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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전서 5 장 5 절 | 음란을 내어쫓으라 (고린도전서 5:1-13)_아침예배_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_20180111 인기 답변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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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을 내어쫓으라 (고린도전서 5:1-13)
아침예배
베이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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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 고린도전서 5장 5절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듣고 …

계모와 상관한 엄청난 패륜아의 영을 그래도 불쌍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신자가 음행을 해도 참 회개를 하면,. 정확히 말해 참 신자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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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hyjesusonly.com

Date Published: 2/20/2021

View: 4959

고린도전서 5

고린도전서 5. … 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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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5/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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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해석 ” 고린도전서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

고전 5장 1절~5절을 보면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음행을 저지른 자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 때 바울은 그 자를 공동체에서 쫓아내도록 권하며 ‘주 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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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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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rinthians 5,고린도전서 5 NIV;KLB – It is – Bible Gateway

Dealing With a Case of Incest – It is actually reported that there is sexual immorality among you, and of a kind that even pagans do not tolerate: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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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6/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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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5: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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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thewordofgod.kr

Date Published: 7/17/2022

View: 8989

고린도 전서 5장 주석 – 바울서신 – 예사랑 성경 연구회

고린도전서 제 5장 =====5:1 너희 중에. … 것인지, 아니면 고린도 교회에 음행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었다는 것인 … 수 있다(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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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3/16/2021

View: 831

고린도전서 5장 주해 강해 – Pensées

고린도전서 5장 누룩을 제거하라 1. 본문 읽기 고린도전서 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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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392766.tistory.com

Date Published: 2/16/2021

View: 1238

2021/01/06(수) “고린도전서 5:1-13” / 작성: 강요섭

[본문] 고린도전서 5장 1-13절 [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잠언 27장 5절에는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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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3/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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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고린도전서 5. 5. 1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그리하고도 너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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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4/27/2021

View: 6284

20200815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고린도전서 5장 1-8절)

고린도전서 4장까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간의 다툼과 분쟁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바울은 드디어 5장에서 음행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1절 …

+ 여기에 보기

Source: cpcgl.org

Date Published: 10/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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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을 내어쫓으라 (고린도전서 5:1-13)_아침예배_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_2018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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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고린도 전서 5 장 5 절

  • Author: 베이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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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1. 1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Onm2k3yAKWQ

고린도전서 5장 5절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듣고싶습니다..

존경하는 박신목사님..! 여지껏 목사님의 글을 통해 도움을 많이 받은 한 청년입니다..ㅎㅎ 항상 감사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고전5:5의 정확한 해석을 듣고싶어서요..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느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고전 5:5)

구원을 얻은 자가 음행한 그 죄로인해 구원을 잃지는 않으며, 구원만은 받는다고 이해해도 괜찮나요??

고린도전서 5

음행한 자를 판단하다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1)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구절해석 ” 고린도전서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

구절해석 ” 고린도전서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

구절해석 ” 고린도전서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

성경에서 많이 논의되는 몇 개의 구절 중에 하나 입니다. ​이 구절에서 논의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이유는 ” 음행을 한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 라는 부분에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고, 이 부분에 대하여 답을 찾고 있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 이 사람은 구원을 받았는가? ” 라는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바울 사도가 ” 그 이름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라고 했다거나 ” 성령을 받았다 ” 라고 기록되어 있거나 매우 헌신적 믿음이었다는 기록도 전혀 없이 이 사람은 상당히 충격적인 범죄를 저지른 모습만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 입니다.

​고린도전서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솔직하게 저는 ​이 구절에 대하여 질문을 종종 받을 때마다 과거에는 ” 이 사람은 구원을 받았을 것 입니다. ”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경을 계속 배우면서 점점 확실하게 정리되어 가는 것은 구원 받았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있을 뿐이지 이 구절에서 바울이 ” 그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 라고 말했다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 본문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서신서의 한 부분입니다. 본문을 다시 전체적으로 보면 다른 분들도 공감하게 되실 것 입니다.

​[개역한글] 고린도전서 5장

1.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3.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6.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8.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9.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13.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 새번역 ] 고린도 전서 5장

1.여러분 가운데 음행이 있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일까지 있다고 하니, 그러한 음행은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2.그런데도 여러분은 교만해져 있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그러한 현상을 통탄하고,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여러분 가운데서 제거했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3.나로 말하면, 비록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습니다. 마치 여러분과 함께 있듯이,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이미 심판하였습니다.

4.[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모여 있을 때에, 나의 영이 우리 주 예수의 권능과 더불어 여러분과 함께 있으니,

5.여러분은 그러한 자를 당장 사탄에게 넘겨주어서, 그 육체는 망하게 하고 그의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해야 할 것입니다.

6.여러분이 자랑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7.여러분은 새 반죽이 되기 위해서,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십시오. 사실 여러분은 누룩이 들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습니다.

8.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악독이라는 누룩을 넣은 빵으로 절기를 지키지 말고, 성실과 진실을 누룩으로 삼아 누룩 없이 빚은 빵으로 지킵시다.

9.내 편지에서, 음행하는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고 여러분에게 썼습니다.

10.그 말은, 이 세상에 음행하는 사람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나, 약탈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전혀 사귀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은 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11.그러나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사귀지 말라고 쓰는 것은, 신도라 하는 어떤 사람이 음행하는 사람이거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이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거나, 사람을 중상하는 사람이거나, 술 취하는 사람이거나, 약탈하는 사람이면, 그런 사람과는 함께 먹지도 말라는 말입니다.

12.밖에 있는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심판해야 할 사람들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13.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악한 사람을 여러분 가운데서 내쫓으십시오.

개역한글과 새번역 본을 올렸습니다.

먼저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누가 봐도 ” 당장 교회(무리)에서 내어 쫓으라 ” 라는 명령 입니다.

​바울은 이 사람을 교회에서 쫓아내지 않은 것이 아주 크게 책망 받을 잘못이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으며, 6절에는 이 사람이 교회 가운데 아직도 있는 것이 마땅한 일이냐며 크게 책망하고 내어 쫓아야 마땅하며 이런 죄를 용납하는 것은 교회 전체에 피해가 되는 일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3절에 바울은 이 사람에 대하여 ” 악한 사람 ” 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은 분명 본문에서 이 사람의 구원 문제에 대한 내용 보다는 이 사람을 내어 쫓는 일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5절에 분명 ” 영은 구원을 얻게 한다 “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

한 번 믿음으로 약속된 구원은 영원하며 잃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가 믿는 성경의 말씀 입니다. 성도가 믿는 구원은 성령의 보증하심과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보호되며, 진실로 믿는 신자의 구원의 확실함과 보증에 대하여 우리는 성경에서 수 없이 많은 구절을 통해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고린도후서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고린도후서 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그렇다면 이 사람은 구원을 받았을까요????

…..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 이 사람이 정말 믿은 사람이냐? ” 라는 ​문제 입니다 . 우리가 영원한 구원이라 말하는 것은 진실로 바르게 믿은 성도를 말하는 것이지 엉터리로 아무거나 믿은 사람이나 교회당에 다니고 무리 속에 속하여 있을 뿐 믿지도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입니다.

” 이 사람이 음행을 하고 구원을 받았을까? ” 라는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 이 사람이 정말 거듭났을까? ” 라는 질문에 대하여 먼저 ” 긍정 ” 이라는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 긍정을 할 수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으니까 정말 믿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가롯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직접 옆에서 보고 듣고, 함께 한 사람이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는데, 초대 교회 무리에 있던 사람이라는 사실로 이 사람이 정말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확증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너무 익숙하게 이런 엉터리 공식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믿는 사람 = 교회 다니는 사람 ”

​​

​그러나 아니라는 것 입니다. 교회를 취미를 위해 다니는 사람도 있고, 교회를 영생을 위해 다니는 사람도 있으나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믿기는 믿는데, 내 열심과 열정으로 믿는 사람도 있고,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와 내 공로를 섞어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 음행자가 정말 거듭났다고 확증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하여는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즉, 이 사람이 구원을 받았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가 없다는 것 입니다. 도리어 우리는 이전 단계의 질문으로 ” 이 사람이 정말 믿는 사람이었는가? ” 라고 물을 수 밖에 없다는 것 입니다.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하여는 부정적 견해를 보였습니다.

13.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τοὺς δὲ ἔξω ὁ Θεὸς κρίνει. ἐξάρατε τὸν πονηρὸν ἐξ ὑμῶν αὐτῶν.

여기서 “악한 사람” 으로 번역 된 부분은 ” πονηρὸν ” 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아주 몹쓸 악한 존재나 악에 대하여 사용된 단어 입니다. 즉 바울은 이 사람을 성도로 판단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 입니다.

결국 이 사람이 ” 믿는 사람인가? ” 라는 질문에 대하여 바울조차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 이 사람은 믿은 사람이다 ” 라고 판단하고 ” 이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 라고 의문을 가지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하다는 것 입니다.

성도 역시 죄를 지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큰 범죄를 저질렀을 때 아무런 의심 없이 이 사람이 정말 믿는 사람이라고 확증하는 것은 어려운 일 입니다. 동시에 외형적인 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 사람을 정말 믿는 사람이라고 확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 입니다. 하지만 이런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아무런 걸림없이 형제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6:10~11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음행하는 사람들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믿으면서 동시에 신앙이 아직 연약해서 음행이 끊어지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음행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런 사람이 정말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 말하는 것 역시 성경적이지는 않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대답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이렇게 말하신 것 입니까?

​고린도전서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본문을 볼 때 두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사람이 정말 믿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경우 무리에서 내쫓을 경우 ​성도로서 권한을 잃고, 무리에서 이탈됨으로 인하여 정신적 육체적 고난이 있을 수 밖에 없으나 구원은 잃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을 하는 것은 13절을 생각해 볼 때 무리가 있는 해석으로 보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이 사람이 고난 속에서 돌이키고 믿음을 가질 가능성 입니다. 이 사람은 교회 가운데 있었고, 복음을 알고 있었을 것 입니다. 따라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가능성은 있다는 것 입니다. 그런 경우 육신은 고난이 있을 것이나 믿음을 가지면 구원을 얻을 것이니 바울은 영은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교회에소 죄를 질책하고 내어쫓음으로 죄를 돌이키도록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본문을 고려할 때 두번째 방향이 해석에 타당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최초에 성경을 배울 때에도 이런 방향에서 성경을 배웠고, 이 사람에 대하여 구원을 얻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추측하는 내용으로 성경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실상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만 가능성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완전하게 부인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본문은 결코 이 사람이 믿는 사람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구원을 얻을 것이니 무리에서 내어쫓아 육신에 고난을 주라는 것이 아니고 교회에 음행이라는 큰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죄에 대한 저항감을 낮추고 죄를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전체적으로 묵은 누룩이 되어 해를 입힐 수 있으니 이런 사람을 내어 쫓으라는 명령인 것 입니다.

아래 박신 목사님의 글을 참고로 추가 합니다.

​출처 :박신 목사님 http://www.nosuchjesus.com/ 운영자 고린도전서의 몇 가지 의문(1) [질문1]

고전 5장 1절~5절을 보면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음행을 저지른 자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 때 바울은 그 자를 공동체에서 쫓아내도록 권하며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합니다.

쉬운 성경으로 보았더니 ‘그 사람을 사탄에게 내어 주어, 그 사람의 죄의 본성은 멸망당하더라도 영혼은 우리 주님의 날에 구원 받게 해야 할 것 입니다.’ 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제가 이해하기로는’ 그 사람을 공동체 내에 두면 적은 누룩이 온 빵을 부풀게 하듯 그러한 음행이 공동체 안에 가득 퍼지게 될 것이므로 그 사람을 공동체 밖으로 쫓아내되, 그 사람이 얻은 구원은 결코 취소되지 않으므로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인 것 같은데, 제대로 이해한 것 맞나요?

그런데 뭔가 머리 속에 깨끗하게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이,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지되는 것인데, 음행을 저지르는 구원받은 그 사람 또한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에서는 쫓겨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되돌리지 않는 한의 단서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이 부분에 명확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답변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같이 이 일을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전5:1-5)

먼저 핵심 구절인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5절)의 정확한 해석이 선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구절을 전체 문맥에 의거하지 않고 단지 한 구절만 떼어서 해석하려 들면 반드시 몇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저자인 바울 사도가 전하고자 하는 전체 문맥의 중심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먼저 밝힌 후에 그에 따라 해석해야만 합니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회에 음행을 저지르는 교인을 출교하라고 권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아내(친모가 아니라 계모 혹은 첩, 아버지의 사후인지 생전인지 불명함)와 음행하는 것은 율법에는 당연히 사형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또 로마법으로도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는데도 교회 공동체에서 그런 자를 용납하고 함께 교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엄격하게 금한 죄를 범했는데도 징계하지 않은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영적인 교만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온갖 성령의 외적인 은사가 활발했기에 자기들은 우월한 신자라고 자랑했습니다. 또 인간은 영과 육신 둘로 구성되어 있는데 죄는 더러운 육신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고 거룩한 영과는 무관하므로 어떤 죄를 지어도 용납하는 영지주의에도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엄청난 음행도 통한히 여기지 않았던 까닭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6:12,13)고 그런 영지주의 폐단에서 벗어나라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전체 문맥에서 강조하는 핵심은 그런 죄를 용납하여 공동체내에 그대로 두면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듯이 되니까 그것을 막으라고 한 것입니다. 단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의 능력에 힘입어 전 교회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5절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그렇게 출교시켜도 그 영은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즉. 한 번 믿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 대한 구원을 취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쉽습니다. 이 문단의 초점은 죄를 교회가 징계하라는 것입니다. 저자 바울로선 영혼과 육신이 따로 구원되는지, 또 신자의 구원이 취소되는지와 같은 복잡한 신학적 논쟁을 제기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 구절을 다시 정확하게 보시면 바울은 구원의 취소나 영과 육의 분리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선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지 “얻을 것”이라거나 그 구원이 “다시 확인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 음행을 저지른 자를 오히려 구원 이전의 상태라고 보고 있습니다. 구원의 취소 가능성 여부와는 아무 상관없이 단지 자신의 간절한 희망을 밝힌 것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라는 표현입니다. 언뜻 보면 이 표현 때문에 그 전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였는데 출교를 통해 사단에게 내어준 것처럼 되고 또 그래야만 마지막 날에 그 영이라도 다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석이 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한 사람이 예수 안에 있다가 다시 사단에게 갔다가 마지막으로 영만 예수에게 돌아오는 이상한 구원 과정을 설명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에 혼동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단에게 내어주었다”는 의미는 초대 교회 성도들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다스림과 보호하심 아래에 있는 반면에 교회 밖은 그리스도의 지배에서 벗어난 그래서 사단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반영한 표현일 뿐입니다. 즉 교회에서 징계하여 출교시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구원의 취소 여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만약 그런 뜻이 되려면 “주 예수의 날에 다시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다시’라는 단어가 들어가야만 합니다.

나아가 바울이 육신은 멸하고 영은 구원 된다고 표현한 것도 영과 육이 분리된 구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육신이 죽어야 구원이 된다는 뜻이 되는데 성경에는 헬라 철학적인 영과 육이 이분 되는 구원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영과 육이 하나로 구원받고 부활되는 것만 이야기하고 있으며 또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공로로만 이뤄집니다. 한 인간이 자기 육신을 사단에게 내어주어 죽고 영은 대신에 천국 간다는 말이 되면 인간 스스로의 구원일 뿐만 아니라 아주 이상한 사교(邪交)적인 구원이 됩니다. 기독교의 십자가 구원의 진리를 가장 잘 설명한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이 그런 뜻으로 표현했을 리는 만무합니다.

대신에 바로 앞에 있는 “사단에게 내어주는 바”와 연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내어준다’는 의미는 영원한 심판과 구원이 이뤄지기 전의 일시적, 선언적인 임시조치를 말합니다. 따라서 “사단에게 내어 준 육신이 멸한다”는 의미는 또 다시 교회에서 출교당하는 징계를 받는 것만 의미하지 영원한 심판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가 교회 밖에 나가면 계속해서 음행하며 죄를 더 짓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그에게도 주님의 은혜가 베풀어져서 언젠가는 구원을 얻게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래서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려”라고 말했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 궁극적이고도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건대 출교는 당시 교인들에게는 사단에게 내어주어 멸망을 받으라는 극단적인 조치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지 일회적 임시조치이지 영원한 멸망과는 관계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이 아무리 영지주의에 물들고 도덕적인 불감증과 영적 우월감에 걸려 있다 할지라도 교회가 그렇게라도 해야 그 본인이 다시 회개하여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소원을 피력한 것입니다. 동시에 교회에 누룩이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요컨대 바울이 전체 문맥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뜻의 핵심은 공동체의 거룩한 보존과 음행한 당사자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영육간의 구원의 분리나 구원의 취소 가능성에 대해선 전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심지어 징계만 강조한 단순한 뜻도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 전체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죄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다시 그리스도의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바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편으로 출교를 강력하게 권고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범죄자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무관심의 소치로 그 사람을 오히려 더더욱 멸망으로 빠트리고 다른 사람까지 함께 타락케 만드는 범죄가 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징계를 하되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 당사자가 회개할 수 있도록 끝가지 권면해주어야 합니다.

물론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예수님이 머리이고 성령의 보호와 인도가 이끌어 가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어떤 신앙의 공동체라도 완전히 순수해져 누룩 없는 떡으로 이루어진 곳은 없습니다. 반드시 가라지가 섞이게 마련이라 이 땅에선 완전한 조직체 교회는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의 누룩도 한 불쌍한 영혼이기에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위해 섬기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공개적으로 명백한 죄를 지속적으로 짓고 있어서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이 될 때는 한두 번 교회 전체의 이름으로 증참하되 그래도 회개하지 않을 때는 출교시켜야 합니다. 물론 출교 후에도 바울처럼 계속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그에게 베풀어지기를 소원하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1 Corinthians 5,고린도전서 5 NIV;KLB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Copyright ©1973, 1978, 1984, 2011 by Biblica, Inc.® Used by permission. All rights reserved worldwide.

NIV Reverse Interlinear Bible: English to Hebrew and English to Greek. Copyright © 2019 by Zondervan.

고린도전서 5:5: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성경의 진리

고린도전서 5:5: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이제 고린도전서 5로 가서 고린도 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굉장한 음행에 대한 읽기를 1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5:1-5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그들중 누가 음행을 했습니까? 신자들 중, “너희 중”이라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이는 즉시 우리에게 실제로 신자들이 이교도들도 참지 못하는 최악의 음행을 행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이제 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일을 행한 이 자들, 분명히 “신자들”이 그들이 행하는 일에 대한 회개를 하지않더라도 구원받습니까? 이는 다소 수사학적 질문으로서 이의 답변이 텍스트와 상황에 바울이 반응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이를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5:4-5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이 사람이 사탄에게 보내진것은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함이라”라는 것이 실천되도록 “육신의 파멸”을 통해 그를 회개하도록 만들려는 이유입니다. 즉: 이 자의 구 사람인 육신이 파괴되면 그는 회개하고 그의 영과 그 자신이 하나님의 날에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보면 만약 이 “육신의 파멸”이 일어나지 않고 이 자가 회개하지 않으면 그의 영은 하나님의 날에 구원받지 못함이 분명합니다. 바울은 이를 막고 회개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 자가 구 사람으로서의 육신의 파멸을 위해 사탄으로 이끌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하고 유사한 죄를 짓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회개합니까?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음행문제에대해 다시 한번 말합니다.다음이 그가 말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21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

우리가 볼수 있듯이 한명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더러운 것, 음행 그리고 색욕거리에 살고 있었습니다. 또한 볼수 있듯이 이들 중 많은 자들이 회개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행한일에 대해 실제로 알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에대해 우리가 주지해야할 것이 몇가지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올바른 길에 있을 동안 행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텍스트가 말해주듯이 이것이 죄가 아니라, 그들이 습관적으로 행하며 삶의 방식으로 행하는 그들의 행함이 죄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법으로 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7:23). 만약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전에 한번 믿었다고 해서 왕국의 문이 열리고 왕께서 그들을 영접하기 위해 기다리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마태복음 7:21-23에 이가 분명하게 보이듯이 왕께서는 영접하는 대신 불법을 행한자들을 보내버리실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위의 현실을 무시하는 반면, 바울은 그것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고린도의 교회가 오만하고 근본적으로 잠들어 있음에 화를 내었고 사도들로 하여금 아무런 행동도 취하게 하지 않았으며 이는 이로인해 그들이 회개하여 그들의 영이 “하나님의 날에 구원받기를 바라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타소스 키울라초글루

(Tassos Kioulachoglou)

고린도 전서 5장 주석

고린도전서 제 5장

=====5:1

너희 중에…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 ‘음행'(* ‘포르네이아)이라

는 말은 문자적으로 다른 사람의 육욕을 위해 자신의 몸을 파는 행위를 뜻하지만 보

편적인 의미로는 불법적인 성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헬라어 본문에 의하면

‘심지어'(* , 홀로스)가 본문 초두에 나와 있는데 이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

는 일들이 이미 벌어졌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본서에서 두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1)

그들 가운데 음행이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2)이 추악한 음행을 그들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널리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당시의 부도덕한 성행위가 보편화되

지 않고 일부 사람들에게만 행해지는 제한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고린도 교

회에서 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러한 범죄가 교회로 부터 정죄(定罪)되지 않았다는 것이

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 속에 음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또한 바

울에게까지 소식이 들릴 만큼 그 행위는 공공연한 것이었다. 한편 ‘들었다’에 해당하

는 헬라어 ‘아쿠에타이'(* )는 ‘아쿠오'(* , 듣다)의 현재

수동태로서 ‘…라는 소문이 들리더라’는 것이다. 이는 고린도 교회로부터 들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고린도 교회에 음행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었다는 것인

지 분명하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글로에의 집 식구들에 의해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

다(1:11, Farrar). 뿐만 아니라 이것은 널리 퍼져 있는 사실이기에 여러 경로(소문)를

통해서 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Lenski).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 – 유대인의 율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자는 돌로쳐 죽이라

고 명시되어 있다(레 18:8;신 22:30). 이러한 율법의 내용을 알고 있는 바울이 구태여

여기서 이방인과 비교한 것은 더 이상 재고의 가치도 필요없는 아주 경멸스런 행위로

취급하기 위함이다. 당시 고린도 지방은 성적 문란과 방종으로 소문난 곳이었으나 바

울은 그 이방인의 문란보다 더 큰 죄악이라고 규정함로서 자신의 분노를 반영(反映)하

고 있다. 한편 바울이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고 말한것은 이방인들은 이러한

범죄를 전혀 저지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본절은 당시 이방인들 사이에서

도 가장 치욕스러운 죄로 취급하는 추악한 행위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Calvin).

그 아비의 이내를 취하였다 – 바울은 이 사건을 ‘간통’이나 ‘근친 상간’이라는 말

로 표현하지 않고 ‘그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고 하여 음행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

하고 있다. 여기서 ‘그의 어머니’라고 표현하지 않고 ‘아비의 아내’라는 표현을 쓴 것

으로 보아 그 음행이 최소한 ‘그의 어머니'(친모)와의 관계속에서 빚어진 음행은 아닌

것 같다(L. Morris). 사실 본문에는 그 여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

지만 그 대상이 ‘아비의 아내’ 였다는 점과 ‘아내’로 번역된 헬라어 ‘귀나이카'(*

)란 뜻으로 ‘계모'(* , 메트뤼이아)라는 말과 거의 뜻을 같

이 하기 때문에 ‘아내’는 아버지의 첩이거나 의붓 어머니일 수 있다(Farrar, Calvin).

한편 ‘취하였다’라는 헬라어 본문 ‘에케인'(* )은 현재 부정사로 이 음행 사

건이 단회 적이지 않고 지금도 지속적(持續的)인 반복 행위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여

기서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말은 계모와의 관계에서 성적 부정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Harris).

=====5:2

그리하고도…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 그들은 도대체 어떤 지식과 신앙

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방인들도 정죄하는 음행을 저지르면서도 원통하게 생각하지 아

니하고 오히려 교만할 수 있었는가? 그들은 그리스도의 공동체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

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옛 이방인의 생활 습관을 미처 다 버리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괴이한 악행 가운데서도 여전히 회개할

줄 몰랐고 버젓이 그리스도인 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F. W. Farrar). 그

들은 음행 사건으로 인하여 적어도 수치스러워하며, 그들의 공동체 속에서 발생한 불

미스러운 일들로 인하여 자신들을 되돌아 보아 최소한 통한히 여기는 모습으로 주의

용서와 은혜를 구했어야 했다. 여기서 ‘통한히 여기지’의 헬라어 ‘에펜데사테'(*

)는 ‘죽은 자로 인하여 애통한다’는 의미로 죄에 대한 선자들의 반응이

어떻게야 되는지를 나타낸다. 즉 그들은자신들이 주장한 자유와 방종으로(6:12;10:23)

인하여 죄악이 성행하게 되었다는 공동체적인 책임을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공동체적인 책임은 고사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영의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육체

적 일들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는 또 다른 교만과 거짓으로 더 큰 죄악을 범하고 있었

다. 이처럼 형제의 죄악을 보고 애통할 수 있는 사랑을 잊어버린 교회가 분열과 분쟁

을 격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추악한 성적 타락으로 인하여 고

통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은, 음행한 자에 대해

무관심 내지 방조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죄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만 가운데 있던

고린도 교인들을 크게 책망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1)그리스도인들의 연대적(連帶

的) 책임성과 지체 의식 (2)무관심과 교만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을 방해하는 범

죄라는 점 (3)어떠한 죄악 가운데서도 회개의 은총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5절).

=====5:3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 ‘떠나 있다'(* ,아폰)라는

표현은 그의미가 매우 선명하다. 그는 지금 고린도 지방을 떠나 제3차 전도 여행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있다’로 번역된 헬라어 ‘파론'(* )은 ‘곁에

있다’, ‘가까이 있다’ 또는 ‘왔다’라는 뜻을 가진 ‘파레이미'(* )의 현

재 분사형이다. ‘파레이미’는 공관 복음서에서 ‘왔다'(눅 11:6)라는 의미로 사용되었

며, 행 17:6에서는 ‘이르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본절에서는 몸이 떨어져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영은 그들과 ‘함께 있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골 2:5). 한편

‘영’이라는 표현은(* , 토 프뉴마티) 바울에게 있어서 주로 하나님

의 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롬 8:9;고후 3:17;갈 4:6) 여기서는 바울 자신의

‘영’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마음'(* ,카르디아)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

다(Farrar). 즉 멀리 떨어져 있는 교회와 영으로, 곧 마음으로 함께 있음을 의미한

것이다. 아울러 본절의 심각성을 생각할때 바울이 영으로 그들과 함께 하여 문제를 해

결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심정이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거기 있는 것 같이…이미 판단하였노라 – 음행한 자들에 대한 바울의 태도는 매우

단호하다. 그는 ‘에고'(* , ‘내가’)의 강조 용법과 함께 ‘에데'(* , ‘이

미’)라는 부사와 ‘판단하다’, ‘정죄하다’, ‘심판하다'(* , 크리노)의 완료

직설법 능동태인 ‘케크리카'(* , ‘판단하였다’)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을

향한 심판이 이미 선고되었음을 강조한다. 한편 헬라어 본몬에서 ‘함께 있어서'(*

, 파론)라는 말에 이어 다시 한번 반복된 ‘호스 파론'(* , ‘거기

있는 것 같이’)이라는 표현은 판결의 순간에 그들과 함께 실제로 있었던 것과 같은 확

실성과 자신이 함께 한 심판의 권위가 다시 번복(飜覆)될 수 없다는 절대성을 강조하

고 있다.

=====5: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 바울

은 자신의 판단이 독단적이거나 판협된 것이 아님을 증거하고 그들이 스스로 모임을

갖고 자신들의 판단에 의하여 음행한 자들을 징계할 것을 촉구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 속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야 하며 그곳에서 새로운 발전의 기회

를 모색 해야한다.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에게 용

기를 주고자 하였다. 여기서 ‘예수의 이름’과 ‘예수의 능력’은 (1)일차적으로 분열된

그들을 하나로 모으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며 (2)이차적 으로는 음행하는 자들을 추방

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한편 ‘너희가 함께 모여서’의 헬

라어 ‘쉬나크덴톤'(* )은 부정 과거 분사로서 그 일들의 결정을

위한 단회적 모임을 시사하며, 동사 ‘쉬나고'(* , ‘모이다’)는 그리스도인

의 집회를 나타내는 전문적인 용어로 이 회집이 그리스도인들만의 회집임을 시사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예수의 이름과 능력(能力)이 함께 한다는 것을 강조함으

로써 그들의 판단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설명하고 음행한자에 대한 징계

가 정당하고 합법적임을 증거하며 나아가 교회의 징계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

의 권위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Harris). 따라서 예수 안에서 자신의 영

이 그들과 하나되어 이미 그가 판단한 것과 같은 판단을 내려줄 것을 바울은 기대하였

다.

=====5:5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 본절은 3절의 ‘판단하였노라'(* , 케크리

카)와 연결된 것으로서 연결의 엄숙한 조치를 가리킨다(Deissmann). 다이스만은 ‘내

어주다’ (* , 파라두나이)라는 단어를 이교도의 저주 의식에서 유

래한 말이라고 주장하여 사단에게 내어주는 행위가 저주의 선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

나 ‘내어주다’라는 말을 꼭 이방인의 저주 의식에서 유래된 단어라고 주장할 수만은

없다. 바울은 이 단어를 범죄자들에 대한 최종적인 선언으로서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Lenski). 따라서 바울은 교회가 책임있는 거룩한 공동체로서 그러한 자들을 출교시킬

것을 권고하였다(13절). 이러한 표현은 딤전 1:20에도 나타나는데 그들의 출교는 일차

적으로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다른 성도들을 보호한다는 의미

를 가진다. 고린도 교회의 순결한 영혼들을 훼방하지 못하도록 교회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편 우리는 본절에서 중요한 하나의 원리를 발견하는

데 그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다스림과 보호하심 아래 머물러 있는

반면 교회 밖은 그리스도의 지배하심에서 떠난 사단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였다는 것

이다(Calvin). 따라서 출교는 사단에게 내어주는 멸망의 극단적인 조치로서 그들에게

있어서는 제일 큰 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토록 극단적인 조치가 취해질 수밖에 없

었던 것은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그들 가운데 있는 음행이 얼마나

심각한 죄악이었는가 하는 것을 반영해 준다.

육신은 멸하고 영은…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 이 구절은 해석상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유대교에서는 육체의 죽음을, 속죄받지 못한 죄들을 속죄하는 수단으로 취

급하기도 하였으나 본절에서 이와같은 원리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다시 말

해서 육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견해는 성립될 수 없다는 뜻이

다. 성경에는 영과 육이 따로 분리되어 구원받거나 멸망받는 일에 대하여 전혀 말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둘다 구원받든가 둘다 멸망하든가 해야한다(Lenski).특히 바울은 다

른 모든 구절에서 속죄는 육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본절의 육신의 멸망과

영의 구원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칼빈(Calvin)은

전반부에 등장하는 ‘내어준다’라는 말의 법정적, 선언적 의미를 강조한다. 다시말해서

사단에게 내어주는 행위는 일시적(一時的)인 것으로서 궁극적인 심판과 구원에 선행하

는 임시 조치라는 뜻이다. 음행한 자들을 사단에게 내어주는 교회의 심판은 영원한 것

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이며 영원한 그리스도의 심판에 의하여 그의

운명은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참된 사랑의 원리인 징계를 나타냄

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다시 그들에게 미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또한 올바

른 징계를 행함으로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야 한다.한편 바

울은 ‘주 예수의 날’이라는 구절을 첨가함으로써 그 징계받은 죄인들을 주의 백성들

가운데서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따라서 본절에서 범죄자에 대한 징계의 목

적을 살펴볼 수 있다. 즉 징계는 범죄한 영혼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이나 유기가 아니

라 회개와 돌이킴을 위한 일시적 고난이며 구원을 전제로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

이다. 본절은 특히 (1) 범죄자를 그대로 방치하는 행위는 사랑이 아니라 무관심의 소

치로서 그 사람을 멸망에 빠뜨리며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타락케 만드는 범죄라는 사

실과 (2) 참된 징계의 정신은 사랑이라는 점을 극명하게 교훈해 준다.

=====5: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 ‘자랑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우케

마'(* )는 자랑하는 표면적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하는 내용을

의미한다. 헬라어로 ‘자랑하는 행위’는 ‘카우케시스'(* )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말한 것은 단순히 그들 교회가 분열과

음행으로 가득찬 교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사를 가졌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음에도 그 사랑과 은사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은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은사를 죄악을 묵인하는

곳에 사용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곡해하여 죄악을 용납하고 그들과 더불어 죄

악에 빠지는 것에 사용하였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죄악의 행위를 묵인하는 것이 그들

의 자랑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L. Morris).

적은 누룩이…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누룩은 (1) 그리스도의 복음(마13:33;

눅 13:21).(2) 죄(출 12:15;갈 5:9)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죄악을 상징하는 말로 사

용되었다. 본문의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누룩, 즉

죄악으로부터 구속함을 받은 새로운 존재임과 죄악의 파급적인 영향력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할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살전 5:22).

즉 바울은 그들의 자만이 결국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누룩’이라

는 하나의 실례를 들어 증명한다. 누룩은 아주 작은 미량의 효소로 그보다 몇 배나 더

큰 반죽 덩어리를 발효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력은 더욱

왕성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교회 내의 범법자는 처음에는 그 이웃을 감염시키지

만 결과적으로는 교회 전체를 부패시키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갈 5:9).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은사에 비하여 악의 요소인 누룩이 작아 보였기에

자만 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들 앞에 닥친 위협은 결코 작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의 지혜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교회의

순결성(純潔性)을 유지하는 일이다(Harris).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죄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이며 그

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기 전의 타락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

이다(Calvin).특별히 바울은 ‘누룩 없는 자이어야 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고 ‘누룩 없

는자'(* , 아주모이 온테스)라고 선언하고있다. 그의 표현은 그

들이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 자체가 새

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강조한다(고후5:17).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만 하는 신분임을 상기시킨다(4:17). 만약 그들이 아직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었다면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누룩없는 상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실제적인 상태로서 그들이 다시 묵은 누룩으로 돌

아갈 수 없는 신분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 하반절은 헬라어 원문에서 ‘가르'(* )로

시작하는데 ‘왜냐하면’의 뜻을 가진 ‘가르’는 왜 묵은 누룩을 버려야만 하는것인가 하

는 문제와 그들이 어떻게 누룩 없는 자가 되었는가 하는 이유를 암시한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리스도께서 희생양이 되셔서 그들의 백성의 죄를 다 도말하셨기 때문이라

는 주장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들을 멸망으로부터 이끌어내었으며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주셨다. 바울은 누룩으로 시작된 비유를 유월절의 무교병과 유월절 어

린 양이라는 또 다른 비유의 의미에 연결 시키면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성취된 무교

병에 참여한 자들은 더 이상 누룩 있는 떡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Lenski).

=====5:8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 칼빈(Calvin)

은 이 구절을 ‘영적(靈的)인 유월절을 지키자’ 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왜냐하면 당시

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새로운 유월절의 개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잡히

시기 전날 밤에 만찬에서 떡을 떼시고 포도주를 나누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다시 범죄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새로

운 명절에 참여한 자들은 옛 습관의 죄악된 누룩을 가지고 새 덩어리에 참여할 수 없

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새 명절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누룩이 아니

라 순전함과 진실함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적인 생활이다. 한편 ‘순전함'(*

, 에일리크리네이아스)은 동기의 순수함을 나타내고 ‘진실함’

(* , 알레데이아스)은 행동의 순수함을 나타낸다. 새로운 명절은 더

이상 종교적 의식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누룩없는 새 명절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거룩한 삶으로 드려져야 할 성도의 순결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롬12:1).그

러므로 바울은 ‘묵은 누룩’과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을 버려야 할 것을 권고한다. 여

기서 ‘묵은 누룩’과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이란 성도들이 그리스도께 속하기 이전에

지니고 있던 죄의 습성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안에서 빚어진 성도들은 묵은 누룩이 뜻

하는 음란과 정욕, 술취함과 방탕,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엡 4:22;벧전 4:3)등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5:9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 헬라어 ‘에그랖사'(* , ‘내가 쓰다’)는 부정

과거 능동태로서 (1)이미 그가 썼던 과거의 한 편지를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Calvin,

Meyer, Godet). (2)서신서에 등장하는 부정 과거의 특징적인 성격을 생각할 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한 편지’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와 같은 견해에 반대한다(Lenski, Barrett, Morris). 만약 이 편지가 지금 쓰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면 아직 받지 않은 편지를 두고 그들이 어떻게 오해할 수가 있겠는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편지는 앞서 고린도 교회에 보내진 편지로서 지금 우리에게는

발견되지 않은것들 중 하나라고 보는 것이 학자들간에 널리 알려진 정설이다(Calvin,

Meyer, Godet, Harris).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쓴 서신 중에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

지 않은 것이 있으므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성경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말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했던 영감서인 신 . 구약 66권으로 된 완

전한 성경을 갖고 있다. 그외 성경 기자들의 다른 저작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자연

스레 소실(消失)되거나 성경에 수룩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1) 의 견해

를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Robertson).

=====5:10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 많은 사람들은 본절이 세상과의

분리나 은둔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이해한다(Barrett, Lenski, L. Morris). 그

러나 본절이 세상과의 타협과 동화를 뜻하는 말이 아님도 기억해야만 한다. 바울이 고

린도에 보낸 서신들의 전체적인 주제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세상의 음행한 것들과

타협함으로 말미암아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서신은 타락한 도시 고

린도로부터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구별되어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가

에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바울의 전체적인 의도를 망각하고

그들 나름대로의 판단에 따라 행동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바울의 훈계가 너

무 지나친 것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에 (1) 어떤 자들은 오히려 세상과 하나되어 그리스

도를 포기하고자 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했으며 (2) 또 다른 자들은 아예 세상으로

부터 떠나 은둔과 도피적(逃避的)인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 또한 그들 중에 일부는 이

세상과의 구별을 단순히 고린도라는 한 도시를 떠나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였으

며 또 어떤자들은 세상과의 분리를 은둔이나 수도라는 의미보다 더 가혹한 죽음이라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오해들이 세상과 그리스도인의 관

계를 바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며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자체와 그 세

상 가운데 있는 추악한 것들을 바로 구별하지 못한 데서 발생한 것임을 발견한다(J.

Calvin). 이것은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니이

다”(요 17:15)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의 분리

는 음행하는 고린도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가는 것도 아니며 또한 타락한 도시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악한 본을 보이는 자들과

의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며, 그 관계의 포기로 말미암아 초래되는 온갖 사회적, 경제

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오히려 그들의 악을 미워하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고난의 삶을 선택하는 일이다(Chrysostom). 한편 상반절에 나열된 세상의 추악한 모습

은 음행이나 탐심이나 토색이나 우상숭배라는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났지만, 보다 근

본적인 문제에 있어서 이러한 행악(行惡)은 온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악한 자, 곧 공

중에 권세 잡은 자에 의하여 발생하게 되는 문제임을 기억해야 한다(엡 2:2).

=====5:11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 바울은

앞절에서 나열한 악의 종류에 두 가지를 덧붙이고 있는데 하나는 ‘로이도로스'(*

,’후욕하는 자’)로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욕설이나 비방을 서슴지 않고 행

하는 것이며(마 5:22) 또하나는 ‘술 취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일을 행하는 자

들이 형제라는 그리스도인의 명분을 가지고는 있으나 더 이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들이 아니라 악한 자의 손에 있는 자들임을 강조한다. ‘사귀지 말라'(*

, 토토이우토)는 9절에서 사용된 것과 같이 그들 가운데 어울리지 말라는 뜻을

다시 반복한 것이며(엡 5:11) ‘메데 쉬네스디에인'(* ,

‘함께 먹지도 말라’)과 함께 ‘철저하게 관계를 단절할 것’을 요구하는 표현이다. 한편

본절에서 ‘쉬네스디에인’은 성만찬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만은 없다. 물론 그들

은 당연히 성만찬에서 제외될 것이다. 그러나 본절에서 ‘쉬네스디에인’은 보다 일상적

인 생활속의 자유스런 식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즉 고린도 교인들은 형제

라고 일컫는 자 중에 공공연히 범죄를 하고도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

들과의 교제를 단절할 뿐 아니라 그들을 탈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범죄자에

게 유익이 될 뿐만 아니라(5절) 교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5:12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 바울은 앞절에서 제시

한 자신의 권리가 최선의 방법임을 다시 한번 호소 하면서 자신의 판단 범위의 한계와

고린도 교인들의 의무를 보다 명백하게 기록한다. 그는 교회밖에 있는 자들을 판단하

는 것은 자신의 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고린도 교인들도 교회 밖에있는 자들을

판단하는 것을 금지시킨다. 이는 심판의 특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며(13절)또한 저

들이 이웃을 심판하는 일 때문에 그들 역시 범죄하기 쉽기 때문이다(롬 2:1;14:4,10).

그는 성도들의 신앙 규범과 행동 원리를 교회 공동체 내에 한정(限定)시키면서 그들의

동료들 가운데서 발생한 문제들을 스스로 판단함으로써 책임을 다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교회 공동체가 범죄자를 판단하는 행위를 그리스도인 개인이 성

도의 행위를 판단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Lenski). 왜냐

하면 교회는 교회의 순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공동체를 훈계하고 권징하는 일을 교회적

차원에서 행하는 것이지 어느 개인에게 맡겨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

의 판단의 권위와 진실성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말씀과 권위에 순종할 때 더욱 명백해

질 것이다(Barrett).

=====5:13

이 악한 사람은 너희중에서 내어 쫓으라 – ‘악한 자’를 뜻하는 헬라어 ‘호 포네로

스'(* )는 한 행악자 개인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보다 총체적인 악의 개

념으로 앞에서 열거한 모든 행악자들을 의미한다(Calvin). 바울은 이 모든 자들이 교

회 공동체로부터 쫓겨나야할 것을 다시 경고한다. 교회는 그들 속에 있는 적은 누룩을

제거하지 못할 때에 결국 그 순결성을 잃게 되어 악의 무리들이 권세를 잡는 타락한

모습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가 순결성을 지키기 위

해 행하는 권징의 의미를 본절에 기록된대로 모든시대의 교회에 적용한다는 것이 용이

한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각 시대의 교회마다 다른 상황이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

다(Morris).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대의 교회가 기억해야 할 것은 교회 내의 악의

존재가 묵인(黙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어느 형태로든지 악에 대한 권징

의 정당한 시행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편 바울은 ‘내어 쫓으라'(*

, 엑사라테)는 동사의 주체가 구약의 여러 곳에서는(신 19:19;22:21,24;24:7)

단수로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는 복수로 기록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들의 판단이 교회 전체에 의하여 행사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5장 주해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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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장 누룩을 제거하라

1. 본문 읽기

고린도전서 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고린도전서 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고린도전서 5: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고린도전서 5: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고린도전서 5: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5: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고린도전서 5: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고린도전서 5: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고린도전서 5: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고린도전서 5: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고린도전서 5: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2. 본문 주해

1절 너희 중에 음행이 있다.

1-2절은 문제의 두 가지 측면을 보여준다. 1절은 행위의 본질을, 2절은 교회의 반응을 언급하며 책망하다. 기가찰 노릇이다. 고린도 교회는 세상 속에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세상이 있다.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도 없다는 바울의 말에 깊은 분노와 서글픔이 담겨 있다. 가장 거룩해야 할 교회가 세상보다 더 악하다.

음행 프로네이아(πορνεία)는 값을 지불하고 창녀와 성을 사는 것을 말한다. 영어 포르로의 어원이 되는 단어다. 윤락가를 드나드는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를 말한다. 당시 헬라 문화권은 이러한 성에 대해 대단히 개방적이었다. 세상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2절 ~하지 않고

그리하고도 통한히 여기지 않고 그들을 쫓아내지 않는다. 교회가 썩어가고 있는데 그대로 안고 있다. 썩을 것은 빨리 잘라 내야 한다. 고린도 교회의 심각성은 이것이 죄라는 사실에 크게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과 자랑(6절) 했다는 점에서 놀랍다.

교만하여져서

-통한히 여기지 않았다.

-쫓아내지 않았다.

교만 φυσιόω은 부풀려지다. 풍성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말한다. 교만은 자신을 실제보다 높게 과장하는 것이다. 영적 교만은 실로 사탄에서 온다. 영적 교만은 모든 것을 자신이 판별하여 그것이 진리라고 믿게 만든다. 즉 영적인 내가 판단하기에 이것은 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에 대해 통탄과 추방으로 대응한다. 이로토록 영적 교만이 무섭다.

3절

몸은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다. 이미 판단했다.

바울은 멀리 있지만 직접 가서 판단할 필요도 없이 소문만으로도 이미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4절

판단하는 것은 바울 개인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내 영고 함께’있다 선언함으로 주도권을 고린도 교회에 넘긴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예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임을 드러낸다.

5절 사탄에게 내주었다.

난제 가운데 하니지만 초대교회 전승에 의하면 이러한 표현은 지옥에 간다는 말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충분히 벌을 받게 내버려 두라는 뜻이다. 바울 서신 안에는 이러한 표현이 종종 있다. 쉽게 말해 광야에 내 던지는 제물과 같은 존재이다. 종교개혁 이후의 관점으로 이 구절을 풀면 안 된다. 그는 결국 구원받기 때문이다. 5절을 유심히 읽어 보라.

6-8절 유월절 떡

바울은 교회의 음란의 문제를 곧장 유월절로 끌고 간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가나안을 향해서 나아가는 시작점이다. 이들은 유월절에 어린양을 잡고, 누룩 없는 떡을 먹고, 쓴 나물을 먹었다. 고난과 구원의 긴박성을 담아낸 음식들이다. ‘누룩 없는 자’ ‘새 덩어리'(7절) ‘누룩이 없는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8절)은 순수해야 할 이스라엘과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상징한다.

9-13절 밖에 이는 사람들

12절과 13절의 ‘밖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가 아니다. 교회 안에 머물고 있는 음행 하는 자들에 대한 것이다. 그들을 사귀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지옥에 간다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서 죄를 짓는 자와 ‘밖에 있는 자들’을 같이 취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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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본문 강해

1. 1-8절 교회 안의 누룩

1-6절 교회 안의 누룩

5장은 고린도 교회의 두 번째 문제를 다룹니다. 그것은 근친상간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당시 헬라 문화 안에서는 통용되는 일반적 사안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1절 중반에서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는 표현은 당시 헬라 문화권 안에는 없다고 드릴 수 있지만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이 문제는 좀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음행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거룩과 권위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절의 등장하는 ‘그 아버지의 아내’가 누구인지 학자들 간의 수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학자들은 대체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가 재혼하여 새로 얻은 여성으로 봅니다. 이유야 어떻든 대부분의 이방인들조차 금하는 죄가 고린도교회 안에서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바울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이 화가 났던 이유는 이러한 죄가 교회 안에 있음에도 교회 안에 성도들이 아무런 죄책이나 통한히 여김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2절에서는 ‘교만’했고, 6절에 의하여 그들은 오히려 ‘자랑’했습니다. 그들의 자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난 사실은 죄를 짓는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들도 아무런 죄책도 없고, 오히려 좋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음행의 문제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영적·신학적 상태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하루아침에 그렇게 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어제 4장을 살피면서 바울이 ‘기록된 말씀밖에 넘어가지 말라’(4:6)는 경고를 들었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작은 충돌과 시기, 작은 죄들이 쌓여 결국 크고 중대한 범죄로 이어졌던 것이 분명합니다. 6-7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누룩’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균이 숨겨져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두면 점점 온 덩어리에 퍼져나갑니다. 이처럼 작은 죄들을 그대로 두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무너뜨리고, 교회를 죄로 물들게 합니다.

7-8절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바울은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7절)고 충고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누룩이 온 공동체를 썩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누룩의 이야기를 출애굽 당시의 유월절 사건에서 가져옵니다. 놀랍게도 유월절에 희생되었던 어린양이 곧 ‘그리스도’(7절)라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빵은 원래 누룩을 넣어야 맛이 있고 부드럽습니다. 하지만 유월절 때는 빨리 애굽에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누룩에 부풀릴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의도적으로 기념하도록 했습니다. 유월절의 누룩 없는 빵은 거룩과 순결을 상징하기 전에 구원의 긴박성을 말합니다. 누룩은 평온과 행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출애굽 당시에는 나태함과 세상에 대한 미련을 말합니다. 마치 지난주에 담임목사님께서 언급한 롯의 처의 세상 사랑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제 세상에 대한 미련과 사랑을 버리고, 속이 주님께로 돌이켜 거룩하고 순결한 삶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병수 교수는 8절의 ‘명절을 지키라’를 ‘우리의 온 삶이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려진 유월절의 잔치처럼 되게 하자’로 해석합니다.

2. 9-13절 전 편지에 대한 재설명

9-13절은 전 편지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던 부분에 대해 다시 설명합니다. 아마도 전 편지에서는 음행 하는 자들과 완전하고도 완벽한 결별을 이야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10절)이라고 말합니다. 음행의 죄뿐 아니라 다른 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성도가 할 일은 모든 세상의 거룩이 아니라 교회 안의 거룩으로 한정시킵니다. 문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세상의 행악자들에 대한 불가피한 허용을 정당한 것으로 해석해버렸다는 점입니다. 고린도후서 6:14-7:1까지를 보면 이들이 허용을 친밀한 사귐으로까지 끌고 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약간의 틈만 보여도 그 틈을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데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교회 밖의 문제는 교회 밖의 일로 남겨두고 교회 안의 음행자들을 ‘내쫓으라’(13절)고 말합니다. 김세윤 교수는 그 이유를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성과 순결성을 보존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있을 뿐이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속한다는 말은 세상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세상, 교회가 잘라 내야 할 세상의 원리를 소개합니다. 먼저는 음행 하는 자입니다. 음행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육체적 만족의 선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탐욕입니다. 탐욕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한도는 넘어 타인의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입니다. 세 번째는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의 다른 말은 탐심입니다.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과 우상숭배가 함께 엮어진 곳을 곳곳에서 발견합니다.

[갈라디아서 5:19-21]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에베소서 5: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모욕과 술 취함, 속여 빼앗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들을 넘어서는 행위들입니다. 모든 악은 4:6에 기록된 대로 ‘기록된 말씀 밖으로’ 나가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벗어나 육신과 욕망을 따라 사라는 삶입니다.

마무리

5장에서는 음행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다 음란의 행위 자체보다는 악을 옹호하고, 자랑하는 그릇된 영적 상태에 있었습니다. 모든 악은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입니다. 바울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교회 안에서 내쫓으라고 말합니다. 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죄에 대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모든 죄 안에 하나님의 계명을 왜곡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악한 의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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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6(수) “고린도전서 5:1-13” / 작성: 강요섭

[본문] 고린도전서 5장 1-13절

[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잠언 27장 5절에는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면책이라는 단어 ‘토카하트’는 훈계와 징계를 의미합니다. 누군가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은 큰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 허물을 계속 덮어주었을 때 결국 그 허물로 인해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속한 공동체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게 분명하다면 사랑의 용기를 가지고 그 잘못을 훈계하고 징계하여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오히려 그냥 덮어주고 뒤에서 챙겨주는 사랑보다 낫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4장에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 교우들에게 스승을 넘어 복음으로 그들을 낳은 아버지의 마음을 가졌음을 이야기하며 마치 부모가 그 사랑하는 자녀를 훈계하며 매질하듯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어서 5장부터 실제로 고린도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바로 잡기 위한 권면을 시작합니다. 함께 본문을 살펴보시겠습니다.

[음행한 자에 대한 징계(1-5절)] [(1-2)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1-2절에 고린도교회에서 벌어진 심각한 음행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특히 그 음행은 하나님의 법도를 모르는 이방인들 가운에서도 없는 음행이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바로 ‘아버지의 아내’ 곧 계모를 자신의 아내로 취하여 들인 사건입니다. 여기서 계모라고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이 직접적으로 어머니를 취하였다고 하지 않고 ‘아버지의 아내’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계모라고 해도 아버지의 아내로서 자신에게 어머니임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교우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하였습니까? 통한히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통한히’라는 단어는 ‘펜데오’라는 단어로 ‘슬퍼하다’, ‘애통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음행의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그 사실에 슬퍼하거나 애통함이 없이 여전히 자신들은 신령한 공동체라 자부하는 교만함에 빠져있던 것입니다. 그런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쫒아내지 않았다는 말씀은 아무런 치리의 조치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고린도는 성적타락이 만연한 도시였습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교회가 세상을 제자삼지 못하고 교회가 세속화되는 과정을 겪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혹은 그 사람이 참 회개의 열매 없이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가능성은 그들이 구원에 있어서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 은혜를 오용하고 있었을 가능성입니다. 앞서 4장에 고린도교회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이 말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상을 가진 자임을 알 수 없지만 5장 서두의 문제들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았을 때 ‘쾌락주의적 영지주의자’들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활보하는 시대는 아니었지만 그 사상적 뿌리들이 초대교회에 나타나고 있을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는 물질은 악하고 영적인 것만 선하다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물질계에 속한 우리의 육체는 더 악한 행위를 한다고 해서 더 더러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잘못된 교리적 주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죄악된 길로 미혹하는 사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적인 가르침을 받은 이들 중에 극단적 자유방임 혹은 도덕 폐기론자들이 생겨서 교회의 일원이 된 뒤에 어떤 죄를 짓더라도 상관없다는 잘못된 신앙을 갖게 된 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 사람도 그중에 속한 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요즘에도 어떤 이단들은 영지주의와 비슷한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한 번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미 모든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에 다시는 회개를 하거나 죄를 용서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굉장히 달콤하게 들리는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칭의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가는 성화의 삶을 살며 우리가 받은 구원을 완성해가고 또한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삶으로 증거 해가는 치열한 자기부인의 현장입니다. 이런 성화의 삶을 부정하는 구원론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아 자신의 욕망을 위해 그리스도의 보혈을 욕보이는 인간의 욕심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심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리의 부르심의 목적과 이유를 따라 때론 넘어질지라도 일어나 계속해서 그 구원의 길을 걸어가는 자이어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면죄부처럼 여기며 자기 정욕을 따라 죄악된 길을 고의적으로 계속해서 걸어가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구원받았다하고 정욕을 따라 방종하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3-5)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이런 문제가 있을 당시 고린도교회에 머물러 있지 않았으면서도 아비의 마음으로 아파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우들은 이 문제가 생겼을 때 통한히 여기며 슬퍼하고 돌이키지 않았지만 도리어 멀리 떨어져 있던 바울은 고통스러워했습니다. 3절에 몸은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다는 이야기는 바울이 고린도에 육신으로 함께 있지는 않지만 그 모든 상황들을 알고 함께 있는 자 이상으로 마음을 쏟고 이 일을 숙고하였음을 알려주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사탄에게 내어주었다는 표현이 다소 과격하여 해석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본문 2절에 ‘너희 중에서 쫒아내지 아니하였느냐’라는 표현이나 맥락을 살펴보면 ‘출교’에 대한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세상 사람들도 짓지 않는 음행을 저지르고 또한 아무런 회개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을 교회에서 내보내는 최고의 권징 곧 ‘출교’시킬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출교는 단순히 죄를 지은 사람을 벌주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출교를 함으로써 먼저 교회가 어떤 공동체임을 나타내는 목적이 있습니다. 만약 이런 음행하는 자가 회개하지 않고 뻔뻔히 죄악된 길을 가고 있음에도 그런 자를 내어 쫒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성적으로 방탕하고 타락한 공동체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권징을 통해 교회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잃지 않음으로 세상 속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정체성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는 출교를 당하는 자에게도 유익이 됩니다. 회개할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회개치 않는 다는 것은 둘 중 하나입니다. 첫 번째는 그가 원래 회개하지 않고 단순히 종교인으로서 교회의 일원으로 출석만 하고 있던 자이거나 두 번째는 회개하고 주님을 믿었지만 죄에 미혹되어 영적 분별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병들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출교가 그에게 어떻게 작용하게 됩니까? 일반적인 치료에서는 쓰이지 않지만 환자가 완전히 의식을 잃고 심장이 정지된 상태에서 그를 깨우기 위해 고강도 전기충격을 가하는 제세동기를 사용하듯이 출교는 곧 그의 죽어있는 혹은 잠들어 있는 신앙의 뿌리를 흔들어 깨우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신앙이 없었다면 자기 영혼의 문제에 대하여 깊이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요 신앙이 있음에도 유혹에 미혹되어 잠들어 있었다면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놓고 깊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출교를 통해 그를 예수님의 몸 된 교회에서 끊어버렸지만 그 일을 통해 회개하고 돌이켜 육신의 정욕에 속한 죄악을 멸하고 회개하여 주 예수의 날에 다시금 구원의 자리로 나아오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쉬운성경에 보면 5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사탄에게 내어 주어, 그 사람의 죄의 본성은 멸망당하더라도 영혼은 우리 주님의 날에 구원 받게 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그 사람을 놓지만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였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의 구원과 회개를 위해 누구보다 더 뜨겁게 가슴아파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마치 매를 맞는 아이보다 매질을 하는 아비의 마음이 더 아픈 것처럼 말입니다. 교회가 정말 하나님의 가족공동체라면 우리는 서로를 향한 칭찬과 감사의 말도 해야 하지만 때로는 상대를 위하여 사랑에서 우러나온 권면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권면이 나를 향한 진심어린 사랑의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 몸에 좋은 한약임을 알고 기꺼이 받아들여 마실 수 있을 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순결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성숙함을 이루어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권징의 목적(6-8절)] [(6-8)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출애굽기 12장 15절에는 ‘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라는 무교절 지키는 규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유월절과 함께 이어지는 무교절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집안에 누룩을 미리 제거하였습니다. 바울은 음행으로 인해 악행을 저지른 자를 누룩에 비유하며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룩하여 진 고린도교회 교우들을 누룩 없는 덩어리라 부릅니다. 이 말은 만약 이 사람을 출교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누룩이 반죽을 부풀어 오르게 하듯 곧 그의 음행은 교회공동체의 도덕적 기준들을 무너뜨리고 세상 같은 아니 세상보다 더 도덕적 기준이 낮은 악한 공동체로 변질될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치 유대인들이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 먹고 이어지는 무교절 기간 누룩을 제거하듯 유월절 어린 양, 예수님의 희생으로 거룩한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면 우리도 공동체의 거룩함을 위해 누룩 같은 죄악을 방치하지 말고 권징을 통해 제거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는 권징의 궁극적인 목적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에 있음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죄는 확산성을 가지고 있기에 교회의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심각한 죄악을 근실히 징계하고 바로 잡아 거룩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때에 8절 말씀처럼 순전함과 진실함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순전함이란 도덕적 순결함을 의미하며 진실함이란 ‘알레데이아’ 곧 진리를 의미합니다. 이는 교회가 단순히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까지 존재하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순결과 진리의 공동체로 거룩하여져서 결혼식 단장한 신부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발견되어져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내 삶에 더러운 죄악과 날마다 싸워야 하고 또한 우리 공동체가 직면하는 악함의 누룩을 기꺼이 제거하려는 거룩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거룩함(9-13절)] [(9-10)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하기 이전에 보내었던 서신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경고하였는데 이 말을 오해한 고린도교회 교우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린도지역은 성적 타락이 극심하였기에 만약 부부의 순결을 깨끗하게 지키는 자와만 사업을 하거나 교제를 한다면 그들의 사회적 입지는 너무나 제한적으로 축소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10절에 그런 자들과 만나지 않으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의도로 쓴 것이겠습니까?

[(11-13)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바울이 사귀지 말라고 한 것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믿음의 형제라고 하면서 음행과 탐욕과 우상 숭배와 모욕 그리고 술 취함과 속여 빼앗는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과 교제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성령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시는 성화의 삶을 따라가는 자가 아니라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지만 교회 안에서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스스로 누룩을 자처하며 교회를 병들게 하고 다른 사람을 죄악의 자리로 이끌어가는 미혹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내쫒아야 한다는 엄중한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전해준 말씀을 통해 세상 속 교회의 위치와 사명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됩니다. 세상 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세상과 같지 않은 순전함과 진실함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촉매’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화학 반응에서 그 자신은 변하지 않지만 다른 물질의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물질을 의미합니다. 세상 속에서 세상과 같아지지 않지만 오히려 그들을 변화시키는 존재로서 우리가 살아갈 때에 그 삶이 바로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가 될 것이며 영과 진리로 살아가는 예배자의 삶이 될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 개인과 교회공동체의 모습이 그런 촉매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삼일작심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서로를 위해 진심어린 권면을 해줄 수 있는 깊은 관계가 줄어들고 있는 세상입니다. 또 사랑으로 권면을 하더라도 그것을 가볍게 여기거나 마음상해 스스로 떠나는 이들이 많은 시대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에 깊은 사랑의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더하여 주셔서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이 되어 세상 속에 촉매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서로를 세워주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서로를 향한 뜨거운 사랑은 잊지 않게 하시어 서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워주는 것이 목적임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뜨거운 사랑안에서 거룩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함으로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여주는 거울이 되게 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 앞에는 흠도 없고 점도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발견되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고린도교회에서 음행을 저지른 자를 그냥 방관했던 교인들과 그를 출교하고자 했던 바울과 누가 더 그를 사랑했던 것인지 묵상해봅시다.

2. 나는 누군가의 진심어린 충고를 들었을 때 그것에 기분나빠하며 관계를 끊거나 공동체에서 이탈한 경험은 없었는지 돌아봅시다.

3. 만약 교회에서 권징과 치리가 사라져버린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생각해봅시다.

4.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상을 떠나 존재하지 않고 세상 속에 존재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지 묵상해봅시다.

(작성: 강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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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9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20200815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고린도전서 5장 1-8절) – 코너스톤장로교회

(고전 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고전 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고전 5: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고전 5: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고전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고전 5: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전 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고린도’라는 도시는 성적으로 매우 음란한 도시였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세워진 ‘아프로디테’ 여신을 섬기는 신전에서는 1000여명의 여사제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들과 성관계를 맺음으로서 신을 섬긴다는 이상하고 문란한 풍속이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태양의 신이라 불려진 ‘아폴로’의 신전 동성애를 하도록 어린 남자 아이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고린도는 항구 도시답게 로마 제국 곳곳에서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왕래 했으며, 그로 인해 개방적인 문화는 성적 문란함과 방탕함으로 도시를 채웠습니다.

이러한 도시에 세워진 곳이 바로 ‘고린도교회’ 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 가운데도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심각한 성적 죄악들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까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간의 다툼과 분쟁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바울은 드디어 5장에서 음행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1절 입니다. “(고전 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던 바울에게 찾아온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성적 죄악을 바울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음행이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것은 뜬 소문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심지어 음란하다고 여겨지던 고린도 사람들도 저지르지 않을 법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근친상간’의 성적 죄악이 일어난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보다 더 악한 음행으로 더러워져 있던 것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까지 이러한 교회의 소식이 전해질 정도였으니, 고린도교회는 이미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비난 받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 보다도 높은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모범적인 삶을 살기는커녕 오히려 세상보다 못한 지경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1절에 사용된 ‘음행’이란 단어는 ‘포르네이아’란 단어 입니다. 영어의 ‘포르노’란 단어가 여기서 나왔는데요 ‘돈을 주고 성적 관계를 맺는 매춘 행위’를 의미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분쟁 뿐만 아니라, 이러한 성적 범죄마저 만연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바울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습니다. 2절을 봅시다. “(고전 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바울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교회의 성도들이 이러한 더러운 음행을 저지르면서도, 여전히 서로 자신이 더 경건하고 더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서로 잘났다고 다투고 싸울 수 있는지 통탄했습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 이러한 음행을 저지른 자들을 보며 가슴 아파하면서 “그런 음행의 죄를 저지른 자들을 교회 가운데서 쫓아냈어야 하지 않았느냐?”하고 고린도교회를 책망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을 자세 읽어보면 고린도교회의 음행은 유혹을 참지 못하고 단 한 번 실수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지속되고 있는 심각한 문제 였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그러한 음행의 죄악에 빠진 형제들을 징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만히 방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안일한 고린도교회의 처신을 책망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볼 때 나와 함께 신앙생활 하는 형제 자매가 성적 죄악을 저지르는 것을 알고도, 방관하는 것은 결국 그 죄를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용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가 이 일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게 책망하고 있는 것이죠.

3절 봅시다. “(고전 5: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바울은 이 편지를 보낼 때 비록 자신이 몸으로는 에베소에 있어 멀리 떨어져 있으나, 영으로는 고린도교회와 함께 있다고 말하며, 그와 같이 음행을 행한 사람들을 이미 심판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음행하는 자, 특별히 근친상간의 죄를 지은 자를 쫓아내라고 명령했습니다. 5절에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란 말은, 교회에서 출교시키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몸인데, 음행으로 주님의 몸을 훼손한 자들을 쫓아내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 확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음행을 행하는 자들을 수수 방관했습니다. 음행이 분명 하나님 보실 때 큰 범죄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팔짱을 끼고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한 목소리로 이와 같이 음행의 죄를 지은 자들은 기독교 공동체로부터 추방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필요하다면, 공예배의 참석과 성찬식 참여에 금지시켜야 하는 것이죠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3대 표지가 무엇입니까? 말씀의 선포, 성례의 집행, 권징의 실행 입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가르치고, 말씀에 불순종하여 살아가는 자들을 치리하는 기능이 있어야지만 참 교회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 은혜로 눈 감고 넘어갑시다.” 사실 아무런 치리 없이 수수방관 하는 게 가장 쉬운 선택 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룩한 주님의 몸인 교회를 무너뜨리는 결정 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음행을 행한 자들에게는 출교와 같은 징계를 통해서 오히려 그들의 행실이 잘못되었음을 가르쳐야 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바울이 원했던 것은 음행하는 자들이 출교 당하는 고통 속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것을 보기 원했던 것입니다. 5절을 봅시다. “(고전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육신은 멸한다’는 말씀에서 ‘육신’은 우리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짓는 ‘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출교 당한 사람이 잠시 동안 육체적 고통을 겪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죄를 멸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주 예수의 날” 우리 주님 재림하시는 심판의 날에 그의 영혼이 구원 받게 되기를 소망 했습니다. 즉 바울은 음행의 죄를 지은 자를 치리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거룩함을 훼손시키지 않는 길이며 동시에 음행한 자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얻도록 하는 길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이와 같이 심각한 음행의 죄로부터 훼손된 거룩함을 회복할 수 있도록 권징을 시행하라고 촉구 했습니다. 즉 음행의 죄를 지은 자들을 출교하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6절 입니다. “(고전 5: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룩은 빵 전체를 부풀리게 하는데 쓰이는 ‘이스트’(효모)를 말합니다. 빵을 만들 때 밀가루 4컵 당 누룩은 티스푼으로 2스푼 정도 넣습니다. 비록 적은 양의 누룩이지만 빵 전체를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바울은 이처럼 적은 양의 누룩이 온 반죽 덩어리에 퍼지게 되는 것과 같이, 아무리 소수의 음행의 죄라 할지라도 그것을 방관하면, 그들의 죄가 교회 전체를 흔들고 거룩함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누룩을 제거함 같이 부당한 음행을 행한 자들을 교회 안에서 출교시키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7절에 말합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다” 이 말은 교회는 죄가 없는 거룩한 주님의 몸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누룩이 없고 순전하고 거룩한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모든 종류의 누룩 즉 모든 종류의 죄악을 제거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빠져나오는 밤 유월절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들 가운데 모든 누룩을 제거했습니다. 이처럼 유월절은 ‘누룩이 없는 빵’(무교병)을 먹은 절기이기 때문에, 유월절을 다른 말로 ‘무교절’이라고 부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회중에서 누룩을 제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회중 가운데 있는 죄악을 제거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7절 말씀에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유월절 희생양이 되셨으니, 죄악을 내어 버리라는 의미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며 누룩 없는 빵, 무교병을 먹었던 것과 같이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들, 분쟁과 교만, 음행의 모든 죄악들을 끊어버리고 거룩하게 살아가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있는 어떠한 누룩 즉 어떠한 죄라도 제거하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건만 어찌 우리가 또 다시 죄의 구렁텅이에 빠져 살아가겠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다시 못 박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제거해야 하는 누룩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난 너가 그 행위를 그만 했으면 좋겠다.”하고 말씀하시는 삶의 모습은 없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 여러분, 주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세상의 모든 누룩 즉 죄악을 제거하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인정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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