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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5장 1-20절 | 상상하지 못할 반전 (마가복음 5:1-20)_아침예배_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_20190111 21576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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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지 못할 반전 (마가복음 5:1-20)
아침예배
베이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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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수) \”마가복음 5:1-20\” / 작성: 조광묵

마가복음 5장 1절에서 20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시는 사건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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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11/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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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5

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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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4/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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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5장1절~20절(비참함에서 온전함으로 회복시키신 은혜)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에게 구원과 참자유를 주실 분 오직 예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증인으로 세워주옵소서. 그 이름을 당끝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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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7/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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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5:1-20 KRV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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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2/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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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5:1~20] 잃어버린 한 영혼… – 롱청반점

날짜: 2020년 3월 11일 수요일. 본문: 마가복음 5장 1절 ~ 20절. 영적 상태: 평안, 감사, 갈급함. 시작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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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ongchengqt.tistory.com

Date Published: 11/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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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마가복음 5장 1절-20절 “집으로 돌아가 알려라!”

이 아이의 문제는 가정에서 부터 일어 난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군대 귀신들을 그들의 요구대로 돼지 떼에 들어가게 허락을 하셨습니다. 귀신의 존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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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inacts.org

Date Published: 12/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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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5장 1-20절 (군대귀신 들린 자)

자기 중심적인 신앙, 훈련을 온전히 견디지 못하고 즐거움에 참여하지 못한다. 모든 기준은 내 이익- 그런데 그 내 이익은 다른 사람이 살고 죽는 것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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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logosgarden.tistory.com

Date Published: 6/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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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기 위하여 (막 5:1-20) * 하나님의 아들 …

2016년 1월 17일 주일예배.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 마가복음 16 ✦.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기 위하여”. (마가복음 5장 1-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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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pccoh.org

Date Published: 8/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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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마가복음 5장 1-20절

  • Author: 베이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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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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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수) \”마가복음 5:1-20\” / 작성: 조광묵

본문 : 마가복음 5:1-20

찬송 :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마가복음 5장 1절에서 20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시는 사건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귀신을 쫓는 일곱 번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비교적으로, 오늘 본문의 사건을 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자세한 귀신축출 사건을 크게 세 부분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귀신들린 사람의 상태이며, 두 번째는 귀신이 축출되는 방법, 세 번째는 사람들의 반응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거라사의 무덤 사이에 사는 귀신들린 사람(1~7)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이제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만납니다. 이 귀신들린 사람에 대해 오늘날에는 심리적 혹은 정신병리학적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본문에서는 귀신의 활동으로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에 대한 이해 위에 오늘 사건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귀신에 대해 그 존재를 믿지 않거나, 혹은 귀신을 믿되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쏟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귀신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활동을 하는지 이 귀신들린 사람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거라사인 지방에서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절을 하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부르짖습니다. 여기서 귀신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자신과 예수님이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 알며, 그래서 자신이 어떠한 자세를 취할지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아 귀신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과 같은, 초자연적인 지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여기서 귀신은 사고력과 의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등장하는 귀신은 인격을 가진 영적인 존재로 나타납니다.

또한 귀신은 예수님께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라고 말하듯이, 예수님을 자신과 적대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즉, 귀신은 사탄을 추종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은 영화나 소설 등 공포물에 나오는 귀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공포물에 나오는 귀신은 공포스럽고 기괴하며 신비로운 존재로 묘사되지만, 성경에서 귀신은 사탄을 추종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격적이고 영적인 존재로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귀신에 대해 바르게 알기 위해 귀신의 외형이나 물리적인 행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귀신의 지적이고 인격적인 활동에 대해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즉, 귀신이 어떻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3-7)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이제 다음 부분에서 귀신의 활동에 대해 나오고 있습니다. 귀신이 어떻게 사람과 세상에 관여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즉, 귀신은 그냥 존재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일에 관여를 하고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의 상태로 사탄이 어떻게 사람과 세상에 관여하는 활동을 하는지 특징지어 볼 수 있습니다. 이 귀신들린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며, 쇠사슬과 고랑으로 매어도 그것을 끊고 깨뜨리며, 점차적으로 이제는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 지르고 괴로워하며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과 관계를 해체하고, 사람에 의해 제어되지 않으며, 사람을 괴롭게 하여 스스로를 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하고 인격을 망가트립니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귀신에 장악당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신 목적인, 우주와 지구에서 하나님을 대신해 경작하고 다스리며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신, 그 목적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여기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이 귀신들린 사람을 어느 누구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죄를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죄에 의해 제어를 당하는 인간의 한계점을 가감 없이 보여 줍니다. 이처럼 귀신들린 사람의 모습은 우리의 영적인 상태의 일면일 것입니다. 이 귀신들린 사람처럼 우리 안에는 제어되지 않는 죄의 결과를 낳는 옛 사람이 있습니다. 그 죄성의 옛사람은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육체의 욕심과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라 행하도록 합니다.

로마서 7장 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면, 우리는 모두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하고 평화롭길 원하지만, 항상 갈등과 오해와 반목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행동에 있어서는 정의롭고 공정하기 원하지만, 항상 부조리와 자가당착에 빠집니다. 동기에 있어서는 이타적이고 자족하며 감사하기 원하지만, 항상 욕심이 있고 자기중심적이며 만족지 못하고 더 나은 내일을 생각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가 가진 한계를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문학과 심리학 그리고 철학 사상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하며, 더 나은 미래로 계속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늘 한계에 부딪칩니다. 우리에게는 계속해서 비극이 일어나며, 항상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며, 이럴수록 자기모순적인 한계에 대해 스스로 비판하고 괴로워하며 자조하게 됩니다. 결국에 우리는 스스로 존엄성과 윤리, 절대적 진리를 부인하는 회의적 태도로 스스로를 비관하는 모습에 도착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그 사람에게서 나오게 하시다(8~15)

(8-12)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자신의 모습 앞에 좌절하여 스스로를 정죄하고, 패배주의로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이후에 귀신들린 사람에게 일어난 일 때문입니다. 이 일은 영적인 상황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일어난 일을 대표해서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그 다음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귀신을 보시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귀신에게 이름이 무엇인지 명령하셔서 그 정체를 드러내고, 예수님의 지배 아래 굴복하게 하십니다. 예수께 굴복된 그 귀신은 산 곁에서 먹고 있던 돼지떼에게 들어가기를 청하여, 돼지떼에게 들어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 귀신의 이름이 군대라는 것과 귀신이 들어간 돼지떼의 수가 이천마리라는 것을 통해 강력한 위력을 행사하던, 많은 수의 귀신이 눈 앞에 뻔히 드러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돼지떼는 바다를 향하여 내리달아 몰사하였습니다. 돼지떼가 바다에 빠져 몰사하는 것은 귀신들이 심판받아 죽음으로 빠져드는 것을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귀신이 예수님께 쫓겨나는 것에 대해서, 마가복음 3장 2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라” 이 말은 세상의 임금이자 공중권세 잡은 사탄을, 예수께서 이기시고 결박하셨음을 귀신축출 사건을 통해 증명하여 보이셨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12장 28절에 의하면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귀신이 쫓겨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확증하시는 신약의 말씀은 에베소서 1장 21절에 나와 있습니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관용적인 용법상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은 영적인 세력을 의미하며, 그 세력을 굴복시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왕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5-17)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결과, 귀신들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던 사람이 회복되어서 온전하여 졌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지경으로 파괴되었던 사람이, 귀신이 내쫓김으로 인해 온전해졌습니다. 그가 옷을 입었다는 것은 사회성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인격성이 회복된 것입니다.

여기서 인간이 어떤 방법으로서 본연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즉, 근본적으로 죄의 오염으로 파괴된 인간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완전한 회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온 것이 인류역사의 줄기 중 하나일 것입니다.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발전은 분명히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사람은 노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더 성숙하고 나아질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죄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 증거된 바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로 말미암아서만, 죄의 영향력에서 해방되고 새하늘과 새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됩니다.

귀신 들렸던 사람에 의해 예수께서 하신 큰 일이 데가볼리에 전파되다(16~20)

(16-17)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만 완전한 세상인,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 지역에서 떠나시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들의 관념에서 돼지떼의 몰사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선의 기준으로는, 예수님이 하신 일은 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돼지떼의 몰사로 선량한 사람들이 경제적인 피해를 입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한 여자가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을 때, 제자들이 그 여자의 행동에 분개한 것과 같습니다. 제자들은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허비하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자의 행동을 칭찬하셨습니다. 우리의 합리적인 가치와 사고에 의하면, 돼지떼 이천 마리가 바다에서 몰사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경제적인 재난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세속적 가치관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안위와 행복은 중요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행복과 안위와 평화를 위한 복지국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굴복되고,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학자 마이클 호튼의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사탄이 한 도시를 완전히 장악하면 어떤 모습일까? … 술집은 모두 문을 닫을 것이고, 도색물들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깨끗해진 거리는 서로 웃음을 머금은 보행자들로 가득 할 것이다. 저주 악담도 사라질 것이다… 교회는 매주일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가 선포되지 않을 것이다.”

(18-20)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이제 마지막으로, 이 일로 인해 그 지역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귀신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했지만, 예수께서는 집으로 돌아가 자기에게 일어난 큰 일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귀신들렸던 사람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큰 일을 이방인의 지역이었던 데가볼리에 전파하였습니다.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한 영들이 예수께 굴복하고 떠나간다는 소식이 전파되어 갔습니다. 이 소식은 복음의 소식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전파되는 복음은 ‘귀신이 쫓겨나가는 일이 일어나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귀신이 쫓겨났다는 소식’이 복음입니다. 현재 지금 이 땅에 예수께서 임하게 하신 하나님 나라는 ‘복음의 소식의 전파’로 임하고 있는 것이며, 현재 여기에서 악한 세력이 모두 사라지는 방식으로 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도 복음의 소식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복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생각과 이론을 무너뜨리고,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이며 지적인 존재인 사탄은 물리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지식과 사상과 계략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해타산의 수단이 되어버린 고린된 관계’,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우상이 되어버린 자아’, ‘평화와 사랑의 탈을 쓴 인본주의’는 사탄이 뿌려놓은 거짓된 문화와 사상의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거라사인 지방의 귀신들린자의 모습이 투영된 우리의 자아상 입니다. 고립된 무덤에 귀거하며 쇠사슬로 묶어도 아무도 제어할 수 없게 되어, 스스로 자기를 해치는 귀신들린 자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영적인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어둠과 사망의 권세를 굴복시키시고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 왕이 되셨다’는 복음은 우리의 유일한 무기이며 소망입니다. 구원의 근거와 그 주장은 우리 자신의 부패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역사적 사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승리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의 형편과 자질에 집착하여 정죄와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복음을 자신과 이웃과 사회에 전파하며 승리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승리로 삼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시대적 흐름과 문화와 그 안에 있는 사상에 휩쓸려 살아왔습니다. 그러면서 경쟁하며 사람과의 관계를 이해타산의 수단으로 여기고, 자신의 은밀한 욕심과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며, 결국에는 자신을 소외시키고 고립으로 몰아세웠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일이 아님에도, 결국은 그렇게 죄의 습성을 따라 그렇게 행하고 있는 우리의 죄악입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지금도 여전히 자기도 모르게 죄된 습성에 이끌리고 있는 우리 자신을 보지만, 우리에게 주신 성경의 말씀을 통해 다시금 눈을 들어 죄의 권세로부터 승리하시고 우리를 해방시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이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이루신 완전한 승리를 우리 자신과 이웃과 사회에 전파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에게 새롭게 되어 그 힘으로 살아가게 인도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거라사인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의 특징은 우리의 어떤 영적 상태를 보여 주는가요?(2-5)

2. 사탄을 추종하는 영적존재인 귀신은 어떤 활동으로 우리에게 관여하나요?(6-7)

3. 귀신축출 사건으로 본 하나님 나라와 복지국가의 차이는 무엇인가요?(16-19)

4.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 현재의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19-20)

(작성:조광묵)

마가복음 5

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1)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마가복음5장1절~20절(비참함에서 온전함으로 회복시키신 은혜)

예수님은 처음부터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가려고 작정하셨다(1, 4:35). 예수님이 거라사 땅에 도착하셨을 때 무덤사이에 거하는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를 맞았다.(2) 그는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혀 도저히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인생이었다. 귀신의 권세는 사람을 노예로 사로잡아 비참하게 만들고, 마침내 사람을 완전히 파괴한다. 이것이 바로 악한 영들의 목적이다. 인간은 이러한 악한 영들에 대항할 힘이 없는, 철저히 무능한 존재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와 사탄의 세력을 멸하고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한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둠의 영들을 대적해 이길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를 자유하게 하신다.

예수님은 그 귀신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라고 명령하셨다. 그 귀신의 이름은 ‘레가온’이었다. ‘레가온’은 5~6천명으로 구성된 로마 군단을 가리킨다. 한 사라에게 그렇게 많은 귀신이 붙어살았으니, 그 사람이 그렇게 극심한 광기를 부렸던 것이다. 군대 귀신은 거라사 지역에서 떠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곳을 떠나는 순간, 이제껏 누렸던 모든 권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걸복걸하면서 예수님께 매달렸다. 하지만 예수님이 허락하시지 않자,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예수님이 허락하시자 군대 귀신은 2천마리 되는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갔고, 돼지 떼는 바아에 뛰어들어 몰살당했다.

이 이야기에는 마가의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 군사력으로 세상을 통치하며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있는 로마 제국은 결국 돼지 떼처럼 멸망한다는 것이다. 마가는 로마의 군대보다 더 강한 힘으로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 권력은 예수님의 권세를 능가하지 못한다.

1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6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8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4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오늘의 찬송: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정결한 마음을 얻게 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아멘, 할렐루야! 눈보다 더 희게 맑히는 주의 보혈 능력을 믿습니다. 어린양의 귀중한 피,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고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죄와 마귀의 세력 아래 놓여 있는 이 땅에 수많은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에게 구원과 참자유를 주실 분 오직 예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증인으로 세워주옵소서. 그 이름을 당끝까지 전하게 하옵소서. 사탄의 권세가 무너지고 수많은 영혼들이 참자유를 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가 온 땅에 퍼지기를 소망합니다.

아버지, 은연중에 예수님을 배척할 때가 있지나 않은지 돌이킵니다. 거라사의 주민들처럼 사소한 이익에 눈이 멀어 예수님을 외면할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시간이나 재물을 요구하실 때 우리는 이해관계를 따지면서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일하시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을 밀어내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거부하지 않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 두란노QT

마가복음 5:1-20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

마가복음 5:1-20 KRV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어떻게 된것을 보러 와서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이에 귀신 들렸던 자의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저에게 고하매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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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5:1~20] 잃어버린 한 영혼…

날짜: 2020년 3월 11일 수요일

본문: 마가복음 5장 1절 ~ 20절

영적 상태: 평안, 감사, 갈급함

시작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새날을 허락하여 주시고, 주님의 은혜 아래 거하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부디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지혜와 능력, 끈기와 인내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게 하여 주시고, 원하는 점수를 얻고, 다음 스텝을 진행시켜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오늘 아이와 함께 상담센터에 다녀오게 되는데, 오고 가는 길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그곳에서 아이의 심리를 잘 체크하게 하여 주시고, 저희들의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를 잘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앞에 섭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여 주시고, 말씀 속에 담긴 주님의 메시지를 깨닫고, 그 말씀을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1. Lection Divina(겨룩한 읽기) – 3번

<새번역>

1 그들은 바다 건너편 거라사 사람들의 지역으로 갔다.

2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니, 곧 악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무덤 사이에서 나와서, 예수와 만났다.

3 그는 무덤 사이에서 사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었다.

4 여러 번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쇠고랑도 부수었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다.

5 그는 밤낮 무덤 사이나 산 속에서 살면서, 소리를 질러 대고, 돌로 제 몸에 상처를 내곤 하였다.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엎드려서

7 큰소리로 외쳤다. “더 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고 애원합니다.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8 그것은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악한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10 그리고는, 자기들을 그 지역에서 내쫓지 말아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11 마침 그 곳 산기슭에 놓아 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귀신들이 예수께 간청하였다. “우리를 돼지들에게로 보내셔서, 그것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13 예수께서 허락하시니, 악한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바다 쪽으로 비탈을 내리달아, 바다에 빠져 죽었다.

14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달아나 읍내와 시골에 이 일을 알렸다. 사람들은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보러 왔다.

15 그들은 예수에게 와서, 귀신 들린 사람 곧 군대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16 처음부터 이 일을 본 사람들은, 귀신 들렸던 사람에게 일어난 일과 돼지 떼에게 일어난 일을 그들에게 이야기하였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께, 자기네 지역을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다.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예수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19 그러나 예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집으로 가서, 가족에게, 주님께서 너에게 큰 은혜를 베푸셔서 너를 불쌍히 여겨 주신 일을 이야기하여라.”

20 그는 떠나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데가볼리에 전파하였다. 그리하니 사람들이 다 놀랐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귀신을 내쫓으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 것을 알리신 것처럼 이제 이방 지역인 데가볼리 지역에서 귀신을 내쫓으심으로 이방 지역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을 알리신다. 귀신 들린 자가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이전 장면에서 ‘저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 역할을 한다.

단락 구분

1~8절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을 치유하시다

9~13절 귀신의 간청과 예수님의 허락

14~17절 돼지 치던 자들과 지역 사람들의 반응

18~20절 귀신 들렸던 자의 청원과 예수님의 대답

배경이해

‘무저갱’이란 말은 헬라어로 아뷔쏘스이다. 본래 밑이 없는 곳, 끝이 없는 곳, 깊은 곳이라는 의미다. 무저갱은 지옥에 들어가기 전까지 사탄을 한시적으로 가두어 두는 곳이다. 마가복음에서는 귀신들이 자신들을 이 지방에서 내보내지 말라고 예수님께 간청하며, 평행 본문인 누가복음에서는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라고 표현되어 있다(눅 8:31). 계시록에는 무저갱에 관한 흥미로운 언급이 등장한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으리라'(계 20:1~3). 이처럼 무저갱은 사탄을 잡아 결박하여 천 년 동안 가두어 놓는 곳이다.

2. 본문 묵상하기

본문의 구조(흐름 문장/본문의 명제)

* 흐름 문장 *

1. 거라사 지역에 도착하신 예수님은 귀신 들린 사람을 쫓아내시고, 그 사람에게서 쫓겨난 귀신들은 돼지 떼에게 들어가 돼지 떼를 바다로 몰아 몰살시킴(1~13v)

2. 지역 주민들은 귀신 들렸던 사람이 제정신을 회복한 것을 보면서도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간청함(14~17v)

3.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렸던 사람을 자기 집과 마을에 남는 제자로 삼으시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전파하는 사명을 주셨음(18~20v)

* 본문의 정리: 바다 건너 거라사 지역에 오신 예수님은 악한 귀신 들려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셔서 그를 온전하게 하십니다. 그러고는 다시 바다를 건너가십니다(21절).

* 본문의 명제: 예수님은 너희를 사랑하시고, 너희를 회복시키시며, 너희에게 소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메시지

명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너무나 특별한 분이십니다.

Keyword: Who?

대지와 소지:

1. 먼저, 그분은 잃어버린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a. 귀신이 들려 아무도 제어할 수 없었던 사람을 회복시켜 주시는 예수님

b. 잃어버린 한 영혼의 절규를 들으시고, 그를 찾아와 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예수님

2. 둘째로, 그분은 잃어버린 한 영혼을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a. 돼지 이천마리보다 한 영혼의 회복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신 예수님

b. 잃어버린 한 영혼을 그 어떤 재물보다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그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예수님

3. 마지막으로, 그분은 잃어버린 한 영혼에게도 소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a. 귀신 들렸던 자에게 당신께서 행하신 일을 가족들과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사역을 수행케 하신 예수님

b. 잃어버린 한 영혼을 받아 주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

3. 기도하기

오늘의 기도어구: 귀신 들렸던 자에게만 주목하시고, 그를 온전히 회복시켜 주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신 예수님

⇒ 오늘 본문에서 만난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와 주시고, 그를 회복시켜 주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① 상담센터에 다녀와야 하는데, 오고 가는 길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아이가 피곤치 않게 힘을 더하여 주시고, 즐겁고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올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저희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그 길을 분명하게 일러 주시길…

② 지금 이 상황이 하루속히 종식이 되게 하여 주시고, 반목과 혼란의 상황들이 하나님의 샬롬으로 변모되게 하여 주시고, 평안 가운데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배려하는 상황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리에서 나눔과 섬김을 성실히 실천해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길…

③ 가족들의 건강과 안전을 늘 책임져 주시고, 이런 상황 속에서 가족들 모두 평안히 잘 지낼 수 있도록 지켜 주시길, 그리고 아이가 주님의 평안 가운데 거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발견하고, 자신의 미래를 향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 주시고, 늘 동행하여 주시면서 그 길을 인도하여 주시길…

4. 실천하기 /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 주님을 모른 채 살아가던 나를 찾아와 주시고, 나에게 당신의 사랑을 일깨워 주시고, 당신의 자녀로 받아 주신 그 사랑에 감사하면서, 매일매일 주님의 자녀로서 성실히 살아가도록 하자!!!

– 나를 소중히 생각해 주시고, 그 어떤 재물보다 귀하게 여겨 주시는 그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필요를 따라 채워 주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의 인도자가 되어 주시는 그분과 더욱 더 친밀한 관계가 되도록 노력하자!!!

–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그 사명은 주님께서 내 삶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가족들과 내게 허락하신 곳에서 전하고 나누는 것임을 늘 명심하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곳에서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면서 그분의 사랑을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도록 하자!!!

5. 침묵하기(침묵한 후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다, 분심의 마음이 생길 때 기도 어구를 사용)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하여 주시고, 말씀의 의미들을 되새길 수 있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주님을 모른 채 살아가던 저를 찾아와 주시고, 저를 옭아매고 있던 것들로부터 자유케 하여 주시고, 당신의 자녀로 받아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때의 상황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이 됩니다. 저를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시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늘 동행하여 주시고, 늘 지켜봐 주시고, 저희들의 힘과 버팀목이 되어 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곳에서 늘 주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전하고,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나눔과 섬김을 성실히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부디 긍휼을 잊지 마시옵소서. 부디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마가복음 5장 1절-20절 “집으로 돌아가 알려라!”

마가복음 5장 1절-20절 “집으로 돌아가 알려라!”

거라사지역으로 예수님은 가셨습니다.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도 날 뛰어 제어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덤가에 묶어 두었는데 쇠고랑은 끊을 만큼 힘이 쎄서 이제는 더 이상 묶어 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밤 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 늘 소리지르고 돌로 자기 몸을 해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 왔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를 지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를 괴롭게 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이유는 이미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을셨습니다. 그 때에 대답하기를 내 이름은 “군대”라고 하고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말기를 간구 하였습니다. 마치 돼지 떼가 지나가는 데 그 돼지 떼안에 들어 가게 해 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지 언덕을 내리달아 바다에 모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본 돼지 치는 자들이 도망하여 마을로 들어가 말하니 사람들이 나와 보다가 전에 무덤 속에 있었던 제어 할 수 없던 사람이 옷을 입고 온전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그 지방에서 떠나기를 간청하자 배를 타셨습니다. 이 때 귀신 들렸던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였는데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어떻게 큰 일을 하였고 불쌍히 여기셨는지를 가족에게 가서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데가볼리 전지역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1.거라사 지역에 예수님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거라사 지역으로 가셨습니다. 갈릴리 호수가에서 사람들이 비교적 많았던 지역인 가버나움과 거의 반대편에 위치한 장소입니다. 이곳을 데가볼리 지역이라고 하여 열개의 도시가 한 지역을 이루고 있는 곳 중에 하나가 바로 거라사 입니다. 배로 부두가에 인접해 있는 도시 입니다. 이곳에서 미치광이 청년을 만났는데 군대 귀신이 들어가 아무도 그를 말릴 사람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만나러 일부러 간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일을 하지 아니하시고 바로 이사람을 고치 신 후에 배 타고 건너가셨기 때문입니다. 험한 곳이라도 영혼을 사랑하는 예수님은 힘들다 하지 않으시고 찾아 가셨습니다.

2.귀신이 그에게로 들어간 것입니다.

젊은 청년의 영혼 속에 더러운 짐승과 같은 군대 귀신이 떼지어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그를 제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젊은이의 마음에는 내일을 향한 꿈과 희망과 아름다음으로 가득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미치광이가 될 수 밖에 없는 잘 못된 귀신이 자리잡고 있으니 가정에서 함께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정신은 한 번에 바뀌어 버립니다. 잘못 된 생각이 쑥 들어오면 막을 길이 없습니다. 사람의 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병든자를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이 제대로 서 있지 못하였다면 그것을 고치실 분은 예수님 한 분 외에 다른 분은 없습니다.

3. 가정으로 돌아가라

올바른 가정으로 회복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 아이의 문제는 가정에서 부터 일어 난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군대 귀신들을 그들의 요구대로 돼지 떼에 들어가게 허락을 하셨습니다. 귀신의 존재는 이와 같이 짐승에게나 들어 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귀신을 숭배하지 마십시오, 귀신을 무서워 하지 마십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에수님께서는 이 젊은이를 고치시고는 가정으로 돌려 보내 셨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말하고 증거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하므로 온 데가볼리지역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퍼지게 되었습니다.

결론:

사람의 잘못된 일이 가정과 연관이 있음을 보여 주는 말씀이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늘 걱정거리 였던 사람이 치료를 받았으니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깨서는 가정이 중요성을 다시 알려 주신 것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가정에 귀신이 들어오면 혼란과 분열 만이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임하면 더러운 귀신을 물러가고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가복음 5장 1-20절 (군대귀신 들린 자)

마가복음 5장 1-20절 (군대귀신 들린 자)

5-7장의 이야기는 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장소는 강의 맞은 편 이방인 지역. (4:36절: 우리가 저 편으로 건너가자!)

-> 5장 1 절 :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회당과 집에서 행하던 일들-> 바닷가, 이젠 국경을 넘어 이방 땅에까지…

-> 생육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라!!

하나님의 나라- 계속적으로 커지는 것, 퍼져 나가는 것.

사탄의 계략- 머무르게 하는 것, 자신의 성을 짓도록 하는 것. 자기 것에 만족해서 남을 향하지 못하게 하는 것.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2절)

그가 거하는 곳- 무덤 사이

지금도 이집트에 있는 무덤에서 사는 사람들.

당시의 무덤 – 사후세계를 인정했기에 지붕만 없이 거의 평상시의 집 모양으로 무덤을 만들고 그 사이에 평상시와 같은 생활용품 및 부리던 종들이나 가족까지 생매장.

그런데 시간이 지나 가난한 사람들이 이 곳 무덤에 모여 살기 시작- 죽은 자들이 남기고 간 유물들을 사용하며 그것들을 사용하며 생활.

그곳에 전기가 들어오기도 하고 이집트 카이로에는 2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무덤의 도시에 삶. -> 문제는 각종 귀신들림의 역사가 일어남…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2절)

배- 교회, 안전한 피난처

비록 배 안에 큰 광풍으로 인한 파도 물결들이 몰려 들었지만 그곳은 언제나 주님이 지키시는 곳.

배 밖의 세계- 사탄이 지배하는 곳. 제자들을 데리고 그 곳으로 가자!

배 안의 세계에서 필요한 것 – 믿음

배 밖의 세계에서 필요한 것 – 영적 전투 (담대함)

광야생활에서 필요한 것 – 믿음, 공급자, 보호자, 인도자는 오직 하나님

가나안 땅 – 전투

그리스도인 – 빛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사람들. 나가지 않으면 미완성. 과잉보호자….

사람들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 순응하는 것, 쇠사슬로 메는 것, 통제, 제어…

그러나 그러면 그럴 수록 신앙 밖의 사람들은 통제 불능, 제어 불능의 사람이 되어 간다.

그야말로 더럽고, 추하고,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것이 자유인가?

누구도 날 제어할 수 없고 통제 할 수 없는 자유함이 날 행복하게 하는가?

그에게 육체적인 자유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가 하는 것은 오직 소리지르고 돌로 자기의 몸을 헤치는 것. (5절)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자해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삶.

이번에도 귀신이 먼저 예수님께로 나아와 외침.

1장 23절 – 회당에서도 가장 먼저 반응한 것- 귀신 들린 자.

말씀이 있는 곳에 나타나는 현상- 귀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악한 자도, 귀신도 이런 고백을 언제나 할 수 있다.

아무리 악한 귀신들린 자라도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려 절할 수 밖에 없다.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를 괴롭히지 말기로 하나님과 맹세하소서.

Why?

아직 십자가와 부활의 때가, 심판의 때가 아니기로, 그 때까지 자기를 건드리지 말라.

사탄의 횡포가 아무리 거세고 위험하더라도 그들의 권세는 오직 예수님이 만지시기 전까지…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정한 때는 언제인가? 오직 주님이 만지시는 때. 명령하신 때. 말씀이 임한 때…..

더 이상 그들에게 거할 길이 없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본질을 꿰뚫는 질문? 너 누구냐?

야곱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했던 질문. 네 이름이 무엇이냐?

“사기꾼 입니다.”

“군대입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보면서 그냥 피하고 묶고, 상대를 안하고, 포기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보면서 너 누구냐?고 정체를 드러내심.

사람들의 방법- 이해 못할 일들이 있으면 꽉 묶어 놓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좋여 놓으려고 함. 솨사슬과 쇠고랑에 채워놓도록…

악도 발달해서 이제 사기꾼, 거짓말 쟁이의 악한 영이 군대가 되어 그의 온 일생을 망가뜨림.

군대: Region. 군단; 6000명 단위.

크고 많고 엄청난 파워의 악한 군대가 장악한 인간.

그러나 예수님의 권세는 그보다 더 크다. 능치 못하실 일이 없다.

야곱을 이스라엘 되게 하신 하나님은 군대 귀신 들린 자도 치유하신다.

말씀으로 치유하신다.

군대 귀신이 2000마리 되는 돼지 때에게 들어가서 몰살.

돼지 – 자기 의지가 없다. 들어가니까 바로 죽는다.

이것이 사탄의 정체다. 무덤 곁에서 살고 있는 자의 운명이었다. 결국 미치광이로 살다가 스스로 몰살할 수 밖에 없는 자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예수님께서 만나서 살리신 것이다.

그것도 밤에 폭풍을 뚫고 배를 타고 건너와 살리신 것이다.

돼지를 치던 자들이 전한 소식-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뭘 말했을까? 자기가 치던 돼지들이 다 몰살 당했다. 귀신이 나간 자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가 키우던 돼지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한 영혼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자기 생업에만 관심이 있으니까 예수님이 하신 큰 일에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평하고 도망하고 원망한다.

미친 이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신경 쓰는 것- 이대로가 좋다. 변화가 싫다.

자기가 바뀌는 것이 싫다. ->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5:17절)

자기 중심적인 신앙, 훈련을 온전히 견디지 못하고 즐거움에 참여하지 못한다. 모든 기준은 내 이익- 그런데 그 내 이익은 다른 사람이 살고 죽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영원한 기쁨과 상급과도 상관이 없는 오직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내 소유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영혼을 위하여

배를 타고 폭풍을 뚫고 구원하러 오신다.

그리고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당연스레 돼지 2000마리를 희생시킨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어 놓으신다.

그리고 다시 배에 오르신다. 제자 들과 함께 머무는 곳으로, 교회로, 평강으로 들어오신다.

예수와 함께 있으려 하는 그 자에게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그 사람은 떠나려 하는데 예수님은 돌아가라 한다.

사람들은 2000마리 돼지가 죽었다고 소동하며 예수님보고 떠나라 하는데 예수님은 한 영혼을 구한 것이 가장 큰 일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만큼 너를 불쌍히 여기셨다고 2000마리의 돼지가 죽고, 내가 죽고, 십자가를 져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만큼 너를 사랑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소식을 내 가족, 내 이웃, 내가 전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에게 전하라고 나를 남기신다.

나를 남겼지만 홀로 두신 것이 아니라 이젠 성령 안에서 육이 아닌 영으로 하나가 되게 하신다.

데가볼리 – 10개의 큰 마을

주님은 가족에게 전하라고 하시는데 그 사람은 열개의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자기에게 일어난 사랑의 소식을 알렸다.

복음을 전했다.

그렇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과 동행하였다.

묵상질문)

1. 세상이 거라사 사람을 잡아두기 위해 썼던 방법은 무엇이었나? 그런데 그렇게 통제 할수록 더욱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 세상이 우리를 다루는 방법과 주님이 우리를 다루는 방법은 어떻게 다른가?

2. 마을 사람들은 돼지 2000마리가 죽었다고 예수님을 떠나라 하고 예수님은 한 영혼을 위해 폭풍우를 뚫고 배에서 내겨 무덤가로 내려 오신다. 나의 영혼을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자신의 목숨을 주신다. 당신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가슴 깊이 생각해보자.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기 위하여 (막 5:1-20)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2016년 1월 17일 주일예배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 마가복음 16 ✦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기 위하여”

(마가복음 5장 1-20절)

[ 들어가는 말 ]

뉴스를 보다 보면 종종 어느 유명한 운동선수가 몇 년 계약을 하면서 엄청난 액수의 연봉을 받게 되었다는 기사가 뜹니다. 한 해 연봉이 천만 달러가 넘고 5년 계약을 맺으면서 총 몇 천만 달러를 받게 되었다는 식의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반면 인기가 없거나 실력이 뒤처지는 선수들은 최저 연봉 밖에 못 받다가 그것도 안 되면 퇴출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수천만 달러를 받는 사람의 가치가 몇 만 달러를 받는 사람의 가치보다 더 높습니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세상에서는 돈이나 명성이나 능력에 따라 평가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진정한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가끔 ‘쓰레기 인생’이라는 말을 하는데, 어떤 사람이 완전히 버려져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며 철저히 버려진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사람의 가치조차 초라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의 가치가 다 똑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돈이나 명성이나 능력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형편없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가치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이 엄청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죄에 의해 많이 무너져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고귀한 보물이 우리 각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마귀에게 이 가치를 빼앗기고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이런 우리의 원래 가치를 회복시켜주시기 위함입니다.

1. 귀신들린 자와의 만남 (1-9 절 )

1절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갈릴리 지역에서 배를 타고 그 반대편인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건너옵니다. 이 지역이 어디였느냐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합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세 공관복음(Synoptic Gospels) 즉 ‘관점을 공유하는 복음서’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모두 기록이 되어 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가다라”라고 하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거라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이 정확히 어느 곳이었는지를 100% 확실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가 어디였든지 상관없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지역이 데가볼리였다는 것입니다. 데가볼리는 갈릴리 호수 동편에 위치한, 열 개의 독립된 도시들이 모여 있던 지역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이방인 지역이었습니다. 바로 이 사실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당시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이방인의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예수님은 한 사람을 만나시게 됩니다.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2-4절)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나아옵니다. 이 사람은 악하고 더러운 귀신에 들린 아주 부정한 사람입니다(2). 또 무덤과 같이 아주 부정한 죽음의 장소에서 사는 사람입니다(3). ‘광풍’을 뚫고 오신 예수님께서 이제 ‘광인’을 만나신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시체를 만지면 부정하게 되는데, 이곳은 시체가 있는 곳입니다. 이 사람은 무덤 사이에 살면서 무덤을 마구 파헤치고 시체를 만지며 지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이 도착하신 이곳은 모든 것이 다 부정합니다. 사람도, 장소도 다 부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곳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폭풍을 뚫고서 오셨습니다.

지금 이 사람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가장 비참한 인생입니다. 이 사람이 언제, 어떻게 귀신에 들렸는지는 모르지만, 누가복음을 보면 이러한 상태가 오래 되었으며 옷도 입지 않고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눅 8:27). 사람들과 함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짐승과도 같은, 아니 더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완전한 인생의 실패자이고, 사회로부터 따돌림 받고 격리된 사람이며, 게다가 이 사람은 초인간적인 힘을 갖고 있어서 여러 번 쇠사슬로 묶어 놓아도 다 끊어 버리고 도망을 가는, 아무도 컨트롤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5절)

이 내용을 보고 이 사람의 모습이 어땠을 지를 상상해 보십시오. 돌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니까 온 몸에 줄줄 피가 흐릅니다. 씻은 적이 없을 테니까 때 국물이 흐릅니다. 머리는 산발이고 엄청난 냄새가 납니다. 입에는 흰 거품을 물고 짐승처럼 우어어 짖어댑니다. 눈은 제멋대로 돌아가고, 살기가 보이는 눈빛입니다. 무시무시합니다.

싱글 자매님들, 이런 사람과 사귀거나 결혼하고 싶으십니까? 딸이 있는 부모님들은 이런 남자와 내 딸이 사귀도록 허락하시겠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이곳에 온 제자들은 아마도 ‘이거 완전히 잘못 왔구나, 혹시 선생님이 장소를 잘못 택하신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며 최대한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 사람은 스스로 이런 삶을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가 없어 괴롭게 소리를 지르며 비참하게 살고 있습니다. 죽지 못해 삽니다. 그러한 그에게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9절)

여기에서 군대라는 것은 로마군대의 ‘레기온’이라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오천 내지 육천 명의 군인으로 된 조직으로서 로마군대의 핵심을 이루던 부대입니다. 이 말은, 지금 이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귀신들에게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왜 예수님은 일부러 이곳에 와서 이 사람과 만나셨느냐는 점입니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도, 왜 이곳에 오셨습니까? 이곳에 오지 않으셨더라도 아무도 비난하거나 뒤에서 욕할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실패하고 새로운 곳에 가서 뭘 좀 새롭게 해볼까 해서 이곳에 오신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의 명성은 날로 높아가고, 사람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왜 오셨습니까? 그것은 오직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불쌍한 영혼이 있음을 아시고 일부러 이곳에 오셨습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러 왔지만, 이 거라사 지방의 귀신 들린 사람은 아무리 자기가 원해도 주님께 올 수도 없고 누가 그를 데려올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불쌍한 영혼을 위해 주님께서 직접 오셨습니다. 그것도 그 위험한 폭풍을 뚫고 이 한 사람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처럼 이 땅 위에 사시는 동안 예수님은 이 사람과 같이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서 사셨습니다. 특히 아무 가치 없고, 쓸모없고, 망가진 인생들, 아주 흉악하고 못된 죄인들을 돌보셨습니다.

유명한 리더십 전문가이며 목회자이기도 한 잔 맥스웰(John Maxwell)이 초창기에 쓴 베스트셀러 중에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을 키워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굉장히 중요한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관심과 헌신은 다르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하는데 관심이 있다면 당신이 편리한 때만 그 일을 할 것이다. 당신이 어떤 일에 헌신되어 있다면, 그 일이 당신에게 편리하지 않을 때에라도 이유를 대지 않고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왜 전도가 잘 안 됩니까? 왜 영혼 구원이 잘 안 이루어집니까? 관심은 분명히 있는데 헌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까? 분명히 한 영혼이 주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을 우리는 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관심에 머무니까 내가 편리한 때에만 그렇게 하고 내가 일이 있거나 피곤할 때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헌신이 필요합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들을 살리는 데에 관심만 있으셨던 것이 아니라 정말로 헌신이 되어 있으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치유하기 원하십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때때로 주님은 당신께 우리가 나오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때로는 직접 와주십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여 어쩔 줄을 모르면서 괴로워할 때, 직접 와서 도와주십니다. 이 분이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 귀신들린 사람처럼 이전에 방황하다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똑같은 일을 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실 문제가 있는 사람이 먼저 그것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의 영혼을 향해 가지셨던 그 헌신의 마음을 우리도 가질 수만 있다면, 우리 삶에는 아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돼지 떼의 몰사와 사람들의 반응 (10-17 절 )

그런데 귀신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합니다.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6-7절)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0절)

귀신들이 기도도 합니다. 멸망당하지 않기 위해서 이 때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겠습니까? 귀신들보다 훨씬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1-13절)

이 장면을 상상해보십시오. 영화의 한 장면이라면 정말 놀라운 광경입니다. 이처럼 돼지들이 집단으로 몰살하는 광경을 본 돼지 치던 자들이 마을에 가서 모든 일을 보고합니다. 헐레벌떡 뛰어가 정신없이 외쳤을 것입니다.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4절)

한두 마리가 물에 빠져도 놀라운데, 한꺼번에 2,000마리가 몰사했다면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이겠습니까? 사람들이 허겁지겁 와보니까, 그 귀신들렸던 사람이 멀쩡해 진 채로 옷도 입고서 예수님의 발아래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5절)

그들은 이 사람이 온전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이 일어나자 너무나 놀라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땅의 모든 백성은 두려워하면서 예수님께 떠나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6-17절)

왜 떠나달라고 합니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엄청난 힘을 가진 악한 영들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본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은 이 귀신들렸던 사람이 어디에서 사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과 힘과 돈을 들여가면서 그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귀신의 세력을 고립시키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통제하기도 하면서 귀신과 거기서 함께 살아나가는 방법을 배웠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지만 그 문제와 더불어서 사는 방법을 터득하여 익숙해져

있는데, 이제 예수님이 그 문제를 다 해결해주시자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혹시 편안하게 살고 있는 자기들을 어쩌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거라사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파워라 할지라도, 자기들이 예측이나 통제를 할 수 없는 파워는 두렵고 꺼려지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경제적인 손실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거라사 사람들은, 너무나 비참한 삶을 살던 한 인간이 이제 치유함을 받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의 사건을 보고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일을 통해 발생한 경제적 손해를 계산하고 그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기 동네에 있었던 큰 문제를 해결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해야 마땅했습니다. 이런 능력을 행하신 예수님에 대해 놀라며 자기들과 함께 해달라고 요청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 대신에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께 자기들을 떠나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 돼지 떼를 잃은 것만이 보이고, 구원받은 사람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저런 인간쓰레기는 진작 죽었어야 했는데 괜히 살려 가지고 아까운 우리 돼지들만 죽었다.’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이 사람의 구원을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들의 구원에도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돼지를 원합니다. 귀신들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보다도 돼지를 소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요즘에는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느냐,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느냐, 얼마나 높은 지위에 올라갔느냐 등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피 값을 지불하고 사신 고귀한 생명이, 그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은 물질 때문에 살인을 당합니다. 물질 때문에 매장을 당합니다. 그것은 사탄의 생각입니다. 사탄은 그 많은 돼지를 죽이면서까지 한 영혼을 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잘못된 가치관을 바꿔주길 원하십니다. 물론 돼지 2,000마리라면 그 값을 따질 때 엄청나게 비쌌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2,000마리의 돼지를 희생하더라도 불쌍하고 잃어버린 한 영혼을 구하십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사람보다는 오직 돼지에게 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2,000명의 사람들을 희생해서라도 한두 마리의 돼지를 살리기 위해 애를 씁니다. 돼지가 몇 마리만 죽어도 호들갑을 떨며, 이 세상의 종말이 온 것처럼 떠들어댑니다. 돼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이 더 중요한가,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가를 기억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 사이에 굉장한 혼동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이런 혼동된 가치관 때문에, 한 영혼보다 돼지가 더 우대를 받는 현상이 있지 않습니까? 돈, 학벌, 지식, 세상의 지위가 있으면 교회 내에서도 목소리를 더 낼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우리 교회에 그런 분들이 오시면 죄송한 마음이 들기는 합니다. 별로 우대해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가 오셨다고 “OOO 박사님이 오셨습니다.”라고 높여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교회 안에서는 누구나 똑같습니다. 사회의 지위가 교회 안에서까지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도 주로 교인 수가 얼마냐, 1년 예산은 얼마냐, 교회 건물은 얼마나 크냐 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주님은 그렇게 보지 않으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돼지를 소유하고 또 키우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면, 그런 것만이 중요하다면,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이미 교회이기를 포기하고, 크리스천들은 크리스천으로서의 자세를 포기한 채, 교회의 원래 목적과는 상관없는 것들이나, 크리스천으로서 불필요한 것들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교회의 위기입니다.

거라사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떠나달라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싫어했습니까? 자신들의 일상생활이 예수님에 의해서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기던 것을 예수님 때문에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 “돼지”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한 영혼보다, 주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어떤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우리의 “돼지”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한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기 위해 너의 모든 돼지를 다 포기해라.” 하고 하신다면, “예, 주님,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 거라사 사람들처럼 예수님께 “이제 떠나주십시오.”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분이십니다. 변화시키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바꾸시며 도전해 들어오십니다. 문제를 살짝 덮어놓고 그저 편안하고 안락하게 사는 태도를 깨버리시고, 문제를 근본부터 해결하길 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주님의 뜻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나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이 제발 상관하지 말고 떠나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혹시 “저 좀 그냥 내버려두세요. 예배도 드리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고 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내 삶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그냥 제가 알아서 할 게요. 저를 그냥 두세요.”라고 하지는 않습니까?

3. 치유 후의 변화 (18-20 절 )

치유를 받은 후에, 이 귀신들렸던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기 원합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8절)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하나님이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 증거 하라고 하십니다.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19절)

왜 예수님은 이 사람이 자신과 함께 있지 못하게 하시고 집으로 돌려보내십니까? 예수님은 그를 이전에 자신이 속해 있던 사회에 다시 돌아가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 동안 귀신에 들려 따돌림 당하고 고립되었던 이 사람이 다시 사회에 복귀하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자신에게 한 일을 증거 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서 그대로 전합니다.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20절)

그에게 있어서 집이란 어떤 곳입니까? 물론 편하게 쉴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곳입니다. 동시에 자신만이 유일하게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인 곳입니다. 자기만이 유일하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 곳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1년, 2년, 10년, 20년이 지나다 보면 주변에 안 믿는 사람들이 없어집니다. 전부 믿는 사람들 뿐입니다. 그게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고 크리스천들과만 같이 지내고자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사실 주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참된 교제를 갖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만 머물러선 안 됩니다.

오래 믿을수록 주변에 믿는 사람만 있게 되는데, 주님은 세상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삶의 현장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그곳이 직장이든, 사업체이든, 사무실이든, 학교이든, 공장이든, 친목 단체이든, 아니면 정말로 우리의 가정이든, 그리스도인이 없는 곳, 그곳으로 갈 것을 명령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 때문에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다른 이들에게 선포하길 원하십니다.

여러분, 전도가 어려우십니까? 가장 좋은 전도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해주셨다. 내가 이전에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예수님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변했다.” 이런 간증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전도입니다.

[ 나가는 말 ]

우리 교회는 영혼 구원하여 주님의 제자로 만들자고 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혼을 구원한다고 해서 1년에 수백 명, 수천 명을 전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다들 애쓰고 있지만 작년 같은 경우에는 한 명도 새로 믿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고 콜럼버스를 바꾸거나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닌데 괜히 요란을 떠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일도 아니고 엄청난 부흥을 일으키는 것도 아닙니다. 전도해서 교회가 숫자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영혼 구원을 하는 일로 힘들어 하는 사람도 생기고 어려움도 겪습니다. 그러면서 이 일에 전력하며 나아가는 것이 정말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은 주님이 하셨던 일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른 아침 바닷가에서 한 소년이 무엇을 집어서 바다로 던지는 것을 지나가던 사람이 보았습니다. “너는 지금 뭘 하고 있니?” 물으니까, “바닷물에 불가사리들이 떠밀려 왔는데 해가 뜨면 말라 죽을 것 같아서 바다 안으로 도로 던져주고 있어요.”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합니다. “얘야, 지금 이 해변가에 수많은 불가사리들이 널려 있는데 이 많은 것들을 언제 다 바다 안으로 던져서 살게 할 수 있겠니? 그만둬라.” 그러자 그 소년이 대답합니다. “맞아요, 제가 이 바닷가에 있는 모든 불가사리들을 다 살릴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방금 제가 바다로 던져 넣은 불가사리는 살았잖아요!”

우리 교회가 콜럼버스의 모든 비신자들을 다 구원받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구원받게 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예수님을 믿게 한 그 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그런 분들이 여러 명 나왔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꾼 일을 우리가 같이 해낸 것입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에게 전도하는 일은 때로 시시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해서 언제 다 전도하겠느냐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생명을 얻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그 잃어버린 한 영혼이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고 천국에 가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님이 맡기신 일은 한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기 위하여 더욱 힘차게 마음을 함께 모아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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