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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시디아 안디옥과 수리아 안디옥 | 성지가 좋다 210회 터키, 비시디아 안디옥1 – 이강근 박사 상위 143개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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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회 비시디아 안디옥1 – 이강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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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아 안디옥’과 ‘비시디아 안디옥’ – e 푸른초장

2월 4일. ‘수리아 안디옥’과 ‘비시디아 안디옥’. 성경에는 ‘안디옥’이라는 지명이 2번 나온다. 하나는 사도 바울 시대에는 ‘수리아’ 의 (현재 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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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bcranch.com

Date Published: 2/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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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비시디아 안디옥 – 성경에는 두 안디옥이 있는데···

하나는 비시디아 안디옥이고, 또 하나는 수리아 안디옥이다. … 있는 것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사도 바울과 바나바 일행이 복음을 전하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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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1/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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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36 비시디아 안디옥과 수리아 안디옥 The 236 Detailed …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수리아 비시디아 안디옥 : 네이버 블로그 수리아 안디옥은 이방 선교의 전초지로 바울과 바나바가 1년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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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oplist.covadoc.vn

Date Published: 7/27/2021

View: 8804

수리아 비시디아 안디옥 – 네이버 블로그

수리아 안디옥은 이방 선교의 전초지로 바울과 바나바가 1년간 복음을 전하고(행11:19-26, 14:22-25), 제 1, 2, 3차 선교의 거점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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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3/28/2021

View: 3631

하나님 말씀을 간절히 사모했던, 비시디아 안디옥 – 한인기독교회

그렇게 만들어진 다음 안식일 집회에는 거의 모든 비시디아 안디옥 시민들이 다 모여들어 바울의 복음 설교를 듣게 되었다. 수리아 안디옥과 비시디아 안디옥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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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ccdenver.org

Date Published: 5/17/2021

View: 6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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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가 좋다 210회 터키, 비시디아 안디옥1  - 이강근 박사
성지가 좋다 210회 터키, 비시디아 안디옥1 – 이강근 박사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비시디아 안디옥과 수리아 안디옥

  • Author: C채널방송 : 프로그램
  • Views: 조회수 13,016회
  • Likes: 좋아요 249개
  • Date Published: 2019. 12. 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6parNDUSiTY

19 비시디아 안디옥 – 성경에는 두 안디옥이 있는데···

19 비시디아 안디옥 – 성경에는 두 안디옥이 있는데···

어느 안디옥이 진짜 안디옥인가?

“안디옥”이라는 지명은 성경에 두 곳이 나온다.

하나는 비시디아 안디옥이고, 또 하나는 수리아 안디옥이다.

사도행전 13장1절에 나오는 안디옥교회는 수리아 안디옥에 있던 교회로, 지금의 시리아와 터어키의 국경 지대에 있는 도시로,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의 순교의 사건 후 예루살렘에 있던 많은 신자들이 유대교의 핍박을 피해서 이곳저곳으로 흩어 졌는데, 당시 핍박을 피해 안디옥 지방으로 도망을 갔던 사람들이 설립한 교회이다. 이 핍박으로 말미암아 안디옥은 그리스도인의 제 2 생활 중심지가 되었고 후일 이 곳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상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이다.

터키의 변방, 시리아에 가까이 있는 이곳이 아직까지 터키 영토로 남아 있게 된 연유는 터키 건국의 아버지 케말 파샤(Kemal Pasha: 1922년 슐탄제를 폐지하고(오스만 제국의 멸망), 이듬해 앙카라를 수도로 하는 공화정을 설립해 초대 대통령이 됨)가 1차 대전 때 시리아 지방을 점령하였고, 그 뒤 2차 대전 때 온 세계가 독립을 요구할 즈음 수리아 안디옥 사람들은 터키의 영토로 남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지금도 터키로 남아 있다.)

오늘 이야기 하는 비시디아 안디옥은 사도행전 13장 14절에 나오는 도시다.

조그마한 도시로 들어서니 차도로는 마차가 다니고, 길옆에는 노점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영락없는 시골 마을이다.

여기가 그 옛날 영화를 누리던 비시디이 안디옥이란다.

그동안의 지진으로 다 무너져 지금은 터키의 안타키야(Antakya)라는 이름의 보잘 것 없는 도시에 불과하지만 사도 바울 당시에는 로마의 속주 중의 하나인 시리아의 수도로서, 로마 제국 안에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가는 대도시였다.

‘동양의 여왕’이란 명칭을 가질 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로 모든 지역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와 상권이 형성되고 그 당시의 세속적인 종교적으로도 활동이 활발한 도시였다. 어느 시대이건 돈이 많으면 쾌락 중심의 문화로 바뀌게 되는데 쾌락을 사랑하는 도시의 대표적인 특징들을 모두 갖고 있었다. 도시가 몹시 화려하였지만 이것으로 말미암아 악한 도시로 바뀌었다. 그 결과 타락한 도시의 상징으로 비시디아 안디옥이 불리어졌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도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세 번이나 이 도시를 방문하고 이곳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기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니 유적지의 입구가 나온다.

조금 경사진 입구에 들어서니 이곳 역시 무너진 돌무더기가 여기 저기 산재해 있는, 아직 다 발굴이 안 된 유적지에 지나지 않았다.

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섬세하게 조각된 돌덩어리들이 열 지어 서있는 그 옛날의 대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옛날 사도바울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도를 설파하였던 유대인 회당 터가 나타났다.

학자들은 이 유대인 회당 터가 사도행전 13장 14절에 명시 된 유대인의 회당 터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비시디아 안디옥 아고라(장터)에서 발견된 바울 교회 비문이 당시의 유대인의 회당에 있는 것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사도 바울과 바나바 일행이 복음을 전하였고, 또 이곳이 소아시아 지역에 복음이 퍼지게 하는데 중요한 시발점 역할을 한 도시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다.

특히 바울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는 설교를 하며 이방선교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곳을 사도 바울이 자신을 이방인 선교에 헌신키로 결정한 곳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믿음으로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갈 3:16) 갈라디아서는 특히 이 지방에서 복음을 받은 자들을 위하여 쓰인 편지인 것이다.

주춧돌만 남은 유대인 회당 터 옆에는 그 후 비잔틴 시대에 지어졌으나 지금은 다 허물어진 채로, 아니 아직 복원이 다 안 되어서 허물어진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허물어 진 것을 다시 짓고 있는 옛 교회 터, 바울의 교회가 있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크리스천’이라고 부르던 수리아(지금의 시리아 가까이 있는 터키영토)에 있는 안디옥하고는 다른 안디옥이지만 사도 바울이 이방선교를 시작한 시발점으로 보기 때문에 결국 안디옥이라고 불리는 두 도시가 다 기독교 역사상 중요한 지역이 된 것 같다.

저 멀리로는 전에 이스라엘 지중해 변의 도시 가이사랴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형태 수로가 서 있어 그 옛날의 풍요롭던 도시에 물을 전달해 주었음을 침묵으로 증명하고 있고, 가까이에는 그 옛날 크게, 화려하게 지어 졌던 공중목욕탕이 복원되어 가고 있었다.

그 옛날에도 사람들은 육신의 때를 벗기기에는 참으로 열심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마음의 때는 무엇으로 씻어야 깨끗해지는 것일까?

1 길섶에 진열해 놓은 조각들의 파편.

2 복원중인 사도 바울 기념교회

3 사도 바울이 최초로 설교를 한 유대인 회당 터

4 안디옥의 수로

5 복원중인 목욕탕

Top 36 비시디아 안디옥과 수리아 안디옥 The 236 Detailed Answer

Q23)어떻게 수리아 안디옥교회가 세워졌나?사도행전11장-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 이방으로 전파되는 과정[나도 성경을 가르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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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기독교회 Korean Christian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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µÎ¶õ³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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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µÎ¶õ³ë 하나는 터키 남부 중앙 지역에 위치해 있는 비시디아(Pisia)의 안디옥이며, … 1세의 사후 주후 1세기까지 수리아 안디옥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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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4.3. 비시디아 안디옥 – 김홍욱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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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성지순례 – 4.3. 비시디아 안디옥 – 김홍욱 글 모음 Updating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성지순례 – 4.3. 비시디아 안디옥 – 김홍욱 글 모음 Updating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그의 장군 중 한 사람인 셀류쿠스가 왕조를 세우고 그의 아버지 안티오쿠스를 기념하기 위해서 헬라 제국 내에 16개의 도시를 건설하고 모두 안디옥이라 명명했다. 성경에는 안디옥이라는 지명으로 그 중 두 군데가 등장한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니골라의 고향(행 6:5)이자 이방 땅으로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행 11:20) 안디옥은 시리아와의 국경근처에 있는 수리아 지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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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4.3. 비시디아 안디옥 – 김홍욱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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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비시디아 안디옥 – 성경에는 두 안디옥이 있는데···

19 비시디아 안디옥 – 성경에는 두 안디옥이 있는데··· 어느 안디옥이 진짜 안디옥인가? “안디옥”이라는 지명은 성경에 두 곳이 나온다. 하나는 비시디아 안디옥이고, 또 하나는 수리아 안디옥이다. 사도행전 13장1절에 나오는 안디옥교회는 수리아 안디옥에 있던 교회로, 지금의 시리아와 터어키의 국경 지대에 있는 도시로,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의 순교의 사건 후 예루살렘에 있던 많은 신자들이 유대교의 핍박을 피해서 이곳저곳으로 흩어 졌는데, 당시 핍박을 피해 안디옥 지방으로 도망을 갔던 사람들이 설립한 교회이다. 이 핍박으로 말미암아 안디옥은 그리스도인의 제 2 생활 중심지가 되었고 후일 이 곳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상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이다. 터키의 변방, 시리아에 가까이 있는 이곳이 아직까지 터키 영토로 남아 있게 된 연유는 터키 건국의 아버지 케말 파샤(Kemal Pasha: 1922년 슐탄제를 폐지하고(오스만 제국의 멸망), 이듬해 앙카라를 수도로 하는 공화정을 설립해 초대 대통령이 됨)가 1차 대전 때 시리아 지방을 점령하였고, 그 뒤 2차 대전 때 온 세계가 독립을 요구할 즈음 수리아 안디옥 사람들은 터키의 영토로 남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지금도 터키로 남아 있다.) 오늘 이야기 하는 비시디아 안디옥은 사도행전 13장 14절에 나오는 도시다. 조그마한 도시로 들어서니 차도로는 마차가 다니고, 길옆에는 노점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영락없는 시골 마을이다. 여기가 그 옛날 영화를 누리던 비시디이 안디옥이란다. 그동안의 지진으로 다 무너져 지금은 터키의 안타키야(Antakya)라는 이름의 보잘 것 없는 도시에 불과하지만 사도 바울 당시에는 로마의 속주 중의 하나인 시리아의 수도로서, 로마 제국 안에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가는 대도시였다. ‘동양의 여왕’이란 명칭을 가질 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로 모든 지역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와 상권이 형성되고 그 당시의 세속적인 종교적으로도 활동이 활발한 도시였다. 어느 시대이건 돈이 많으면 쾌락 중심의 문화로 바뀌게 되는데 쾌락을 사랑하는 도시의 대표적인 특징들을 모두 갖고 있었다. 도시가 몹시 화려하였지만 이것으로 말미암아 악한 도시로 바뀌었다. 그 결과 타락한 도시의 상징으로 비시디아 안디옥이 불리어졌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도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세 번이나 이 도시를 방문하고 이곳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기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니 유적지의 입구가 나온다. 조금 경사진 입구에 들어서니 이곳 역시 무너진 돌무더기가 여기 저기 산재해 있는, 아직 다 발굴이 안 된 유적지에 지나지 않았다. 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섬세하게 조각된 돌덩어리들이 열 지어 서있는 그 옛날의 대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옛날 사도바울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도를 설파하였던 유대인 회당 터가 나타났다. 학자들은 이 유대인 회당 터가 사도행전 13장 14절에 명시 된 유대인의 회당 터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비시디아 안디옥 아고라(장터)에서 발견된 바울 교회 비문이 당시의 유대인의 회당에 있는 것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사도 바울과 바나바 일행이 복음을 전하였고, 또 이곳이 소아시아 지역에 복음이 퍼지게 하는데 중요한 시발점 역할을 한 도시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다. 특히 바울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는 설교를 하며 이방선교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곳을 사도 바울이 자신을 이방인 선교에 헌신키로 결정한 곳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믿음으로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갈 3:16) 갈라디아서는 특히 이 지방에서 복음을 받은 자들을 위하여 쓰인 편지인 것이다. 주춧돌만 남은 유대인 회당 터 옆에는 그 후 비잔틴 시대에 지어졌으나 지금은 다 허물어진 채로, 아니 아직 복원이 다 안 되어서 허물어진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허물어 진 것을 다시 짓고 있는 옛 교회 터, 바울의 교회가 있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크리스천’이라고 부르던 수리아(지금의 시리아 가까이 있는 터키영토)에 있는 안디옥하고는 다른 안디옥이지만 사도 바울이 이방선교를 시작한 시발점으로 보기 때문에 결국 안디옥이라고 불리는 두 도시가 다 기독교 역사상 중요한 지역이 된 것 같다. 저 멀리로는 전에 이스라엘 지중해 변의 도시 가이사랴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형태 수로가 서 있어 그 옛날의 풍요롭던 도시에 물을 전달해 주었음을 침묵으로 증명하고 있고, 가까이에는 그 옛날 크게, 화려하게 지어 졌던 공중목욕탕이 복원되어 가고 있었다. 그 옛날에도 사람들은 육신의 때를 벗기기에는 참으로 열심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마음의 때는 무엇으로 씻어야 깨끗해지는 것일까? 1 길섶에 진열해 놓은 조각들의 파편. 2 복원중인 사도 바울 기념교회 3 사도 바울이 최초로 설교를 한 유대인 회당 터 4 안디옥의 수로 5 복원중인 목욕탕

수리아 비시디아 안디옥

수리아 안디옥 ( Antakiya ) 안디옥 지방에는 고대 선주(Tigh’s) 라고 불리던 농경 민족인 Prototigris인이 살았다. 그 후 B.C. 3천년에는 아카드인(Akad), B.C. 2천년 수바르인(Subar), B.C. 1,700년 히타이트인(Hitite), B.C. 841년 앗시리아인(Assyria), B.C. 538년 페르시아인(Persia)으로 연결이 되는데, 이 안디옥 지역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과 함께 일약 유명한 도시로 부상하게 된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과 알렉산더 대왕의 대 결전이 이곳 잇수스(Issus)에서 B.C. 333년에 벌어졌는데 이 전쟁으로 알렉산더가 승리를 차지하고 페르시아 제국은 멸망하게 된다. B.C. 323년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 이 방대한 영토는 그 휘하 장군들에 의해 분할 통치되었는데 바벨론 총독이었던 셀레우코스 장군이 B.C. 311년 전쟁으로 안디옥을 차지하게 된다. 셀레우코스는 지중해 연안에 자신의 이름을 딴 셀루기야(Seleucia-사도행전의 실루기야)라는 항구 도시를 건설하여 동부 지중해의 중요한 무역항으로 성장시켜 최초로 영화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페르시아, 이집트, 로마인들에 의해 쇠약해 지다가 결국 B.C. 148년 안디옥 지방의 대 지진으로 거의 폐허가 되었으며, 셀레우코스 8세는 B.C. 64년 이 지역을 로마제국에게 양도해 버리고 로마 통치하로 들어간다. B.C. 42년 시이져 황제의 지원으로 신 도시를 건설하여 당시 75만 인구를 가진 대 도시로 성장했다가 A.D. 71년 지진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이 시기에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피해 온 기독교인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으며, 안디옥 교회의 초대 감독은 이그타시우스였다. 이방 선교의 중심지가 된 안디옥 교회는 “크리스챤” 이라는 영광스런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으며,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자 구제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에 보내어 최초의 구제사업을 시작하였다. 수리아 안디옥은 이방 선교의 전초지로 바울과 바나바가 1년간 복음을 전하고(행11:19-26, 14:22-25), 제 1, 2, 3차 선교의 거점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여러 교회가 설립되었다(행14:19-23). 수리아 안디옥은 A.D. 313년 기독교가 공인된 후 로마, 예루살렘, 콘스탄티노플, 에베소와 함께 기독교 5대 도시중 하나가 되었다. 이 도시 출신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요한 크리소스톰이다. 크리소스톰은 일명 황금의 입이라고 불리운 설교의 달인이었으며, 동로마 황제 아르카디우스 시대에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였다. 크리소스톰은 아르카디우스 황제의 부인 유독시아의 부정한 행실과 황실의 향락과 사치를 비판하다가 추방을 당하게 되고, 이에 격분한 콘스탄티노플의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성 소피아 성당이 불타게 되었다.(404년) (배드로 암굴교회 내부) 638년부터 시작된 아랍인, 몽고인, 터키인들의 침략으로 이 도시는 소 도시로 전략해 버렸고, 1097년 십자군들에게 9개월간 통치를 받다가 동부에서 밀려오는 이슬람 세력에 의해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터키의 패배로 1918년 채결된 Mondros 조약에 의해 이 지역은 프랑스 자치령이 된다. 전통적으로 시리아 지역에 속했던 이 지역은 1923년 터키 공화국이 등장하면서 터키 영토에 속하게 되고, 아타투르크 대통령은 안디옥을 10년간 자치주로 하였으나 이들 스스로 국민투표로 터키에 귀속되었다. 들러보아야 할 곳으로는 비잔틴 시대의 화려한 모자이크들이 전시되어 있는 모자이크 박물관과, 초대 기독교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여겨지며 내부에 모자이크 흔적들이 남아있는 베드로 동굴(Piter’s Grotto)교회가 있다. 또한 사도바울이 1차 선교 때 수리아 안디옥을 출발하여 셀루기아(실루기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로 떠났던 외항이 지중해변에 남아있다. (셀루기아 항구) 비시디아 안디옥 ( Pisidia Antioch ) 비시디아 안디옥은 콘야(Konya)에서 북서쪽 약170km(107마일) 지점에 있는 아나톨리아 평원(Anatoelin Plateau)에 위치한 한 고대 도시이다. 고대 안디옥의 유물들은 작고 아름다운 도시 얄바치(Yalvaç)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수리아 안디옥과 마찬가지로 셀리우코스 니카토르(Seleucus Nicator)에 의하여 B.C. 301년에 도시가 세워졌으며, B.C. 25년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이곳에 로마군을 주둔시키고 로마인 거주지로 삼았다. (Colonia Caesarea Antiochia) 그 이후 번영을 누리었으며 고고학적 발굴로 이 시대의 우람하고 웅장한 여러 건축물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도시의 아클로폴리스에서는 프로필레아(Propylaes:장식문)가 발견 되었는데 그 연대는 아우구스투스 때의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곳은 반원형의 산책용 정원이 있는 동쪽 끝 아우구스타 플래디아(Augusta Platea) 광장으로 알려져 있다. 장식문 정면에는 티베리우스(Tiberius)황제를 위하여 건설했던 디베리아 플래티아(Tiberia Platea)가 있고, 광장은 상가들이 에워싸여 있었다. 물은 근처 언덕에서 송수관을 통하여 아크로폴리스로 흘러 들어오는 구조로 되었는데, 현재는 파괴된 송수관 유적이 도시의 남쪽 8km(5마일) 정도에서 발견된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A.D. 4세기에 이미 중요한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고, 주교(Bishop)의 근원지가 되었다. 옵티머스 주교(Bishop Optimus A.D. 357~381)에 관한 비문이 아우구스타 플래티아 북서쪽 아크로 폴리스에 서있는 폐허 된 바실리카 가운데에서 발견되었다. 또 하나의 교회는 십자형으로 티베리아 플래티아의 약간 서쪽에 위치하여 있다. A.D. 4세기 후에 비시디아 안디옥은 기울기 시작했고 A.D. 713년 아랍의 침략으로 패망 후 재건되지 못하였다.

터키-비시디아 안디옥 > 해외(성지)여행

비시디아 안디옥의 현재 지명은 얄바츠(Yalvac)로 아나톨리아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다. 성경에는 안디옥이라는 이름이 두 군데가 나오는데 하나는 수리아 안디옥이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비시디아 안디옥이다. 기원전 290년 경에 시리아의 헬로우코스가 자기 아버지 안티오쿠스의 이름을 따서 세운 도시로 325년에 유대인 회당이 있던 곳에 바실리카 양식을 바울기념교회를 세웠다. ▲ 비시디아 안디옥 유적지 비시디아 안디옥은 바울이 1차 전도 때에 들렸던 곳으로(2, 3차 전도 여행 때에도 들름) 바울 일행은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마가라 하는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바울과 바나바는 둘만 이곳으로 와서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였다(행13장). 바울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는 설교를 했다. 그의 설교는 서론에 구약역사와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구세주가 예수님이다(행13:17-22), 본론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설명(행13:17-22), 결론으로 믿음으로 죄용서와 의롭다 함을 선언(행13:38-41)하는 내용이다. 비시디아 인디옥에서의 바울의 설교를 듣고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행13:44)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많은 이들이 바울의 설교를 들으러 왔음을 알 수 있고, 유대인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행13:50)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털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행13:51)에서 보듯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을 떠나 이고니온으로 이동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방인 선교에 헌신키로 결심했고, 갈라디아서는 이 지역에서 복음을 받은 자들을 위해 기록한 편지이다. 이곳에는 바울기념교회가 있는데 바울 당시 세운 교회가 아니라 바울을 기념해서 후에 세워진 교회로 지금은 무너져 그 윤곽과 돌들만 남아있다. ▲ 지도 중간에 붉은 색 원안이 비시디아 안디옥이다. ▲ 비시디아 안디옥 유적지에 피어있는 붉은 꽃, 개양귀비라고 한다. ▲ 비시디아 안디옥 유적지 소개 입간판 ▲ 비시디아 안디옥의 원형 경기장(약 2만여명 수용했다고 한다) ▲ 아고라(광장, 시장) 길가에 위치한 상점들. ▲ 오른쪽 상점들이 위치한 길 ▲ 하트 모양의 돌이 인상적이어서 찰칵~ ▲ 멀리 수로가 보인다. ▲ 비시디아 안디옥 유적지 내의 목욕탕 유적 ▲ 비시디아 안디옥 유적지 내에 사도바울기념교회를 설명하는 입간판 ▲ 사도바울기념교회 ▲ 사도바울기념교회: 바울이 설교했던 유대인 회당 터에 세워졌던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로 사진은 제단부분. ▲ 사도바울기념교회 건물도와 오른쪽 모자이크는 교회 바닥에 세겨진 모자이크라고 한다. ▲ 사도바울기념교회 제단 부분. ▲ 사도바울기념교회 전경 ▲ 사도바울기념교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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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아 비시디아 안디옥

수리아 안디옥 ( Antakiya )

안디옥 지방에는 고대 선주(Tigh’s) 라고 불리던 농경 민족인 Prototigris인이 살았다. 그 후 B.C. 3천년에는 아카드인(Akad), B.C. 2천년 수바르인(Subar), B.C. 1,700년 히타이트인(Hitite), B.C. 841년 앗시리아인(Assyria), B.C. 538년 페르시아인(Persia)으로 연결이 되는데, 이 안디옥 지역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과 함께 일약 유명한 도시로 부상하게 된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과 알렉산더 대왕의 대 결전이 이곳 잇수스(Issus)에서 B.C. 333년에 벌어졌는데 이 전쟁으로 알렉산더가 승리를 차지하고 페르시아 제국은 멸망하게 된다.

B.C. 323년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 이 방대한 영토는 그 휘하 장군들에 의해 분할 통치되었는데 바벨론 총독이었던 셀레우코스 장군이 B.C. 311년 전쟁으로 안디옥을 차지하게 된다. 셀레우코스는 지중해 연안에 자신의 이름을 딴 셀루기야(Seleucia-사도행전의 실루기야)라는 항구 도시를 건설하여 동부 지중해의 중요한 무역항으로 성장시켜 최초로 영화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페르시아, 이집트, 로마인들에 의해 쇠약해 지다가 결국 B.C. 148년 안디옥 지방의 대 지진으로 거의 폐허가 되었으며, 셀레우코스 8세는 B.C. 64년 이 지역을 로마제국에게 양도해 버리고 로마 통치하로 들어간다. B.C. 42년 시이져 황제의 지원으로 신 도시를 건설하여 당시 75만 인구를 가진 대 도시로 성장했다가 A.D. 71년 지진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수리아 안디옥 베드로 암굴교회>

이 시기에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피해 온 기독교인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으며, 안디옥 교회의 초대 감독은 이그타시우스였다. 이방 선교의 중심지가 된 안디옥 교회는 “크리스챤” 이라는 영광스런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으며,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자 구제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에 보내어 최초의 구제사업을 시작하였다.

수리아 안디옥은 이방 선교의 전초지로 바울과 바나바가 1년간 복음을 전하고(행11:19-26, 14:22-25), 제 1, 2, 3차 선교의 거점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여러 교회가 설립되었다(행14:19-23).

수리아 안디옥은 A.D. 313년 기독교가 공인된 후 로마, 예루살렘, 콘스탄티노플, 에베소와 함께 기독교 5대 도시중 하나가 되었다. 이 도시 출신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요한 크리소스톰이다. 크리소스톰은 일명 황금의 입이라고 불리운 설교의 달인이었으며, 동로마 황제 아르카디우스 시대에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였다. 크리소스톰은 아르카디우스 황제의 부인 유독시아의 부정한 행실과 황실의 향락과 사치를 비판하다가 추방을 당하게 되고, 이에 격분한 콘스탄티노플의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성 소피아 성당이 불타게 되었다.(404년)

(배드로 암굴교회 내부)

638년부터 시작된 아랍인, 몽고인, 터키인들의 침략으로 이 도시는 소 도시로 전략해 버렸고, 1097년 십자군들에게 9개월간 통치를 받다가 동부에서 밀려오는 이슬람 세력에 의해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터키의 패배로 1918년 채결된 Mondros 조약에 의해 이 지역은 프랑스 자치령이 된다. 전통적으로 시리아 지역에 속했던 이 지역은 1923년 터키 공화국이 등장하면서 터키 영토에 속하게 되고, 아타투르크 대통령은 안디옥을 10년간 자치주로 하였으나 이들 스스로 국민투표로 터키에 귀속되었다.

들러보아야 할 곳으로는 비잔틴 시대의 화려한 모자이크들이 전시되어 있는 모자이크 박물관과, 초대 기독교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여겨지며 내부에 모자이크 흔적들이 남아있는 베드로 동굴(Piter’s Grotto)교회가 있다. 또한 사도바울이 1차 선교 때 수리아 안디옥을 출발하여 셀루기아(실루기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로 떠났던 외항이 지중해변에 남아있다.

(셀루기아 항구)

비시디아 안디옥 ( Pisidia Antioch )

비시디아 안디옥은 콘야(Konya)에서 북서쪽 약170km(107마일) 지점에 있는 아나톨리아 평원(Anatoelin Plateau)에 위치한 한 고대 도시이다. 고대 안디옥의 유물들은 작고 아름다운 도시 얄바치(Yalvaç)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수리아 안디옥과 마찬가지로 셀리우코스 니카토르(Seleucus Nicator)에 의하여 B.C. 301년에 도시가 세워졌으며, B.C. 25년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이곳에 로마군을 주둔시키고 로마인 거주지로

삼았다. (Colonia Caesarea Antiochia)

<신전문 복원도 Propylon>

그 이후 번영을 누리었으며 고고학적 발굴로 이 시대의 우람하고 웅장한 여러 건축물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도시의 아클로폴리스에서는 프로필레아(Propylaes:장식문)가 발견 되었는데 그 연대는 아우구스투스 때의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곳은 반원형의 산책용 정원이 있는 동쪽 끝 아우구스타 플래디아(Augusta Platea) 광장으로 알려져 있다. 장식문 정면에는 티베리우스(Tiberius)황제를 위하여 건설했던 디베리아 플래티아(Tiberia Platea)가 있고, 광장은 상가들이 에워싸여 있었다. 물은 근처 언덕에서 송수관을 통하여 아크로폴리스로 흘러 들어오는 구조로 되었는데, 현재는 파괴된 송수관 유적이 도시의 남쪽 8km(5마일) 정도에서 발견된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A.D. 4세기에 이미 중요한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고, 주교(Bishop)의 근원지가 되었다. 옵티머스 주교(Bishop Optimus A.D. 357~381)에 관한 비문이 아우구스타 플래티아 북서쪽 아크로 폴리스에 서있는 폐허 된 바실리카 가운데에서 발견되었다. 또 하나의 교회는 십자형으로 티베리아 플래티아의 약간 서쪽에 위치하여 있다.

A.D. 4세기 후에 비시디아 안디옥은 기울기 시작했고 A.D. 713년 아랍의 침략으로 패망 후 재건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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