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Home » 베드로 후서 1 장 | 베드로후서 1장 최근 답변 39개

베드로 후서 1 장 | 베드로후서 1장 최근 답변 39개

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베드로 후서 1 장 – 베드로후서 1장“?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sk.taphoamini.com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ttps://sk.taphoamini.com/wiki.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공동체 성경 읽기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10,410회 및 좋아요 93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Table of Contents

베드로 후서 1 장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베드로후서 1장 – 베드로 후서 1 장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베드로후서 1장]
‘공동체 성경 읽기’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거나 검색창에서 ‘공동체 성경 읽기’를 검색하세요.
공식 사이트 : http://www.prsi.org
*본 영상은 CGNTV와 공동체성경읽기(PRS)가 공동기획하여 제작한 영상으로 무단으로 영상을 편집 및 재배포가 금지됩니다.
*영상 제공 : CGNTV 제공

#공동체성경읽기#성경 #드라마바이블 #Bible #크리스천 #기독교 #설교 #말씀#성경낭독

베드로 후서 1 장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베드로후서 1

베드로후서. 제 1 장. 부르심과 택하심.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

+ 더 읽기

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5/26/2021

View: 5034

[개역개정] 베드로후서 1장 – 한국컴퓨터선교회

(벧후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

+ 여기에 더 보기

Source: kcm.co.kr

Date Published: 9/24/2022

View: 1236

베드로후서 1 KLB –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 Bible Gateway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 도의 의를 통해 우리와 같이 소중한 믿음을 받은 여러분에게.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2/26/2022

View: 230

2016/05/30(월) “베드로후서 1:1-11” / 작성: 이창호

본문 베드로후서 1장 1-11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베드로전서가 외적인 고난과 시련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면,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8/18/2021

View: 7709

보배로운 믿음(베드로후서 1 장 1-3절)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

보배로운 믿음(베드로후서 1 장 1-3절)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대구동부교회 김동욱 목사님의 설교말씀 –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4/8/2022

View: 5648

[장별설교] 베드로후서 1장 – Pensées

[장별설교] 베드로후서 1장 베드로후서는 바울의 디모데후서와 비슷하게 죽음을 직전에 둔 베드로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는 서신입니다.

+ 여기에 표시

Source: 392766.tistory.com

Date Published: 8/4/2022

View: 2694

베드로후서 1장 (개역개정/쉬운성경, 자비교회 성경통독)

베드로후서 1장 (개역개정/쉬운성경, 자비교회 성경통독) ; 부르심과 택하심 ; [벧후]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

+ 여기에 더 보기

Source: reformedkjy.tistory.com

Date Published: 3/9/2021

View: 2221

베드로후서

베드로후서. 저자: 베드로후서 1장 1절은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후서의 저자임을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베드로후서에 대한 베드로의 저자권은 신약의 다른 어떤 책 …

+ 여기에 표시

Source: www.gotquestions.org

Date Published: 2/28/2022

View: 8999

오늘의 묵상말씀 베드로 후서 1장 3절 (5월11일) – Daum 블로그

오늘의 묵상말씀 베드로 후서 1장 3절 (5월11일) ○ 벧후 1:3 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 …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22/2022

View: 3787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베드로 후서 1 장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베드로후서 1장.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베드로후서 1장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베드로 후서 1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 Views: 조회수 10,410회
  • Likes: 좋아요 93개
  • Date Published: 2021. 2. 1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NyPxmw7ECd8

2016/05/30(월) “베드로후서 1:1-11” / 작성: 이창호

본문 베드로후서 1장 1-11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베드로전서가 외적인 고난과 시련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면, 오늘부터 살펴볼 베드로후서는 교회로 침투한 거짓 교사들(이단)에 대한 경고와 함께 성도들에게 영적인 성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단집단은 신천지입니다. 신천지 또는 새천지는 교리에 문제가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추수꾼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에 위장 등록하고 교회 밖에서 성경 공부를 하며 교인들을 신천지로 유인하여 교회를 분열, 혼란케 할 뿐만 아니라, 가정 파괴와 학업 중단, 가출 등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한동안 신천지 교인들이 신구교를 막론하고 성도들은 물론 교역자들에게도 홍보 영상이 담긴 CD를 배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개신교는 물론 가톨릭에서도 “신천지 OUT” 포스터를 입구에 게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CBS는 신천지가 왜 위험한 집단인지에 대해 다큐를 통해 일반인은 물론 성도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이단들의 특징은 성경을 교묘하게 왜곡해석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님이 아닌 교주를 향하게 한다는데 있습니다. 이단에 휩싸이지 않은 방법은 단 한가지입니다. 성경을 바로 아는 지식,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은 단순한 지적인 지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한 체험적 지식을 포함합니다.

베드로후서가 작성된 기독교 초기는 물론 그 이후에 영지주의, 몬타누스주의 등과 같은 이단 사상으로 혼란이 야기되었고, 이단들로부터 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바른 지식이 필요했고, 기독교인으로 기본적으로 믿어야 할 교리를 차곡차곡 정리 요약한 대표적인 산물이 바로 사도신경입니다.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자 사도라고 밝힌 베드로는 자신은 물론 그리스도인 모두의 믿음은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았다”(1) 고 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출처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스스로 하나님을 택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고 당신의 자녀로 부르셨기(10)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베드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2) 라고 인사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이 인사말은 원어적으로 살펴보면 사도 바울이 사용하는 인사말과 그 의미가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목자적 입장에서 그리스도인 전체에 대해 은혜와 평강이 임하기를 간구한 반면에,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각자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체험하도록 간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2) 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앎“이라고 해석된 헬라어 ”에피그노시스“는 ”명확한 지식, 인식“을 의미하는 단어로 일반적인 지식 또는 단순히 하나님을 인지하는 수준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명확하게 아는 지식을 뜻합니다. 따라서 에피그노시스는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파생되는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에피그노시스를 통해 더욱 많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세상에는 평안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이 평안은 사라지고 대신 불안과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보혈의 은혜로 이 땅에 평안이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궁극적인 평안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릴 수 없는 평안입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평안은 일시적입니다. 에피그노시스를 통해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어, 이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신성한 능력을 따라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하심에로 우리를 부르신 그분을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4. 그분은 우리에게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들을 주셨는데 (3-4a 표준새번역)

에피그노시스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과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즉 새생명과 “그리스도의 재림” (3:4,9,12), “새 하늘과 땅” (3:13)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 (11절)를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처럼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신 이유는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추구하던 우리를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려는 자”(4) 로 변화시켜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 대속의 보혈로 말미암아 이미 우리의 신분은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연약한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8)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10)고 합니다.

베드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성숙해질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5-7)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인 “믿음” 을 통해서 얻은 구원에만 안주해서는 실족할 우려가 있기에 이 믿음에 덕을 더하라고 합니다. “덕” 은 도덕적인 탁월성을 의미하는데, 이는 3절의 그리스도의 덕을 말하는 것으로 신이시면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겸손이 바로 덕이 아닐까요! “지식” 은 덕 있는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의미합니다. “절제” 는 육체적 욕망과 성적 남용에 반대되는 의미로 당시 거짓교사들의 문란한 생활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내” 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성취되리라고 소망하면서 고난과 악과 대항하여 견디어 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경건” 은 일상의 삶속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형제 우애” 는 가족 간의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된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인으로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한 덕목들은 “믿음”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을 맺습니다. “사랑” 은 남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신 행동을 뜻합니다.

이상과 같이 믿음에 7가지 덕목들을 채워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더 깊이 체험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합니다. 아무 자격도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택하셨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불러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고 고백할 수 있는 것도 전적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욕으로 썩어 없어져버릴 우리를 택하고 부르셨고,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고,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주셨고 게다가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를 택하고 부르신 것은 우리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것이라고 우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믿음에 부응하는 시간들로 채워갈 때 우리의 삶속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썩어질 것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던 우리를 택하여 부르사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게 해주시고,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믿음에 안주하지 않고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에피그노시스가 더욱 확장되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오늘 하루가 주님의 앎으로 말미암은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복된 시간들로 가득 채워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베드로후서의 집필 목적은 무엇인가요 ?

2. 본문에서 앎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

3.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은 무엇인가요?

4.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5.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믿음 외에 7가지 덕목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나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요?

(작성: 이창호)

보배로운 믿음(베드로후서 1 장 1-3절)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대구동부교회 김동욱 목사님의 설교말씀 – 주의 말씀 받은 그 날(285장)

보배로운 믿음(베드로후서 1 장 1-3절)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대구동부교회 김동욱 목사님의 설교말씀 – 주의 말씀 받은 그 날(285장)

​​​​​보배로운 믿음(베드로후서 1장 1-3절)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

대구동부교회 김동욱 목사님의 설교말씀

​주의 말씀 받은 그 날(285장)

대구동부교회 김동욱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정리하였습니다.

2019년 1월 16일, 수요일, 수요예배

오늘부터 우리는 베드로후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까지 살펴보았던 베드로전서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었던 나그네 삶을 살던 박해받은 성도들에게 베드로가 위로와 격려와 소망을 주었던 편지였다면, 오늘부터 살펴 볼 베드로후서는 베드로전서와는 좀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베드로후서는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지연으로 교회 내부에 일어나는 이단들의 잘못된 교훈과 그들의 행실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교훈한 서신입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는 초대교회에 나타나고 있었던 거짓 진리로부터 참된 복음을 지키기 위하여 기록이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유명한 명품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명한 명품이 있는 반면, 또한 유명한 짝퉁도 있습니다. 제가 동부교회 와서 얼마 되지 않아 제가 중국 상해로 청년들과 같이 비전 트립을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상해 쪽이었는데, 그 곳에 어디를 돌아다니다가 어떤 한 사람이 저에게 와서 ‘짝퉁, 짝퉁’ 계속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물어보니까 그곳에 유명한 짝퉁 시장이 있었다는 거예요. 거기 안에는 루이비통, 샤넬, 웬만하면 말만 하면 다 알 수 있는 그러한 유명한 짝퉁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매들은 그곳에 가서 기웃거리면서 하나 사 볼려고 하였지만, 하지만 짝퉁인데도 불구하고 가격이 백화점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서 다시 돌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처럼 요즘 세상에는요 유명한 명품이 있으면 짝퉁도 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에도 명품 진리인 복음에 대하여 짝퉁 진리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당시 나타났던 짝퉁 진리 이것은 거짓 진리인데요. 이것은 복음의 보편성을 부인하고, 어떤 특별한 지식을 가져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하였습니다. 이 거짓 진리를 전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성품의 변화를 무시하고, 또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부정하며, 도덕적으로 방탕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내용은 앞으로 계속해서 우리가 살펴볼 내용입니다. 이들은 아마 당시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들인 것 같은데, 영지주의는 인간의 본질을 영혼과 육체로 나누고, 영혼은 고상하지만 육체는 추하고 악하다고 보았습니다. 이 영지주의는요, 인간의 육체를 죄악시하기 때문에 육체를 가지고 생활하는 것을 일절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로 온 것을 믿지 않았고, 육체로 부활한 사실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열심히 결혼생활도 하고, 직장생활도 한다는 것은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베드로후서는요, 그런 거짓된 선생들의 거짓된 가르침으로부터 성도들을 지키기 위해 기록된 것이라고 제가 초반부에 말씀드렸습니다. 악한 사단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마어마한 복을 받는 것을 시기해서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물리적인 핍박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축복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물리적인 핍박보다 거짓된 가르침이 더 위험한 이유는 거짓된 가르침이 그럴듯할 뿐만 아니라 전염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베드로후서는 베드로전서와 문체와 용어 면에서 많이 차이가 있어서 저자의 논란이 많았던 서신입니다. 베드로후서는 내용면에서는 또한 유다서와 많이 비슷한데요, 이 두 개가 차이점이 있다면, 베드로후서는 장차 나타날 거짓교사들에 대해 말해주는데 비해, 유다서는 현재 나타나 활동하고 거짓교사들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요, 베드로후서 1장 1-3절까지 한 절씩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보배로운 믿음

첫 번째는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1절에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베드로후서 1장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1절에서 베드로는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초대교회를 섬겼던 사도들은 한결같이 자신을 교회 주인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종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고 의지하며, 그에게 절대 복종하는 자임을 고백한 것이며, 사도라는 말은 예수님께 사명을 받아 파송된 자임을 증거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은 주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종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받은 사명은 무엇일까요? 그가 받은 사명은 하나님의 복음 진리를 널리 전파하고 가르치는 것이며, 하나님의 교회가 이단의 공격에 의해 무너지려고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지켜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절에 보니까 “우리 하나님과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의를 힘입어“ 라는 말씀은요. 사도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나란히 적어서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격일 때가 많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신 대속의 은혜, 대속의 의를 가르킵니다. “의로 힘입어”라는 말은요, ‘의로 말미암아’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믿음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의 때문에 시작되었고, 또한 견고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의 의를 또한 믿는 것입니다.

베드로는요, 유대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율법이 금한 음식을 절대 먹지 않았고, 이방인과도 절대 교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주님께서 어떻게 이끄셨고, 어떻게 생각을 바꾸게 하셨을까요?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꿈에 보자기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그에게 전하게 했습니다. 베드로는 환상을 통해 부정한 짐승을 잡아먹으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듣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자신은 어려서부터 그런 음식을 먹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이 환상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는 것을 보고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방인도 우리와 똑같이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것을 말하면서 율법의 명의를 매게 하지 말자고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42절: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사도행전 10장 43절: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10장 44절: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사도행전 10장 45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사도행정 10장 46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와 같이 이방인도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고백이 나오기까지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직접 인도하시고, 가르쳐주시고, 깨닫게 하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사도가 된 것은요, 자신이 잘나서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은혜로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면 의도 받은 것이고, 믿음도 받은 것입니다. 누가 더 의롭거나 누가 더 잘 믿는다는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다 동일하게 은혜로 받는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오직 주님만 자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1절에 계속 보니까, “보배로운 믿음”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믿음이 보배롭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가 느끼고 있는 보배는 어떤 것일까요? 금이나 은, 그리고 보석 같은 귀한 것을 우리는 보배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살 수 있는 돈을 우리는 보배로 여깁니다. 그런 돈을 벌 수 있는 능력 있는 인간은요, 또한 보배로운 인간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정이나 회사나 교회나 간에 돈을 잘 벌어올 수 있는 사람이 보배로운 인간 대접을 받는 게 우리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현실은 가짜 현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마귀에게 속아서 가짜 보물을 진짜 보물인 것처럼 여기고 살아간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에서 말하는 보물을 믿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보물을 믿고 사는 것이 우리의 습관처럼 되어버리고 있습니다. 놀이나 교육이나 관습이나 모두 다 이 세상의 보물을 차지하는 것을 복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정말 중요한 보물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진리라는 것이죠. 우리는 성경의 진리가 어떻게 해서 보물이 될 수 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요 하나님의 축복과 이것은 연결이 되어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안에 무궁무진한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1절에 보니까 또한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모두 동일하게 주어진다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서 이 복을 더 받는 사람이 있거나 덜 받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복에 똑같이 참여하는 자가 된다라는 거예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복이 아닙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그것은 가짜이죠. 이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안에 우리가 굶어죽지 말라고 하나님이 준비해주신 비상식량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작년 6월 23일에 태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다. 태국의 유소년 축구팀이요, 동굴에 관광을 갔다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동굴 안 깊숙이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동굴 안에 물이 많이 차 있었기 때문에 나올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열흘 만에 그들은 극적으로 발견이 되었죠. 사람들은 다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구조한 결과 열흘 만에 발견이 됐습니다. 영국에 있는 잠수부가 먼저 그 아이들을 발견하였는데, 아이들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에 동굴 깊은 바위에 웅크린 채로 그들은 발견이 되었고, 영양실조 등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고, 비가 좀 더 많이 온다면 그들이 있는 곳까지도 물이 계속 차오를 수 있는 긴박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구조팀들은 그들을 최대한 빨리 구조하기 위해서 펌프를 동원해서 물을 빼고 공기를 주입하고 그리고 비상식량과 물, 담요 등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그곳에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나오기 위해서는요. 어려움이 많았어요. 물을 아무리 퍼낸다 하지만, 다 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수영과 잠수하는 법을 가르쳐 줘서 그들을 꺼내오기로 계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그들이 이 물 건너는 게 무섭다고, 잠수하는 게 무섭다고, 몸에 물이 묻는 게 무섭다고, 그곳을 나오지 않고, 계속 그 곳에서 날라다주는 비상식량과 구급 약품에만 의지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살지 못하고, 구조되지 못하고 그 안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지금 인간들은요, 사람들은 이런 처지에 있습니다. 모든 인간들은 어두운 동굴 속에, 혹은 건물 더미에 갇혀있어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비상식량, 이것이 자기를 살려 줄 거라 믿고, 절대 그들에게 오는 멸망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아들이 마음에 들고, 들지 않고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말을 듣고, 그대로 하기만 하면, 한 사람도 멸망당하지 않고, 모두 구원을 얻을 수 있다라는 것이죠. 이것이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일이며, 반드시 우리가 해야 될 일이라는 거예요.

2. 하나님을 아는 지식

두 번째로 2절에 보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절에 보니까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후서 1장 2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요, 신앙 생활하는데 있어서도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막연하게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면, 바로 식물인간이었던 우리의 영혼이 되살아난다라는 것이죠. 하나님을 모르는 식물인간으로 살다가 기적적으로 우리에게 의식이 돌아온다라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의식이 돌아와서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신비로운 체험을 합니다. 입신을 하기도 합니다. 기절을 하기도 합니다. 금식을 합니다.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비밀의 열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된다라는 것이죠.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 저 역시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하면, 무서운 분, 심판하시는 분, 그렇게 인식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분이 하신 말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고, 나의 구주로 받아들였을 때,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었고, 나는 하나님을 조금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의 삶의 예를 들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여러분, 요즘에 이혼율이 상당히 많죠? 그렇다면 부부관계가 깨어지는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보통 퍼센티지로 누가 조사를 한 걸 보니까, 배우자의 부정이 7% 정도 되었고, 경제적인 문제가 13%정도 되었고, 성격 차이가 나머지 47%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성격 차이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여러분,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단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으십니까? 다 싸웠죠. 이걸 뭐 쉽게 예를 든다면, 보통 부부는요,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는 경우는 특별히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희 집을 예로 들어도, 다릅니다. 외모부터가 다릅니다. 저는. 저는 통통하고 살집이 있지만, 제 아내는 아무리 먹어도 절대 살이 찌지 않습니다. 아내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저는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합니다. 물도 저는 찬 물을 좋아하지만, 제 아내는 따뜻한 물을 좋아합니다. 음식도 저는 밥 종류를 좋아하지만, 아내는 면을 좋아합니다. 성격 차이로 말하면 우리 가정보다도 더 성격이 다른 가정은 없을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요, 아이 셋을 낳고 행복하게 아주 잘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혼의 원인은 성격 차이가 아니라, 서로를 잘 알지 못해서 오는 것이라고, 잘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알고 이해하고, 존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싸우고 갈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부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힘을 써서 서로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지식적으로 알고, 체험적으로 알아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그래서 너무 어렵고, 복잡한 과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성경은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다라고 거듭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기에 가까이 계신다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숨어 계시기를 원하셨다면 우리는 평생 숨바꼭질을 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계시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계시에는요,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가 있는데, 일반 계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자연을 통해서 계절이 바뀌는 것, 햇빛, 바람, 여러 가지 그런 걸 통해서 신이 있다는 것을 계시해 준다는 것이죠. 특별 계시가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말씀해 주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면요,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가 있어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그 분을 알 수 있다라는 것이죠.

유명한 신학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쓴 책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데, 그 책에서는 이렇게 내용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 이것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은 내가 하나님에 대하여 지식적으로 안다다는 것이죠. 즉 하나님과 내가 서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방적으로, 신념 개념적으로 안다는 것이죠. 이것은 지식밖에 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이 어떤 배우를 좋아한다 칩시다. 여러분이 그 배우가 너무 좋기 때문에 그 배우의 음반, 사진, 모든 걸 다 수집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배우의 팬 사인회가 있어서 갔어요. 그 배우에 관련된 모든 걸 사들고 가서 사인을 받기 위해서. 그런데 여러분 간다고 해서 그 배우가 나를 알아볼까요? 모르죠. 이게 바로 ‘대하여 아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많이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 수가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지식, 신앙에 대한 관심, 그리고 기독교의 주제들에 대하여 명료하게 생각하고, 잘 말할 수 있는 능력은 결코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말할 수 없어요.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많이 알지 못하면서도 경건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건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하나님은 전혀 모를 수 있다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하나님 아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거예요. 즉 하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상으로 우리가 삼을 수 있다라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들은요, 그런 자녀들은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많아질수록 기도하고자 하는 열망은 더욱 커지게 된다는 것이죠. 기도는 단순히 우리의 소원과 소망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담대함을 보여줍니다. 담대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알 수가 있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래서 위험을 자초한 사람들이었어요.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요, 절대 음식을 먹지 않았고,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저돌적인 무모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간섭하지 않으신다면, 그들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도 그들은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아니하실지라도 그들은 마음이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손을 잡아 하나님의 집 안으로 데리고 가셔서 하나님께 우리를 소개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특히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 중에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라고,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부정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요, 하나님을 그래서 “아빠”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아바’라고 불렀습니다. 히브리어로 ‘아바’는요, 우리말 ‘아빠’와 똑같은 말입니다. 여러분. 히브리 아이들이 아빠라는 소리를 들으면, 우리 아이들, 우리 한국 아이들요, 한국 아이들의 발음과 똑같아 전혀 구별되지 않습니다. ‘아빠’라는 호칭 앞에서 아이는요, 아빠에 대해 모든 권리를 갖는 반면, 아빠는 아이에 대해 전적인 의무와 책임을 진다는 거예요. 아빠가 아이와 함께 하는 한, 이 아이는 그 무엇도 걱정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다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의 아빠가 되십니다. 우리를 위해 온갖 책임과 의무를 다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자식에게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 보입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 된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십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보니까,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다”라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1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저희는 아이가 셋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막내는 딸인데, 위에 둘은 남자 아이입니다. 장난감을 한창 많이 가지고 놀 나이에요. 그런데 아이들은 변덕이 심해요. 여러분, 다 아시죠? 어떤 장난감을 사 줬는데, 이 장난감을 가지고 하루 이틀 놀고 쳐다도 안 봐요. 그래서 크리스마스 때 저희 어머니가 저희 집에 오셔가지고, 이제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사줬어요. 장난감 로보트를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조금 가지고 놀다가, 쳐다도 안 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인터넷 중고나라에 이렇게 올렸습니다. 올렸는데, 이미 인제 이게 모든 아이들이 다 가지고 있는 장난감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 그런 장난감은 싫증을 금방 내기 때문에 안 팔릴 걸 알면서도 저는 올렸어요. 그런데 실제로 제가 <성경 읽기 수련회>를 끝내고 왔는데, 갑자기 밤에 연락이 온 거예요. ‘제가 이 로보트 장난감을 사고 싶은데, 지금 가도 되겠느냐?’ 그래서 제가 ‘밤중인데 어떻게 지금 오시겠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괜찮다. 자기가 갈 수 있다는 거예요. 대신 가격을 깎아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가격을 쿨하게 깎아 줬어요. 그래서 오셨어요. 실제로. 밤 열 시 훨씬 넘어가지고. 제가 ‘아니 지금 시간이 열 시가 넘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태전동에 사신다고 하더라고요. 그 아빠가 왔는데, 아버지가 저한테 갑자기 사진을, 핸드폰의 사진을 보여주는 거예요. ‘저희는 아이가 넷입니다.’ 여러분, 뭘 의미합니까? 자녀를 위해서는 아버지는 창피함을 무릅쓴다는 것이죠.

이것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도요, 우리가 요청을 한다면, 우리가 부르짖는다면, 그 분은 언제든지 우리에게 달려오신다는 것이죠.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어떠한 경우에도 변함없이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걸 여러분, 믿으십니까?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시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원토록 우리와 동행하실 것을 또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 우리는요, 한 숨의 골짜기에 머물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지금 당장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고 우리는 굳건히 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또한 그리스도를 알게 될 때, 이 세상의 풀리지 않던 모든 의문이 다 풀리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방황하면서 살아왔는데, 비로소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소유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알아 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

세 번째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입니다. 3절에 보니까,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베드로후서 1장 3절: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주시는 방법은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것들은 전부 다 놀랍습니다. 여기서 “신기한 능력” 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말합니다. 성령은 그 자체로 신기한 분이며, 그의 능력 또한 참으로 신기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격을 가지신 삼위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우리 인격 안에 오셔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인격적으로 우리를 성숙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신기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돈을 많이 버는 능력도 아니고, 공부를 매우 잘하는 능력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기한 능력으로 주신 것은 바로 생명과 경건의 능력이라는 것이죠. 여기서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요, 죽은 것의 반대를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생명이 없는 모든 것은 다 썩습니다. 아무리 귀여운 애완견도 죽으면 딱딱해지고 바로 썩어버립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죽으면 썩어서 악취를 내죠.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가 썩지 않게 생명과 경건을 주신다라는 거예요. 우리는 원래 죄로 인하여 썩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우리 마음에 모셔 들이고 영접하는 순간, 우리 안에 썩지 않는 생명이 들어와서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에게 경건의 능력을 주신다는 거예요. 이것은 죄의 세력을 몰아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 몸에는 면역성이 있어서 병균이 들어오면 몰아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건의 능력을 주셔서 죄가 들어오면 다 몰아내게 하십니다. 물론 어떤 때는 감기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고, 몸살이 날 때도 있습니다. 또한 독감 증세와 같은 그러한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의 주사를 맞으면, 열이 떨어지고, 거뜬하게 일어설 수 있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우리는 딱딱하게 죽어서 악취만 내는 시체가 아니라 체온이 있고, 움직이기도 하는 산 사람이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영광과 덕을 주셨습니다. 3절에 버니까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당시에 한창 설치던 이단은요, 지식 또는 앎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이라는 것은 자기 집단에서 몰래 가르쳐주는 비밀 지식이었지, 성경적인 지식은 아니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적 진리에 의한 것이며, 복음은 그 질에 있어서 이런 비밀스러운 지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의 덕이 있습니다. 덕이라는 것은 구원이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 곧 그의 긍휼과 사랑에서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앎으로써 죄사하심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에 이르는 구원을 얻었다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은요,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을지라도 절대 썩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썩은 부분을 씻어주시고, 다시 새롭게 하셔서 우리를 썩지 않도록 날마다 늘 항상 지켜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보배로운 이 믿음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그 안에는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믿음 안에 살아가는 존귀한 사람이 되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이미 보배롭고 지극히 큰 믿음을 받았기에 우리는 절제할 수밖에 없고, 인내할 수밖에 없고, 형제의 우애와 사랑을 맛보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영광과 더불어, 부르신 그 분을 찬송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모드가 다 성령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여 주셔서 우리가 보배롭고 지극히 큰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알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고, 썩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의 인생을 불쌍히 긍휼히 여겨주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믿게 하여 주시고, 보배로운 믿음을 소유한 자로 불러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늘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허락하여 주셔서 말씀과 기도에 열심을 내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자료출처: 대구동부교회 김동욱 목사님의 설교말씀, 2019년 1월 16일, 수요일, 수요예배>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하다( 사도행전 10장 34-43절)

사도행전 10장 34절: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사도행전 10장 35절: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사도행전 10장 36절: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사도행전 10장 37절: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사도행전 10장 38절: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사도행전 10장 39절: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사도행전 10장 40절: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사도행전 10장 41절: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사도행전 10장 42절: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사도행전 10장 43절: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10장 44절: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사도행전 10장 45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사도행정 10장 46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 사도행전 11장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하다>

사도행전 11장 12절: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사도행전 11장 13절: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사도행전 11장 14절: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사도행전 11장 15절: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사도행전 11장 16절: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사도행전 11장 17절: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사도행전 11장 18절: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대구동부교회 홈페이지

http://dongbu.org/sub02/sub02_1.php

주의 말씀 받은 그 날(285장)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참 기쁘고 복되도다

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아가리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이 좋은 날 내 천한 몸 새 사람이 되었으니

이 몸과 맘 다 바쳐서 영광의 주 늘 섬기리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아가리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새 사람된 그 날부터 평안한 맘 늘 있어서

이 복된 말 전하는 일 나의 본분 삼았도다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아가리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아멘

[장별설교] 베드로후서 1장

728×90

반응형

[장별설교] 베드로후서 1장

베드로후서는 바울의 디모데후서와 비슷하게 죽음을 직전에 둔 베드로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는 서신입니다. 1:13에서 베드로는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이라고 말합니다. 14절에서는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이 땅에서의 삶이 얼마나 남지 않음을 깨닫고 자신의 모든 정력을 다 쏟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도록 권면합니다. 그러다보니 베드로후서는 그 어떤 서신보다 종말론적 성향이 매우 강하게 드러납니다. 베드로는 66년경에 로마에서 순교를 당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고 합니다. 베드로의 순교를 영화화한 ‘쿼바디스’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라틴어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를 말합니다. 영화는 성경과 사뭇 다른 면이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지만 베드로의 생애와 초대교회의 핍박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이해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1장을 강해하겠습니다.

1. 1-2절 인사말

2. 3-11절

3. 12-15절

4. 16-21절

1. 1-2절 인사말

종(δοῦλος)

베드로는 먼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합니다. 종은 독립적이며 못하며, 철저히 주인에게 종속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종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할 마음의 자세입니다.

사도(ἀπόστολος)

사도는 문자적으로 ‘보냄을 받은 자’의 뜻이지만 초대교회 안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선택한 12명의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그 어떤 직분이나 직책보다 앞서며, 권위를 가진 존재입니다. 베드로는 종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에 있어서 가장 권위있는 사도로 소개합니다.

시몬 베드로(Συμεὼν Πέτρος)

시몬은 베드로의 본명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새로 주신 이름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 있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합니다.

[마 16:17-18]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가 진심으로 변화될 때는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입니다. 주님을 계속해서 따라다녔지만 진심으로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적이 없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베드로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 변화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 거듭남의 성령, 지혜의 성령도 필요하지만 오순절에 불의 혀처럼 임한 강력한 성령체험도 필요합니다.

이제 베드로는 하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편지합니다.

2. 3-11절

3-4절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

먼저 3-4절을 봅시다. 두 절에서 베드로는 ‘우리에게 주셨다’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3절에서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4절에서 ‘그 보배롭고 지극힌 큰 약속’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3절 후반부의 내용은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을 이유로 소개합니다. 4절에서는 세상의 정욕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그러한 것들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현재 소유한 영원한 생명과 경건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 오는 영생의 지식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5-7절 8가지 성품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5-7절까지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형제 우애를 더하고,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합니다.

1)믿음-2)덕-3)지식-4)절제-5)인내-6)경건-7)형제 우애-8)사랑

짧은 시간에 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하는 수 없지만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믿음(πίστις)

믿음은 주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은 받는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 주님의 공로가 나에게 전가되어 나의 것이 됩니다.

덕(ἀρετή)

덕은 약간 어려운 단어입니다. 신약에서 모두 5번 사용되었는데 4번에 베드로전후서에서 사용되었고, 한 번은 바울서신인 빌리보서 4:8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빌]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덕이라는 단어는 성경 외 기독교 문헌에도 잘 나타나지 않지만 일반 철학 서적에서는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일종의 도덕이며, 바른 삶과 성품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교부들은 이 단어를 구제와 정의와 관련된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사랑과 헌신이 겸비된 도덕적 삶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믿음이 주님과의 관계를 형성해 주는 것이라면, 덕은 믿음을 가진 자들의 삶, 즉 믿음을 증명하는 삶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지식(γνῶσις)

지식은 기노시스인데 말 그대로 현대적 의미와 동일한 ‘아는 것’‘앎’을 의미합니다. 다만 베드로가 의도한 앎이란 믿음을 통해 알게된 영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절제(ἐγκράτεια)

절제는 ‘지배하다’의 뜻을 가집니다. 자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23에서 성령의 열매 중에 하나로 절제를 소개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낸 성격이나 성품의 차원이 아니라 성령의 지배를 통한 성령을 따르는 삶을 말합니다.

인내(ὑπομονή)

인내라는 단어는 아래라는 뜻의 ‘휘포’와 ‘지속하다’ ‘견디다’의 뜻인 ‘모네’가 합해져 된 합성명사로 ‘오래 참고 견디다’라는 뜻입니다.

경건(εὐσέβεια)

경건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품입니다.

형제우애(φιλαδελφία)

필라델피아, 형제간의 우정을 뜻합니다. 이 단어는 당시 1세기 정서로 볼 때 혁명적인 단어입니다. 그 어떤 신분 귀천을 막론하고 예수를 나의 주로 고백하는 순간 모두가 형제 자매가 됩니다. 즉 새로운 가족으로 재편되는 것입니다. 구분은 있지만 구별은 없고, 차이는 있지만 차별은 없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사랑(ἀγάπη)

사랑은 우리가 잘 아는 ‘아가페’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아가페’는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는 전적 헌신으로서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향해 보여준 사랑을 바로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8-11절

9-11절은 결론입니다. 8가지 덕목을 잘 지켜 행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가 같고(9절), 이러한 것을 행할 때 실족하지 않으며(10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11절)

3. 12-15절 장막에 있는 동안

베드로는 자신에게 죽임이 임박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려 합니다. 전하는 말씀은 이미 들어 알고 있는 것입니다. 수신자들은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12절)습니다. 그럼에도 ‘일깨워 생각나게’(13절) 하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생을 ‘장막’ 즉 텐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4. 16-21절 성경의 출처

베드로는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면서 중요한 것들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지금 손에 들려 있고, 믿는 성경이 무엇인가?

ㄱ. 복음은 사실이다.(16절)

그것은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베드로는 성경(복음)이 누군가 꾸며낸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고 말합니다.(16절 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은 신약 성경에서 두 번 등장합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아직 제자들이 부름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요한만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변화산에 올라갔을 때 들은 것입니다.

마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의 육신 속에 숨겨진 신성의 발현입니다. 예수님이 단지 한 사람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신 사건입니다. 이 구절은 메시야 시편으로 알려진 시편 2:7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구절을 두 번 인용합니다. 한 번은 천사보다 우월하신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히 1:5), 다른 한 번은 예수님의 대제사장 되심을 논증하기 사용 됩니다.

히브리서 1: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히브리서 5: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결국 변화산 사건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세상을 통치하시고, 복음으로 정복하기 위한 선언인 셈입니다.

ㄴ.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19-21절)

두 번째는 성경은 엉터리나 헛된 상상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나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가장 명확한 것부터 풀어 정리해야 합니다. 그 다음 어렵거나 난해한 구절은 이미 알고 있는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특별한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아무렇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728×90

반응형

베드로후서 1장 (개역개정/쉬운성경, 자비교회 성경통독)

인사

[벧후]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와 같이 소중한 믿음을 받은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여러분은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힘입어 이 믿음을 받았습니다.

[벧후]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더 깊이 앎으로써 은혜와 평안이 여러분에게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다

[벧후]1:3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그분을 알 때에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영광과 선함으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벧후]1:4 그 영광과 선함을 통해 약속하신 크고 놀라운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으며, 이 약속을 통해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함께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떤 정욕도 여러분을 멸망시킬 수 없습니다.

[벧후]1:5 그러므로 이러한 복을 받은 여러분은 열심히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벧후]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벧후]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벧후]1:8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자라난다면, 여러분을 유익하고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여러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줄 것입니다.

[벧후]1:9 그러나 이런 것을 갖추지 못한 자는 앞 못 보는 사람과 같으며, 과거의 더러운 죄로부터 깨끗함을 받은 사실을 잊은 사람들입니다.

[벧후]1:10 형제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임을 남들이 알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여러분은 결코 넘어지지 않으며,

[벧후]1:11 우리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서 최고의 환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벧후]1:12 여러분이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또 진리 안에 굳게 서 있지만, 한 번 더 여러분의 기억을 일깨워 주고 싶습니다.

[벧후]1:13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여러분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벧후]1:14 나는 이제 곧 육신을 떠나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그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벧후]1:15 내가 할 수 있는 한 몇 번이고, 여러분이 이것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힘쓸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러분이 이 사실들을 기억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다

[벧후]1:16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 가운데 오실 것을 여러분에게 전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지어 낸 근사한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의 위엄 있는 모습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벧후]1:17 장엄한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가 그로 인해 무척 기쁘다.”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과 존귀를 받으셨습니다.

[벧후]1:18 우리는 그 음성을 똑똑히 들었습니다. 거룩한 산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었을 때 들은 그 음성은 분명히 하늘로부터 울려 온 것이었습니다.

[벧후]1:19 이렇게 해서 우리는 예언자들이 전한 말씀을 보다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 말씀을 가까이 하고 따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그들이 전해 준 말씀은 어두움을 환히 밝혀 주는 빛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 빛은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동이 트고, 아침 샛별이 환히 떠오를 때까지 여러분의 마음을 밝혀 줄 것입니다.

[벧후]1:20 그러므로 분명히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어떠한 예언의 말씀도 예언자가 마음대로 해석해서 기록한 것이 아니며,

베드로후서

베드로후서 1장 1절은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후서의 저자임을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베드로후서에 대한 베드로의 저자권은 신약의 다른 어떤 책보다 더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부들은 그것을 거부할 정당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후서의 저자가 베드로라는 사실을 부인할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베드로후서는 베드로의 생애가 끝날 무렵에 기록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네로의 통치 기간 동안 로마에서 순교했기 때문에, 주후 68년 이전에 죽은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가 주후 65-68년 사이에 베드로후서를 썼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이 교회에 침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강해져야 확산되는 배교를 감지하고 싸울 수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과 주 예수님의 확실한 재림을 강하게 강조했습니다.베드로후서 1:3-4,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베드로후서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자신의 죽음이 가까운 것(벧후 1:13-15)과 교회가 즉각적인 위험에 직면한 사실을 알게 된(벧후 2:1-3) 베드로는 독자들에게 그의 가르침을 기억할 수 있도록(벧후 1:15) 그들의 기억을 새롭게 하고(벧후 1:13) 그들의 생각을 자극하라(벧후 3:1-2)고 요구합니다. 그는 신자들이 그들의 믿음에 특정한 그리스도인의 덕목을 더함으로써 더욱 믿음 안에서 성숙해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효과적으로 알아가고 또한 그 지식에 있어서 결실을 맺으라고 도전했습니다(벧후 1:5-9). 그는 그들에게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저자들의 권위 위에 믿음을 세우라고 요구하였습니다(벧후 1:12-21, 3:2, 3:15-16). 베드로는 그들이 믿음 안에서 강해져서 교회에 들어와 나쁜 영향을 미치는 거짓 교사들과 맞서 싸우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거짓 교사들을 공박하면서 그들의 행동과 비방과 특성(베드로후서 2장), 그리고 그들이 주의 재림을 조롱한 것을 묘사했습니다(벧후 3:3-7).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의 재림은 그들에게 거룩한 삶을 살도록 장려한다고 가르쳤습니다(벧후 3:14). 베드로는 마지막 경고를 한 후에 다시금 그들의 주님이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격려하였습니다. 그는 주요 구주이신 그리스도께 찬양을 드리며 서신을 마무리합니다(벧후 3:18).베드로는 거짓 선지자들을 강력하게 반박하면서 그의 독자들이 매우 친숙하게 알고 있을 잘 알려진 구약의 주제를 반복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 잘 배운 회심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1장 19-21절에서 구약의 “더 확실한 예언”을 언급하면서 단번에 거짓 선지자들을 반박하였고 참된 선지자들은 그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에 감동을 받았다고 확증하였습니다(삼하 23:2). 예레미야는 이와 동등하게 거짓 선지자들을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렘 23:26). 분명히 구약과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속인 동일한 거짓 교사들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으며, 2천년 전과 마찬가지로 베드로후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관련이 됩니다.우리는 확실히 21 세기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서신이 쓰여진 1 세기 그리스도인보다 우리 주의 재림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엉터리 가짜 목사들이 텔레비전과 다른 대중 매체를 통해 진정한 기독교 지도자들처럼 행세하고 있고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속임수와 그릇된 성경 해석을 ‘받아들여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에 근거를 두고 오류로부터 진리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베드로가 알려준 믿음의 성장을 위한 동일한 처방(벧후 1:5-11)이 우리의 삶에 적용될 때 우리는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벧후 1:10-11) 풍성한 보상을 확증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위한 기초는 지금이나 언제나 베드로가 전한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의 묵상말씀 베드로 후서 1장 3절 (5월11일)

오늘의 묵상말씀 베드로 후서 1장 3절 (5월11일)

● 벧후 1:3

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는 안부 인사를 하면서

그들에게 덕과 절제와 인내를 갖춤으로써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고 믿

음 안에서 성숙해 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정욕과 세상의

부패한 영향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교훈하고 있다.

여기에서 믿음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됨을 보여 주는 일들을 행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어떻게 여러분의 행동의 변화가 실제로 여러분이 바라는 대상의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여러분이 하나님과 하나됨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영적 훈련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기도

홀로 영광 받으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자에게 주신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소망 가운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과 하나가 되길 원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키워드에 대한 정보 베드로 후서 1 장

다음은 Bing에서 베드로 후서 1 장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베드로후서 1장

  • 성경
  • 성경읽기
  • 기독교
  • 교회
  • 말씀
  • 성경듣기
  • 바이블
  • 설교
  • 크리스천

베드로후서 #1장


YouTube에서 베드로 후서 1 장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 베드로 후서 1 장,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See also  제주도 집 매매 | (급매)제주도 농가주택 매매 어차피 허름한 농가주택 사서 고쳐도 이거보다 비싸요~ 제주도 부동산 매물,Jeju House For Sale,Korea,제주도부동산Tv 20276 투표 이 답변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