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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 승아 제 모지 사바하 | Come Come Come Upward (아제 아제 바라 아제)-강수연-임권택-대종상 상위 55개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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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Come Come Upward (Korean:아제 아제 바라 아제) is a 1989 South Korean film directed by Im Kwon-taek.
건너갔다, 모두가 저 너머로 건너갔다.
공하다, 얻을 것이 없다, 갈 곳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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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아제 바라아제 뜻 –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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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4/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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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불교기초강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

부처님 세계로 가버리네! 부처님 세계(피안)로 완전히 가버렸네!’라고 번역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모지 사바하(bodhi svh)’는 ‘모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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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ibulgyo.com

Date Published: 9/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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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 나무위키:대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세 번 반복). 라고 하였다. 이 교수는 이 부분에서 한역 반야심경에서 ‘반야바라밀다 주문’ 즉 ‘반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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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8/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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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현대불교신문

오히려 보기에 따라서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라고 하는 밀교의 입장을 더욱 중시하면서, 〈반야심경〉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

+ 여기에 보기

Source: www.hyunbulnews.com

Date Published: 8/4/2022

View: 5699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이 경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조계사로 보내야 한다. 중생 계도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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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iklux.com

Date Published: 7/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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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바라승아제(波羅僧揭諦) : 피안으로 완전히 가자. 모지(菩提) : 깨달음에. 사바하(娑婆訶) :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kydong77.tistory.com

Date Published: 2/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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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Daum 블로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이 부분은 반야바라밀다주를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 각 단어의 뜻을 알아보겠습니다. 아제(揭諦) : 가자.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7/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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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 승아 제 모지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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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Come Come Upward (아제 아제 바라 아제)-강수연-임권택-대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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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 승아 제 모지 사바하

  • Author: sam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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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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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아제 바라아제 뜻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한때, 많은 이들이 반야심경의 이 마지막 부분을 신성시하며 만트라는 번역하는 게 아니기에 뜻을 생각하지 말고 반복해야 한다고 믿었다. 세상 최고의 신비하고 대단한 주문이니 주문 자체에 뭔가 대단한 힘이 있다는 믿음이다. 그런데 분명 반야심경은 그런 거 없다고 말한다. 혹여라도 그들의 믿음처럼 그런 것이 있었으면 오랫동안 중국이나 한국의 수행자들은 다 헛일한 샘은 아닐까.

산스크리트어를 비슷한 한자 음으로 음역하고 그 한자음을 다시 한글 음으로 옮긴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는 정확한 발음이 아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गते गते पारगते पारसंगते बोधि स्वाहा이고 IAST에서 나타내는음운은 gate gate pāragate pārasaṃgate bodhi svāhā이고 IPA에서 나타내는 음운은ɡəteː ɡəteː paːɾəɡəteː paːɾəsəŋɡəte boːdʱɪ sʋaːɦaː이다. 분명 우리가 발음하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랑 비슷하기는 하다. 비슷하다는 것도 이 발음에 익숙한 한국인이 보기에 그렇다. 고대 인도인이 들으면 전혀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혹, 우리가 바라는 그런 뜻이 아니라 정 반대의 말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미국 식당에 가서 보니 나이프는 있는데 포크가 없어서 “포크 좀 갖다 주실레요? Could you give me a pork?”라고 말하면 돼지고기를 가져다줄지 모른다. Folk의 “F” 사운드를 바르게 발음하지 못하고 한국 사람들이 자주 실수하듯 한글 음대로 “P” 사운드로 “포크”로 발음하면 나이프 옆 포크가 아니라 돼지고기가 된다.

나와 너가 점하나 차이지만 정반대의 말이 되는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한국말이 서툰 남자가 한국 여자분에게 “너를 좋아한다.”라고 고백하려 한다. 차마 만났을 때 말은 못 하고 전화를 걸어 용기 내어 말한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여자분이 왜 전화해서 자기 자신을 좋아한다고 하는지 몰라 황당해서 “… 응… 그래서?”라 반문한다. 남자는 바로 뭔가 잘 못된 걸 직감하고 전화를 서둘러 끊고 머리를 쥐어 뜯는다.

한국말이 어설픈 외국인이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데 기사분이 이리 가면 되냐고 여러 번 묻길래 택시 기사에게 여러 번 “계속 직진해 주세요.”라고 했더니 택시 기사분이 화가 나 보였다 한다. 한국인 친구가 어떻게 말했는지 들어보니 “계소키 직진해요.”로 들린다. 한바탕 웃고 나서 외국인 친구에게 욕같이 들렸을 수 있겠다고 일러준다. 자칫 욕 같은 이 말에 아무리 외국인이라도 택시 기사분이 성질 있는 분이셨으면 가만있지 않으셨을 거라고 덧붙인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라고 한들, 콜라를 모르는 조선시대 수행자가 “콜라콜라 코카콜라 팹시도콜라 모지 사바하”라고 한들 뭐가 다를까.

우스게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뼈 있는 말이다. 흘려들을 소리가 아니다. 여전히 “혹시나.. 그래도..”하는 마음이 있다면 가만히 자신에게 어떤 믿음이 있는지 살펴보라.

아직도 “그래도, 혹시나”하면서 뭔가 얻을 것이 없을까 하며 바라는 찾는 이는 마지막 부분을 하나의 방법으로 받아들인다. 뭔가를 얻을 수 있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행이라 여긴다. 스승은 오늘도 자신의 노력만을 탓하며 뼈 깎는 수행을 이어가는 수행자들이 안타깝다. 그래서 침묵으로 충분할 가리킴이 길어진다. 어쩔 수 없이 이런 주문도 설하게 된다. 이 또한 다 있는 그대로인 것을 스승은 잘 안다.

반야심경의 마지막 이 부분을 바로 이해하려면 수많은 수행에 관한 환상과 믿음을 내려놓고 ‘수행’의 본질을 바로 알아야 한다. 수행은 뭔가를 얻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얻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다. 진리를 찾기 위해 지금 여기가 아닌 어딘가 피안(彼岸)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진리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있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다. 있는 그대로의 진리가 드러나기를 바라는 간절함의 표현이다. 이것이 수행의 본질이다.

揭諦揭諦 波羅揭諦

아제아제 바라아제

신비한 주문을 번역하면 안 된다는 한때의 믿음을 뒤로한 채 요즘은 이 부분을 한글로 번역해서 알리는데, 한글 위키피디아에 나온 다음 번역이 일반적이다.

“가자 가자 넘어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

그런데 영어 위키피디아에 나온 영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gone, gone, everyone gone to the other shore, awakening, svaha.”

(일단 직역해보면 “건너갔다, 건너갔다, 모두가 저 너머로 건너갔다. 깨달음이여, 사바하”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가자 가자 넘어가자, 모두 넘어가서..”라는 한글 번역에는 정확히 반야심경에서 그렇지 않다고 알려주는 믿음이 가득하다. 신비한 주문을 열심히 외워서 깨달음을 얻자는 믿음이 넘쳐난다. 이 말은 “지금은 아니다.”라는 말이다. 지금은 깨달음이 없다는 말이다. 또 이 말은 “여기는 아니다.”라는 말이다. 여기는 벗어나야 할 삼사라다. 현세상을 부정하고 이데아를 꿈꾸는 플라톤의 철학이다. 괴로운 삶을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다.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나온 번역이다. 반야심경의 전체 내용과 맞지 않는 번역이다.

영어 위키피디아에 나온 산스크리트어의 영어 번역을 보면 반야심경 전체 내용과 흐름을 같이 한다. “건너갔다, 건너갔다, 모두가 저 너머로 건너갔다.”라는 반야심경의 뜻을 잘 품고 있다. 공하다, 얻을 것이 없다, 갈 곳이 따로 없다고 말하는 반야심경이 가리키고자 하는 바다. ‘나’만 저 너머로 간 것이 아니라 세상 모두가 이미 도착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말한다. 이것이 깨달음이라고. “무무명 역무무명진”에서부터 “일체고진실불허”까지의 내용을 요약한다.

아직 스승의 말이 명확히 이해가 안 되고 받아들이기 힘든 찾는 이는 이렇게 요약된 내용을 되풀이하면서 기다린다. 스승이 왜 이렇게 내용을 요약해서 되풀이하게 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일단 되뇌기 쉽게 핵심을 요약한다. 이미 자세한 뜻은 길게 앞에서 설명했으니 찾는 이는 요약된 내용의 본 뜻을 알고 있다. 요약을 반복하면서 가리킴의 본 뜻을 계속해서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풀이하는 까닭은 앎의 본질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뭔가를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반복이라 할 수 있다. 반복하면 익숙해진다. 익숙하면 문득 “아하!” 한다. 안다고 생각한다. 이제 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들 앎이라고 말한다. 물론 단순한 반복을 말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반복할 때 그 뜻을 알고자 하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그 뜻에 자꾸자꾸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것이 위빠사나다. 이것이 만트라다. 이것이 살펴보기다.

위빠사나(Vipassanā, विपश्यना, 觀, Vipaśyanā)와 만트라는 본질적으로 같다. 같은 수행이다. 관심을 가지고 반복해서 살펴보다 보면 앎이 일어난다. 궁극적 깨달음이 일어난다.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일어난다.

娑婆訶

사바하

사바하(薩婆訶, svāhā, Sanskrit: स्वाहा)는 산스크리트어로 어떤 주문을 말한 뒤 마무리하는 통상적인 말인데 여러 번역을 통해 나타나는 의미는 간절함의 표현이라는 점이다.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이렇게 찾음의 본질과 수행의 본질을 살피며 스승이 반야심경을 통해서 찾는 이에게 무엇을 가리키려 하는지 그 의도를 담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있다. 있다. 모두 있다. 바로 지금 여기 모두 있음에 눈뜨게 하옵소서.”

반야심경을 요약해서 찾는 이가 반복하기 쉽게 만든 말이다. 반복으로 오랜 믿음이 씻겨나가고 스승의 가리킴에 가슴이 열리도록 하는 말이다. 그렇게 문득 앎이 일어나게 하는 주문이다.

모든 헛된 믿음을 내려놓고 다시 보면 참으로 신비하게 앎을 일으키는 주문이며 당신의 가슴을 환히 밝히는 주문이며 최상의 주문이며 따로 다른 대단한 비법을 찾아다닐 필요 없이 이것만 집중하면 되는 주문이다. 그래서 능히 모든 오해와 믿음의 어려움을 넘어 있는 그대로의 진리가 드러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특정한 문장이나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본질이 그렇다는 말이다. 실체가 그렇다. 그렇게 공하다. 이 공을 통해 관자재보살의 실체를 본다.

이 주문을 문장으로 말하면 “진리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있다.”이다.

(책, “진리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있다.”의 제목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제 알 것이다.)

이미 있다. 있다. 모두 있다. 뭘 얻을 필요도 건너갈 필요도 없다. 이미 모두 있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 모두 있다. 이미 있는 그대로다. 중생에게는 없고 부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모른다고 또, 안다고 다를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미 여기 지금 모두 있기 때문이다. 중생도 없고 부처도 따로 없다. 사물도 사물을 바라보는 ‘나’도 당신이 믿는 모든 다른 세상도, 극락도 지옥도, 모든 신들도, 브라흐마도 비슈누도 시바도, 정말 어떤 예외도 없이 모두 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있다.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삼세제불이 정확히 아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 눈을 떠라. 이 사실이 관세음보살이다. 이 진리가 관세음보살이다. 그렇게 관세음보살이 드러난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다.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있다. 있다. 모두 있다. 바로 지금 여기 모두 있음에 눈뜨게 하옵소서.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있다. 있다. 모두 있다. 바로 지금 여기 모두 있음에 눈뜨게 하옵소서.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있다. 있다. 모두 있다. 바로 지금 여기 모두 있음에 눈뜨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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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불교기초강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무슨 뜻?

Q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는 무슨 뜻인가?

진언으로 보통 번역하지 않지만

‘가버리게 하네! 가버리게 하네!

부처님 세계로 완전히 건너가네!

깨달음이여, 아~싸(만세)!’ 정도…

A 한문으로 읽혀지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는 음역된 것으로 우리말로는 그대로 번역 할 수 없습니다. 그 뜻을 알고자 하면 인도의 고대 글자인 산스크리트어의 원음을 알아야 합니다.

산스크리트어 원음은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드히 스바하(gate gate pragate prasam.gate bodhi svh)’입니다. 이 문구는 일반적 문장이 아니라 진언 혹은 주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진언이나 주문은 주로 번역을 하지 않으나 보기 드물게 이 문장은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

진언이란 주로 몸과 마음과 호흡이 깊은 명상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 터져 나오는 소리를 말합니다. 깊은 명상 속에서는, 마치 물고기가 노니는 투명한 어항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사물의 본모습을 확연히 볼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 속의 주인공인 관세음보살은 이렇게 진리를 이해하고 세상을 꿰뚫어 본 뒤, 모든 고통을 극복하였습니다. 완벽한 해탈에 이른 그는 기쁨의 탄성을 질렀는데, 그것이 바로 이 진언입니다.

‘아제(gate)’는 가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괴로움에서 해탈로 가버린 것이고, 혼란스러움에서 고요한 명상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반복어 ‘아제아제(gate gate)’는 가버리고 또 가버린 것입니다. ‘바라아제(pragate)’는 아주 먼 저 곳 끝, 파라다이스(부처님 세계)까지 가버린 것을 말합니다. ‘바라승아제(prasam.gate)’는 완전히 저 먼 곳 피안의 세계에 가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는 ‘가버리네 가버리네! 부처님 세계로 가버리네! 부처님 세계(피안)로 완전히 가버렸네!’라고 번역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모지 사바하(bodhi svh)’는 ‘모지(bodhi)’가 깨달음을 뜻하고, ‘사바하(svh)’는 기독교의 할렐루야처럼 기쁨과 행복에서 나오는 소리를 말합니다.

굳이 표현해 보자면 ‘이루어지이다!’ 혹은 ‘만세!’, 젊은 세대들 표현이라면 ‘아싸!’ 정도로 번역 해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면 ‘모지 사바하’는 ‘깨달음이여, 아~싸(만세)!’가 되겠습니다.

정리하자면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인 이것은 이 경의 핵심인 ‘공(空)’을 이해하고 깨달은 희열을 외마디 탄성으로 표현한 진언입니다. 굳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를 번역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버리게 하네! 가버리게 하네! 부처님 세계로 가버리게 하네! 부처님 세계(피안)로 완전히 건너 가버리게 하네! (공의)깨달음, 아~싸(만세)!’

[불교신문3533호/2019년11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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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빗나간 예언

예언은 기본적으로 미래전망이다. 미래는 글자 그대로 아직 오지 않은 일이기에, 사실 알아맞힌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예측에 목이 말라한다. 그런데 정녕 중요한 것을 하나 잊어버리고 있는 것같다. 맞았다거나 틀렸다거나, 이런 평가에 대한 후일담이 없다. 그저 말해버릴 뿐, 그 뒤의 사후검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한 문제들 중에서 종교와 관련해서 이루어진 것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의 지식수준이 높아지면 종교는 사라질 것이다.” 이런 전망은 합리주의적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대개 20세기 초에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돌았다. 아마도 진화론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던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종교 고유의 영역이 확보되고 있지는 않은가. 죽음이 있기에 종교는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유한을 극복하고 무한에 이르고자 하는 욕망이 종교적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틀린 예언 중의 하나로 주문(呪文)의 운명에 대한 것도 있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비합리적인 주문과 같은 것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해졌다. 미래는 합리주의의 시대라고 높이 노래 불려졌다. 그렇긴 했다. 합리주의의 시대가 왔다. 하지만 종교가 그러했던 것처럼 주문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주문 역시 종교를 구성하는 중요한 하나의 측면이 아니었던가 싶다.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말씀하신 뒤에, 그 “반야바라밀이야말로 위대한 신주(神呪)이고 위대한 명주(明呪)이며 위없는 주문이고 어디에고 견줄 데가 없는 주문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이 자리가 어디인가? 가장 진실한 최고의 지혜를 설하는 곳이 아닌가.

주문의 정체

“반야바라밀이야말로 위대한 신주이다”라는 문장을 통해서 볼 때, 주문의 정체는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반야바라밀이다. 앞에서 말했던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가지 범주)은 곧 존재하지 않는다(空)”라고 하는 인식, 그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이다. 이는 종래의 관점을 전복하는 것이 아닌가. 종래 우리는 많은 주문을 들어왔다.

그런데 〈반야심경〉은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것은 주문이 아니라고 말이다. 진실한 주문은 바로 반야바라밀 그 자체라고 말이다. 이러한 논리는 쉽게 동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하나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 뒤에 나오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라는 것은 무엇인가? 없어도 되는 사족(蛇足)일까? 그렇게 보는 관점 역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분명히 반야바라밀이 곧 주문이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뒤에 나오는 주문이 없어도 되는 것일까? 있어야 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러할까? 왜 “반야바라밀이 곧 위대한 신주”라고 말씀하시고서는, 다시 또 “곧바로 주문을 설한다”라고 하셨던 것일까? 그 주문으로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를 말했던 것일까?

만약에 경전의 마지막 결구(結句)로 제시되어 있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라고 하는 주문을, 경전의 제일 앞에 제시해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되었다면 그 뒤에 이어질 말씀들은 결국 그 주문에 대한 해석이 되었으리라.

이는 결국 〈반야심경〉에는 반야바라밀의 정체성을 두가지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나는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顯敎)에 의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앎의 세계를 떠난 언어(密敎)에 의해서이다. 오히려 보기에 따라서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라고 하는 밀교의 입장을 더욱 중시하면서, 〈반야심경〉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가 없어도 좋을 군더더기로만 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38.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https://www.youtube.com/watch?v=0ntn3Q28BD4

38.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http://blog.daum.net/mahatop7/5498

이 부분은 반야바라밀다주를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각 단어의 뜻을 알아보겠습니다.

아제(揭諦) : 가자.

바라(波羅) : 피안.

승(僧) : 완전히.

모지(菩提) : 깨달음(보리)

사바하(娑婆訶) : 뿌리내리다.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위를 잘 살펴보면 계속 첨가되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엔 아제아제..

그다음엔 바라아제…

그다음엔 또 바라승아제입니다.

그러므로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제아제(揭諦揭諦) : 가자 가자.

바라아제(波羅揭諦) : 피안으로 가자.

바라승아제(波羅僧揭諦) : 피안으로 완전히 가자.

모지(菩提) : 깨달음에

사바하(娑婆訶) : 뿌리를 내려라.

이 반야바라밀다주는 산스크리트어로 외우는게 좋습니다.

그게 원어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산스크리트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토말 :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 스와하 <=== 억양을 부드럽게 했을 때 한국말 :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영 어 :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해 석 : 가라. 가라. 피안으로 건너가라.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가라. 깨달음에 뿌리를 내려라. 반야심경 전체를 외우는 게 좋습니다. 만약 전체를 못 외우시는 분들은 이 반야바라밀다주만큼은 꼭 외우시기 바랍니다. 짧아서 외우기 쉽습니다. 반야바라밀다주는 여러 번 많이, 항상 외워도 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좋습니다. 아래는 반야마라밀다주 동영상입니다. [반야심경 HD - 산스크리트어] https://www.youtube.com/watch?v=aMKDBDHTT24 <테야타 옴>이 앞에 붙습니다.

굉장히 감미롭습니다.

스와하를 소하로 발음합니다.

한국어로는 사바하=스와하=소하

https://ko.wikipedia.org/wiki/%EC%98%B4_%EB%A7%88%EB%8B%88_%ED%8C%8C%EB%93%9C%EB%A9%94_%ED%9B%94

관세음보살 본심미묘 육자대명왕진언(觀世音菩薩 本心微妙 六字大明王眞言), 육자대명왕다라니(六字大明王陀羅尼), 옴 마니 파드메 훔(산스크리트어: ॐ मणि पद्मे हूँ, 한국 한자: 唵麼抳鉢訥銘吽) 및 옴 마니 반메 훔은 불교의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이다. 밀교를 비롯하여 불교에서 사용되는 주문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어에서는 성철스님이 50년 전에 ‘옴 마니 반메 훔’이 아니라 ‘옴 마니 파드메 훔’이라고 고쳤으나 현재 전자쪽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1]

대승불교의 경전인 ‘육자대명왕다라니경'(六字大明王陀羅尼經) 및 ‘불설대승장엄보왕경'(佛説大乘莊嚴寶王經) 등에서는, 이 진언을 부르면, 여러가지 재앙이나 병환, 도적 등의 재난에서 관세음보살이 지켜주고, 성불을 하거나 큰 자비를 얻는다고 주장하며, 이 주문의 효과가 적혀있다.[2][3]

문자적인 뜻은 “옴, 연꽃속에 있는 보석이여, 훔”으로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주문이다. 티베트인들이 특히 많이 외운다. 보통 티베트인들은 이런 뜻과 상관없이 그냥 많이 외우기만 하면 그 자체로 영험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4]

<테야타>가 앞에 붙습니다.

<테야타>는 ‘즉설주왈(卽說呪曰)’ 이라는 뜻 입니다.

반야바라밀다주만 반복됩니다.

남녀가 같이 독송합니다.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 亦 無得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 역 무득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가테가테 빠라가테 빠라상가테 보디 스와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가테가테 빠라가테 빠라상가테 보디 스와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가테가테 빠라가테 빠라상가테 보디 스와하

https://kydong77.tistory.com/18295?category=600741

불보살 관련 진언

http://www.libportal.co.kr/addon/saAddSutraCont.asp?kind=b1

http://www.libportal.co.kr/addon/saAddSutraCont.asp?kind=b1

1. 아미타불 관련진언 2. 약사여래 관련진언 3. 관세음보살 진언 4. 관세음보살 사십이 수주 5. 지장보살 진언 6. 문수보살 진언 7. 보현보살 진언 8. 미륵보살 진언 9. 기타 불보살과 경전의 진언 10. 대불정수능엄 신주 11. 백팔다라니

https://blog.daum.net/moowooland/3615

자안시중생(慈眼視衆生)

이 부분은 반야바라밀다주를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각 단어의 뜻을 알아보겠습니다.

아제(揭諦) : 가자.

바라(波羅) : 피안.

승(僧) : 완전히.

모지(菩提) : 깨달음(보리)

사바하(娑婆訶) : 뿌리내리다.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위를 잘 살펴보면 계속 첨가되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엔 아제아제..그다음엔 바라아제… 그다음엔 또 바라승아제입니다.

그러므로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제아제(揭諦揭諦) : 가자가자.

바라아제(波羅揭諦) : 피안으로 가자.

바라승아제(波羅僧揭諦) : 피안으로 완전히 가자.

모지(菩提) : 깨달음에

사바하(娑婆訶) : 뿌리를 내려라.

이 반야바라밀다주는 산스크리트어로 외우는게 좋습니다.

그게 원어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산스크리트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토말 :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 스와하 <=== 억양을 부드럽게 했을 때 한국말 :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영 어 :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해 석 : 가라. 가라. 피안으로 건너가라.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가라. 깨달음에 뿌리를 내려라. 반야심경 전체를 외우는게 좋습니다. 만약 전체를 못 외우시는 분들은 이 반야바라밀다주만큼은 꼭 외우시기 바랍니다. 짧아서 외우기 쉽습니다. 반야바라밀다주는 여러번 많이, 항상 외워도 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좋습니다. 아래는 반야마라밀다주 동영상입니다. <테야타 옴>이 앞에 붙습니다.

굉장히 감미롭습니다.

스와하를 소하로 발음합니다. 한국어로는 사바하=스와하=소하

<테야타>가 앞에 붙습니다.

<테야타>는 즉설주왈이라는 뜻 입니다.

반야바라밀다주만 반복됩니다.

남녀가 같이 독송합니다.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키워드에 대한 정보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 승아 제 모지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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