much more clothe you, O you of little faith?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So do not worry, saying, ‘What shall we eat?’ or ‘What shall we drink?’ or ‘What shall we wear?’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For the pagans run after all these things, and your heavenly Father knows that you need them.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But seek first hi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given to you as well.

[임성삼의 생각; 하나님의 의(義)를 찾기 위해 물질적인 일에 마음을 쓰지 말라는 말씀이시다. 중요한 것과 부수적인 것의 차이를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Therefore do not worry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worry about itself. Each day has enough trouble of its own.

[임성삼의 말; 나의 일생에 이 말씀이 매우 도움이 되었다. 살면서 큰 일을 만나 방황하게 되었을 때,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라는 말씀을 위안으로 삼고 그 날 할 일을 묵묵히 하느라고 노력하였다.

내가 힘든 때 선친께서는 일본의 덕천가강의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자면, 매 순간이 괴로우며 매 순간 무거운 짐을 내리고 싶다. 그러나 덕천가강은 70 세가 넘도록 무거운 짐을 지고 멀리까지 나아갔다. 그 결과 일본의 250 년 평화를 확립하였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오늘의 일을 서두루지 않고 성실하게 하는 것이, 내일의 일을 걱정하고 있는 것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분명하다.] [마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Do not judge, or you too will be judged.

[마 7: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For in the same way you judge others, you will be judged, and with the measure you use, it will be measured to you.

[임성삼의 생각; 이런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논어에 다음의 이야기가 있다.

子曰 不在其位 不謨其政 부재기위 불모기정 (논어 태백편 泰伯十四)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서 함부로 정치를 계획하면 안된다] [마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Why do you look at the speck of sawdust in your brother’s eye and pay no attention to the plank in your own eye?

[마 7:4]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How can you say to your brother, ‘Let me take the speck out of your eye,’ when all the time there is a plank in your own eye?

[마 7:5] 외식(外飾)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You hypocrite, first take the plank out of your own eye, and then you will see clearly to remove the speck from your brother’s eye.

[임성삼의 생각; 스스로의 허물을 모르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격렬한 꾸짖음이다. “먼저 네 눈속의 들보를 빼어라”

노자(老子)가 공자를 만났을 때 심하게 꾸짖은 것도 이런 개념에서였다고 생각된다.] [마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Do not give dogs what is sacred; do not throw your pearls to pigs. If you do, they may trample them under their feet, and then turn and tear you to pieces.

[임성삼의 생각; 아직 이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간혹 이 구절이 떠오르는 상황이 있다.]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Ask and it will be given to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the door will be opened to you .

[마 7: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For everyone who asks receives; he who seeks finds; and to him who knocks, the door will be opened.

[마 7: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Which of you, if his son asks for bread, will give him a stone?

[마 7:10]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Or if he asks for a fish, will give him a snake?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If you, then, though you are evil,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Father in heaven give good gifts to those who ask him!

[임성삼의 생각; 큰 약속이시다.]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So in everything, do to others what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for this sums up the Law and the Prophets.

[임성삼의 생각; 대단히 중요한 행동 지침이다. 공자도 거의 동일한 말을 여러번 하였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행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기소불욕 물시어인](논어 안연편 顔淵二)

子貢이 問曰 有一言 而可以終身行之者乎잇가 子曰 其恕乎인저 己所不欲을 勿施於人이니라 (논어 위령공편 衛靈公二三)

자공이 물었다. 단 한마디말로 종신토록 행할수 있는 말이 있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바로 서(恕; 용서할 서, 밝게 알다)일 것이다. 자기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 해에 많은 책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살아가는데는 위의 예수님 말씀 이상의 규범이나 책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Enter through the narrow gate. For wide is the gate and broad is the road that leads to destruction, and many enter through it.

[마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But small is the gate and narrow the road that leads to life, and only a few find it.

[임성삼의 생각;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는 의롭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원하신 길을 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말씀을 하시던 때도 그렇고,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진실된 길을 가기 위해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향과는 다른 길을 택해야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생각한다.

위의 두 구절은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 문”의 제목이 나온 곳이다.]

“김교신 신앙저작집 제 4 권”의 팔복(八福) 해설

(전체 양이 너무 많아 앞에서 5 가지 복에 대한 해설까지만 옮긴다.)

백과사전 브리태니커에는 김교신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길다. 그러므로 한메 디지털 세계 대백과에 있는 내용을 옮긴다.

(브리태니커에서 김교신에 대한 개요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일제강점의 민족적 수난기에 종교적 구제와 사회적 구제의 더 높은 차원에서의 결합을 보여주는 실천적 차원의 구제신앙을 추구하였다.”)

김교신 金敎臣 1901∼1945 한메 디지털 세계대백과 종교인·교육자. 함흥 출생. 일본의 종교사상가 우치무라 칸조[內村鑑三〕의 문하에 들어가 7년간 배운 후에 도쿄〔東京〕 고등사범학교 지리박물학과를 졸업했다. 도쿄에서 노방(路傍; 길가) 설교를 듣고 결심, 1920년 성결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귀국 후 함흥영생고보·양정고보 교사로 박물학을 가르쳤다. 남강 이승훈(李昇薰; 1864∼1930)과 교유했고, 함석헌(咸錫憲; 1901∼1989) ·송두용(宋斗用)·정상훈(鄭相薰)·유석동(柳錫東)·양인성(楊仁性) 등과 함께 잡지 《성서조선(聖書朝鮮)》을 창간, 그 주필이 되었다. 저서 《산상수훈연구(山上垂訓硏究, 1933)》를 발간했고, 이어 함석헌과 공저로 일문(日文)으로 된 《우치무라 칸조와 조선(1940)》을 간행했다. 경기중학 교사가 되었으나 불온분자라 하여 6개월 만에 물러났으며, 개성의 송도고보(松都高普) 교사로 부임하여 민족주의 교육을 실천하였다. 《성서조선》 158호 권두언에서 항일민족사상을 풍유적(諷喩的)으로 표현한 《조와(弔蛙)》가 검열에 걸려, 함석헌 등과 함께 투옥된 <성서조선사건>에 연루되었다. 노평구(盧平久) 편찬의 《김교신 저작집》이 있다.▣] [이 책의 서문; 산상수훈에 대해 잘 정리된 간략한 이야기이다.]

기독교를 알려면 성서 본문을 읽는 것이 기독교에 관한 아무런 유명한 문헌을 뒤지기보다 제일 빠른 길이다. 특히 신약성서에는 간결한 중에 기독교 전편의 진리가 구현되어 있으므로 방대한 경서를 자랑하는 타종교에 비하여 신자 혹은 연구자의 편익(便益)이 불소(不少)하다.

……

예수는 교훈을 중요시하셨다. 예수의 전도생활에 기적이 없음이 아니었으나, 기적은 부득이한 경우에 한한 것이었고, 주요 목적은 하늘나라의 도(道)를 전함에 있었다.

마가의 전한 바에 의하면,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가 갈릴리에 이르러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다.”(1장 14 절)하였고, 악귀(惡鬼)를 축출하고 열병을 즉석에서 고쳤다는 등 소문을 듣고 갈릴리 사방에서 찾아온 군중을 대하였을 때 예수는 오히려 헛된 군중을 피하여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자. 거기서도 도를 전파하리니 내가 오기는 이를 위함이로다 “(마가 1.31)하여 그 사명(使命)을 명쾌히 지적하였다.

오천 명에게 떡 먹인 기적을 행한 후에, 예수는 군중을 피하여 혼자 산으로 물러가셨고, 가버나움까지 따라온 무리를 대하여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이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을 위하여 할지어다 “(요한 6.15, 26.27)라고 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군중의 욕구하는 바와 예수가 주시려는 바와는 천양(天壤; 하늘과 땅)의 차가 있음을 알게 하였다.

이 영생의 양식은 흔히 교훈의 형식으로 우리에게 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냉정한 정신으로써 예수의 교훈 중의 어느 하나라도 충실히 연구함으로써 기독교 전체를 대관(大觀)할 수도 있고 또 그가 전하려고 하여 마지 않으신 영생의 양식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

산상수훈(山上垂訓) 은 누가에는 30 절로 되어 간결하고, 마태에는 1백 7 절로 되어 좀더 충족하다.

양으로 보아도, 예수의 교훈 중 가장 길고 완비한 것이며, 특히 그 내용으로 보아 이는 교훈 중으로 보아도, 예수의 교훈 중 가장 길고 완비한 것이며, 특히 그 내용으로 보아 이는 교훈 중에서도 모범될 만한 것이다 .

…이 설교에서는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가 유감없이 자기 인격을 약동케 하여 독자로 하여금 인간 예수에게 더욱 친근한 감을 갖게 한다.

산상수훈의 명칭은 영어의 The Sermon on the Mount, 독일어의 Die Bergpredigt 등의 한역(漢譯)으로 된 것인 듯하나 이것은 모세의 율법보다 더 완전한 율법이 아닌 것은 물론 훈계나 설교도 아니다. 이를 천국의 가신(嘉信; 아름다운 편지) 혹은 “천국의 복음”이라 하는 것이 그 “사랑의 선언”인 내용을 전함에 부합한 명칭이 될 것이다 .

이 가신(嘉信)을 전파한 장소는 산이라 하였으나, 시나이산(山)과 같은 높고 험한 산이 아니었고, 갈릴리 해변의 한 작은 언덕이었었다. 산에 정관사가 붙어서 새 oros라 하였으니, 예수께서 자주 기도하시던 장소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은 언덕에는 작은 새가 나무 사이와 숲 사이에서 노래하고, 백합화가 각하(脚下; 발 아래)에 만발하여 천국의 음신(音信)을 전파하기에 적합한 만춘(滿春)의 아름다운 경치였던 것도 산상수훈 중에서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다음으로 주의할 것은 “복스럽도다, 마음이 가난한 자(者)는”하여 발단(發端)의 초(初) 일성(一聲)으로부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나 칸트의 물(物)과 심(心)의 전환보다도 더 위대하게, 더 근본적으로 인생가치의 척도(尺度)를 전도한 이 혁명적 교훈 의 배후에는 간밤의 기도가 있었던 사실이다(누가 6.12). 이것이 예수의 교훈에 항상 권위가 있고, 생명이 있어, 학자의 설교와는 다른 바 있었던 까닭이다. 개벽 이래의 최대설교에 접할 때에 우리도 마땅히 기도로써 응수(膺受)할 것이다. 은밀한 골방의 기도(6.6) 사적 기도로서의 성령의 교통만이 이 천래(天來)의 복음을 해득하는 데 최대 주석책이요, 또 유일의 열쇠 되는 것을 명심하면서 본문에 들어갈 것이다. …….

[임성삼의 이야기; 이상이 서문이다.]

김교신의 팔복(八福) 해설

1. 심령(心靈)이 가난한 자(者)

마태복음 5 장 1 – 3 절(참조 누가 6.20)

1. 예수께서 무리들을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오거늘

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3.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 산상수훈을 새로운 율법으로 해석하여

불신자(不信者)에게는 과도히 준엄한 것이나, 제자들에게는 감당할 만한 것인 것처럼 설명하려 함은 단지 기독교 신도의 편견에 불과한 것이다 . 산상수훈이 불신자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엄(高嚴; 높고 엄함)한 것일진대, 또한 신도들에게도 같게 견딜 수 없는 무거운 율법이 되고야 말 것이다

기독교도가 이교도에 대하여, 교회신자가 비교회신자에 대하여, 선교사배(輩)가 피선교민족에 대하여 본질적으로 도덕상 차이가 있는 것처럼 우월감을 가지는 것 은 마치 전년(前年)에 일인(日人) 의학박사 구보 아무게가 조선인의 두골을 재어 갖고 미개인종이라고 증명하려 하다가, 불행히 그 학설이 확립되기 전에 자기 자신이 정신병실에 수용을 당하여 요절(夭折)하였던 것 처럼 다 허망한 생각이다. …

[임성삼의 주(註); 독일 히틀러의 통치 시절, 독일에서도 여러 학자가 유태인, 슬라브인이나 흑인이 열등 민족이라는 학설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 결과 오히려 독일 민족이 열등하다는 것이 밝혀진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연구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군중의 착석함을 기다려 예수는 입을 열어 가르치시기 시작하였다. 누가복음 6 장 20 절에는 “예수 눈을 들어 제자를 보시고” 시작하셨다고 했다. 평화로운 언덕 위에서 바늘이 떨어짐을 오히려 감각할 만한 정숙한 청중 위의 침묵의 공기가 깨뜨려졌을 때 “눈이 다시 보지 못하였고 귀가 아직 듣지 못하였던” 천지개벽 이래 초유(初有)의 새로운 음파가 산록(山麓)을 잔잔히 흘러 내리게 된 것이었다 .

개구(開口)의 처음 일성(一聲)은 축복의 8 회 연발이었다 . 이것은 축사(祝辭), 지복(至福), 혹은 복언(福言 The Beatitudes)이라 하여 산상수훈 전체의 특질을 명확히 하는 것이므로 마태복음 5 장 제 3 – 10 절을 아래와 같이 원문의 순서대로 직역하여 해독(解讀)을 도울까 한다.

3. 복스럽도다, 가난한 자들은, 심령(心靈)에.

까닭이다, 저희 것인, 천국(天國)은 .

4. 복스럽도다, 애통하는 자들은.

까닭이다,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5. 복스럽도다, 온유한 자들은.

까닭이다, 저들이 땅을 차지할.

6. 복스럽도다,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의(義)에.

까닭이다, 저들이 배부름을 받을.

7. 복스럽도다, 자비한 자들은.

까닭이다, 저들이 자비함을 받을.

8. 복스럽도다, 결백한 자들은, 심정(心情)에.

까닭이다, 저들이 하나님을 볼 것인.

9. 복스럽도다, 화목케 하는 자들은.

까닭이다, 저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10. 복스럽도다, 핍박을 받는 자들은, 의(義)를 위하여.

까닭이다, 저희 것인, 천국(天國)은.

이처럼 산상수훈은 축복으로써 시작되었다 . “복스럽도다”라는 말이 초두(初頭)에 8 회나 반복, 고조되었음에 주의할 것이다.

이 복스럽다는 원어 makarios 는 영역(英譯)에 blessed로 되었으니, 흔히 행복이라고 번역하는 happy와는 그 의미하는 바에 작지 않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에 합당한 역어(譯語)를 발견하기 어려우나, 지금 blessedness를 ” 축복 “이라 하고 happiness를 “행복”이라고 번역하면, 축복은 행복보다 더 높은 것이다.

행복은 외계(外界)로서 오는 바 경우의 영향을 받는 것이고, 축복은 환경이 지배할 수 없는 영혼 속에서 용출(湧出)하는 내적 환희(歡喜)의 샘을 의미하는 것이다 . 축복은 하나님과의 정당한 관계로써 사람된 자의 진정한 도(道)를 걷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세간에서 불행한 자로 일컫는 자 중에도 축복받은 자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이 단지 인간적인 행복을 의미한다면, “축복”은 하나님 편에서 본 바 즉 천국적인 행복을 의미한다.

그러면 하나님 편에서 보시는 바 “축복 받은 자”. 진정한 의미의 행복자는 과연 누구인가? 여하한 의미로써든지 부자가 행복자라 함은 개벽이래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변할 수 없는 떳떳한 도리 (道理)였다.

그런데 예수는 선언하였다.

너희 빈자(貧者)가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요(누가 6.20)

빈자라 함은 성(聖) 누가 가 전한 바와 같이 단순한 물질적인 빈자로 해석할 수 도 있다. 즉 토지, 금은(金銀)을 소유함이 없고 가옥(家屋), 의류(衣類)에 유족(有足)치 못한 자가 행운자(幸運者)이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 한다.

빈자(貧者)의 고통은 빈자라야 안다. 이 일구(一句)가 궁중에 기거(起居)하는 법왕의 훈유(訓諭)가 아니고, 구유에서 나고 목공(木工)의 집에서 자란 나사렛 예수의 말씀인 것에 중량이 있는 것이다.

가난한 그것이 곧 천국을 획득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빈자로 난 것이 부자로 난 것보다 일반적으로 유익한 결과 를 낳는 것은 널리 역사상에서도 볼 수 있는 사실이다. 특히 천국(天國)에 들어감에는 부자보다 빈자가 유리함이 많다. 예수께 와서 영생(永生)의 도를 묻던 청년은 그 소유, 재산이 많음으로 인하여 “얼굴이 변하고 근심하며” 물러갔다(마가 10.17 – 22).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동(同) 25 절)는 것은 예수의 말씀이었다.

가난한 것은 방해됨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천국을 향하는 자극이 되는 것이니, 빈(貧)은 소원할 만한 처지요, 복스러운 은혜의 자리임을 알 것이다 .

이미 빈자가 축복받을 자일진대, 빈자 중에도 그 정도의 심한 자가 더 복스러울 것은 명확한 일이다. 빈자 중 가장 심한 빈자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외에 정신적으로 가난한 자 이다. 물자(物資)에 빈핍(貧乏)한 자라도 소위 청빈을 즐기는 경우에 달하면 오히려 부자의 심리(心理)를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성(聖) 마태는 주도면밀하게 ” 심령(心靈)이 가난한 자 “라 하였다.

심령(心靈, pneuma, spirit)이 가난하다 함은 공자 의 이른바

德之不脩 덕지불수, 學之不講 학지불강, 聞義不能徙 문의 불능도, 不善不能改 불선 불개야, 是吾憂也 시오우야.

[임성삼의 주(註); 이 시절만 해도 위의 글을 한자로만 적어 놓아도 읽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이 뜻은 아래와 같다.

덕을 닦지도 못하고, 배운 것을 가르치지도 못하였으며, 옳은 것을 듣고 따르지도 못하였고, 착하지 못한 것을 능히 고치지도 못한 것. 이것들이 나의 근심이다. 논어 제 7 편 술이]

라 하여 학식(學識)으로나 제반 덕행(德行)으로나 내심(內心)에 수긍(首肯)할 아무 것도 인식할 바가 없는 자를 이름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최대 빈자(貧者)의 하나는 사도(使徒) 바울임을 알 수 있다. 그는 고백하여 말하기를

대개 내 속 곧 육체 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아노니 , 선행하기를 원하는 마음은 내게 있으나, 그대로 이루는 것은 없는지라. ……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死亡)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

고(로마서 7.18 – 24).

仰不愧於天 俯不恥於人 앙불괴어천 불치어인

[임성삼의 주(註); 자주 인용되는 글이다. 단지 부끄러울 “치”자를 부끄러워할 “작(여기서는 지원되지 않는 한자)”으로 적는 경우가 많다.

위를 보아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아래를 보아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다 , 맹자의 진심장구 상편에 나오는 글.]

하는 동양적 군자(君子), 교리의 정통을 자랑하는 기독교 신도, 독특한 체험을 고집하여 신앙적 교만에 스스로 머무는 고등신자 등등은 몸은 비록 유형적으로 적빈(赤貧)에 처하였을지라도, 무형적 거부(巨富)를 장악하고 있는 자들이다 . 부자인 점은 유형, 무형이 모두 일반이다.

심령상의 가난한 사람을 알기 위하여는 예수의 비유 중 제일 적확(的確)한 것이 있다.

두 사람이 성전에 올라가 기도할 새, 하나는 바리새 교인이요, 하나는 세리(稅吏)라.

바리새 교인이 서서 스스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내가 감사하옵기는 나는 다른 사람과 같이 토색하고, 불의하고, 음란하지 아니하고 또한 이 세리(稅吏)와도 같지 아니함이니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하고, 다만 가슴을 쳐 가로되 “하나님이여, 이 죄인(罪人)을 불쌍히 보소서. 나는 죄인(罪人)이로소이다”하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은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얻어 집에 돌아갔느니라.

대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반드시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하시더라(누가 18.9 – 14). “심령이 가난한 자”란 것을 이보다 더 명백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이러한 빈자(貧者)가 복스럽다는 것이다 .

아래의 부분에 원어(原語)의 순서가 “저의 것인, 천국(天國)은 …”이라고 된 데 주의하여야 한다. “누가 천국의 시민이 될까?”하는 문제는 당시 유대인에게는 중요문제였다. 누가 천국을 소유할까? 학자(學者), 도인(道人), 성현(聖賢), 군자(君子)가 아니요, 오히려 세리(稅吏), 창기(娼妓)일지라도 그 심령에 가난한 자가 소유할 것이라 한다 .

또한 “천국은 저의 것이다”는[의] 동사 estin은 3인칭 단수 현재형이니, 천국은 미래의 완성을 기다릴 것이 없이 지금 당장 겸비(謙卑; 겸손하고 비처함)한 자(者)의 개인적인 소유가 된다고 한다 . 위대한 선언이 아닌가?

[임성삼의 주(註); 앞에도 있으나 다시 몇 나라의 말로 번역한 이 구절을 적는다.

심령(心靈)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虛心的人 有福了, 因爲天國是他們的 허심적인 유복료, 인위천국시타문적(중국어 성경)

마음이 비어 있는 사람

Heureux les pauvres en esprit, car le royaume des cieux est a eux! (프랑스어 성경)]

2. 애통(哀痛)의 축복

마태복음 5 장 4 절(참조; 누가 6.21)

복스럽도다, 애통하는 자들은. 까닭이다,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인 .

누가 복음에는 “너희 이제 우는 자가 복이 있도다. 너희가 웃을 것이요. …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6. 21, 25)하였는데 여기 애통이라 함은 아주 심각하고 절통(切痛; 몹시 원통함)한 비탄을 말하는 것이다.

축복의 제 1 “심령이 가난한 자 복스럽다”는 일구(一句)에서, 그 인간가치의 척도가 전도됨이 심함에 놀랐던 자는 다시 제 2의 축복에 접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희락과 환소(歡笑)를 원함은 인간 세상의 통칙이다. 그런데 예수는 “애통하는 자, 통곡하는 자가 축복받은 자”라 선언하셨다. 그 생각의 차, 가치표준의 차가 심한 것이 마치 하늘과 땅, 동과 서가 상극함보다 더하도다.

뿐만 아니라, 예수 자신도 이런 비애의 사람이었다. 허다한 예수의 성상(聖像) 중에서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作)이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은 예수의 이 중요한 성격을 전하는 까닭이라 한다. 가난의 곤궁을 체험한 자로서 가난의 축복을 말하고, 환난의 골짜기를 통과한 자가 비애의 행복을 선언하시는 것이다. 산상수훈의 일언(一言)일구(一句)가 모두 예수 자신의 인격과 체험을 통과한 것이어서, 교훈이 즉 그 자서전이라는 견해는 이 제 2의 축복에서도 명백히 나타났고, 또 우리로 하여금 교훈에 더욱 친근케 하고, 생생한 말씀을 눈 앞에 보게 한다.

비애와 통곡! 이것은 만인이 다 꺼리는 것이요, 온 세상이 피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환소와 희락을 오히려 화 있다 하여 피하라 하셨고, 사도 야고보도 같게 말하였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바꾸며,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

고(야고보 4.9). 애통은 진실한 것이요, 희락은 부허(浮虛)한 것이다 . 환소는 일시에 지나갈 것이요, 비애는 인생에 오래 머무를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는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바꾸며,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하였다. 그러나 비애와 통곡이 다 가(可)한 것이 아니다.

대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은 회개를 이루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요 후회할 것이 없거니와 , 세상 근심은 죽는 것을 이루느니라 .

는(고린도 후서 7.10) 바울의 말과 같이 근심에도 두 가지가 있다.

정욕과 육을 본위로 하는 세상 근심과 걱정은 사람의 골수(骨髓)를 마르게 하며, 생혈(生血)을 고결(固結)케 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 . 이런 종류의 근심은 하루 하면 그만큼 검은 머리가 희게 될 것이요, 이틀을 계속한다면 그만큼 생명을 단축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 즉 영(靈)을 본위로 한 비애, 자기의 학식부족, 덕성결핍, 외적 내적으로, 유형 무형으로 참말 심령에까지 빈자인 것을 통감하는 때의 비탄(悲嘆) , 동포와 인류의 구원에 관한 근심 , “창조함을 받은 우주만물이 썩어짐의 종됨을 장차 벗어나, 하나님의 뭇 자녀의 영광을 얻어 자유에 이를 것”(로마 8.21, 22)을 모두 애통해하는 우주적 비애, 이러한 애통은 전혀 고귀한 애통(noble sorrow) 이다. 이 애통은 있을수록, 심각할수록 심령을 고결케 하고 생명을 소생케 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

(천로역정을 쓴) 번연이 눈물 많은 생애를 보냈고, 루터에게 비탄이 깊었고, 예레미야가 눈물을 먹고 자라서 눈물을 뿌리면서 예언하였었다. 누가 이 고귀한 비통의 골짜기를 통과하지 않고 진정한 “선지자”의 이름에 해당한 자 있었으며, “위대”라고 할 만한 생활을 한 자가 있었던가? 우리는 모른다. 취생몽사(醉生夢死)하는 하루살이와 같은 생활보다 애통에 각성한 자가 행복스러운 자라 함은 문자 그대로 진리이다 .

[임성삼의 주(註); 이 분의 말씀에 틀린 점이 없으나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예수님께서 실제로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는 이처럼 애통하는 자에 대하여 “위로함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이 “위로함을 받는다”는 뜻은 보통 인간사회에서 말하는 위로나 혹은 위안과는 무척 차이가 있는 것이다. 가령 창세기 37 장에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팔고서, 그 저고리에 피를 묻혀 부친 야곱에게 갖다 주고, 요셉이 죽었음을 전하였을 때 “모든 아들들과 딸들이 야곱을 위로하려 하였으나, 저는 위로 받기를 거절하고 말하기를 ‘나는 통곡하며 무덤으로 내 아들 있는 데까지 갈 터이다’하였다”(35 절). 이 같이 라헬도 그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를 받지 아니하였었다(마태 2.18). 입술로 하는 위로, 외적으로 하는 인간적인 위로는 도저히 진정한 위로를 주지 못하는 것이다 .

예수가 선언하신 위로는 이 애통의 근원을 제거하는 위로 였다. 그러므로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하였다(요한 14.27). 이 위로는 현재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까지 받을 수 있으나, 특히 고귀한 애통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충분히 된 자에 대하여 내세의 충족을 약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 1 축복이 현재 동사임에 반하여, 이 제 2 축복의 약속은 미래 동사로 되어 있다 . “이제 고난 받는 것과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비교하면 족히 비교할 수 없느니라”(로마 8.15)는 바울의 말은 이것을 가르침이요, 요한 묵시록에

내가 신천지(新天地)를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바다도 또한 다시 있지 않더라. 내가 또 보매 거룩한 성, ….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 저희의 하나님이 되고, 눈물을 눈에서 다 씻기시매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과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일이 다 지나감이라 .

고 하였음은(21. 1 – 4) 그 구체적인 시현(示現)이다.

기독교도에게 애통이 없지 않다. 도리어 심각한 비탄과 뜨거운 눈물이 많다 . 의인에게 환난이 많고, 애자(愛子)에게 매가 잦은 법이다. 그러나 “눈물을 눈에서 다 씻기시는” 날을 기다리며, 우리는 “복스럽도다, 애통하는 자는 위로함을 받을 것임이라”는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 행복스러운 처지를 발견하여야 할 것이다.

3. 온유한 자

마태복음 5 장 5 절

복스럽도다, 온유한 자들은. 까닭이다, 저들이 땅을 차지할 것인 .

…… 자연과학자는 말한다.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우승열패(優勝劣敗)는 천연(天然)의 법칙이라고. 또 정신과학자는 이에 응하여 힘은 정의다, 승즉관군, 패즉적이라고. 이를 갈고 발톱을 기르는 맹수나 완력, 금력, 지력(知力)을 측적하는 개인이나 육군, 해군, 공군을 확장하는 국가나 그 목적은 다 일반이다. 어떻게 하든지 타(他)를 배격하거나 위압하거나 회유하여 자기가 강자의 행복을 차지하려는 심사(心事)는 [새로 태어난] 뻐꾸기와 같은 것이다. 포악한 자가 강성하고 유순한 자가 쇠퇴하는 것은 밤낮으로 목도(目睹)하는 사실이다. 하늘이 높고 땅이 낮은 것처럼 변할 수 없는 철칙(鐵則)이다.

그런데 예수는 선언하신다. 강폭한 자가 아니요, 온유한 자가 복스럽다고 .

온유의 원문 praus는 온화, 유순(柔順), 겸손, 온량(溫良), 참음 등을 의미한다 . 성질이 관대하여 훼손(毁損), 경멸을 당할지라도 쉽게 격노하지 않고, 초급(樵汲), 역기(逆氣)함이 없고 오히려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하여

出乎爾者 反乎爾哉 출호이자 반호이재

[임주(任註);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려보낸다]로 눈으로 눈을 갚고 이로써 이를 갚는다기 보다 차라리 피해 수욕(受辱)한 대로 참기에 능한 자 특히 하늘에 반역치 않는 것, 하나님이 내리신 모든 곤고(困苦), 환난을 달게 받는 성질을 이름이다. 이런 성질을 가진 자가 복스럽고 장차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사실과 멀기 심하다. 그러나 예수는 행복의 표준을 이처럼 전도시킨 것이다.

온유한 자는 현세에 처하여 열패자(劣敗者)가 안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고래(古來)로 진정한 기독신자는 이 열패자의 지위에 자처하였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오물(汚物)과 만물의 때와 같으니라”(고린도 전서 4.13)는 것이 초대 신자의 처지였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 자신이 이대로 온유한 성격이었다.

“저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휼도 없었느나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발악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자기를 부탁하셨다.”(베드로 전서 2.22 이하). 또한 이사야의 예언한 바……

이에 “온유”라 함은 단지 “유약(柔弱)”이라든가 “문약(文弱)”이라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

한신이 불량배의 다리 밑으로 기어나갈 때에 저는 유약한 비겁자인 까닭이 아니었다. 오히려 저에게 영웅적 기개(氣槪)가 있었으므로 그처럼 온유할 수 있었다.

”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나으며,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쳐서 빼앗기보다 나으니라 “(잠언 16.32)

는 것은 알렉산더 대왕의 고백을 기다리지 않고라도 사실이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온유한 자의 그 온유의 깊은 곳에는 “공의로 심판하는 자에게 부탁하는” 신뢰가 있다. 예수의 경우가 그것이었고(마가 15 장), 욥의 순종이 또한 이에서 발원한 것이었다. ……

맹호와 사자는 종적을 끊게 된 때에 유순한 소와 양은 오히려 온 땅에 차게 하시는 이 가 또한 이 천지와 그 안의 만물을 온유한 자에게 차지시킬 것을 약속하셨다.(창세기 1.26, 로마서 8.32). 일세의 영웅아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한가로운 세월을 보내게 된 때에 나사렛 예수의 약한 생애와 구주의 천지를 석권하던 자기 신세의 말로를 비교하여 장탄식(長歎息)을 마지 못하였다 한다. 과연 예수는 온유한 자의 모범이었고 또한 땅을 차지하여 완전히 만왕의 왕이 된 자다. 우리도 저와 같이 온유하여 학대에 견디면 또 저와 같이 될 것이다.(로마서 8.17)

[임성삼의 생각; 실제로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한 예는 많이 있다.

또한 지금 온 지구상에서 강한 육식동물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멸종된 것이 사실이다.]

4.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태복음 5 장 6 절

복스럽도다, 기갈한 자들은, 의에.

까닭이다, 저들이 배부름을 받을 것인 .

정의를 동경하는 마음은 인류의 가장 절실하고 순진한 심정의 발로이다. 멀리 신화시대로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사실(史實)을 상고(詳考)하면서 듣는 자, 읽는 자가 혹은 눈물겨워하고 혹은 한숨지어 비탄을 나누는 것이라든가, 동화나 전설 중에 나오는 형된 자를 미워하고 아우된 자를 동정하는 심사(心事)는 그 어느 편에 친소(親疎)나 정실(情實)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니고 다만 정의감의 충동이 발로된 것뿐이다.

제갈공명의 출사표에 함루(含淚)하고 조자룡의 무운을 기구하는 자 위왕의 적군뿐이 아니요, 선죽교에 눈물 씻고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한 봉래산의 제일봉(第一峰)을 쳐다보고서 만장의 기염(氣焰)을 토하는 자가 필왈 이조 오백 년의 불우(不遇)의 신하들 뿐이 아니다.

정의다, 정의다! 부당한 대우를 배격하고 당연한 도리가 통용되기를 희구(希求)하는 마음 , 이는 어린이의 소원이요, 또한 어른의 욕망이다. 문화인의 창도(唱導; 앞장 서서 부르짖음)하는 바요, 또한 야만인의 사모하는 것이다. 아니 우주만물이 모두 완전한 정의의 현실을 대망하면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로마 8:21, 22).

정의(正義)는 우주의 법칙이요, 인류의 공도(公道)인 것 같다. 그러므로 아무런 폭군이라도 정의의 명분을 빌지 않고는 단기(單騎) 일병(一兵)도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왕의 이스라엘 추격에서, 카이젤의 선전포고와 미국의 남북전쟁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것이고 정의를 표방하지 않고 개전한 것은 없었다. 우주가 불의를 용납 안함을 이미 알고 있는 까닭이다. 이와 같이 정의는 우주의 원형리정(元亨利貞)이요, 제왕 후백(侯伯)으로부터 서민, 초부(樵夫)까지 공통으로 원하는 바라 하면 하필 그리스도는 이처럼 평범한 것으로써 제 4 축복을 선언하셨는가?

정의(正義)는 만인, 만국이 다 요구하는 것이나 동시에 만인, 만국이 다 회피, 배격하는 것이다 . 모순의 대(大)와 역설이 심함이 이보다 클 것이 없다. 그러나 사실이다. 사회가 인정하는 “어떤 정도까지”의 정의(正義)는 통용된다. 신축(伸縮) 변태(變態)가 자유자재한 정의는 세상이 환영한다 . 각 계급의 정의가 있고 각 종파의 정의가 있고, 국민으로서의 정의가 있고, 민족으로서의 정의가 있고, 유년시대에 강요한느 정의가 있고, 장자(長者)된 후의 정의란 것이 따로 있어 각기 그 국한된 범위에 배회하면서 과(過)하지도 않고 불급(不及)함도 없고, 열(熱)하지도 않고 냉(冷)하지도 않고, 극악의 인(人)도 아니어서 다소의 선(善)과 의(義)도 행하는 자가 세상이 인정하는 소위 중용(中庸)의 인(人)이요, 정의의 인(人)이다.

이에서 일보(一步)라도 초월하면 의를 행하는 것이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되고 위험한 것이 된다 . 그러므로 초등교육에서 정직하라고 가르침은 가(可)하나 현대의 성인을 향하여 정직하라 함은 마치 자살하라고 권함이나 마찬가지다. 유년시대에 정직한 것은 오히려 기특하다마는 성인이 정직한 것처럼 현세의 폐물인 것은 다시 없다.

금주(禁酒) 단연(斷煙)은 유년시대로부터 미덕으로 장려하고 근일에 이르러는 교회나 구세군의 설교뿐 아니라 신문, 잡지까지도 통계상 수자를 열거하여 그 실행을 종용(慫慂)하건만 여전히 금주단연은 입신출세(立身出世)하려는 자에게 다른 아무런 덕성의 결함보다도 더 큰 장해를 주어 마지않는다. 타(他; 그대)는 추지(推知; 미루어 생각하여 앎)할 것이다.

의(義)는 행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의를 행하면 견딜 수 없다 한다. 의를 행하는 곳에 증오(憎惡)가 생기고 핍박이 따른다. 이것이 세상의 실상(實相)이다. 역시 공중(空中)의 권세 잡은 자가 지배하는 곳이다. 이 세상에서 사회가 칭찬하는 의인 됨으로써 만족치 않고 모든 인습과 제한을 초월하여 진실로 정의를 추궁하여 갈(渴)한 자가 물을 찾고, 주린 자가 식물(食物)을 찾는 것처럼 급박한 필요에 응하고자 돌진하는 순정(純情)과 지성(至誠)으로써 의를 행할 때에 훼손(毁損)과 압제(壓制)는 준비하였던 것처럼 주위를 포위한다. 악마와 세상의 자식들은 교묘한 술책과 감당할 수 없는 악독으로써 의를 행하는 자를 차질(蹉跌)케 하고 선을 조성케 하려는 것까지도 방해한다.

이러므로 그리스도는 특히 의에 기갈(飢渴)한 자를 축복하신 것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과 같은 입장에서 의를 찬양치 않는 이는 세상에 일인(一人)도 없다 . 인생을 출발하는 청년기에는 매일 삼시(三時)의 식사를 욕구하는 정도로써 의에 준거(準據)하려는 자는 차라리 많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써 의를 행하려든 자는 세상이 의를 행함에 부적(不適)한 장소임을 발견할 때에 대다수는 세속에 항복하여 원활(圓滑)하게 타협하여 버리고 소수의 비교적 강한 자라야 소위 “탈속(脫俗)”하여 산중이나 광야에서 독선기신(獨善其身)하는 정도이다.

이런 것은 의(義)에 대하여 주리고 갈(渴)한 것이 아니다. 기(飢)와 갈(渴)이라 함도 경험이 없이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저 하일(夏日)에 갈증이 심할 때는 우마(牛馬)의 발자국에 고인 물과 논의 물이라도 오예(汚穢)를 생각할 여지 없이 달게 마실 수 있고, 고산 위의 잔설(殘雪)과 사막에서 낙타의 위액(胃液)을 분배할 때며, 여러 날 단식한 후에 일시반(一匙飯; 숟가락 시)과 채소 한 잎을 얻었을 때의 경험, 체면도 없고 친우의 정의도 불고(不顧)하고서 일편(一片) 일적(一適)까지라도 섭취(攝取)하고야 말려는 그 기갈(飢渴)로써, 의를 행하여 백절불굴(百折不屈)하고 악과 싸우며, 만난(萬亂)을 배(排)하고라도 정의를 세워 완성하려고 애쓰며, 모든 조소와 압제와 훼손(毁損) 중에서도 정의를 단념하지 않는 자 이런 자를 향하여 그리스도는 특히 장려하시고 축복하셨다.

정의를 사모하는 마음이 그 극에 달하면 즉 종교가 되는 것이다 . 참으로 의에 갈급(渴急)한 자는 양심의 만족만으로써 족하지 못하다. 도덕상 정의가 극치에 달하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바른 관계에까지 미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마태 5: 48)고 지시하셨고 또 시인은 노래하기를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주를 찾으려고 갈급함이

사슴이 시냇물을 찾으려 갈급함과 같도다.

내 마음이 하나님 사모하기를 목마름 같이 하니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라.

내가 어느 때에 하나님 앞에 이르러 뵈오리이까.

하여(시 42 편) 인간의 의의 관념이 그 극도에 달하였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의에 달하려는 노력과 하나님의 완전에 일치하려는 욕구는 인류의 최대, 최고의 분투였다 . 의를 행함에 배고파하고 갈(渴)하여 그 분투가 이까지 이르면 사람은 더욱 차질(蹉跌)하기 쉽고 실망에 떨어지게 된다. 루터는 에르플트 수도원에서 수양할 때 이 고투(苦鬪)에 견디지 못하여 종종 질식, 절도(絶倒)하였다고 한다. 기타 번연, 어거스틴, 크롬웰이 이 고투를 짊어지는 사람이었고 ……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

는(로마 7:24) 비명(悲鳴)을 절규한 사도 바울은 하루 삼시(三時)의 끼니를 요구하는 정도의 필요로 반냉반열(半冷半熱)의 태도로써 의를 구한 것이 아니었다. 먹으면 좋고 안 먹어도 견딜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저야말로 심히 기갈한 자처럼 수화(水火)도 가리지 않고 예절도 돌볼 겨를이 없이 급박한 요구에 지배되어 기(飢)를 포(飽; 물릴 포)하고 갈(渴)을 의(醫)하려고 돌격한 것이었다.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는 넋이다. 조문도이석사가의(朝聞道而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 공자)라 하며, “주의 들에서 하루의 삶은 세상의 천년보다 낫다”한다. 의롭지 못할진대 차라리 살 수 없다는 심사다. 이 바울의 진지한 태도를 일컬어 의에 기갈하였다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도덕상 정의에 권태치 않을뿐더러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에 달하려 하여 기갈한 자를 향하여 주 그리스도 예수는 “복스럽도다 ….. 저들이 배부름을 얻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셨다. 과연 천래(天來)의 가신(嘉信)이 아닌가. 정의(正義)가 행해지지 못하는 현세(現世)와 육(肉)의 권세가 오히려 강한 인생에 있어서 정의가 이길 것이요, 의에 배부를 것이라 한다. 어떻게 하여 배부름을 얻는 것인가? 신앙에 의하여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다. 불의의 세상과 정욕의 육신에 있어서 의는 완전히 행하여지지 못한다. 그러나 단테가 연옥(煉獄)편에서 말한 바와 같이

보라! 인간의 온갖 수단도 쓸 데 없고

노도 없고, 돛도 단 것이 없을지라도

천사의 날개(신앙)만이

이처럼 머나 먼 길을 도달케 하도다.

즉, 의에 포만(飽滿)케 됨은 첫째 신앙으로써 의롭다고 일컬음을 받는 것(로마 5:19, 갈라디아 5:5), 나의 죄를 십자가 위에 처분한 의의 완전한 현현(顯現)인 자를 쳐다보면서 자기를 그 안에 두는 때에(로마 3:22, 고린도 전서 1:30) 우리는 의롭지 못한 중에 처하면서도 의에 포만함을 얻게 된다.

5. 자비한 자

마태복음 5 장 7 절

복스럽도다, 자비한 자들은. 까닭이다, 저들이 자비함을 받을 것인 .

자비(慈悲)라 함은 성경의 다른 데서 “불쌍히 여긴다”든가, 혹은 “긍휼”이라고 번역한 말 eleos, eleo로서 그 용례를 찾아 보면 대개 하나님이 백성을 불쌍히 여기신다든가, 그리스도가 죄인을 긍휼히 보신다는 등에 사용 되어 단지 지인(知人), 친척에 대한 동정, 인정이라기보다 매우 고급의 감정을 표시하는 데에 사용 되었다.

그러므로 선한 사마리아 사람같이(누가 10:37) 전에 친면(親面)이 없었던 과객(過客)에 불과할뿐더러 인습(因習)상 적대시(敵對視)되는 처지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 당한 참경(慘景)을 목도하고서는 측은(惻隱)지심에 견디지 못하여 자기의 이해도 생각할 겨를이 없이 간호하여 주었을 때, 실로 그런 때에 이 자비란 자가 사용되었다. 기타 비슷한 예를 들면 마태 9 장 27 절, 마가 5 장 19 절에 “불쌍히 여기소서” 한 것과 로마 9 장 15, 16, 18 절, 갈라디아 6 장 16 절, 디모데 전서 1 장 2 절 등에 “긍휼히”라고 번역한 것이 모두 같은 글자다.

[임성삼의 이야기; 이 분은 정신적으로 힘이 넘치신 분이다. 요즈음 같은 시기에 이런 힘있는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위의 부분을 옮겨보았다. 나머지 세 복은 다음과 같다.]

예수의 윤리 교육!?

반석 위에 집을 짓기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예수님의 산상설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나그네입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의 소중한 가르침이 담긴 산상수훈을 소개하려 합니다. 이 설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설교이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명언과 금언이 담겨 있습니다.

비그리스도인께서는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단지 자기 계발의 목적으로라도 산상 수훈을 읽어보세요. 지키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도 분명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 글에서는,

산상 수훈이란

잘 알려진 명언들

을 소개하겠습니다.

산상수훈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말씀하신 가르침을 말합니다. 산상설교라고도 합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마 5:1-2)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모두에서 이 설교를 다루고 있어 이 둘을 평행 본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마태 쪽은 산상, 누가는 평지에서 설교한 것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이 두 저자가 같은 곳에 있었지만 산과 평지로 다르게 느꼈듯이 관점과 작성방식이 조금 달라 산상수훈과 평지 설교로 구분합니다. 여기서는 산상수훈의 내용을 위주로 다룹니다.

산상수훈의 대표적인 내용

그럼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전부 소개해 드리고 싶지만 설교 내용이 너무 많아서 산상수훈 중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소개하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오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 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마 5:13-16)

먼저 소금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물질입니다. 음식을 짜게 하는데 쓸 뿐만 아니라 방부제나 정화의 용도로도 사용됩니다.

지금이야 소금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상당히 귀한 자원이었습니다. 또한 품질 또한 떨어져서 불순물이 많이 섞인 경우는 짠맛을 잃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 땅의 소금인 그리스도인들도 죄에 오염되면 그 기능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의 소금이니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그 맑음을 잃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망의 빛을 받은 세상의 빛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위를 사람들이 보고 존경심을 가져 예수님의 향기를 느끼도록 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 돼야 합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여러분이 편의점에 가서 친절한 점원의 아주 훌륭한 서비스를 받게 되면,

“와 정말 멋진 가게구나. 또 와야지”

라는 식으로 편의점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겠지요?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말과 행동을 보고, 그가 믿는 하나님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책임이 막중하구나!”

음탕한 마음으로 여인을 바라본다면… 아웃!!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8)

이건 조금 무서운 부분입니다.

모세의 십계명에는 ※간음해서는 안된다고 적혀있습니다만, 예수님은 음탕한 마음으로 여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간음죄를 범한 것이라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에… 보기만 했는데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모든 남자들은 부들부들 떨겠지요? 법으로 정해진다면 모든 남성들은 범죄자가 될 테니까요.

예수님이 너무 엄격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하나님은 티끌만 한 죄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으로 인간은 모두 죄인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죄는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간음 – 혼인한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것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도 내주어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마 5:39)

지키려는 사람은 많이 없어도,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문구라고 생각됩니다. 이 말씀은 원수에 대한 사랑에 대해 설명하시려고 예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건 쉬운 일입니다만, 원수를 사랑하는 건 참 힘든 일이지요. 나의 원수처럼 그를 적대하지 않고 사랑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실천임을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수였던 우리를 위해 죽으셨듯이, 그리스도인은 원수도 천국에 가도록 사랑으로 도와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거부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재물은 하늘에 쌓으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재물의 축적은 곧 부(富, Wealth)를 의미합니다. 사회적 지위나, 능력, 실적까지도 재물의 양에 종속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 땅의 재물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본문의 말씀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지만, 시간이 흘러 죽게 되면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일례로 최근에 별세한 삼성그룹의 총수도 많은 재물이 있었지만 10원도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영원히 사는 천국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이 땅에서 잠깐 부자로 살기보다는, 천국에 재물을 쌓아두는 게 현명한 일이겠지요.

덧붙여서,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말씀은 헌금을 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늘의 재물은 하나님을 위한 마음을 통해서 쌓습니다. 전도를 위한 모든 일 즉 선행, 봉사, 순종 등이 포함됩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마 6:34)

이 구절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것. 힘든 날 아주 격려가 되는, 개인적으로도 많은 위로를 받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 7:1-2)

움찔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비판하지 말라. 즉 다른 사람을 심판하거나 판단해서 비난하는 것을 그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했거나 헤아렸던 것에 따라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같은 사람으로서도, 같은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도, 모든 사람은 남을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7)

말씀으로만 보면 매우 간단하고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심으로 기도하고 구하면 응답해주시는 분이시니까요. 그러나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진심으로 구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닐까요?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선물을 먼저 구하세요!

단순하지만 매우 심오한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산상수훈에서 유래된 말

산상수훈에는 격언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사용되고 있는 말의 유래가 된 것도 있습니다. 값어치를 모르는 자에게는 아무리 값진 것을 주어도 의미가 없다는 뜻의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말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7:6)

이 절에서 유래가 되었고, 취직이나 수험생들의 높은 경쟁을 의미하기도 하는 좁은 문은 다음 말씀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진주와 좁은 문은 영적인 것을 비유한 것인데 육적인 것으로 바꾸어 이해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마 7:13)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에 반한 마하트마 간디

인도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 다들 잘 아시지요? 이 유명한 힌두교도인 간디도 산상수훈의 가르침에 대해 극찬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간디의 주요 사상이 비폭력 저항주의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설교에 많은 감명을 받았을 듯합니다.

간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나라와 내가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에 따라 합의를 한다면 우리 두나라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 또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는 성경은 자신의 인생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성경을 도덕책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안타깝게도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지는 못했군요.

정리 : 서로 사랑하라

이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가르침 중 가장 긴 내용을 담고 있지만 요약하면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꼭 성경을 읽어보시고 그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또 만나요~Bye

제88일, 마 5:1-7:29, 산상수훈

마태가 정리한 이 복음서에 있는 다섯 개 혹은 여덟 개의 윤리적인 교훈들은 모세 오경이라는 율법서와 비교할 만한 것이라는 데 학자들은 동의합니다. 즉 예수께서 산에서 교훈들을 선포한 것을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말한 것과 같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참고, 5:17). 그러므로 산상수훈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새 율법이요, 새 기준으로, 이는 구약시대의 율법이며 십계명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1-4계명),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5-10계명) 것이며, 또한 천국인의 삶으로 진정한 복이란 이 세상에서 하늘의 것, 보이지 않는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참고로,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두 가지 큰 설교를 하셨는데 하나는 산상수훈(마 5:1-7:29) 이고 다른 하나는 마 24-25장의 감람산 강설입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의 개요(윤리적인 다섯 그룹 혹은 여덟 그룹의 교훈), 눅 17:1-10 참고

5:1-12, 천국 시민의 특징과 그들이 누리는 복

5:13-16, 천국 시민의 참 모습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됨

5:17-20, 율법의 완성자

5:21-48, 하나님 나라의 의를 가르치심

6:1-7:29, 천국 시민의 기본 생활 양식(구제, 기도, 금식, 재물관, 믿음의 확신, 이웃에 대한 태도)

(1) 6:1-8, 의의 방법

(2) 6:19-34, 물질과 염려에 관한 교훈

(3) 7:1-12, 삶의 원리

(4) 7:13-27, 생명의 길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우리에게 행하라고 가르치신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산상수훈을 한 개의 설교(담화)로 이해해야 하며 그 주제의 순서를 중요하게 보아야 합니다. 산상수훈의 주제의 전개는 예수께서 설명하신 천국 생활의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가페적인 사랑의 삶을 향한 점진적 성장의 단계입니다. 첫째, 복의 진정한 출처를 아는 것, 둘째, 분노와 강박적 정욕을 버리는 것, 셋째, 내 뜻을 이루려고 남을 비판하지 않는 것 등의 성장 단계로서 우리를 미워하고 아프게 하는 자들을 사랑하고 돕는 일이 자연스러운 성장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이 땅의 삶에 대하여 현실성 있는 희망을 품게 하는 데 있으며, 예수께서는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다”고 사람들을 그 나라로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달라스 윌라드, 『하나님의 모략』190-199쪽 참고).

첫째 그룹, 마 5:1-12, 천국 시민의 특징과 그들이 누리는 복

마 5:1-12, 팔복, 참고, 시 69:33-36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당)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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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 (마 5:1-12)

처음 4가지 – 사람에게는 의가 없음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영적으로 갈급한 상태로,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간절히 기다리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상태를 말합니다.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자기에게 구원 받을 만한 의의가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엎드려 비는 마음으로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제사는 죄인들의 상한 심령(시 51:17)임을 말합니다.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온유한 자는 자신의 의를 주장하지 않고 주님의 사랑을 가득 품고 있는 자로 하늘나라의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를 따라 살기 때문에 당하는 모든 경우의 부족과 필요를 말하며 이는 자신이 받은 축복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으로 배가 부릅니다.

* 싹난 지팡이, 특별히, 이 온유라는 말이 성경에서 사람에게 쓰일 때는 하나님에 의해 다스려지고 훈련되어, 우리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다스려지고, 우리들의 죄성이 다스려지고, 불 같은 성격이 다스려졌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베드로의 예).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 온유한 사람이지만 불순종하면 거만한 사람이요, 온유하지 못한 사람입니다(나 자신의 예). 마음이 온유한 자는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깁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중 4가지 – 복 받은 자의 책임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것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교회 내에서도 다른 성도의 잘못을 발견할 때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중보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따라 사는 성도는 자기의 의의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고치려 하며 교회를 파탄으로 몰아넣습니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의 청결은 곧 행위의 거룩함으로 연결됩니다(시 24:4-5, 렘 4:14, 딤전 1:5)

7)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을 때 생기는 하나님 나라의 행복과 평안을 말하며 교회를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최고의 이름을 받게 될 것입니다.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순교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 당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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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6:20-26, 누가복음의 평지설교(산상수훈)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 싹난 지팡이, 산상수훈이 선포된 장소가 마태와 마가가 다른 이유, 산상수훈이 (신약의 십계명 같은 기본법으로 강조되어) 예수님의 사역 안에서 여러 군데에서 선포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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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설교’(마태복음에 있는 산상수훈과 비교하여) 눅 6:17-19, 참고

복을 선포하심 : 심령이 1) 가난한 자, 2) 주린 자, 3) 우는 자, 4) 인자로 인하여 핍박 받는 자

화를 선포하심 : 심령이 1) 부요한 자, 2) 배부른 자, 3) 지금 웃는 자, 4) 칭찬받는 자

예수께서 내려 오셔서 평지에 서시니(눅 6:17)에서 연결되는 귀절로 예수님은 네 가지 복과 네 가지 화에 대한 말씀으로, 청중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된 자리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며,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제자들을 위로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원칙을 잘 지키는 사람들의 참 제자 됨을 보여줍니다(눅 6: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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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그룹, 마 5:13-16, 천국 시민의 참 모습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다

마 5:13-16, 믿는 자의 삶(소금과 등경),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눅 11:33-36, 믿는 자의 삶(등경)

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 싹난 지팡이, 이는 믿는 사람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지적해 주는 말씀입니다. 소금과 빛의 예를 들어, 믿는 사람들은 소금의 역할처럼 맛을 내고 세상을 썩지 않게 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되어 세상을 밝히고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외에 구제도 포함합니다(참고, 믿는 사람들은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창 12:2).

셋째 그룹, 마 5:17-20, 율법의 완성자

마 5:17-20, 율법과 복음, 참고 눅 16:16-17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싹난 지팡이,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보내신 약속의 결정체이시며, 예언의 성취자이시며, 율법의 완성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구약의 율법을 새로 해석하여 주시는 산상수훈으로 더 깊고 넓은 율법의 의미를 제시합니다.

넷째 그룹, 마 5:21-48, 하나님 나라의 의를 가르치심(진정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한 하나님의 의)

마 5:21-26, 살인하지 말라

21.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출 20:13)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바보)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눅 12:57-59, 화해하기를 힘쓰라

57.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58.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9.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싹난 지팡이, 살인은 악의 순서상 으뜸가는 분노(노하지 말라, 출 20:13, 신 5:17)입니다. 구약의 제6 계명은 사람의 몸을 죽이는 것을 살인이라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화를 내는 것도 영을 죽이는 것이므로 살인이라고 말씀하시며, 형제를 바보라고 하며 무시하는 행위도 영이 상처를 받으므로 살인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전에 불화한 형제와 화목하고 너를 고발한 자와 화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 5:27-32, 간음하지 말라(눈의 간음, 참고, 막 9:47-49, 출 20:14, 신 5:18)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출 20:14)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신 24:1,3)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 19:1-2 참고).

* 싹난 지팡이, 구약의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한 신약적 해석으로 눈의 간음과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도 간음이라고 확대 해석합니다.

마 5:33-37, 맹세하지 말라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레 19:12, 민 30:2, 신 23:21)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시 48:2) 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 싹난 지팡이, 거짓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보통 맹세할 때에 어떤 기준을 두고 맹세하는데 이것은 옳지 않은 것이며, 단지 옳다, 그르다로 의사를 표시하고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기 위하여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 5:38-42, 보복하지 말라 – 용서(참고, 눅 6:29-30, 눅 17:3-4)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출 21:24, 레 24:20, 신 19:21)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 5:43-48, 원수를 사랑하라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레 19:18)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눅 6:27-36, 원수를 사랑하라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 싹난 지팡이,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된 우리들을 예수님의 보혈의 대가로 회복시켜 주셨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수하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해자를 볼 때 그도 하나의 인간임을 생각하고, 나에게도 똑같이 있는 그의 안타까운 한계를 인정하며,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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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신약적 해석(예수님의 새로운 교훈을 통한 율법의 확대 해석, 율법과 복음의 차이)

구약의 율법은 간음하지 말라고 하여 지키게 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에 음심을 품는 것도(마 5:28절) 그리고 연관되는 행동까지도 간음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구약에서는 사람을 상하게 한 자에게 같은 정도로 원수를 갚을 수 있게 율법으로 정하였는데 예수님은 오히려“원수를 사랑하라”(마 5:43-48, 눅 6:27-28),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라”,“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눅 6:29), “누가 오리를 가자거든 십리를 같이 가라” 등의 실천적인 말씀으로 율법의 참된 의미와 근본 정신을 강조하여 하나님 나라의 사랑에 대하여 설명하십니다. 결론적으로 마 5:17-18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온전하게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설명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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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그룹, 마 6:1-7:29, 천국 시민의 기본 생활 양식(구제, 기도, 금식, 재물관, 믿음의 확신, 이웃에 대한 태도)

마 6:1-18 말씀은 종교적 위선에 대한 경고의 말씀으로 성도들의 실제적인 신앙 생활에서 범하기 쉬운 잘못을 지적하고 올바른 믿음의 자세와 방법인 구제, 기도, 금식을 제시합니다

마 6:1-4, 구제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 싹난 지팡이, 원수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 6:5-15, 기도(주기도문)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 싹난 지팡이, 기도한다는 것은 단순히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도는 가득 차 있는 마음 혹은 텅 빈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그분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스스로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시편 이해』 15쪽, 디트리히 본 회퍼 지음, 최진경 옮김). 주기도문의 주요 사상은 성도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이며, 하나님 나라가 중심 주제입니다. 사도 마태는 주기도문을 위치적으로 산상수훈의 가운데에 배치함으로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눅 11:1-4, 주기도문

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 싹난 지팡이,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의하여 하나님은 흔히 이스라엘의 아버지로 생각되었으며(신 3:6, 사 63:16, 64:8, 말 2:10), 이스라엘 전체가 신실하지 못할 때에는 신실한 개인들에게로 하나님의 부성은 제한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특히 아바 아버지라는 표현으로 가장 가깝고 친근하신 하나님으로 표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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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교수의 주기도문 강해 요약

주기도문은 마태판(마 6:9-13)과 누가판(눅 11:2-4)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은 산상수훈의 중심 부분인 6:1-8의 종교 행위에 대한 가르침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그만큼 기도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은 예수님의 제자 중의 한 명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여 예수님께서 예수 공동체에게 가르쳐 준 것이라고 그 목적과 경위를 설명하고 있으며, 그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각 공동체에 따라 예배에 필요한 기도문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태판의 주기도문은 예배를 위하여 누가판을 보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참고, 싹난 지팡이 신약, 11쪽, 마태와 누가에서만 나타나는 Q자료에서 온 것일수도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이해하기 위하여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누면, 첫째는 주기도문의 내용에 대한 간추린 해설이며 둘째는 주기도문의 성격입니다.

1. 주기도문에 대한 간추린 해설(하나님과의 관계)

1)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시는 초월자에 대한 경외심과 더불어 그분이 나의 아빠 되시는 친근함을 보여 줍니다. 초월자에 대한 경외심은 나중에 송영으로 다시 한 번 확인됩니다. 하나님은 초월자요 전능자요 무한한 자이시기 때문에 나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고, 나의 문제를 아시고 나의 문제를 들어 주시는 분이며, 나를 온전히 살게 하시는 분이므로 그분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의 아빠 되심은 그분이 나를 보호하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내가 그분의 상속자임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분의 능력을 끌어다 씀으로써 창조의 풍부함을 이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아빠’로만 되어 있는 것이 원래 본문인데 초대 교회 안에서 예배용으로 사용되면서‘하늘에 계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입니다.

당신 청원

2) 주기도문의 가장 중심된 청원은 당신 청원의 하나인‘당신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입니다. 이는 하나님 백성이 드리는 기도로서 이 세상에 하늘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의 청원은 내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겠다는 서약을 함께 담고 있으며, 이처럼 주기도문의 모든 청원은 단순한 청원이 아니고 서원과 서약을 겸하고 있습니다.

3) 당신 청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는 엄밀한 의미에서 신앙 고백으로 볼 수 있으며 자신이 바라는 소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4) 당신 청원‘뜻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누가판에는 마태판의 세번째‘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라는 당신 청원이 없습니다. 이 셋째 당신 청원은 당신의 나라가 임하는, 하나님 나라 도래의 당신 청원을 부연한 것으로, 이 세 개의 당신 청원은 세 개의 우리 청원과 구성상의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청원

5) 우리 청원의 첫째‘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담적 실존 방법(스스로 우리 삶을 살아야 하는)을 지양하고 하나님의 하나님 노릇해 주심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 안에 있겠다는 서원입니다.

잠 30: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딤전 6:7-10,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6) 우리 청원의 둘째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된 자의 서원으로, 죄 용서함을 받은 자로서 이웃의 죄를 용서하여 주겠다는 의지가 포함된 기도입니다.

7) 우리 청원의 셋째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하여 가는 자로서 사탄의 유혹에 계속 노출되는데 그 사탄에게 굴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지 않겠다는 서약입니다.

송영

8) 송영은 세 개의 당신 청원을 나라(나라이 임하옵시며), 권세(뜻이 이루어지이다), 영광(이름이 거룩히)으로 부연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기도 후에 송영으로 기도를 보증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이 주기도문이 교회 기도로 공식화된 것은 이방 선교 이후이며 이방인들이 기도의 관습을 잘 모르므로 안디옥 교회에서부터 송영이 주기도문에 문자화된 것입니다.

2. 주기도문의 성격

1)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시작한 ‘하나님 나라의 운동’으로 말미암아 불러 모아낸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게 주어진 이상과 소망을 나타낸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을 잘 보여 주는 것입니다.

2) 주기도문의 탁월함은 청원(서원)과 서약을 동시에 내포하는 간구로서 이 주기도문은 진짜 기도입니다. 중언부언하며 자기의 소욕만 만족시키면 그만이라는 세상 사람들의 기도와 대조가 되며 또 바리새인의 외식적인 기도와도 대조가 됩니다. 우리의 기도도 가끔 하나님에 대한 설교 혹은 이웃에 대한 설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오로지 하나님께만 의지함이며 의지하게 해달라는 간구이며 동시에 청원인데, 청원을 드리는 자로서의 인간적인 부분은 적극적으로 내가 하겠다고 하나님께 순종을 서약하는 것입니다.

3) 주기도문의 짧고 간결함은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마태복음 6장 7절의 요구에 잘 맞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게 되는 온전한 삶을 위한 기도이므로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4) 기도의 주체는 내가 아니고 우리라는 것입니다. 바울 서신에는 항상 우리 하나님이라고 쓰여 있으며 어쩌다 한 번(빌 1:3,4:19, 갈 2:20)이라고 씁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항상 이웃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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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16-18, 금식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19-24, 하나님과 재물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눅 16:13, 보물을 쌓아 둘 곳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 싹난 지팡이, 청지기 직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위하여 소망을 하늘에 두고,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맡기신 재물을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레위기 25:14에는 이웃에게서 부당 이익을 취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모아진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지만 그 재물을 어떻게 모으느냐도 중요합니다. 이웃에게 피해를 입혀가며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백성의 일이 아닙니다.

마 6:25-34, 근심하지 말라(믿음의 확신)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눅 12:22-34, 염려하지 말라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믿음이)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 싹난 지팡이, 아담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주신 에덴 동산의 완전함과 풍요를 잃어버리고 불완전함과 결핍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담적 실존 방법(풍요)을 추구하는 것을 지양하고 하나님의 하나님 노릇해 주심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 안에 있겠다는 서원입니다.

마 7:1-6, 비판하지 말라(이웃에 대한 태도)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눅 6:37-42, 비판하지 말라(형제의 눈 속의 티)

37.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 싹난 지팡이, 약 4:11-12, 판단하지 말라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을 준행해야 하는 사람(피조물)이 아니고 재판관(창조자)입니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으로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십니다. 도대체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고 정죄합니까.

마 7:7-12, 믿음의 기도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 싹난 지팡이, 7:12의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결론을 나타낼 때 주로 쓰는 말입니다. 이곳의 그러므로,라는 단어의 쓰임은 생경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화목을 위하여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단어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 산상수훈의 결론으로 성도가 반석 위에 지은 집(열매를 맺는 것)임을 주지시키며 그 당시의 성경인 율법서와 선지서로 이 구절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백성들에게 주신 기독교의 핵심 윤리이자 천국 시민의 지고한 행동 규범으로 소위 황금률이라고 불리웁니다.

눅 11:9-13, 믿음의 기도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 싹난 지팡이, 믿음의 기도는 우선 두 가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 때에,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약속의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 다음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됨을 깨닫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향유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가 응답된 후에는 계속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은혜 속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 7:13-14, 좁은 문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눅 13:22-30, 좁은 문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으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저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참고, 시 6:8)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 싹난 지팡이, 눅 13:22의 말씀을 공생애 두번째 예루살렘 방문으로 보고, 산상수훈을 제1차 갈릴리 사역 안에 포함시키기도 하며 혹은 공생애 사역 이 년 중간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재차 방문했던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본서는 후자를 따라 산상수훈을 2차 예루살렘 방문(유월절) 이후로 배치하였습니다.

마 7:15-20, 거짓 선지자(참고, 마 12:33-37)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눅 6:43-45, 그 나무의 그 열매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마 7:21-29, 반석 위에 지은 집(산상수훈의 결론)- 열매를 맺는 생활(요 15:1-17, 눅 13:6-9)로 연결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참고, 눅 13:25-30, 시 6:8)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눅 6:46-49, 반석 위에 지은 집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 싹난 지팡이,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께서는(마 5:17) 신약시대의 새 율법으로 산상수훈을 제시하십니다. 하지만 산상수훈은 모세 율법의 완성편으로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기도 힘들었는데 신약 시대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새 계명을 지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이는 중생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님의 임재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자신의 내면에서 느끼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 7:7-29은 천국 시민의 실천적 규범을 제시하고 있으며 산상수훈(마 5-7장)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 부인’을 통하여 예수님을 닮아가고‘말씀을 듣고 행하는 법’을 배워 반석 위에 집을 지어가는 것(성화의 과정)입니다.이는 열매 맺는 생활로 나타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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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삶의 다섯 단계(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모략』 484-487쪽 요약)

1.예수를 “인자” 곧 우리를 구원하실 예정된 분으로 믿고 의지합니다(요 3:15, 롬 10:9, 고전 12:3).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의 실체이며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입니다(히 11:1)

2. 예수의 인격에 대한 이 믿음은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은 열망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 안에 산다는 것이며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뜻입니다(요 8:31). 그럴 때 우리의 전 존재는 전진적으로 영생의 영광스러운 세계로 들어가게 되며 참으로 자유하게 됩니다(요 8:36).

3. 우리가 예수의 말씀 안에 거하게 되면 자연히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순종은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사랑하는 자는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요 14:15, 21).

4. 순종과 순종에 필요한 삶은 마음과 영혼 전체의 내적 변화로 이어집니다. 내적 변화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며(갈 5:22) 진정한 사랑이 우리의 중심이 됩니다(벧후 1:2-11).

5. 천국의 일을 행하는 능력이 생깁니다(요 14:12). 위대한 능력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되려면 반드시 순종하여 내적으로 변화된 위대한 성품이 요구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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