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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1 장 | [하루 한 장] 빌립보서1장_복음에 참여하고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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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3 (화) [하루 한 장]“복음에 참여하고” (빌1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빌립보서 1장은 빌립보교회가
본래는 바울이 세우려고 했던
교회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했을 때
얼마나 큰 감사와 기쁨을 나누는
복된 교회가 세워지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의 군주였던
알렉산더 대왕이 자기 아버지
빌립2세의 이름을 따서 지은
황제의 권세가 높은 도시였고
그들은 황제를 주로 부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매우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곳에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교회를 세우시고
환란과 가난 가운데에서도
기쁨으로 풍성한 연보를 하여
복음에 참여하는 놀라운 사역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누릴 뿐 아니라
복음에 동참하는 헌신으로
더 큰 기쁨 가운데로 나아갑시다.
====================================
* 부산 성민교회 : 부산시 사하구 승학로 201(괴정동).
http://sungminch.com/
성민교회 홈페이지에 오시면 더 많은 성민가족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홍융희 목사의 설교 mp3모음 USB구입은 교회 사무실로 전화 문의 바랍니다.
분홍목사의 사역 신청 문의도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51-204-0691 (담당 : 성민교회 박지선 간사)
*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루 한 장]과 여러 영상들을 통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확인해 보세요.
http://www.youtube.com/c/홍융희
피드백은 댓글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용이 많거나 개인적인 내용을 전하려면 아래의 메일이나 전화로 연락주세요.
[email protected]
010-2741-0734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분홍목사 홍융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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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1

빌립보서. 제 1 장. 인사.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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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2/2021

View: 5324

빌립보서 1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빌립보서 1 · 1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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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12/29/2021

View: 8090

빌립보서 1: 성경 – 신약 성서 – Wordproject

장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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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wordproject.org

Date Published: 9/27/2021

View: 317

2021/04/08(목) “빌립보서 1:1-11” / 작성: 김광욱

[본문] 빌립보서 1:1-11 [찬송가] 299장 ‘하나님 사랑은’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인 에베소서처럼 주후 62-63년경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 연금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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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2/21/2021

View: 1669

빌립보서 1 KLB –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인 나 – Bible Gateway

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인 나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빌립보 의 모든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

+ 여기에 보기

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4/29/2021

View: 4027

빌립보서 1장 (개역개정/쉬운성경, 자비교회 성경통독)

인사. [빌]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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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eformedkjy.tistory.com

Date Published: 5/23/2021

View: 8909

[빌립보서 1장 – 교사용]

빌립보서 1장. 1. 빌립보서는 누가, 누구에게 쓴 무슨 글인가? 바울과 디모데가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들(감독, 집사)에게 쓴 편지: 다음과 같은 답이 더 좋은 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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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2/8/2021

View: 9619

【빌립보서 1장】복음의 정진 : 어떤 상황에서도 억제할 수 없는 …

1. 빌립보 교회는 바울 사도가 두 번째 전도여행에서 세운 교회이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유럽에 세운 첫째 교회이다(주후 51년경).

+ 여기를 클릭

Source: www.bonhd.net

Date Published: 12/8/2022

View: 6488

풍성한 사랑의 길 /빌립보서 1장 3~11절 – 네이버 블로그

풍성한 사랑의 길 /빌립보서 1장 3~11절 …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기억하고 생각할 때마다 바울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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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6/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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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빌립보서1장_복음에 참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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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빌립보서 1 장

  • Author: 홍융희
  • Views: 조회수 6,026회
  • Likes: 좋아요 163개
  • Date Published: 2020. 11. 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feWB7zW-67I

빌립보서 1

인사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며 간구하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1)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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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2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립보서 1: 성경

장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2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19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줄 아는고로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24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2021/04/08(목) “빌립보서 1:1-11” / 작성: 김광욱

[본문] 빌립보서 1:1-11

[찬송가] 299장 ‘하나님 사랑은’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인 에베소서처럼 주후 62-63년경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 연금된 상태에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빌립보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전도한 도시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전도하게 된 이유를 사도행전 16장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오늘날 터키 서부 지역의 유명한 유적지 ‘트로이(성경에는 드로아)’로 불리는 곳에서 전도 중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에 나타난 사람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 오늘날 발칸반도의 그리스로 갔습니다. 당시 마게도냐의 첫 성으로 불리던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왕의 부왕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건설한 도시였습니다. 빌립보는 데살로니가와 함께 마게도냐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빌립보 시민들은 로마시민권을 가졌을 정도로 로마와 동등한 특권을 누렸습니다. 빌립보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고 또한 경제가 발달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또한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주었다가 그 ‘여종의 주인’의 고발로 감옥에 갇혔고, 감옥에 갇혔을 때는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와 그의 가족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유럽 최초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후 약 10년의 세월이 지나서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갇혔습니다. 이를 알았던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에바브로디도’라는 사람을 파송하여 투옥된 바울을 물질적으로 도왔습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가 로마에서 바울을 섬기다가 병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빌립보 성도들이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빌립보서를 쓰면서 ‘에바브로디도’가 하나님의 긍휼로 회복된 것과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로 복귀시킬 것과 빌립보 성도들에게 위로와 감사를 전합니다. 비록 바울이 자유의 몸이 아니지만, 빌립보 성도들에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동정심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서를 통해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 겸손과 희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는 다른 서신들처럼 특정한 주제나 문제를 다루지 않고, 성도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빌립보서에는 ‘기쁨’이나 ‘기뻐하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를 ‘기쁨의 서신’으로 부릅니다. 빌립보서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성도들에게 주님 안에서 기쁨을 잃지 않도록 하는 희망을 주는 편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서신의 첫 인사말과 빌립보 성도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감사와 중보기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1-2절)]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빌립보서의 공동 발신자로 디모데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언급한 이유는 약 10년 전 바울이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디모데를 대동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디모데를 빌립보로 속히 보낼 계획(빌2:19)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항상 자신이 주님의 종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종으로 번역한 ‘둘로스’는 집사의 개념이 아닌 의사 결정권이 없는, 주인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노예를 뜻합니다. 바울이 주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주님의 종임을 자신 있게 밝힐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주님의 종’이라고 부르거나 타인에 의해 이렇게 불린다면 주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바울이 서신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 대상은 자신과 디모데를 비롯하여 빌립보 교회의 모든 성도입니다. 성도는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거룩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카도쉬’와 같은 의미입니다. 성도는 세상과 구별된 사람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주님과 연합한 자로서 거룩한 삶을 살고 있음을 바울은 알았습니다. 성도 다음으로 언급한 ‘감독’은 교회의 직분을 나타내며 당시 빌립보 교회의 영적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었고, 행정과 복지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감독’과 ‘장로’를 직무상 동일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성도와 감독 다음으로 언급한 ‘집사’는 초대 교회에서 일곱 집사를 세운 목적처럼 구제하는 직무를 맡았습니다.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은혜와 평강은 사도 바울이 자주 사용하는 인사말이자 축복의 말입니다. 우리 역시 교우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임하기를 축복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평강이 없이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3-8절)]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생각’으로 번역한 ‘므네이아’는 ‘기억’ 또는 ‘회상’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 있었기에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입니다. 좋은 기억이란 바울이 약 10년 전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의 열매를 맺고, 주님 안에서 그들과 기쁨을 누렸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사도 바울과 헤어진 후 지속적으로 바울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에 갇혔을 때,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을 후원하기 위하여 연보를 하였습니다(빌2:25, 빌4:18). 우리가 누군가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할 정도로 서로 기쁨을 주고받았다면, 그 좋은 기억이 항상 자신을 감사의 생활로 이끌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기억을 많이 남기기 위해 현재의 삶 가운데 기쁨을 주고받는 성도의 교제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간구’로 번역된 단어의 원형은 ‘결핍’과 ‘부족’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는 우리가 무언가 결핍되어 있거나 부족할 때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신의 결핍과 부족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아니라 빌립보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억지나 의무감이 아닌 기쁨으로 항상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바울처럼 되면 좋겠지만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자신의 결핍과 부족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만큼 구역 식구와 교우를 위해 기쁨으로 간구하는 성도가 되십시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간구한 이유는,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5절의 ‘첫날부터 이제까지’는 빌립보 성도들이 복음을 듣고 주님 안에서 변화된 이후부터 바울이 로마에서 편지를 쓰는 순간까지입니다. 물론 빌립보 교회의 관심은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일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할 때입니다. 죄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 더 큰 기쁨을 누리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인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착한 일은 우리 스스로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착한 일을 하도록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착한 일’이란 정직하고 올바르게 행하는 일, 모든 종류의 선행을 뜻하기도 하지만 착한 일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구원의 완성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이루어집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 불완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의롭게 해 주셨고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구원의 완성이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주님께서 예비하신 곳으로 들어가는 날에 이루어집니다. 그날까지 성도를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잊지 마십시다. 바울이 이를 확신하고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7절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위하여 6절과 같이 생각하는 이유로 첫째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다’입니다. ‘마음’으로 번역된 ‘카르디아’는 ‘심장’을 뜻합니다. 이 단어는 주로 ‘정신적으로 중요한 자리’를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이처럼 빌립보 성도들이 사도 바울의 마음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둘째 이유는, 바울이 로마에서 연금이 된 상태에서도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을 멀리하지 않고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나의 매임’은 사슬에 매인 상태를 뜻합니다. ‘변명함’은 복음에 반하는 가짜 복음을 반박하고 진리를 변증했던 일을 뜻합니다. ‘확정함’은 진리를 변증함으로써 복음을 굳게 세웠음을 뜻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과 함께 참여하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의 성도들이 바울을 따라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라고 말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귀한 가르침을 줍니다. 오늘날 교회가 국내외 전도를 위해 수고하는 선교사나 선교단체를 기도와 물질로 돕는 일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님을 잊지 마십시다. 바울은 비록 몸은 빌립보 성도들과 떨어져 있으나 빌립보 성도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바울 역시 그들을 얼마나 사모하고 있는지를 8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심장’은 7절의 ‘마음’으로 번역한 단어와 다릅니다. 8절에서 심장으로 번역된 헬라어의 원형, ‘스플랑크논’은 심장, 창자, 간, 폐 등 중요한 장기를 총칭하는 단어입니다. 상징적 의미로는 ‘애정’, ‘자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애정 또는 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자신을 십자가에서 몸이 찢기게 하시고 피를 흘리게 하시기까지 하셨던 희생적 사랑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사모하였습니다. 바울은 단지 문학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누구를 사모한 적이 있으십니까? 이 질문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역시 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성도를 사모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9-11절)]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이 9절에서 11절까지입니다. ‘내가 기도하노라’는 직설법 현재 시제로 바울이 한 번만 기도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기도해 왔다는 뜻입니다. 중보기도의 첫째는 빌립보 교회가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길 원함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으로부터 기인된 사랑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이기적이지 않고 조건이 없는, 자기희생적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알지만 아가페 사랑을 충족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의 결핍이 있기에 결핍된 사랑을 점점 더 풍성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바울의 기도 내용을 통해, 아가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지식과 총명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고, ‘총명’은 통찰력과 분별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고 ‘분별력’이 떨어지면 교회에서 주님을 위한 헌신과 사랑이라는 것들이 오히려 오해와 다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통찰력과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하며 통찰력과 분별력을 높여 줍니다.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중보기도의 둘째는 빌립보 성도들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기’를 원함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악한 것과 선한 것을 분별하고 선한 것 중에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지식과 통찰력과 분별력을 키워야 합니다. 바울은 이어서 ‘진실하여 허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이는 세속적인 가치관에 빠지지 않고 구별된 삶을 유지하기를 원함인데 언제까지 이렇게 되기를 원하느냐면, ‘그리스도의 날까지’입니다. ‘그리스도의 날’은 6절에서 말한 ‘예수의 날’과 같은 날로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입니다.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중보기도의 셋째 내용입니다. 의의 열매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 성화의 삶을 뜻합니다. 의의 열매가 가득히 맺히려면 자신이나 세속적인 가치관을 주춧돌로 삼지 않고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주님을 주춧돌로 삼아야 합니다. 머릿돌 되신 주님 없이 우리 스스로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주춧돌로 삼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에게 의의 열매가 가득할 때 이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은혜와 평강, 감사와 기쁨이 넘치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희가 그것을 온전히 누리지 못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을 주춧돌로 삼아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함으로 감사와 기쁨을 누리게 하시옵소서.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성도를 사모하는 자가 되도록, 지식과 총명이 동반된 하나님의 사랑이 저희 안에 점점 더 풍성해지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까지 ‘진실하고 허물없는’ 삶을 살고, ‘의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1절에 언급하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 ‘성도’, ‘감독’, ‘집사’ 중 어느 ‘호칭이나 직분’이 마음에 끌립니까? 주님의 종은 어떤 사람입니까?

2. 누구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가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3. 빌립보 성도들이 ‘복음에 참여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에 참여할 수 있는 일은 어떤 일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람을 사모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은 어떻게 이식받을 수 있겠습니까?

5. 바울의 중보기도 중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실천 사항은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작성: 김광욱)

빌립보서 1장 (개역개정/쉬운성경, 자비교회 성경통독)

인사

[빌]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를 믿는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들과 지도자들과 집사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빌]1:2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기를 빕니다.

바울의 기도

[빌]1:3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빌]1:4 또한 늘 기쁨으로 여러분 모두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빌]1:5 여러분은 제가 복음을 전할 때, 늘 도움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복음을 들은 그 날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도 그러합니다.

[빌]1:6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일하고 계시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마지막 그 날에 그 모든 선한 일을 확실히 완성하실 것입니다.

[빌]1:7 여러분을 이처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여러분은 제 마음속에 늘 살아 있습니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나 복음을 지키고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는 그 모든 시간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나와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

[빌]1:8 내가 여러분을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빌]1:9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나날이 커지고, 그 사랑으로 더 풍성한 지식과 통찰력을 갖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빌]1:10 선함과 악함을 분별하여 선한 것을 선택할 줄 알게 되어서,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에 깨끗하고 흠 없는 모습으로 서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빌]1:11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정하시는 의의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이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의 일에 도움이 되다

[빌]1:12 형제 여러분, 내가 당한 고난이 오히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빌]1:13 내가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이유로 죄 없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모든 경비대와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습니다.

[빌]1:14 비록 내가 감옥에 있으나, 오히려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자신감을 얻어 더욱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빌]1:15 그 중에 어떤 이들은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돕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전도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빌]1:16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돕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복음을 지키는 일에 힘쓰도록 부르셨다는 사실을 알고,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애쓰고 있습니다.

[빌]1:17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신들이 높아지기를 원하는 뜻에서, 또 감옥에 있는 나를 속상하게 하려고 더 열심히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빌]1:18 하지만 그들이 내 마음을 속상하게 한다 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전하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이것 때문에 기뻐하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입니다.

[빌]1:19 여러분이 나를 위해 계속 기도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나를 돕고 계시기 때문에 내가 풀려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빌]1:20 내가 바라고 또 바라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를 배신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항상 용기를 가지고,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를 높이기 원합니다.

[빌]1:21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죽는 것도 내게는 유익합니다.

[빌]1:22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고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다면, 사는 것과 죽는 것 중에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빌]1:23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가 힘이 듭니다.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 곁에 있고 싶은 까닭은 그것이 훨씬 행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1:24 그러나 여러분을 위해서 이 세상에 있어야 할 줄을 알고 있습니다.

[빌]1:25 내가 여러분 곁에 머물러 여러분의 믿음을 자라게 하고, 또 기쁨을 누리도록 도와 줄 필요가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빌]1:26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 가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빌]1: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들은 자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내가 함께 있든지 떠나 있든지 여러분에 관해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듣기 원합니다.

[빌]1:28 여러분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는 증거이며, 그들이 멸망할 것이라는 증거입니다.

[빌]1:29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특권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특권도 주셨습니다. 이 두 가지 모두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1. 빌립보서는 누가, 누구에게 쓴 무슨 글인가? 바울과 디모데가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들(감독, 집사)에게 쓴 편지: 다음과 같은 답이 더 좋은 답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사는 모든 성도에게 쓴 편지.’ 1차적으로는 바울이 자신이 세운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였지만 거기서 머물지 않고 모든 성도들에게 전해지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고 말았다. 결국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편지이다. 성경전체가 그러하다. 2. 우리나라의 편지 서두는 주로 날씨나 안부를 묻는다. 바울의 서두는 어떻게 다른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빈다: 인사란 그들의 관심사를 반영한다.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에는 ‘진지 드셨습니까?’, ‘밥 먹었나?’가 인사이고, 위험한 시절을 많이 겪은 민족은 ‘안녕하십니까?’, 날씨가 항상 궂은 나라에서는 ‘Good morning’이라고 인사한다. 바울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었다. 우리의 관심사는 어디에 있는가? 최근에는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도 등장했다. 일회성이라면 몰라도 이것이 좋은 인사로 자리 잡는다면 아무리 우리 사회가 물질만능, 황금만능의 시대라고는 해도 도가 지나치다. (3-11) 3. 빌립보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마음이나 태도를 나타내는 말을 전부 찾아서 두 개의 동사로 요약해보자. 생각, 감사, 간구, 기쁨,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함, 확신, 사모, 기도,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감사하다, 보고싶다(감사와 간구): 그렇게 기쁜 이유는 무엇인가? 복음 안에서 교제함이라.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잘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다. 돈으로 살 수 없고, 어느 누가 줄 수도 없는 기쁨이다. 돈을 차곡차곡 모으는 기쁨도 적지 않다. 좋아하는 것을 수집하는 재미도 괜찮다.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몰며 뻐기며 사는 것도 큰 기쁨이다. 그러나 끝까지 변함없는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온다. 자신이 전한 복음을 듣고 복음 안에서 지금까지 교제를 나누는 것(5)이 더 없는 기쁨이었다. 4.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란 누구인가(6)? ‘착한 일’이란? 이 일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 예수: 빌립보 교회의 시작은 바울과 루디아의 만남에서 시작된 것이다(행 16).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고, 그로 인하여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런데 이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란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통해서 일을 하신다. 그것을 잘 깨달은 바울은 자신이 최선을 다하고도 결코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았다. 자랑할 것이 전혀 없다고 했다(고전 9:16).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 안에서의 교제: 하나님 편에서 보면 빌립보 성도들을 구원하신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6, 10): 비록 의인이라는 칭함을 받았지만 완전하지 못한 우리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영과 육이 새롭게 완성될 것이다. 5.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하는 것과 확증하는 일’에 참여하였다고 한다(7). 어떻게?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 안에서의 교제함으로: 지금 바울은 감옥에 있지만 빌립보 성도들이 함께 갇힌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매임에 참여했다는 말인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 안에서의 교제가 바울에게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어 더 힘껏 맡은 바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참여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일하는 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학생이 선생님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더구나 다른 편지에서는 자신이 사도임을 자주 언급하지만 여기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만큼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을 인정하고 깊은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이다. 6. 이순신 장군이 남겼다는 시에 ‘어디선가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긋나니…’란 구절이 있다. ‘애를 긋는다’는 것은 지독한 아픔을 뜻한다. ‘애’와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를 본문에서 찾고 바울은 무슨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심장(8): 원래 이 단어는 내장을 가리키는 단어이다(행 1:18절의 창자와 동일함). ‘간절한 마음’이란 뜻으로 사용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란 성도를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와 자신을 주신 바로 그 간절한 마음이다. 7. 바울의 기도(9-11) 속에는 구구절절이 빌립보 성도들에 대한 감사가 묻어난다. 그들을 향한 기도제목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면 무엇인가? 사랑이 풍성하게 자라고: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라 지식과 총명이 더해져서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랑을 소유하기를 기도했다.

진실하고: 세상이 악해서 도저히 진실하게는 살 수 없다고? 당시에는 진실의 문제가 주로 생사문제와 관련된 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대체로 소유의 문제이다.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과 좀 더 분명한 선을 긋고 그리스도의 날까지 허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영적인 열매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맺는 의의 열매는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된다(11). 이것은 초대 교회 성장의 비결이었다.

절 구분이 약간 애매하여 오히려 독해에 장애를 주고 있다(10절). ‘또 진실하여…’ 앞에서 절이 구분되어야 한다. 8. 귀여운 아들이 먹고 싶다고 달라는 대로 다 주었더니 돌이킬 수 없는 비만아가 되었다. 그 엄마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기에 이런 문제가 있는가? 지식과 총명이 없는 사랑(9): 무조건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주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주지 않는 아픔도 감내할 수 있어야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불신자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주원인은 ‘지혜 없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이다. 믿는 자답게 살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12-30) 9. 나의 당한 일이란(12)? 감옥에 갇힌 일: 3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고, 공정치 못한 재판과 이유없는 오랜 구금에 항의하여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함으로 로마로 압송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마에 가고 싶어하던 바울의 소원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감옥에 갇힌 사람이 ‘억울하게 갇혔다’고 분함을 억지로 참고 견디는 수도 있는 반면에, 바울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주셨다’고 감사할 수도 있다. 10. 바울이 열심히 전도해서 많은 교회를 세워놓았는데 지금은 죄수의 몸이 된지 오래되었다. 염려되는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자기가 갇힌 것 때문에 성도들이 낙심하거나 흩어지는 일: 유대인의 왕이 되기를 바라며 예수를 따라 다녔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뿔뿔이 흩어져 버렸던 적이 있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것은 그 한 사람이 사라질 때 한꺼번에 사라질 위험이 있다. 후계자나 동역자 없이 혼자서 일을 잘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11. 자신의 갇힘으로 예상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1) 자신이 갇힌 것은 복음을 전하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평소에 전하지 못하던 사람들에게까지(시위대 안) 전할 수 있게(진보) 되었다.

2) 자신을 괴롭힐 목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어도 예수만 전해진다면 기뻐한다.

3) 자신의 죽고 사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다.

4)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고난도 은혜임을 아는 것이다. 12. 바울의 전도 대상은 대체로 일반인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이었는데 그가 갇힘으로 말미암아 전도 대상이 바뀌었다. 본문에 나타나는 대로라면? 시위대 안의 사람들(기타 모든 사람들) 13. 바울이 갇히게 되자 두 종류의 전도자가 생겼다. 갇힌 바울을 대신하여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한 전도자는 착한 뜻으로, 사랑으로 복음을 전했다. 반면에 바울에게 괴로움을 주기 위하여 시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단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길래 복음을 전하는데 그것이 바울에게 괴로움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요즈음에도 그 비슷한 일이 있을까? 영역 싸움: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려는 의도가 아닐까? 이기심에서 사람을 자기의 영향력 아래 끌어 모으는 일, 현대식으로 말하면 교회간의 성도 쟁탈전이나 선거를 앞두고 표를 모으는 일 따위일 것이다. 교회가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각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14. 순전치 못한 이유로 복음을 전함으로 바울을 괴롭게 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바울이 전혀 약발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바울에게는 자신의 공로를 계산하는 이기심이 전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존귀하면 되기 때문이다. 15. 순전치 못한 동기로 복음이 전하여져도 그리스도만 전하여 진다면 기뻐하리라. 그러면 상을 타기 위한 전도나, 교회간의 경쟁, 명예심에서 나온 열심, 남이 알아주기를 기대하고 섬기는 일, 등을 권장해도 괜찮다는 뜻인가? 남이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하여 관대한 것이지 바울 자신은 결코 그러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옳지 못한 행위에 대해서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일 뿐이다. 16. 19절의 ‘이것’이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뜻한다. 19절의 ‘구원’은 영적인 구원을 뜻할까? 아니면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을 말할까? 양쪽을 다 의미한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보자.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 감옥에서 쓰는 편지이므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다.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소망도 있으므로(25-26절).

영적인 구원: 감옥에 갇혀있다고 원망하지도 않고 오히려 복음의 진보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뿐 아니라 뒤이어 죽고 사는 문제에 초연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23).

아무래도 바울 자신이 이 두 가지를 다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기독교의 구원이 영, 육 간의 구원임을 감안하면 그럴 수 있겠다. 바울이 말하는 요점은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너희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리라는 것이다. 17.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이 어떠할까? 초조, 긴장, 불안… 바울의 심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간단한 말을 본문에서 찾는다면? ‘전과 같이 이제도'(20절, 온전히 담대하여 그리스도만 증거하리라): 재판의 결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느냐’에 관심이 있다. ‘담대하여’도 괜찮은 답이긴 하지만…

25-26절을 참고하면 자신의 무죄 석방을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요는 관심사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도 평온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18.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는 문제는 정말로 어려운 문제이다. 바울에게는 전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살아야 하는 이유와 죽어도 좋은 이유를 말해보자. 죽어도 좋다: 내게는 유익이다.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한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산다면 바라는 바다.

살아도 좋다: 너희에게 유익이다. 19. 바울은 이상한 죄수이다. 스스로 체포될 것을 알고 체포될 곳으로 갔고, 죄수의 몸으로라도 로마에 가기를 원했고, 호송 도중에 모든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했으며 감옥에 갇혔어도 자신의 구명에는 별 신경쓰지 않고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일에 몰두했다. 본문 중에서 우리가 그렇게 말하면 웃기는 말이 되어도 바울의 말이기에 동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 있다면?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20),

(죽음과 삶 중에) 무엇을 가릴는지 알지 못하노라(22),

죽는 것도 유익이라(21). 우리가 이런 말을 해도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 삶을 살자. 20. 영국의 유명한 문학가가 미국에 건너가서 가난하고 못생기고 멍청한 여자와 결혼을 했다. 왜 그런 여자와 결혼을 했느냐고 사람들이 물으니, “:내가 아니면 이 불쌍한 여자와 누가 결혼을 하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물론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돌았다고 했는데 사도 바울(15-24)과 이 문학가 중에 누가 더 심한가? 왜? 바울: 1) 필생의 임무를 빼앗겨도 좋다: 가족도 없이 친구도 없이 인생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헌신하던 그 일이다. 그것마저도 놓은 수 있다. 2) 그 분을 위해서라면 죽음 앞에서도 초연하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는 살짝 돈(?) 사람들이 많이 있다. 도는 것도 종목을 잘 골라서 제대로 돌아야 한다. 21. 바울에게 있는 갈등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갈등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극히 싫은 것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갈등은 심각하겠지만 바울은 둘 다 좋아하면서 갈등하고 있다. 이런 갈등도 갈등이라고 해야 하나? 22.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가리켜 복음을 변명(변증?)하는 삶(7, 16)이라고 말한다. 빌립보 성도에게는 조금 다르게 말한다. 앞에서 바라는 바를 말한 적이 있었지만(9-11), 이제 또 여러 말로 권면을 하는데(27-29) 한 마디로 요약하면 무얼까? 복음에 합당한 삶(27):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은 ‘일심으로 협력하라’, ‘대적자를 두려워 말라’, ‘고난도 달게 받으라’는 것이다. 23. 싸우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승리의 징조가 보인다면 그것이 상대방에게는 패배의 징조가 된다. 믿는 성도들에게 구원의 증거(빙거)가 되는 것이라면 박해자에게는 멸망의 증거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무엇인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던 사건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바울의 이런 말을 잘 이해했을 것이다. 24.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난 후에 고향을 떠나 방황하는 아픔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두려워 남을 속이기도 하고, 아들을 바쳐야 하는 고통도 배운다. 양을 치던 다윗이 어느 날 사무엘을 통하여 왕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그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형극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사울은 예수를 만난 후에 기존의 모든 것을 버렸다. 하나님을 알고 난 후에 잘 먹고 잘 살다가 잘 죽은 사람은 극히 드물다. 도대체 왜 그런가? 하나님의 은혜에는 고난도 포함되어 있다(29). 25. 고난을 기꺼이 받으라면서 ‘내 안에서 본 바’라는 것을 요즈음 식으로 하면 ‘내 간증을 듣고 은혜를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빌립보 성도들이 무엇을 보았을까?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던 사건: 빌립보 교회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세워졌다는 것을 성도들은 다 잘 알았을 것이고 따라서 고난의 의미를 잘 이해했을 것이다.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라는 것은 현재 옥에 갇혔지만 이것 역시 복음의 진보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처음으로

【빌립보서 1장】복음의 정진 : 어떤 상황에서도 억제할 수 없는 기쁨

고경태 목사. 광주 망월동 주님의교회 목사. 크리스찬타임스, 한국성경연구원, 세움선교회, 크리스찬북뉴스

1. 빌립보 교회는 바울 사도가 두 번째 전도여행에서 세운 교회이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유럽에 세운 첫째 교회이다(주후 51년경).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 것은 기적이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로 네압볼리에 도착했는데, 거기에서 전도하지 않고 빌립보 지역으로 이동했다. 바울의 선교전략은 지역 중심 도시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케도니아 지역 첫 성이 빌립보였다.

빌립보는 로마 군인의 도시인데, 회당이 없을 정도로 유대인이 거주하지 않았다. 바울은 안식일에 기도할 장소를 찾아 강가로 갔는데, 거기에 자주장사 루디아와 극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루디아와 그녀의 가족이 세례를 받고, 루디아의 집을 근거로 전도활동을 전개했다. 기도하러 가는 도중에 귀신들린 여종인 바울을 방해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쫓아버렸다. 여종의 주인은 경제적 피해를 받았는데 소란죄로 고발했다. 이방인인 바울은 무고하게 참형을 받고 투옥되었다. 빌립보 감옥에서 극적으로 간수와 그의 가족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아침에 바울은 자신이 로마인임을 밝히고 당당하게 감옥나와 데살로니가로 이동했다(참고 사도행전 16장).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회당이 없는 곳이었고, 여자가 첫 세례자였다. 그리고 도저히 복음에 접근할 수 없는 간수가 예수를 믿었다. 빌립보 교회는 기적적으로 세워졌지만, 힘든 교회였다. 그러나 복음의 확신과 소망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다. 바울을 변함없이 지지하고 후원한 대표적인 교회이었다.

2.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디모데와 함께 빌립보에 편지를 한다. 바울이 빌립보에 보내는 편지는 로마 감옥에서 썼다(빌 1:13). 빌립보서는 바울 사도가 쓴 서신 중에서 밝고 기쁨에 찬 편지이다. 그럼에도 빌립보 교회에는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 사랑과 성령이 충만한 상황에서도 교회 안에 여러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빌립보에 성도, 감독, 집사에게 편지를 했다(빌 1:1). 성경에 집사는 현재 한국 교회에 있는 집사와 재정을 관리하는 기능은 같지만, 교회 안에서 위치는 다르다. 장로교(개신교) 집사는 16세기 종교개혁에서 새롭게 제정된 교회 질서이다. 종교개혁에서 집사는 성직자에서 평신도로 구별시켰다.

3.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기원했다(빌 1:2). 은혜와 평강의 기원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삼위일체 축복이다(참고. 민 6:24-27). 바울은 축복으로 편지를 시작하고 있다.

4. 바울은 로마로 죄수의 몸으로 이관되었다(행 28장). 로마 군사들은 가이사에게 항소한 바울을 가택 연금(軟禁)시켜 통제되었지만,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기뻐하라고 확신으로 외치고 있다. 바울에게 있는 기쁨은 주 예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감옥과 연금이 억제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복음의 기쁨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누릴 수 있도록 오히려 격려하며 가르치고 있다. 필자는 6.25 동란에서 순교자가 많은데, 의외로 목사는 적다고 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목사들이 많은 고초를 당했는데, 6.25에서는 목사들이 순교를 적게 했다. 목사는 언제나 가장 큰 고난에서 기쁨과 확신으로 성도와 교회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5. 빌립보 성도에게 기도의 내용을 밝히는 바울.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면 감사와 기쁨이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3-5절). 바울은 13편의 편지(혹은 히브리서까지 포함하면 14권)를 썼는데, 감사와 기쁨이 가장 잘 표현한 곳은 빌립보서이다. 가장 격한 감정 표현은 갈라디아서이고, 문제가 가장 많은 교회는 고린도 교회(고린도전서와 후서)이다. 바울 사도는 매우 힘든 역경 속에서 교회를 세웠고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 편지를 써서 교회를 유지했다. 사도 바울은 자시이 개척한 교회뿐만 아니라 개척하지 않는 교회에도 주의 사랑으로 기도하며 돌봤다(골로새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첫날부터 변함없이 유지하며, 사도의 가르침에 서 있는 것을 기뻐했다. 그래서 바울은 확신과 기쁨으로 간구(懇求, pray)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유지될 수 있기를 간구했다(빌 1:6). 빌립보 교회에 대해서는 특별히 감사와 기쁨이 넘쳤는데, 그것은 빌립보 성도들이 처음 복음을 듣던 날부터 지금까지 그 복음 안에서 살아가며 교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갈라디아 교회도, 고린도 교회도, 많은 교회가 처음 사도에게 들었던 복음에서 벗어날 위기를 겪은 바 있다. 빌립보 교회는 달랐다. 이것은 사도의 마음에 이들을 생각할 때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이유였다.

또한 사도는 이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의 날까지 그 일을 마치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빌립보 교회는 가난한 교회였지만, 사도의 복음 사역에 기도와 재정 지원으로 참여했던 교회이다(7절, 고후 8:1~5). 필자는 교회를 개척하면서 가진 가장 큰 제목을 교회에 준 것은 우리가 세운 교회가 주께서 오신 날에 거룩한 신부로 존재해서 맞이하는 것이다. 교회 사역자의 경륜이 얼마나 크고 웅대한 것인가? 수백억 원으로 건축한 예배당들이 이단에게 매각되는 상황을 볼 때 마음이 너무 아프다.

6.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우들을 사모하는 바울.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건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빌 1:7).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우들을 사모한다고 고백한다(8절).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를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을 향한 자신의 애틋한 마음을 전한다(8절). 바울의 심정을 아는 분은 하나님뿐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서 늘 기도했다(빌 1:9-11).

바울은 지식과 총명으로 사랑이 풍성하게 되도록 기도 한다(9절, your love may abound more and more, with knowledge and all discernment-ESV). 부족한 지식과 총명은 미숙한 사랑이여서 교회에 문제를 발생시킨다. 참된 사랑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영적 지혜에서 비롯된 총명에서 나온다. 그래서 사도는 지식과 총명에 근거하여 충만해질 사랑을 구한다(참고. 엡 3:14-19).

사도는 빌립보 교우들에게 분별력을 주시기를 구한다(10절). 분별력을 요구하는 것은 참과 거짓이 교회 안에 있다는 위험 경고이다. 교회는 영(靈)과 도덕(道德), 윤리(倫理)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서신에서는 복음의 진리에 대한 분별력을 말하는 것인데, 모두를 포함해서 분별해야 한다. 분별력은 무엇이 선(善)인지, 악(惡)인지 구분(區分)하는 것이며, 무엇이 지극히 선한지를 알고 그것을 구별(區別)하여 행하는 지혜다. 바르게 분별할 수 있도록 교회는 거룩하며 효율적으로 운영될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을 위해서 주의 령(靈)께서 바울에게 편지를 쓰도록 하셨고 기도하도록 하셨다.

마지막으로 사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바라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11절). 자기 의의 열매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의 열매를 말한다. 이렇게 될 때 빌립보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될 것이다. 이것이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다. 이 기도야말로 오늘날 우리 시대의 모든 교회들이 필요로 하는 내용이고 간구할 기도이다.

7. 바울의 기쁨: 예수 이름이 전파됨 – 교회가 든든함

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 갇힌 것을 계기로 경쟁 관계로 생각하던 사역자들이 기회로 생각하고 열심히 복음을 전도했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던 사역자들도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현상이 발생했다(12-18절).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입성했다. 그런데 로마에는 이미 교회가 형성되어 있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로 가려했지만 허락되지 않아 로마서를 써서 먼저 보냈고, 예루살렘을 통해서 로마에 들어갔다. 어떤 교회 사역자들은 옥에 갇힌 바울을 놓고 기회로 여겼다. 그래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바울에게 그러한 시기심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시기하고 열심히 사역하는 전도자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더욱 열심하기 때문에 오히려 기뻐했다. 어찌되었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어찌되든지 그리스도의 복음만 전파되면 좋겠다고 기쁨의 선언을 했다.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8절)

바울이 감옥에 갇힘으로 교회는 더욱 더 복음을 전했다. 바울은 자기가 약함으로 강해지는 원리를 알고 있었다(고후 12:1-10).

8. 바울의 존재 목적: 빌립보 교우를 위한 유익

사도의 마음 속에 있는 유일한 소원과 관심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자신을 통해서 존귀하게 되는 것이었다(19-21절).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主)의 영광만이 존재와 사역의 목표였다. 사역자는 목표가 성취되면 기쁜 것이고 목표가 퇴보하면 슬프다. 사역의 목표를 훼방하는 세력에 대해서 분노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몸을 관제(灌祭)로 드림(빌 2:17), 신령한 산제사를 드림(롬 12:1-3)으로 표현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고전 1:18-25)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했다.

소요리문답 1문은 인간의 존재 목적에 질문에, 하나님의 영광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함으로 답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기 존재 목적이 너희를 위함으로 고백했다(빌 1:24). 바울은 이미 죽음을 수 없이 경험한 상태였다. 그래서 세상을 떠남에 미련이 없을 정도였다(빌 1:23). 간혹 세상에서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전도하다가 죽음의 고비를 수 없이 넘긴 사람이다. 복음을 전도하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바울은 담대하게 빌립보 교우들에게 자기 존재 목적을 밝힌다. 자기를 밝힐 수 있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상급이다.

사도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이름만 남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생의 목적’을 성취했기 때문에 ‘생의 목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이 마감하여도 여한이 없다. 그럼에도 생이 끝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생명의 주관자께서 자신의 기관인 교회를 위해서 바울의 생명을 거두지 않으신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가 살고 있다고 담대하게 고백한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기도하는 것이 자기 존재목적이다(27절).

복음을 위해서, 복음의 가치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일심으로 협력해야 하는 것이 교회다(27절). 교회를 세우신 그리스도께서 천상에서 교회와 전 우주를 통치하신다. 교회는 보좌와 어린양의 이름이 존귀하도록 해야 한다. 주께서 은혜를 주셔서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받도록 하심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29절). 사도는 자기가 복음을 위한 영적전투는 사도만 홀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도 함께 싸워야 할 싸움임을 밝힌다(30절). 빌립보 교회는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로서 이 싸움을 계속해서 감당해주기를 격려한다. 믿음이 성숙할수록 영적전투는 더욱 교묘하고 치열해진다. 영적전투는 결코 끝이 없다. 이 싸움은 주의 재림으로 끝나기 때문에, 성도는 싸움의 끝인 재림을 사모한다. 그래서 마라나타를 고백하며 인내하며 복음을 정진한다.

9.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졌는가? 심장에서 피를 공급한다. 그리스도의 심장에서는 그리스도의 피를 공급한다. 바울이 가진 그리스도의 심장은 그리스도의 피를 공급한다. 심장이 박동해서 피를 순환시키면 생명은 유지된다. 피가 돌면 생명은 유지된다. 그리스도의 피로 사는 사람은 리스도로 말미암아 산다. 그리스도의 피, 십자가, 그 피가 흐르는 복음의 사람이 사역자이고 성도이다. 그래서 사역자나 성도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피, 한 형제, 하나이다.

복음만 있으면 만족하고 기쁘다. 빌립보 교회가 그 어려운 환경에서 이 복음으로 기뻐하며 바울의 사역을 지원했다. 왜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울을 지원했을까? 그것은 복음에 대한 확신과 기쁨 그리고 사랑이다. 21세기인 지금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기뻐하고 역동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이 복음은 천상에게 계신 주 예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거저주시는 풍성한 은혜이다. 빌립보 교회가 확신을 갖고 바울을 지원했던 것처럼 지원할 수 있고, 감옥에서 자신을 시기한 동역자들의 억지춘양에도 바울처럼 기뻐할 수 있다.

10. “전능하신 하나님, 주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의 지체로 함께하심을 감사합니다. 주의 교회를 세운 복음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많은 시험과 유혹이 있고, 특별히 동역자에게도 갖는 시험도 있습니다. 나의 분깃을 알고 자족하며 믿음의 정진을 하게 하옵소서. 오직 주의 복음으로 힘을 얻고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옵소서. 그래서 모두가 복음이 증진될 수 있도록 하옵소서. 주께서 영광을 받으면 주의 종으로 기뻐하게 하옵소서. 사나 죽으나 주와 함께 기뻐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를 앎에 지각과 분별이 깊고 충만케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풍성한 사랑의 길 /빌립보서 1장 3~11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저는 주일이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모릅니다. 일주일 중에서 가장 기대되는 날이 바로 주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온 성도님들과 더불어 예배드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을 이 복된 주일에 다 같이 만나 뵐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이 복된 주일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토요일이라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토요일은 일주일 중에 가장 힘들고 긴장되는 날입니다. 아마 한국교회의 모든 사역자들이 그렇겠지만, 사역을 시작한 이래로 토요일 밤에 평안하게 잠들어 본 적이 잘 없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는 작업은 고되고 힘든 작업입니다. 여러분이 들으시기에는 그냥 감동되는 대로 아무 말이나 막하는 것 같으시겠지만, 사실 안 그렇습니다. 설교 한 편을 준비하기 위해 심적으로 부담을 많이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교회 모든 설교자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복된 주일에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주일이 기다려지는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또 성도님들 서로서로 얼굴을 맞대고 교제하는 기쁨을 고대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바울의 감사와 기쁨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여러분 만약 감옥에 갇힌다면 어떤 심정이시겠습니까? 그것도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다면 어떠하시겠습니까? “에이, 괜히 예수 믿어가지고…” 그러시겠습니까? 바울이 감옥에서 쓴 편지가 무려 4권입니다. 줄여서 ‘엡빌골몬’이라고 하는데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이렇게 4권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옥중서신들을 읽어보면 바울에게서 전혀 낙담과 좌절과 분노와 후회의 느낌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바울에게서 넘치는 감사와 기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절과 4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3~4절)

여기에서 바울이 사용한 단어를 보십시오. 감사, 간구, 기쁨… 분위기가 우울합니까? 다운되어 있습니까? 좌절하고 있습니까? “에이, 나 예수 괜히 믿었다.” 이러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바울은 지금 넘치는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한 상태입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기억하고 생각할 때마다 바울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도 감사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말 신비입니다.

감사는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대게는 상황과 환경이 좋을 때 감사를 합니다. 이런 감사를 “그래서” 감사라고 합니다. “하나님 승진하게 해주셔서 그래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업을 확장시켜주셔서 그래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시험 성적 잘 거두게 하셔서 그래서 감사합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감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기 힘든 감사는 “그래도 감사”입니다.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입니다. “내 상황과 환경은 정말 말도 안 되게 어렵고 힘들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합니다.” 지금 바울의 감사는 이런 차원의 감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감사가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 아닙니까?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보이는 현실에는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하나님만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겠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이렇게 감사하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의 감사도 “그래도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바울의 감사를 한 번 들여다봅시다. 바울이 왜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바울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한다고 합니까? 5절입니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하여고 있기 때문이라”(5절)

바울이 감사하고 기뻐했던 이유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복음’과 ‘참여’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참여’는 헬라어로 ‘코이노니아’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교제’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들 코이노니아, 코이노니아 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 단어가 본문에서는 ‘참여’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복음에 참여한 바로 그 일 때문에 바울은 감옥 속에서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이렇게 복음을 위해서 함께 참여함으로 인해서 바울에게 큰 감사와 기쁨을 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의 교제(코이노니아)와 친교에는 반드시 복음이 빠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교제에 반드시 복음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성도의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함께 복음을 위해서 고생하고, 수고하고, 헌신하는 그런 교제가 진정한 성도의 교제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함께 힘쓸 때에 우리는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에 복음이 빠지면 어떻게 됩니까? 세상의 사교집단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동아리도 아니고, 계모임도 아닙니다. 거기에는 복음이 없습니다. 예수가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습니다. 교회가 그런 교제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복음 안에서 교제해야 그것이 성도의 교제, 성도의 코이노니아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의 첫 번째 강조점이 복음에 있다면, 두 번째 강조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함께’에 있습니다. ‘함께’ 고생하고, 수고하고, 헌신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있었던 기쁨은 ‘함께’의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감옥 속에 갇혀 있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의 육체는 감옥에 가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의 영혼은 가둘 수 없다. 나의 영혼은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과 ‘함께’ 하고 있다.” 이것이 바울의 심정 아닙니까?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함께’ 섬길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축복입니까? 그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신문에 이런 광고 카피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큰 나무도 혼자서는 숲이 될 수 없습니다.” 너무 은혜로운 문구 아닙니까? 아무리 뛰어난 목사님도 목사님 혼자서는 숲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목사님 옆에 서 있는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학생들이 있어서 함께 어우러져 숲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저 같은 볼품없는 나무 같은 사람이 목사 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여러분들이 제 곁에 있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것 아닙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옆에 서 있는 나무가 되어 줌으로써 우리가 현포양문교회라는 숲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참 은혜로운 광고 카피 같아요. “아무리 큰 나무도 혼자서는 숲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가 첫날부터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복음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진정한 성도의 교제, 참된 코이노니아를 실천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바울의 확신

바울은 감옥 속에서도 감사를 드리고 기뻐하면서 또한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확신을 한 번 보실까요? 6절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6절)

지금까지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위해 한 일을 말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위해 하시는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착한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시작하신 착한 일이란 바로 우리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입니다.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누가 완성하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최종 완성하실 것입니다. 시작도 그분이 하셨고 완성도 그분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 완성은 그리스도 예수의 날, 마지막 날, 재림의 날입니다. 그 날에 우리의 구원의 완성됩니다. 바울은 우리 안에 착한 일, 곧 구원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우리의 구원의 이루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러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에 투입되는 교리가 바로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입니다. ‘견인’은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전적으로 견인(牽引)해 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구원을 믿고 참고 인내해야 한다(堅忍)‘는 교리입니다. 구원의 성취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만, 그 구원의 성취를 믿고 우리의 삶 속에서 고난이 와도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고난이 와도, 어려움이 와도, 시련이 와도,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까지 구원을 완성해 주실 것을 믿고 끝까지 참고 견디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바울의 사랑

오늘 말씀의 제목이 “풍성한 사랑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참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성도 서로가 서로를 어떠한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세상의 사랑이 기본적으로 “주거니 받거니”라고 생각합니다. 영어로 하면 “give and take”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참 고상한 사랑을 추구하지만, 그 이면에 들어가 보면 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을 베풀면, 상대방도 사랑을 베풀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지요. 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분 계십니까? 남편과 아내 간의 사랑도 어느 정도는 다 이런 “주거니 받거니” 정신이 깔려 있습니다. 주기만 하는 남편도 없고, 주기만 하는 아내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사랑을 보십시오. 8절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라”(8절)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내가 너희 무리를 사모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 그러니까 정말 예수님의 심장으로 너희를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바울 속에 뛰고 있는 심장은 바울의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사모하고 사랑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모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겠습니까? 십자가 위에 달려서 자신을 대속 제물로 내어주기까지 하는 그런 아가페 사랑, 신적 사랑을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서로에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사모한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너희 무리를 사랑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가정에서도 그렇게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말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당신을 사모하고 사랑합니다.”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를 사모하고 사랑한다.” 우리의 가정들이 이렇게만 서로 사모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야말로 가정 천국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말로만 그치면 안 되겠지요. 반드시 실천이 따르고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하고 사랑했다는 표현은 그만큼 바울이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지지 않고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우리가 서로를 위해 십자가를 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사람의 연약함을 내가 짊어지고 감당하는 것, 그 사람의 실수와 허물을 내가 대신 짊어지고 감당하는 것, 그것이 십자가 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십자가는 내가 희생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뒤집어쓰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죽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를 위해 십자가 질 때에 우리는 이 세상의 사랑이 아닌 신적 사랑, 아가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바울의 기도

그런데 잘 보십시오. 바울이 8절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라” 고백한 다음에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감옥에서 나가면 잘 해 줄게. 너희가 지난번에 나의 쓸 것을 도와주었으니까 나도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게 채워줄게.” 그렇게 말하지 않고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기도하노라” 9절에서 11절까지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입니다. 바울은 그토록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하고 사랑하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위해 “내가 기도하노라” 그렇게 고백합니다.

성도 여러분, 서로 서로를 사랑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하고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한다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별로 가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돈을 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네, 때로는 필요를 채워주는 도움의 손길도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성도가 성도 서로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은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기도하고 그 다음에 육신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제 바울의 기도를 한 번 봅시다. 9~11절입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9~11절)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사랑도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우리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질까요? 바울의 기도를 보시면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그랬습니다. 지식과 총명이 바로 사랑이 풍성해지는 길입니다. 지식은 일반적인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령한 지식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갈망하고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더해질 때 우리의 사랑도 더 풍성해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곧 사랑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어디를 펼쳐 보아도 다 사랑이에요. 구약도 사랑이요, 신약도 사랑입니다. 성경에서 사랑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은 구구절절이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지식이 더해짐으로써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또 한 가지 길은 총명입니다. 총명은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사랑을 하되 분별력 있게 사랑해야 합니다. 분별력이 더해 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분별력은 바로 말씀 속에서 나오는 분별입니다. 그래서 지식과 총명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지식과 총명으로 사랑이 풍성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첫째는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게 됩니다. ‘지극히 선한 것’이란 가장 탁월한 것, 그러니까 복음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이 풍성해지면 복음에 참여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의 사랑의 척도를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내가 복음에 참여하고 있는가, 그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진실하여 허물이 없게 됩니다. 이것은 복음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걸림돌이 되는 요소를 갖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그리스도의 날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셋째는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됩니다. 여기의 ‘의’란 ‘구원받은 성도의 삶 속에 나타나는 사랑과 삶 속에서 걸림돌이 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살 때에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이 풍성해지는 삶, 우리 모두가 꿈꾸는 삶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과 총명이 더해질 때 우리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은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11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인해서 우리의 삶에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하게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지식과 총명을 더하고, 늘 감사와 기도와 확신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현포양문교회 모든 식구들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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